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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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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9.26 20:27
최근연재일 :
2018.02.12 00:5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0,587
추천수 :
77
글자수 :
168,777

작성
18.01.14 03:08
조회
115
추천
1
글자
6쪽

2부 18화.

DUMMY

불 꺼진 방 안. 지하였기에 창은 없어 밖이 어떤지는 몰랐지만, 그녀는 분명 새벽이라고 확신했다. 왜냐면 끔찍하게 우는 시계는 칠흑 같은 어둠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라는 돌아오고 나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안했고 초조했다.


어두컴컴했던 취조실. 몇 번씩 바뀌는 조사관. 윽박지르는 소리와 능글맞게 타이르는 목소리가 아직도 그녀의 옆에서 속삭이는 것 같아 그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반... 그리고 자신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이 그녀의 심장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눈물이 흘렀다. 입술을 깨물고도 안 되겠다 싶어 손으로 입을 막은 그녀는 괴로움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들썩이는 어깨를 주체 못 했고 삐져나가려는 신음을 강제로 막아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죽을 것만 같았다.


죄책감은 죄책감을 낳았고 다른 부정적인 것들을 불러냈다. 소리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중 그녀의 방문으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라, 자? 잠깐 들어가도 될까.”


걱정 묻은 목소리였다. 그녀는 감정들을 억지로 입안으로 쑤셔 넣고는 소리 없이 숨을 길게 뱉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얀은 움직이지 않고 동생의 답이 들려오기까지 천천히 기다렸다. 급하게 눈물 자국을 닦은 그녀는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응.”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문이 열렸고 얀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라도 되듯 타라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


얀은 그러고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직접 보니 감당하기 어려웠다. 기어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우는 동생의 옆에 살포시 앉은 그는 말없이 조용히 껴안았다.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얀은 등을 토닥여주었다. 더 울어도 된다는 듯이.


“어떡해야 해, 오빠?”


물기가 대부분인 목소리가 그의 귀에 닿았다.


“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고 이반이... 괜히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말을 하던 타라는 감정에 덮여 맺지 못했다. 감정은 더욱 격해졌다. 얀은 눈을 감아버렸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니, 뭘 해도 될까?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오빠?”


“괜찮아, 괜찮아.”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는 진부한 말만 되뇌었다. 처음 겪는 고통에 어떠한 말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겪어본 경험자로서 값싼 위로보단 응어리진 감정을 토해낼 동안 옆에 있어 주는 게 가장 좋았다.


상처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돋아나는 새살은 더더욱 더뎠기에 그녀가 울다 지쳐 잠에 들었을 때는 해가 떠오르기 직전이었다.


----------------------------------------------


하늘은 기어이 옅은 눈을 내리기 시작했다. 새벽 내내 내렸는지 땅바닥은 젖어있었고 얀과 해럴드 그리고 타라가 서 있는 풀밭도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초라하고 가장 조용한 장례식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비석도, 무덤 속에 들어갈 자의 육신도 없는 장례식. 그가 생전 가지고 다니거나 손때가 묻은

몇 없는 물건들을 모아 자리에 대신 놓아 덮었다. 애초에 묫자리도 아니었다. 묵념을 하는 그 순간마저도 그들은 조금의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들이 도망치고 이틀 뒤에는 공식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말이 신문에 실리면서 그나마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제 절반 넘게 줄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군인들의 수는 더 많아졌다. 그들은 그래서 거처인 곳에 그리 멀지 않는 풀밭에 이렇게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종일 멍하던 해럴드는 흙을 덮고 나서야 실감이 났는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가장 신뢰하던 동료이자 가장 가까웠던 친구의 죽음은 그 엄청난 거리감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타라는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얀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아 그녀를 위로하려 했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종의 회의감.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승리의 뒤는 구렸다. 그리고 얀 또한 얼이 나가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 전날 새벽에 아롤도의 딸이 감옥으로 끌려갔다고 하더군요. 혹시 아시는 것 있습니까?”


오늘 아침 소식을 전하러 온 다른 지부의 반란군이 건넨 말이었다. 얀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아니 정확히 알았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쪽까지는 손이 닿지 않아 저도 모르죠.”


대표로 대꾸한 해럴드는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직접 말을 건네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 대답이 참 마음에 들었고 또 고마웠다. 그러면서 타라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죄책감... 잘 못 만난 인연으로 인해 나락으로 빠지는 연인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입장은 말 그대로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화를 낼 수도 없이 속으로만 달래야 하는 상황은 정말 진절머리났다.


장례식은 오래 진행하지 않았다. 약식으로 진행하고 일이 마무리되면 그때 다시 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남긴 채 그들은 다시 새로 옮긴 거처로 돌아왔다. 정부군이 들쑤시고 압박해 오는 강도는 전보다 더 강해져 이제는 엘다와 같이 있지 않았던 몇 없는 곳을 숨어다녔다.


얼마 없는 짐을 풀지도 않고 내버려 둔 채로 방 안 의자에 앉아 넋 놓던 해럴드는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정신이 돌아왔다. 발소리가 한 명의 것으로 보아 그들이 들이닥친 것은 아니었다. 누구일까.


아마 다들 듣고 있을 터였다. 바닥 널 우는 소리가 점점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조금은 지친 듯 무게가 실리고 느린 발걸음. 곧이어 그 소리는 방문 앞에서 멈췄고 옷과 옷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가 너머로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해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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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부 20화. 18.01.20 108 1 8쪽
35 2부 19화. 18.01.17 114 1 6쪽
» 2부 18화. 18.01.14 116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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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부 16화. 18.01.04 134 1 7쪽
31 2부 15화. 18.01.02 172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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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부 11화. 17.11.21 196 2 6쪽
26 2부 10화. 17.11.03 221 1 6쪽
25 2부 9화. 17.10.28 202 1 10쪽
24 2부 8화. 17.10.25 162 2 9쪽
23 2부 7화. 17.10.22 168 1 9쪽
22 2부 6화. 17.10.21 15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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