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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님의 서재입니다.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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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highd
작품등록일 :
2021.08.24 10:52
최근연재일 :
2021.11.1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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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272,567

작성
21.10.26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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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7쪽

9장 청자#4

DUMMY

무심하게 드려져 있던 낚싯줄이 팽팽히 당겨진다. 순간 낚아챘지만, 미끼만 따먹고는 달아나 버렸다.

‘남도가에는 그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구먼?’

‘아녜요. 귀남이와 까비가 배를 타고 회오리낭 앞을 지나다가 괴물 물고기에게 잡혀가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요.’

‘괴물 물고기?’

‘네. 길이가 20자가 넘고 팔이 달린 괴상한 물고기인데 이 물고기의 마법에 배가 침몰하기도 하고 죄 없는 사람들이 물속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는 거예요. 괴물 물고기에 끌려갔던 귀남이와 까비가 물고기를 까부수고 잡혀있던 영혼들을 용궁으로 인도하여 용왕의 축복을 받아 원한을 풀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그 이후에는 회오리낭에 거센 물살도 사라지고 거기 휩쓸려 목숨을 잃는 사람도 사라졌다는군요. 남도가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극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명작이라고 해요.’

‘그렇군. 그걸 들어봐야 했는데.’

돌아갈 시간이다. 이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노 젓는 소리에 가까스로 머리만 내민 바위에 앉아있던 갈매기가 날갯짓하며 날아오른다.


‘스승님. 세상의 이치를 좀 가르쳐 주십시오.’

벌써 싫증이 나는지 몸을 배배 꼬며 경렬이가 딴청을 피운다.

‘왜 벌써 싫증이 나느냐? 책상 앞에 붙어 앉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냐? 그래 어떤 이치를 말하는 거냐?’

‘어떤 이치는요? 태조 왕건께서 고려를 세우면서 불교로 기틀을 다졌는데 어찌 과거 시험을 보는데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겁니까? 저는 항상 그게 궁금했어요.’

자꾸 샛길로 나아가는 듯하지만, 공부하려면 그런 걸 한 번쯤은 알아두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좋은 질문을 했다. 불교는 본디 정신수양을 해서 마음을 맑게 하고 도덕심을 키워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장점은 있다. 그런데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 이래 부처의 원력의 힘을 빌려 백성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고 이것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을 받고자 했지. 그러나 불교에 나라를 통치하는 원리가 들어있지는 않아.’

‘맞아요. 저도 그런 생각은 언뜻언뜻 들어요.’

‘그렇지만 유교 경전 속에는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가 들어있어 벼슬아치들이 배워야 할 필수 지식이 들어있다고 봐야 해. 그래서 유교 경전을 바탕으로 공부를 하고 그것을 기초로 과거 시험을 치르는 거지.’

‘궁금한 게 더 있어요.’

‘그렇다면 유교 경전 시험을 봐야지. 왜 글 짓는 걸 더 위로 쳐주지요. 시나 부 따위.’

‘그게 궁금한 거구나. 궁금할 만할 거야. 유교 경전을 이해하고 그 내용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아는 걸 바탕으로 우주의 원리가 담겨 있는 글을 창조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거지.’

‘알 듯 말 듯 해요.’

‘나중에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게 될 거다. 오늘은 날도 좋고 하늘도 높으니 야외 수업을 하도록 하자. 아버지에게 연락을 넣어놓으라고 해라. 걱정하실라.’

‘아버지에게 소재를 알려야 하는 거죠? 책을 가지고 나갈까요?’

‘책도 중요하지만, 이 세상에는 책 속에 없는 지식도 많이 있단다. 오늘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그 지식을 쌓아 보자.’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맑고 눈이 부실 정도로 해가 쨍쨍하다. 경렬이가 겅중겅중 뛰며 저만치 앞서간다. 어린애는 어린애다. 나지막한 동네 뒷산을 오르는데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숨이 턱에 차고 앞가슴에 땀이 줄을 짓는다. 정상에 오르니 경렬이가 벌써 맞춤한 바위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못된 놈이구나. 어찌 스승님을 앞서느냐?’

‘죄송하옵니다. 스승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꾸며낸다.

‘전번에 천렵 갔던 친구들 데려와 같이 공부하자 했더니 왜 데려오지 않느냐?’

‘아! 걔들이요. 걔들이 오겠어요? 책은요. 책만 보면 뜯어서 불쏘시개 할 놈들인걸요. 얘기도 못 꺼냈어요. 스승님 때문에 걔들 만난 지도 오래되었네요. 어차피 다른 길을 가야 할 애들이에요.’

경렬이가 풀잎을 뜯어 풀피리를 만든다. 풀잎이 맞부딪치며 오묘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너 재주도 좋구나?’

‘이거요. 걔들한테 배웠어요.’

어느새 땀은 식고 산골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으로 시원함이 느껴진다.

‘스승님.’

‘응?’

‘스승님 얘기 좀 해주세요.’

‘무슨 얘기.’

‘세상 살아온 얘기요. 이렇게 훌륭하신 스승님이 귀양살이한다는 것이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 인연으로 제가 스승님을 만나게 된 거기는 하지만.’

‘잘못했으니 귀양살이를 하겠지. 그 정도로만 생각해라. 깊이 알려고 하면 다치느니라.’

‘스승님. 배운다는 게 글공부만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세상 사는 공부도 큰 공부 아닙니까? 우주의 원리에 다가갈 좋은 기회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느냐? 내가 제자 하나는 잘 두었구나. 배운 걸 금방 써먹네.’

‘그럼 얘기해 줄 테니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있거라. 비평이나 비판을 하려고 하지 말아라.’

‘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판도사 총랑으로 있을 때 원나라 황제 생신 축하 사절단 책임자로 연경에 다녀왔느니라.’

‘사절단 책임자로요? 신임이 두터우셨나 봐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이제 출셋길이 터지는구나. 성절사 임무를 끝내고 큰 대과 없이 성공적으로 돌아오니 우리 마누라가 자살했다는 거야. 그것도 시부모님이 사는 용인에 내려가서 목을 맸다는 거지. 왜 그랬을까? 내가 부족했나? 무엇이 부족한 게 있어 지아비가 막중한 임무를 띠고 연경으로 갔을 때 죽을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너무 많은 생각이 들더구나.’

‘왜 안 그러시겠어요. 얼마나 생각이 많으셨겠어요? 좀 주제넘은 것 같지만 그래서 스승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파란 하늘에 무심한 구름이 덧없이 흘러간다. 구름 한 조각에 울컥한다.

‘내가 괜한 얘기를 시작했구나.’

경렬이가 곽상진 쪽을 바라보더니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모양이다.

‘아녜요. 스승님. 이제 다시는 말참견 안 할게요. 마저 말씀해 주세요.’

‘그래서 여러 군데 알아봤어. 부모님부터, 몸종 삼월이, 송악산 정상에 올라가서 성모할망 제단에서 굿을 했다는 무당까지. 그런데 말이 하나로 이어지는 거야. 군부상 총랑 김자량. 과거 시험에서도 장원을 하고. 무예에도 뛰어나 격구 대회만 열리면 출전해서 우승을 거머쥐었던 친구야. 그 친구가 사건이 나기 전에 우리 집을 들락거리며 마누라와 심각한 얘기를 나눴다는 거야. 창피한 얘기지. 남부끄러운 일이라 더는 캐지 않았어. 그런데 성절사 일이 마무리되고 난 다음에 인사가 있었어. 밀직사 좌대언으로 발령이 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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