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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님의 서재입니다.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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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highd
작품등록일 :
2021.08.24 10:52
최근연재일 :
2021.11.1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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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2,567

작성
21.10.2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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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9장 청자#2

DUMMY

‘이름은?’

‘경사 경(慶)에 맑을 렬(洌) 경렬이라 합니다.’

‘나이는?’

‘이팔청춘 열여섯입니다.’

‘아직 장가를 안 갔구먼?’

‘안 보내주는구먼요.’

조금 경박한 느낌이 든다.

‘내 소개를 좀 할까?’

‘알고 있어요. 과거 시험 감독을 잘못하셔서 귀양 오셨다는 거.’

‘그런가? 그 얘긴 또 어디서 들었어?’

기선을 잡으려고 하는가? 거침이 없다. 머뭇거림도 없다.

‘나중에 그거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하지.’

이런 천방지축을 데리고 무슨 설명을 할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다리가 아픈지 꿈지럭거린다.

‘편히 앉게. 앞으로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텐데 편하게 지내야지.’

‘자네 어디까지 공부했나?’

‘천자문 떼고 소학 공부하다가 전주에 가서 사서삼경을 공부했는데 그건 공부하지 않은 거나 매한가지입니다.’

‘왜 그런가?’

‘이팔청춘 좋은 시절에 어둠침침한 곳에 들어앉아 고리타분한 한문 쪼가리나 외우고 있으니 얼마나 따분합니까? 그래서 가끔 수업을 까먹고는 사냥을 다녔습니다.’

‘무슨 사냥?’

‘애기씨들 사냥이요. 그때는 글방 도령들이라 하면 인기가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에게 붙잡혀 왔습니다. 저는 그만 일어나 봐야겠습니다. 친구들과 홀대만으로 천렵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마음에 점만 찍고 한 식경이 지나 만나기로 했으니 바로 지금이 그 시간입니다.’

‘그런가. 그렇지만 일단 오늘은 자네 소개를 받기로 한 날이라. 아버지에게 그렇게 얘기를 들었는데.’

‘제 소개는 다 했는데요? 이름, 나이, 그리고 돌아다니며 했던 짓들.’

‘그거 가지고는 안되네. 내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나 자네를 맡기로 했으니 자네 학문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

‘다음에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 중요한 약속인가?’

‘논어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멀리서 벗이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 세상에 친구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어이구. 실력이 대단하구먼. 그렇지만 벗도 벗 나름이지. 술에 따라서 놀이에 따라서 뭉치고 헤어지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친구들 그런 친구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한 번 그 친구들 데려와 보게. 내가 판정해 주지. 좋은 친구라면 자네와 같이 동무 삼아 글공부하는 것도 괜찮겠지. 그리고 취미를 들인다면 글공부도 친구들과 천렵하러 가는 것보다도 더 신나는 일일 수도 있어.’

·

한평 남짓한 방이다. 아침에 동에서 해가 뜰 때면 손바닥만 한 창으로 볕이 들어온다. 간단한 세수를 하고 나물 반찬에 소박한 아침상을 물리고 나니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방문을 여니 정자에서 보았던 색동이 거기 서 있다. 옷은 평범한 무명 치마, 저고리 차림이다.

‘현감님께서 가보라 하시었습니다.’

공손히 예를 갖춘다.

‘바쁜 거는 알지만 저번에 그 장가가 참 인상 깊어서 오늘 하루만 시간을 내게 해 달라고 현감님께 부탁했네. 괜히 귀찮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

‘아닙니다.’

‘그럼 이렇게 하세. 그 남도가라는 장가에 이 고을 이야기가 둘 들어간다고 하던데?’

‘네 그렇습니다.’

‘그중에서 멀지 않은 한 곳으로 직접 가서 자네가 그곳을 소개하는 장가를 듣고 싶네만?’

‘그렇게 하시지요.’

‘용통이라는 뚝방하고 회오리 낭이라는 낭떠러지가 있는데 회오리 낭은 멀기도 하고 길이 험해서 용통이라는 뚝방 쪽으로 가보시는 게 어떨지?’

말하는 솜씨가 장가를 부를 때만큼 시원시원하다. 앞서서 걷기 시작하는데 장고를 메고도 여자 걸음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힘들이지 않고 걷는 것 같은데 곽상진이가 따라가기가 벅차다. 곽상진이 허우허우 쫓아가다 한마디 한다.

‘좀 천천히 걷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뚝방이 눈에 들어온다. 물이 많이 들어차 있지는 않지만, 자연 호수만큼이나 물풀이 우거져 자연스럽다. 한쪽 뚝방 위에 제법 큰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늘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색동은 메고 온 장고를 내려놓고는 장고 채를 꺼내 장고 앞에 앉는다. 색동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장고를 몇 번 두드린다.

‘앞서가던 까비가 다시 돌아오는구나. 너 어디 가는고? 귀남이는 자기도 모르게 까비를 따라 돌아온다. 네 이놈 까비야. 너 장난 치느냐? 나를 가지고 노는구나. 아이고 나리 내가 누구를 가지고 장난을 칩니까? 억울합니다. 사타구니에 방울 소리가 나도록 걸어도 다시 돌아오는 걸 제가 어쩌란 말입니까?

어 이상코도 이상코나. 날이 저물도록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걸어도 제자리로구나. 어쩐 일이다냐?

용통 마을로 들어서니 마을 사람들이 웃어젖히며 손가락질을 하네. 내 그럴 줄 알았소. 용감하게 가길래 용쓰는 재주가 있겠거니 했는데 거기가 거기구려.

네 이놈 어디다 손가락질이냐. 치도곤을 당할 줄 알아라. 마음대로 하시오. 당신들 백날 용통을 지나지 못하고 헛걸음만 할 것이요.

오늘이 용통의 흑룡과 청룡이 싸우는 날이라는 것도 모른단 말이오? 모르면 용감하다더니 목숨을 빼앗기지 않은 것만도 고맙게 생각하시오.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흑룡과 백룡이 얼마나 대단히 싸우는지.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리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라. 우루룽 쾅쾅. 우루룽 쾅쾅. 우지끈 뚝딱. 방망이를 들고 있던 까비 보소. 방망이를 놓치고는 쥐구멍을 찾는고나. 콧수염을 꼬꼬 있던 귀남이 보소. 까비를 껴안고 와들와들.’

가락이 치솟았다 내려앉고 길게 늘어졌다가 당겨지고 천둥 치듯 고함치다 귓속말하듯 속삭이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그 소리 솜씨가 보통은 넘는다. 어느새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어 귀남이와 까비에게 속삭인다. 흑룡과 청룡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시오. 누가 이기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긴 용에게 어여쁜 처녀를 바치는 일만 남는다오.

귀남이와 까비가 야단맞은 어린애같이 조용히 두 손 앞으로 모으고 공손히 기다리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야단스럽고 지랄 같던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 동녘 하늘이 벌겋게 물들어지는구나.

동네 사람들 또다시 몰려든다. 청룡이 이겼나 보오. 흑룡이 이겼다면 몇 날 며칠을 밤이 새지 않고 칠흑 같은 날이 계속된다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용통 앞에 제단을 차려 놓고 어여쁜 처녀를 청룡에게 바치는 일만 남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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