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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님의 서재입니다.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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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highd
작품등록일 :
2021.08.24 10:52
최근연재일 :
2021.11.1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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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272,567

작성
21.11.05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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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7쪽

10장 복수#5

DUMMY

‘다시 만날 것으로 짐작하고 이렇게 기다렸습니다. 전번에 충분히 갚음을 해 드려야 했는데 제가 여러모로 부족하여 애기씨가 하는 말만 믿고 그냥 놓아드리고 나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찻집의 일손들에게 물어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어 애기씨가 나타나리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져 다친 무릎, 구멍 난 어여쁜 비단 치마 다 괜찮은가요? 그 하얀 살결이 찢겨 피가 흐르는 애기씨의 무릎을 보면서 제 마음이 찢어져 피가 흐르는 것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햐. 글 잘도 쓰는구나. 아니 글씨도 명필이네.’

‘저는 궁벽한 시골에서 자라났습니다. 사람이 귀한 곳입니다. 집안은 부유해서 어려서부터 부족한 것 없이 누리며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손이 귀한 집안에서 외동으로 자라나느라 항상 외롭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앞에 선녀와 같은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그 선녀에게 마음을 홀딱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가슴 두근거리며 그 선녀와의 만남을 기대했고 몇 번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선녀는 어느 순간 내 앞을 떠나갔고 어느덧 살아가면서 그 얼굴은 추억 속으로 묻혀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애기씨를 부축해 올리면서 저는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의 어릴 적 그 선녀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 오뚝한 코, 앵두 같은 입술, 백옥같은 그 살결.’

‘곱단아. 내가 선녀라네. 내 외모를 이렇게 칭찬하니 혹하겠어. 곱단아 내가 정말 그렇게 예뻐 보이니?’

‘그저 사람은 자기 칭찬하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여자들이 자기 예쁘다는데 마다하겠어요? 그렇지만 애기씨. 선녀는 선녀잖아요. 맨날 자기는 옥황상제의 딸, 용왕님의 딸. 이러면서.’

눈을 들어보니 제상 앞에 늘어서 있는 오방신들이 눈에 들어온다. 너의 잘못을 실토하라며 호통을 치는 듯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고 있다. 당장이라도 병장기를 집어 들고 달려들 듯하다. 조금 전에 옥황상제와 소통을 했는지 제상에는 과일, 떡, 고기, 생선 등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고 향로에는 아직도 꺼지지 않은 향이 한줄기 실오리 같은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다.

‘그런 선녀는 아니겠지.’

‘애기씨를 보내놓고 나서 저의 가슴앓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어릴 적 그 선녀는 아니겠지만 애기씨의 앵두 같은 입술로 말하는 선계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아마 저는 그 선계의 황홀함에 빠져 허우적거릴 듯합니다.’

‘이 인간이 슬슬 일을 꾸미려고 하는구나. 유치하구나 유치해. 모르는 척하고 함정에 빠져줘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쉽게는 안 되죠. 적당히 애를 태우고 나서. 어쨌든 그 영감탱이가 꽃다운 애기씨를 적당히 말로 얼버무려서 꾀려고 하다니. 자기 주제를 생각해야지.’

‘얘 그 정도면 다 넘어가지. 얼굴이며 풍채며 그 지위며.’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나누고 싶습니다. 찻집에 얘기해 놓으면 아마 연결을 해 줄 겁니다. 좋은 인연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애기씨, 이 인간 후끈 달게 해야겠어요.’

‘글쎄 쉽게 넘어올까? 백전노장에 능구렁이 같은 산전수전 다 겪은 영감탱이일 텐데. 일단은 한번 만나봐야겠어.’

‘이제는 오방신들과의 만남도 잠시 거사를 치를 때까지 미뤄야겠어. 옷에서 향냄새가 풀풀 나면 그 인간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챌 거 아니겠어.’


‘풍각쟁이를 따라나섰던 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어. 한창 애보개에 싫증이 나던 차에 풍각쟁이들의 울긋불긋한 옷. 마음을 울리는 노랫가락, 악기 소리. 더 내 마음을 흔들었던 건 그 패거리였던 잘생긴 남자였어. 그 잘생긴 남자가 적당한 말로 꼬이는 데 넘어가지 않을 년은 없을 거야. 당장 걔들을 따라나서면 모든 일이 해결되고 내 훤한 앞길이 펼쳐지리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생각 같지 않았지. 패거리에 들어가기만 하면 노래도 부르고 악기도 타고 할 줄 알았는데, 그 애보개는 떨어지지를 않는 거야. 게다가 식모라는 혹도 하나 더 붙었고. 그리고 나를 살살 꼬였던 그 잘생긴 남자는 밤만 되면 나를 덮치는 거야. 처음에는 나를 사랑한다며 갖은 사탕발림을 했지만, 나중에는 지겨운 거야. 그래서 몇 번을 도망쳤지. 그런데 갈 곳 없는 조그만 계집이 뭐 뻔하지. 며칠 안 가서 붙잡혀 오는 거지. 그러다가 어떤 늙다리 하나가 잘 봤는지 보호해 주고 노래도 악기도 가르쳐 주는 거야. 내 소원을 이룬 거야.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 풍각쟁이들 연희가 다 끝나고 나면 다들 피곤해서 쓰러지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밤바람을 맞으며 쏘다니기 시작했어. 아마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 그때부터 신내림이 시작된 것 같아.’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들판에 누렇게 물든 벼가 일렁이고 있다. 고향이 가까워져 오면서 자기를 키워주던 아주머니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아 곱단이는 연화와 같은 평복으로 갈아입었다.

‘결국은 미친년이라고 패거리에게서 쫓겨나게 되었고 얼마 뒤에 신내림 굿을 받았지.’

‘그랬구나. 그 편지 이후에 또 무슨 연락이 있었어요?’

‘글쎄. 딱히. 내가 그 찻집에나 가야 연락이 되는데 일부러 가지 않았어. 이제 이 여행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만나봐야지. 아. 고향이 가까워져 오니 공기부터 다르네. 너무 좋다.’

‘고향에 대한 좋은 기억도 없을 텐데.’

‘너도 그렇지 않니? 편안한 느낌.’

‘그렇긴 하네요. 내 어릴 적 기억은 그저 눈물과 배고픔뿐인데 그래도 그때의 추억이 자꾸 떠오르니. 그리고 그리 나쁜 느낌도 들지 않아요.’

‘그건 그렇고 그 인간을 어떻게 하면 내게 혹 빠지게 할까? 자꾸 만나야겠지?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싫은데 그걸 숨기고 아무런 내색도 없이 잘 할 수 있을까?’

‘글쎄. 일단 제가 형이에게 편지를 부탁해 놓았어요. 훅 빠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명문을 쓰라고. 그 인간이 보낸 편지도 형이에게 주었어요.’

‘너무 잘 쓰면 의심하지 않을까?’

‘그 건도 충분히 설명했으니 알아서 잘 써 줄 거예요.’

들일을 하던 농부들이 논두렁에 앉아 잠시 쉼을 하는지 탁배기를 한 잔씩 들고 있다.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 눈꼬리가 따라붙는다. 모른 체하고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널브러져 곱단이를 쏘아보며 앉아 있던 사내 하나가 툭툭 털며 일어서 따라온다.

‘곱단이 아니냐?’

‘누가 나를 아는 체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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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8장 청량산#6 21.10.21 30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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