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9.26 20:27
최근연재일 :
2018.02.12 00:5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0,577
추천수 :
77
글자수 :
168,777

작성
18.01.26 03:28
조회
96
추천
1
글자
8쪽

2부 22화.

DUMMY

몇몇 시민들의 노골적인 시선이 그에게 닿았고 얀도 그것을 느꼈다. 느낌이 좋지 않아. 걸음을 빠르게 놀려 제이콥의 옆에 바짝 붙은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혹시 느끼셨습니까?”


“이 근방 길 좀 잘 아세요?”


제이콥은 고개를 반만 돌려 되물었다. 얀은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콥의 시선은 반쯤 돌렸던 그 자리에 멈춰서 어딘가에 홀린 듯 바라보고만 있었고 얀은 말이 없는 그의 모습에 자연스레 그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는 어떤 남성 시민이 한 손에 빵 바구니를 든 채 그들과 같이 멍하니 바라봤다. 찾아야 하는데 찾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것을 본 사람처럼 믿기지 않은 듯 잠시 넋이 나간 듯 보였다. 제이콥이 입만 움직여 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먼저 뛰시죠. 제가 길을 잘 몰라서.”


툭, 남자가 들고 있던 빵 바구니가 땅에 곤두박질치며 내는 소리였고 그와 동시에 남자의 입에서 누군가를 찾는 듯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뿜어져 나왔다.


“여기 얀 앨버트가 있다!”


“뛰어요, 어서!”


제이콥의 다급한 재촉이 출발신호로 들렸는지 얀은 정신이 번쩍 들더니 지나왔던 길 그대로 있는 힘껏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연신 울렸다. 집까지 남은 거리는 그리 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이제 어떡합니까? 이대로 우리가 사라지면 다 같이 잡히는 건 시간문젭니다.”


겨울바람이 얼굴을 그대로 때려 얀은 입을 움직이기가 조금 힘들었다. 남자가 어디로 뛰어갔는지 알았으니 마을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잡히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다행인 건 마을 밖으로의 길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먼저 들어가 있어요.”


“예? 제이콥 씨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저는 다녀왔던 지부에 의탁했다가 다시 복귀하겠습니다.”


얀이 부정적인 모양인 듯 뛰는 속도를 살짝 늦췄다.


“그럴 바에 저랑 같이 가시죠. 아무래도 위험하니까.”


그의 부정을 제이콥이 다시 부정했다.


“아뇨. 저 혼자 가는 게 낫습니다. 보아하니 아까 소리친 남자도 얀 씨의 이름만 불렀고 제 이름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얘기는 즉, 저는 그래도 안전하다는 얘기겠죠.”


얀이 뭐라 더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이내 다시 닫았다. 구구절절 그의 말은 전부 맞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야 하지 않느냐고 물으려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 길을 정확히 아는 것은 얀 그 자신이 아니라 제이콥이었다.


“잠시 멈춰 봐요. 옷 좀 바꿔 입죠.”


얀은 짧고 긴박한 상황에서 이렇게 냉철하게 생각하고 결론을 도출해 판단한 그의 행동에 속으로 감탄했다. 얀은 즉시 멈춰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그에게 건넸다. 제이콥도 그와 같이했지만 자기 옷의 안과 밖을 뒤집고는 그에게 내밀었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지 말아야죠.”


방긋 웃은 그의 모습에 얀은 덩달아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서둘러 옷을 바꿔 입은 그들은 서서히 각자 가는 방향으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조심하십시오. 그 날 전까지는 오셔야 합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최대한 맞춰보도록 할게요. 서둘러 가세요.”


얀의 말에 난처한 표정으로 답한 그는 자신의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얀도 그 모습을 잠깐 지켜보고는 원래 같이 갔어야 할 곳으로 뛰어갔다.


-------------------------------------------


“왜 혼자야?”


거실 탁자에서 차를 홀짝이던 해럴드가 문 여는 소리에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말투에서는 걱정이 묻어나왔다. 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굳은 표정을 풀었다.


“군인들이 시민들한테까지 손을 뻗은 모양입니다. 순찰하는 수도 훨씬 늘었고요.”


얀은 변명 아닌 변명 같은 상황을 설명해갔다. 잠자코 듣던 해럴드는 들을수록 납득이 간다는 듯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혼자 왔습니다. 대회 전날에는 돌아오라고 말했습니다.”


“고생했네. 뒤는 잘 지우고 온 거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해럴드도 확인차 물은 것이기 때문에 다른 별말은 않고 그저 수고했다는 말만 전했다. 얀은 더 할 말이 없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걸음을 옮겼다.


“다음 달까지는 계속 여기에서 지내면 돼. 필요한 물품은 이미 다 준비해뒀으니 몸 관리에만 신경 써줘.”


“예.”


방문을 잡았던 얀은 그 자세에서 짧게 대답만 하고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옷을 대충 벗어 던지고 온수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벌러덩 누운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끝이 다가온다···. 사실 아직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막연함. 딱 그 정도였다. 짧은 활동하는 동안 여럿 있었던 사건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동생이 정보를 캐던 루카 리오르다를 죽였던 일. 그리고 찰나의 고민으로 일을 그르칠 뻔했던 일부터 가까운 사람이 간첩 짓을 했었고 여동생이 잡혔던 일과 루나와 헤어졌던 날.


다시 데려오는 과정에서 잃은 동료 이반... 시작된 기억은 점점 과거로 흘러갔다. 타라에게 트르비아로 가라며 다퉜던 날과 주인이었던 마르첼로 카사니가 뒤통수 쳤던 일. 그리고 가장 울적했던 날 중 하나인 로건이 팔을 잃었을 때.


얀은 눈을 감은 채였지만, 눈을 감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범람하는 과거의 기억들은 추억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것들 뿐이었다. 같은 나라 사람과 검을 겨눠 누르고 올라가고 나라를 빼앗은 사람들에게 조아리고···.


“......”


그는 더 어두워지고 싶어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조금의 빛도 없어지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타라는 별일 없이 잘 가고 있을까? 루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거지? 로건 형은 살아 있을까···.


마음이 불안했다. 숨 쉴 틈 없이 지내다 여유가 쥐어지니 가슴이 답답했다. 정확히 갑갑했다. 시간이 더딘 느낌이었다. 감정을 채 표현하기도 전에 움직여야 했고 나중에 뿜어내자고 다짐했지만, 시간은 그것을 막아버렸다.



연인과의 이별도, 동료의 죽음도, 분노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 만큼 오래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그저 그는 씁쓸했다. 자유를 위해 내디딜수록 하나씩 잃어가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이라···.”


그 뒤엔 무엇이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 하지? 여태껏 생각해본 적 없었다. 타라를 데리고 다시 돌아가서 그다음은?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시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보단 좋을 것이고 분명 행복할 것인데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막연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크게 기쁘지 않았다. 눈앞에서 쓰러져 간 사람들의 표정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처음 보는, 찰나의 순간의 장면이었는데도 죽음을 짐작한 두려움과 억울함이 담긴 눈빛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안에 담긴 것들을 포효하거나 그대로 느끼게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의욕이 사라졌다. 마지막을 앞둔 그는 묶여있던 생각들 때문에 새벽 늦게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라를 위하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7 2부 31화.(마지막) + 에필로그. +2 18.02.12 144 3 10쪽
46 2부 30화. 18.02.09 104 1 10쪽
45 2부 29화. 18.02.08 82 1 5쪽
44 2부 28화. 18.02.06 420 1 7쪽
43 2부 27화. 18.02.04 88 1 7쪽
42 2부 26화. 18.02.03 142 1 8쪽
41 2부 25화. 18.02.02 336 1 8쪽
40 2부 24화. 18.01.31 437 1 5쪽
39 2부 23화. 18.01.28 106 1 8쪽
» 2부 22화. 18.01.26 97 1 8쪽
37 2부 21화. 18.01.25 113 1 7쪽
36 2부 20화. 18.01.20 108 1 8쪽
35 2부 19화. 18.01.17 114 1 6쪽
34 2부 18화. 18.01.14 115 1 6쪽
33 2부 17화. 18.01.09 134 1 8쪽
32 2부 16화. 18.01.04 133 1 7쪽
31 2부 15화. 18.01.02 172 1 8쪽
30 2부 14화. 17.12.30 140 1 6쪽
29 2부 13화. 17.12.29 148 1 7쪽
28 2부 12화. 17.11.21 162 1 8쪽
27 2부 11화. 17.11.21 195 2 6쪽
26 2부 10화. 17.11.03 220 1 6쪽
25 2부 9화. 17.10.28 202 1 10쪽
24 2부 8화. 17.10.25 162 2 9쪽
23 2부 7화. 17.10.22 168 1 9쪽
22 2부 6화. 17.10.21 157 1 9쪽
21 2부 5화. 17.10.16 209 1 8쪽
20 2부 4화. 17.10.16 161 1 8쪽
19 2부 3화. 17.10.15 179 1 10쪽
18 2부 2화. 17.10.14 214 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