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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님의 서재입니다.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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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highd
작품등록일 :
2021.08.24 10:52
최근연재일 :
2021.11.1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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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567

작성
21.10.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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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9장 청자#1

DUMMY

정자에 앉아 바라보자니 둥실 떠 있는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고기잡이배들이 때로는 돛을 달고 때로는 돛 없이 무심한 바다에 몸을 맡긴 듯 한가로이 떠돈다. 심부름하는 아낙이 정갈하게 차린 주안상을 들고 올라온다.

‘술이나 두어 병 더 들여놓고 더는 찾을 일이 없을 테니 물러가 있게.’

‘네 알겠습니다.’

아낙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난다.

‘이런 시골에 낙향해 있다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당최 알 수가 없어서 점점 더 촌놈이 되어가는 듯합니다.’

강진 현감 최문기가 곽상진의 잔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잔에 술을 따른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제 외직에서 경험을 쌓고 내직으로 영전을 하시겠지요. 실력 있는 분은 눈에 뜨이지 않더라도 다 알아보는 법입니다.’

‘글쎄요. 우는 아이 밥 더 준다고 뭔가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너무 궁벽한 곳이라 쉽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제 용렬한 자식이 하나 있는데 시골 물만 먹다 보니 세상 무서운 것 모르고 여기 그냥 적응해 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래서 학문이 높으신 대감을 선생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고자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글쎄요? 저도 워낙 개경을 떠난 지가 오래되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까마득합니다.’

‘개경 떠난 지 어느 정도 되셨지요?’

‘벌써 햇수로 삼 년이 넘었습니다. 일 년 있으면 불러올린다더니 감감무소식입니다. 참으로 무료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래도 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와서 정신수양도 많이 하고 세상 사는 이치도 깊이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많은 인생 공부를 했습니다. 너무 좋은 곳이 시심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시도 많이 지으셨지요. 한 수 풀어 주십시오. 저도 한 수 풀겠습니다.’

‘네, 그럼. 한 수 풀어 보겠습니다.

저 푸른 바다에 돛단배 홀로 떠있고

숙소의 댓돌 위에 신발 하나 외롭네

저 숲속에 산비둘기 구구구 울어대고

저 맑디 맑은 하늘 구름 조각 쨍하네

개경을 떠나 흘러 흘러 이제 수 삼년

외로움만 깊어가고 그리움만 짙어가네.’

‘하 명품이십니다. 우리 아이가 이 정도 시를 지을 수 있도록만 지도해 주신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자제분께서도 과거에 급제하셨지요?’

‘예 제가 귀양 오던 그해에 급제했습니다.’

‘아 한시름 놓으셨겠습니다. 아버지가 대신 공부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음으로 양으로 얼마나 도움을 많이 주셨겠습니까? 부디 우리 아이를 맡아 주시기를. 한 번 제가 제 부족한 자식을 한 번 데리고 오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시지요.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지도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한 수 풀어올리시지요.’

‘아! 이런. 제 부탁만 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들어주십시오.

뒤뜰 한가득 꽃이 피어있네

장독대에는 손가락만큼 볕이 들고

생쥐 한 마리 돌 틈 사이로 들랑날랑

누가 알리요 이 평화를 깨는 침략자를

우루룽 쾅쾅 천둥번개 검정 먹구름.’

최문기가 풀어내는 시 한 자락을 듣다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정자 틈새로 색동무늬 옷이 언뜻 지나간다. 퍼뜩 정신을 차렸는데 최문기가 크게 박수 소리를 낸다. 깜짝 놀라 눈을 드니 색동무늬가 거기 서 있다.

‘소리패 아직 못 보셨지요? 오늘 귀한 손님 귀한 소리 들려 드리려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소리를 감상하기는 여러 번이지만 이리 가까이에서 소리꾼들을 보기는 처음이다.

‘얘들아, 소리 한 자락 들려드려라. 귀한 손님이니 정성을 다해야 한다.’

색동옷을 입은 계집아이 하나가 가운데 서고 뒤쪽에 장단을 맞출 연주패가 자리를 잡는다.

‘얘들은 기녀가 아닙니다. 소리를 전문으로 하는 애들입니다.’

‘그렇군요.’

장고와 북이 어우러져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에 가운데 서 있던 색동이 입을 연다.

‘길을 나서는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요란하다.

아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웬 천둥번개

벼락 맞은 나무 사이 자욱한 연기 속에 우뚝한 자 있었으니

머리에 뿔이 달리고 이마에는 눈이 하나라

손에는 도깨비방망이가 들려 있었겠다.

귀남이가 다리가 후들후들 가슴이 두근두근

어~~ 이게 웬일이냐.

내가 천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나를 겁박하려고 하는고?’

색동이 비명에 가까운 고음으로 소리를 질러대고 가락 장단이 그에 맞춰 널을 뛰기 시작한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안 했는가?

귀남이가 도깨비를 향하여 고함을 지른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나서 이 야료를 부리느냐.

당장 꺼지지 못하겠느냐?

귀남이의 고함에 도깨비가 흘끗 돌아보더니 무릎을 꿇는다.

귀남이의 대여섯 배는 되어 보이는 산만한 덩치의 도깨비가 무릎을 꿇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여 귀남이 도깨비를 달래고 어른다.

너는 어찌하여 이런 모습이 되었는고?

도깨비가 답한다.

내 모습이 어떻다고 그러시오.

너는 네 모습이 안 보이는 모양이구나.’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끝날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색동이 또 목청을 돋운다.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귀남이라는 아이가 도깨비를 설득하여 자기 편으로 삼고는 남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문물풍습을 익히고 모험을 겪으면서 결국은 부모님이 제시한 문제를 해결하고 남도를 아울러서 나라님이 된다는 이야기다. 곽상진이 지루해하는 걸 눈치챘는지 최문기가 소리패에게 손짓하여 마무리한다.

‘귀한 구경 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아야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너무 길어서 다 감상하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하지요.’

소리패들이 자리를 뜨자 최문기가 바짝 다가앉는다.

‘실은 우리 아이를 전라도 감영이 있는 전주의 학교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겉멋이 들었나, 공부는 안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망나니짓만 해대서 치도곤을 내리고는 데리고 왔습니다. 개경에 보내볼까도 생각했는데 이런 상태니, 개경에 가면 제 세상 만났다고 풀 방구리 날뛰듯 할 것 같아 엄두가 안 나네요. 그래서 대감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예. 어련하시겠습니다. 언제 시간 내셔서 아이를 저에게 좀 보내 주십시오.’

‘그것보다는 이놈이 왔다 갔다 하며 딴 데 샐 줄도 모르니 아예 우리 사랑에 오셔서 수고를 좀 해주심이 어떨지.’


사랑에 들어서니 묵향이 가득하다. 한쪽 구석장에는 소중하게 간직하는 듯한 청자 항아리와 칠갑함이 놓여있다. 출입문 맞은편에는 자개 머릿장이 길게 놓여있고 그 위 벽에는 관음보살 입사 걸개가 걸려있다. 머릿장 위에는 문방사우가 갖춰져 있다. 방금 선비들이 모여 시담을 나누며 먹형을 뿌렸을 정경이다. 한참을 앉아있으니 차츰 그 정경이 익숙해진다. 문이 살며시 열리며 건장한 선머슴이 하나 들어선다. 장가를 가지 않았는지 나이는 들어 보이는데 아직 상투를 틀지 않고 더벅머리에 댕기를 맸다. 들어서자마자 넙죽 절을 한다. 절을 하고 일어서는 선머슴의 손을 잡아 그 자리에 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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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9장 청자#8 21.10.30 19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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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9장 청자#3 21.10.25 21 0 7쪽
61 9장 청자#2 21.10.24 34 0 7쪽
» 9장 청자#1 21.10.23 22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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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8장 청량산#6 21.10.21 30 0 7쪽
57 8장 청량산#5 21.10.20 24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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