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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님의 서재입니다.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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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highd
작품등록일 :
2021.08.24 10:52
최근연재일 :
2021.11.1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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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2,567

작성
21.11.0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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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0장 복수#8

DUMMY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천지신명이시여

비나이다.

비나이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세상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아등바등 사나이다.

지금 이런 한 인간을 깨우쳐 주려 합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흐느끼듯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비명을 지르듯이 내뱉는다. 곱단이는 연화를 바라다보며 연신 손 모아 빌고 있다. 누구에게 비는 것인지 무엇을 비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단 앞의 오방신과 장군들이 오늘따라 더욱 날카롭게 눈을 번득이는 듯하다. 오방신들의 눈빛에 빨려 들어가는 듯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툭 친다.

‘정신 차려! 굿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네.’

정신을 차리고 올려다보니 연화다. 어느새 말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서 있다.

‘내가 정신이 없네요. 이제 끝난 모양이에요.’

‘그만큼 치성을 드렸으면 통하겠지.’

‘이젠 굿은 쉰다더니 어쩐 일이에요.’

‘생명을 끊는 일인데 함부로 할 수 있나. 천지신명께 고해야지.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하다못해 나무를 벨 때도 함부로 베지 않았다고 해. 꼭 천지신명께 고했지. 나무도 생명인데 천지신명께서 주신 생명인데 함부로 하면 천지신명이 노하지 않겠어.’

‘일리가 있는 말이네. 나무나 풀이 아니라 그게 사람이라면 오죽하겠어. 하지만 그 인간이 인간인가?’

연화가 곱단이를 손을 잡아끌고 조용한 건넌방으로 들어간다. 마주 보고 앉더니 목소리를 낮춘다.

‘어떻게 처리할까? 몇 번 일을 당해서 그런지 보통 조심하는 눈치가 아니야. 자꾸 만나서 경계심을 무너뜨리려고는 하는데 어떨는지?’

‘이건 어떨까요? 음식에 독을 넣는 거예요. 한 번에 안 되면 여러 번에 걸쳐서 독을 넣어 서서히 죽이는 거지요.’

‘아냐. 너무 위험해. 가장 좋은 방법은 목을 베거나 심장에 칼을 깊숙이 집어넣는 거야.’

‘경계가 심하다면서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경계를 누그러뜨리는 일을 해왔잖아. 이제 거의 때가 온 것 같아 워낙 놀기를 즐기는 인간이니 놀이하듯이 꾀는 거야.’

‘애기씨가 하는 일이니 어련하시겠어요. 저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게요.’

‘경비장님 연락을 잘 되지. 아무래도 경비장님 힘이 필요할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시켜 놓으라고.’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달도 없는 그믐밤이라 밖은 칠흑같이 어둡다. 풀벌레 소리만이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다. 곱단이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흐른다.

‘아! 내가 왜 이러지.’

조금만 이상한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갑자기 풀벌레 소리가 멈추는 듯하더니 가냘픈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듯하다.

‘언니!’

‘잘못 들었나?’

‘언니!’

분명 사람 소리다. 어둠을 뚫고 연화의 윤곽이 드러난다. 곱단이는 부리나케 달려가 연화의 손목을 움켜쥐고는 어깨를 감싸 안으며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연화를 부축한다. 그리 느껴서 그런지 연화의 얼굴이 창백하고 금방 쓰러질 듯한 느낌이 든다.

‘언니.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짐을 꾸려. 이대로 있다가는 무슨 사달이 날지 몰라. 우리 얼굴이 다 알려진 이곳은 더는 우리가 있을 곳이 아냐.’

‘그렇지. 빨리 떠나자.’

곱단이는 헛다리를 짚은 것 같이 연신 허둥대며 짐을 꾸린다.

‘언니. 아무도 모르게 떠나자. 나중에 다시 연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아니야.’

곱단이는 옷가지 몇 가지와 당장 요기를 할 찬밥 덩이를 꾸린다. 조용히 대문을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정하지 않았다. 고향으로 가는 것도 위험하다. 자신들을 모르는 곳으로 향해 방향도 정하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으려고 인적이 드문 험한 산길을 걷다 보니 발을 헛디뎌 구르기를 몇 번씩 했다. 한참을 왔다고 생각하고 잠시 다리쉼을 하는데 먼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연화의 얼굴이 희뿌옇게 보이기 시작한다. 핏자국인지 얼굴에 벌건 얼룩이 비친다. 옷에도 피칠갑을 하고 있다.

‘얘. 이대로는 안 되겠다. 세수도 좀 하고 옷도 좀 갈아입어야겠다.’

물이 졸졸 흐르는 도랑물에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평복을 갈아입어 천한 계집들이 동무하여 심부름하러 가는 듯하다. 입이 까칠하지만 찬밥 덩이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물을 마시고 나니 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니.’

‘응?’

‘이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우리끼리 의지하면서 살아야겠어.’

‘왜?’

‘더는 우리가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겠어. 안되면 국경을 넘어서기라도 해야지.’

‘내가 괜히 미안하구나.’

‘미안하기는.’

‘천지신명이 시키신 일인데.’

‘그 인간은?’

‘아마 죽었을 거야. 확인은 못 했어. 심장에 칼이 꽂히며 피가 튀는 것을 보고는 경비대장과 함께 뛰기 시작했지.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는 없잖아. 한참을 뛰다 보니 경비대장은 보이지 않더군.’

‘그랬구나.’

‘언니. 그 인간이 작정했던 것 같아. 승부를 보기로. 전번에는 무례했다고 사과를 했더니 그 잘생긴 얼굴에 사람을 녹일 것 같은 미소를 띠면서 내 팔목을 잡는데, 그 손아귀 힘이 엄청나더라고. 다 잡은 새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던 같아.’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의심을 살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로 가야 할까?’

‘국경 쪽으로 가자고. 아마 지금쯤 발칵 뒤집혔을 거야. 여차하면 국경을 넘도록 하자. 내 팔자가 결국은 고려 땅에서 살 팔자가 아닌 것 같아. 괜히 너한테 미안하구나. 내가 괜히 너를 끌어들인 것 같아. 치성을 드리며 신당을 꾸려 나가며 살아갈 사람을.’

곱단이가 연화를 쳐다본다.

‘언니 그런 소릴랑은 하지를 말아. 내가 내켜서 하는 일인데. 내 인생이야.’

연화가 그 얘기를 해 놓고도 쑥스러운 모양이다. 싱긋이 웃는다.

‘언니. 그 인간. 이번에는 죽었겠지?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드네. 이번에는 산가지로 패 떼는 놀이를 하자고 하더라고. 어찌 그리 재미있는 놀이를 많이 알고 있는지. 좋다고 했어. 지는 사람 벌칙은 내가 제안했어. 전번과 똑같이 하자고. 내가 반드시 이겨서 복수하겠다고. 그랬더니 그 인간이 좋다고 웃더군. 아마 내가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했을 거야. 결국은 그 인간을 기둥에 묶었고 살살 구슬려 가며 손도 뒤로 묶고 입까지 틀어막았어.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싱글싱글하더니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발버둥을 치더라고. 재빨리 밖으로 나갔지. 경호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더라고. 일이 복잡해질 뻔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아마 작정하고 멀리 물리쳤던 것 같아. 경비대장이 나타났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죽을상이 되어 있더라고. 복면을 한 경비대장을 보더니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거야. 물론 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았지만. 경비대장이 그 인간의 가슴 한복판에 칼을 찔러 넣었어. 옷을 벗고 있었으니 정확했을 거야. 아마 몇 차례 더 찔렀을 거야.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어. 경비대장이 내 손목을 움켜쥐었을 때야 정신을 차렸어. 그리고는 뛰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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