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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님의 서재입니다.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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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highd
작품등록일 :
2021.08.24 10:52
최근연재일 :
2021.11.1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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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2,567

작성
21.10.30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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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9장 청자#8

DUMMY

늙은이가 집에서 나와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아. 갑석이는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단 말인가? 자기 일도 아닌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이냐? 왜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하던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온통 흔들어 놓는단 말이냐?’

늙은이가 얼굴이 분간될 정도의 거리로 다가왔다.

‘약주 한잔하시겠습니까? 지난가을에 뽑아 놓은 좋은 죽엽주가 있습니다.’

‘좋지요마는 너무 신세를 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인연인지는 모르겠으나 현감께서 특별히 부탁하셨습니다.’

허름한 집으로 들어서자 구석에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를 한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와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뒤범벅이 된 작업장과는 달리 웬일인지 밝고 탁 트인 느낌이 드는 방이다. 한쪽 벽에는 명품 도자기들을 죽 늘어놓았다. 곽상진은 자신도 모르게 도자기에 끌려 그 앞에 섰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신비로운 작품도 있고 왠지 모르게 조잡한 느낌이 드는 작품들도 있다.

‘이 도자기들은 저의 일생입니다.’

늙은이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곳은 예부터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이름이 났습니다. 평야도 넓고 물도 풍부해서 농사도 잘되고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바다 것들도 풍부하고 해서 물산이 풍부한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로부터 벼슬아치들의 손을 많이 탔습니다. 물산이 풍부하니 빼앗아 갈 것도 많았던 거지요. 죽어나는 것은 아랫것들뿐입니다.’

늙은이가 예쁜 모양의 잔에 죽엽주를 한잔 따른다. 작업장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들릴 듯 말 듯 끊어졌다 이어진다.

‘에헤라디요. 에헤라디요.

힘든 일에 허리 펴고 하늘 바라보니

파란 하늘이 노랗구나

벼논에 아픈 허리 두드리며

하루종일 김매는데

어허 생쥐가 귀한 벼를 쏠아

집을 만들어 놓았구나.’

웅얼거리는 소리가 알아듣기가 어렵다.

‘너도 생명일진대

내 너를 원망치 않으리라

너도 열심히 드나들며

쏠아대고 쌓아댔으니

그래 먹을 자격 충분하구나.’

‘제가 쓸데없는 얘기를 한 모양입니다. 술이 들어가면 쓸데없는 얘기를 해서.’

‘아닙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지요.’

‘그래서 문수보살이 우리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곳에 터를 잡고 도자기 빚는 비법을 전수했다고 합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손재주가 좋아서 어디에 내놓아도 남부럽지 않을 도자기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저도 어찌어찌 이곳에 흘러들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바닷일을 하는 것보다는 낫지요?’

‘글쎄요. 관에서 그냥 놔두지를 않네요. 문수보살은 그냥 하는 얘기고요. 사실은 이곳이 바닷길이 열린 곳이라 중국 배들이 들락거립니다. 자연스럽게 중국의 도자기 기술이 전해졌고 그게 여기서 꽃을 피운 거지요. 그래 조금 알려지게 되니 관에서 대추 놔라 밤 놔라 해가며 간섭을 하니 옴짝달싹 못 하게 되는 거라 못 견디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방님.’

밥을 먹고 바람을 쐬려고 안마당을 거닐고 있는데 반가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꿈인가 생시인가. 순간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꿈에도 그리던 곱단이가 서쪽 하늘에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듯 갑자기 나타나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피어오른다. 곽상진은 함박웃음을 웃으며 곱단이의 손을 맞잡았다.

‘정말 너로구나.’

‘무슨 말씀을 그리하세요. 그럼 정말이지. 꿈이랍니까?’

‘너무 반가워서 그런다. 그래, 어찌 지내고 있느냐.’

‘너무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셔서 너무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해요. 그때 그냥 중국으로 끌려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쯤 낯선 나라에서 눈물지으며 억울한 일이 있어도 하소연할 곳 하나 없는 그런 곳에서 한탄하며 지내고 있겠지요. 한편으로는 죄스러운 생각도 들어요.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을 때는 서금옥 마님도 불러내고 주향이도 불러내서 얘기를 들어요. 그분들 신세 한탄을 듣고 있노라면 그분들이 누려야 할 부귀영화를 내가 누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여러 사람 못 살게 했구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고 친구도 사귀고 용인 내려가서 부모님 말동무도 해드리고 해라. 잡생각을 하면 병에 걸린다.’

‘잡생각은 무슨 잡생각이에요. 억울하게 죽은 마님과 주향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곽상진은 한탄하는 곱단이를 바라보며 어딘가 낯선 느낌을 받는다.

‘마님 돌아가시기 전에 송악산 성모 할망 제단에서 굿을 했다고 했잖아요. 그때 그 연화라는 무당을 찾아갔더니 그 무당도 마님의 억울한 죽음에 안타까워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무당이 저주 굿을 한판 벌이더라고요. 틀림없이 마님과 주향이를 그렇게 만든 놈이 저주를 받을 거라고 하면서.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저주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승승장구하던데요. 얼마 전에 소문을 듣다 보니 그 인간이 만인 지상이 되었다는 거예요. 어찌 그럴 수가 있지요. 그래서 그 무당이 산가지를 흔들어 보았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점괘가 나오는데 그 인간이 조상님 이래로 쌓아 놓은 덕이 많아서 웬만해서는 저주를 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급소가 있다는 거예요. 그 인간이 색을 밝히는데 그것이 급소란 겁니다. 그 급소를 잡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잡아야 하느냐?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겁니다.’

곽상진은 낯선 느낌이 어디서 오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여보게. 마님이 죽은 것은 아직 그 사람이 한 짓인지 확실치 않아.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말게.’

이 한 마디에 곱단이가 멍한 표정으로 곽상진을 바라다본다.

‘무슨 말씀이세요. 연화 무당이 모시는 용왕님, 옥황상제, 오방신들께서도 죽일 놈이라고 했다는데요. 서방님 분하지도 않으세요.’

‘연화 무당이 모시는 영들이 그렇게 얘기한다고 그게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네.’

‘서방님. 저는 너무너무 분한데 당사자인 서방님 그러면 마님이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알아보셨어요. 분하지도 않으세요.’

‘미안하네. 내가 죽일 놈이지. 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나도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렸어. 그렇다고 그걸 아무 근거도 없이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네.’

곽상진의 말을 듣고 있던 곱단이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럼요. 서방님. 서방님이 억울하게 귀양살이하는 것 억울하지 않으세요? 그건 확실히 그 인간의 농간이잖아요. 모든 걸 다 서방님에게 미루고 자기만 부귀영화만 누리며 살면 되는 겁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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