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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님의 서재입니다.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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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highd
작품등록일 :
2021.08.24 10:52
최근연재일 :
2021.11.1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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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272,567

작성
21.10.27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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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9장 청자#5

DUMMY

‘밀직사요?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요?’

‘밀직사는 왕명의 출납을 맡아보는 곳이야. 일종의 비서라고 보면 되지. 왕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직책이니 관직에서는 핵심이지. 그런데 가보니 김자량이라는 친구가 밀직사 지사로 와있는 거야. 나보다 한자리 위지.’

‘김자량과는 직전에는 같은 총랑 직책이었다면서요?’

‘그렇지. 나도 승진했지만, 그 친구는 두 단계 건너뛰어 승진한 셈이지. 과거 시험도 비슷한 시기에 치러 합격을 했고 여러 가지 면에서 경쟁 관계였는데. 찜찜했지.’

‘그렇겠어요. 원한 관계도 있고.’

‘원한 관계? 그런 건 잊어버리기로 했어.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어찌할 건가? 그런 원한 관계는 캐지 않을 거라면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로 생각했지. 그렇지만 잊히지 않을 게 있어. 마누라가 죽고 나서 그 충격을 받았는지 딸이 시름시름 앓다가는 저세상으로 가버리고 말았어.’

여태까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곽상진의 눈가가 차가운 가을날 아침 이슬 맺히듯이 눈물로 촉촉해진다. 목소리도 떨리는 듯하다. 곽상진을 바라보던 경렬이가 괜히 미안한 느낌이 드는지 자세가 굳어진다.

‘그럼....’

‘처음에는 이런 짓을 한 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차츰차츰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지. 세상 떠난 사람들 불쌍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럴듯하게 여봐란듯이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생각했어.’

‘스승님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네요.’

‘예끼. 그런데 마침 대왕마마가 새로 취임하여 대관식 기념으로 과거 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그 임무를 우리 밀직사에서 맡게 되었지. 원래 판도사에서 하는 일인데. 비극은 거기서 시작된 거야. 너도 과거 시험을 보면 느끼겠지만 과거라는 게 실력으로만 되는 건 아니야. 진짜 실력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기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해. 위에서 압력을 넣기도 하고 부정행위가 판을 치고 그걸 돈을 찔러 받고 눈감는 벼슬아치들도 있고. 어쩌면 실력으로 과거 응시하는 사람만 바보로 생각될 정도야.’

‘저도 그런 길을 가면 안 될까요?’

‘그렇게 생각해? 그런 사람은 뒷길이 험난할 거야. 간편한 길이겠지만. 어쨌든 시험을 다 치르고 채점까지 해서 합격자와 장원을 다 결정하여 김자량 지사에게 들고 갔더니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 미안하다. 미리 얘기해야 했는데 실은 엊저녁에 밀직사 판서와 같이 몽골 대인을 만났는데 고위직 벼슬아치의 자제들을 합격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거야. 그 자리에는 나와 김자량만 있었지. 그 자리에서 거절해야 했는데. 못하겠다고 사직서를 쓰고 뛰쳐나와야 했는데. 내 성격이 뜨뜻미지근해서 그런지 우물우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 나왔어. 그리고 대인이 부탁했다는 사람들의 답안지를 골라왔더니 가관이야. 글자인지도 알 수 없는 낙서를 해놓은 친구까지 있을 정도였어. 그래서 어쩌나. 고개까지 끄덕였는데. 그래서 답안지를 다시 작성하고 감독관들의 수결까지 위조해서 합격자를 다시 결정했어. 그런데 사달이 난 거야. 대인이 부탁한 자들이 아마 개성에서 이름난 난봉꾼들인 모양이야. 그 사람들이 과거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니 개성 온 백성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어. 걔들이 과거에 합격했다고? 소가 웃을 일이구먼.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니까 그 희생양을 찾기 시작한 거지. 그 희생양이 내가 된 거지. 내가 걔들의 부모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런 짓을 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만들어냈지.’

‘사실대로 얘기하지 그러셨어요?’

‘끌려가서 문초를 당할 때 사실대로 얘기했지. 김자량에게 지시를 받았다고. 그런데 지시를 받았다는 증거가 없는 거야. 그럴 줄 알았다면 서면으로 직접 김자량의 자필로 걔들 이름을 받았다면 됐을 텐데. 내가 직접 쓴 걔들 이름 밖에는 없는 걸. 그래서 결국 여기까지 와서 귀양을 사는 거지. 나중에 김자량이 찾아와서 미안하다 1년만 참으면 다시 불러올리겠다. 그런데 벌써 3년이 넘어가네.’

‘버선목이라고 까뒤집어 볼 수도 없고.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어요?’

‘글쎄. 어쩌면 내 처지에서만 일을 본 걸지도 모르는 거잖아. 처음에는 그자를 엄청나게 원망했고 자객이라도 보내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이제 용서하기로 했어. 괜히 나만 죽이는 거잖아.’

‘그렇지만 1년이 벌써 3년이 넘었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귀양살이하는 거 이외에는 어떤 불이익도 받지는 않았어. 용인에 계시는 아버님도 그냥 편안하게 농사를 짓고 계시고, 아들 형이도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자리에 나아갔고. 내가 추천했던 무관 갑을이도 대과 없이 생활하고 있고 불이익도 받지 않고 있고. 그 정도면 내가 너무 과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스승님. 너무 희생이 컸잖아요.’

‘아니다. 그 얘기는 그만하자. 1년이 사약이 되었을 수도 있어. 마음만 먹었으면 연좌제로 삼족을 멸했을 수도 있지. 그렇게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어린아이를 앞에 놓고 괜한 말을 했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

‘네가 웬일이냐?’

전갈을 받고 호젓한 숲속에 있는 공터에 나갔더니 갑을이다.

‘마님, 그동안 별고 없으십니까? 절 받으시지요.’

‘절은 무슨 절이냐? 어서 빨리 일어나거라. 이제는 너도 어엿한 무관 신분으로 성장했는데. 나 같은 죄인은 만났다는 소문이 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마님은 제 인생의 은인인걸요. 마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용인 그 시골구석의 농투성이로 썩어가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벼슬까지 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이제는 버젓이 성과 이름이 생겼습니다. 하나의 인간이 된 셈이지요. 어찌 제가 마님의 은혜를 잊겠습니까? 만약 그런다면 까치만도 못한 놈이 되는 셈이지요.’

낮은 목소리기는 하지만 그 말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다.

‘그래 이름을 새로 받았다고. 그 이름을 좀 알자.’

‘성은 유가에 이름은 갑석이라고 합니다.’

‘유갑석. 좋은 이름이구나. 이제는 유무관이라고 불러야겠어.’

‘어디 가서 목이라도 좀 축이면서 회포라도 풀도록 하자.’

곽상진이 축축한 풀숲에서 일어나니 발에 쥐가 났는지 쩌릿쩌릿하다. 갑을이가 몸을 일으키더니 곽상진을 부축한다.

‘아닙니다. 그렇게 마님을 공개적으로 만날 처지가 아닌지라 이렇게 야심한 시각에 이런 한적한 곳에서 마님을 뵙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처지를 용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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