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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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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9.26 20:27
최근연재일 :
2018.02.12 00:56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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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64
추천수 :
77
글자수 :
168,777

작성
17.10.2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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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2부 6화.

DUMMY

느지막이 일어난 얀은 샤워도 했고 옷도 갈아입었지만,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서 그는 초조해졌지만,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을 뿐이었다. 전날에 자신이 부렸던 자존심의 행패 때문에 영 밖을 나가기가 내키지 않았다.


귀를 벅벅 긁던 그는 문득 벌떡 일어서더니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가 다시 손을 뗐다. 한 손으로 눈썹을 문지르고 다른 한 손을 허리춤에 얹은 채 그는 낭패감을 맛봤다. 잠시간 문 앞에 서 있던 그는 생각을 마쳤는지 남은 손도 허리춤에 얹고는 숨을 짧고 힘 있게 내뱉으며 문을 열었다.


부자연스럽게 홀로 걸어 나온 그는 눈알만 굴려 주변을 훑었고 탁자에 앉아있는 해럴드의 모습에 시선이 멈췄다. 쿵 내려앉은 심장의 느낌과 동시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도 한 명 밖에 없구나. 그는 입술을 핥으며 아직 자신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 해럴드에게 다가갔다.


“일어났어?”


문서를 훑는 그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투나 어조나 전과 똑같은 게 어젯밤 있었던 일을 겪지 않은 사람 같았다. 얀은 머쓱함에 뒷머리를 긁으며 그의 맞은편 의자를 끌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예... 뭐 보고 계십니까?”


그제야 해럴드가 종이뭉치를 얼굴에서 치우며 그를 바라봤다. 말투와 똑같이 여느 때와 똑같은 얼굴로 그는 문서를 살랑 흔들며 말했다.


“뭣 좀 보고 있었어. 헌데 아직 밥때가 아닌데 벌써 나왔어?”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얀은 은근히 그가 얄궂게 느껴졌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작아서 안 들리는데?”


능구렁이 같은 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기분에 조금이라도 감춰보려 턱을 괸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는 아까보다는 나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는 죄송했다고요.”


“뭐라고?”


“아, 그니까 어제···.”


짜증을 누르며 말하던 그는 앞에서 킥킥대는 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고 해럴드가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해럴드는 기어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뭐하자는 겁니까!”


부아가 제대로 치민 그는 새빨개진 얼굴로 버럭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 모습에 해럴드는 천천히 웃음을 거두며 그를 말렸다.


“분위기 좀 풀어보려 그랬어.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진지하게 말하는데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미안해, 일단 앉아봐. 할 얘기가 있으니까.”


분을 삭이며 얀은 거칠게 의자에 앉았고 해럴드는 가래를 끓으며 종이 문서를 얀 쪽으로 밀었다.


“이게 뭡니까?”


퉁명스럽게 말하며 그는 건넨 종이를 집어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중간쯤 읽었을 무렵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창백해졌고 그것과 해럴드를 번갈아 바라봤다. 해럴드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자친구와 관계를 정리하는 게 좋겠어.”


“이게 다 뭐··· 이거 믿을만한 겁니까?”


조급하게 종이를 넘기고 뒷장으로 돌리는 그의 손은 위태로워 보였다. 루나 파누치··· 왜 네 이름이 여기 있는 거야... 커질 대로 커진 동공으로 그는 읽었지만,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내려갔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아롤도 파누치의 딸 루나 파누치. 그와 그녀의 이름부터 간략한 배경 및 성격 같은 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현 태슬리어의 참모총장. 자신이 속한 곳에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적. 그는 거칠게 종이를 내려놓으며 해럴드를 바라봤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사실이야.”


“그래서요?”


얀은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여기 적혀 있는 대로 루나는 독립한 지 오래고 그와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데 왜 헤어져야 합니까?”


“뒤를 밟힐지 모르는 거잖아.”


“루나는 그럴 애가 아닙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그의 완강한 태도에 해럴드는 살짝 눈에 힘을 풀었다.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아, 그럴 마음도 없고. 네 말대로 그녀라 그럴 사람이 아니라 해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 의도치 않게 들킨다던가 말이야.”


얀의 눈이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서지는 않았다.


“어제 일을 겪어서 알겠지만 하나가 수틀리면 큰 타격을 입어. 자네나 내가 죽을 수도 있고 어쩌면 타라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라고.”


동생의 이름에 그는 움찔거렸다. 왜 하필 그 집안의 딸인 거야, 왜···.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결국 둘 다 가질 수는 없는 건가.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손을 뗀 그의 얼굴은 매우 피로해 보였다.


“직접 만나서 한 번 얘기해 보고, 제가 판단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구석 천장 쪽으로 시선을 던진 그는 잠시 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다간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해럴드는 탁자 위에 있는 종이를 작게 접어 품 안에 집어넣으며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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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하고선 해럴드는 부쩍 시계를 보는 일이 잦았다. 약간 초조해 보이기도 했고 마음이 급해 보이기도 했다. 시침이 한 시를 가리켰을 때 그는 자신의 방 소파에 앉아있는 이반을 바라봤다.


“지금쯤?”


이반은 시계를 한번 바라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적당하겠군요. 엘다가 나간 지 꽤 되었으니.”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말했다.


“그럼 모두 여기로 불러줘.”


이반이 나가고 대략 오 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서 그의 방이 다시 열렸다. 이반과 타라. 그리고 얀이 차례대로 들어왔다. 그는 주변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모두 앉아. 급히 할 얘기가 있어.”


전원 모두가 한 곳에 모여 있는 건 흔치 않았기에 얀은 고개를 갸웃했다. 게다가 해럴드의 모습은 답지 않게 업 되어 있었다. 모두 앉은 것을 본 그는 닫힌 문에 시선을 한번 줬다가 입을 열었다.


“얀 자네 빼고는 모두 다 알고 있겠지만, 엘다는 간첩이야. 물증은 없지만 확실하다고 보면 돼.”


얀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얼떨떨해했다.


“그렇다 하기에는 제가 일전에 도망쳤을 때 목숨 걸고 도와줬었는데 그럼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의 동생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오빠. 그때 사실 이반 씨도 따라가서 상황을 보고 있었고 자신이 지금까지의 일 때문에 의심받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만약 일을 그르쳤다면 목숨을 잃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거야.”


“그녀는 지금 완급조절을 하고 있는 거야. 아슬아슬한 줄타기지. 그리고 더 이상은 끌 수 없어 이번에 확실하게 하려고 해.”


그녀의 말을 받아 잇는 해럴드의 얼굴은 굳건했다. 얀은 머리가 아팠지만, 일단 넘기기로 했다.


“어떻게요?”


“서쪽에 있는 군수학교를 습격할 거야.”


그는 그다음 말에 힘주어 말했다.


“물론 진짜로 그럴 의도는 아니고 판을 크게 만들어서 그녀에게 정보를 흘릴 거야. 실제로 우리는 계획을 짜 인원을 채워서 갈 거고. 다만 우리는 그쪽에서 나오는 반응을 보고 후퇴할지 말지 결정할 거야.”


“그렇다는 얘기는 거기서 대비를 해 역공하면 엘다가 간첩이라는 게 확실시된다는 거네요.”


“그렇지. 타라와 이반, 그리고 엘다에게 정보를 전달하라고 시킬 건데 여기 두 명은 지금 이 얘기도 같이 전할 거야. 그리고 엘다가 전했던 곳에는 이반이 다시 찾아가 설명해 줘 피해가 없게 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얀?”


골머리 앓는다는 듯 그는 한쪽 눈썹을 매만졌다. 빙빙 도는 계획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기에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는 긍정적으로 끄덕였다.


“전 그냥 잠자코 가만히 있겠습니다. 그쪽이 나을 것 같네요.”


그때, 바깥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순식간에 방안은 차가운 침묵으로 가득 찼다. 해럴드는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눈빛으로 대답을 듣고는 마지막에 이반을 바라봤다. 그는 그의 뜻을 알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있는 엘다를 불렀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침묵의 긴장감은 한층 고조되었다. 얀은 어쩐지 자신이 이 공간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기분을 느꼈다. 왠지 이방인이 된 기분인데···. 분위기에 이입이 되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이 한 말대로 가만히 있었다.


살짝 열려있던 문이 활짝 열리며 엘다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놀란 듯 약간 커진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안으로 들어왔다. 해럴드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워버린 채 그녀를 바라봤다.


“자, 다 모였으니 지금부터 우리를 공격한 놈들에게 복수할 작전을 설명하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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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부 9화. 17.10.28 202 1 10쪽
24 2부 8화. 17.10.25 162 2 9쪽
23 2부 7화. 17.10.22 167 1 9쪽
» 2부 6화. 17.10.21 15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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