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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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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9.26 20:27
최근연재일 :
2018.02.12 00:5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0,575
추천수 :
77
글자수 :
168,777

작성
18.01.28 03:39
조회
105
추천
1
글자
8쪽

2부 23화.

DUMMY

시간은 점점 대회 날짜로 다가갔다. 그동안 정부는 큰 소득이 없자 모르츠 시민들을 고문까지 하며 정보를 얻어냈다. 결과적으로 그 일은 소득이 없는 일이 아니었다. 드물게 위치를 부는 사람이 있었고 그 즉시 그 지부는 순식간에 날아갔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얀과 해럴드가 있는 곳은 위협에서 벗어났다. 애초에 가까운 곳 중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한 장소였고 골목 깊숙이 자리 잡은 가정집의 지하에 만들어져 사실상 발각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안전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이 있었다. 시간관념이 무뎌지는 것. 지금이 아침인지 낮인지 저녁인지 새벽인지 확인하는 법은 오로지 벽에 걸린 시계뿐이었다. 그마저도 해럴드는 혹시 몰라 시계를 여러 개 걸어두어 고장 났는지 확인하는데 신중을 가했다.


다른 문제점은 햇빛이었다. 얀은 지금껏 햇빛이 사람의 기분을 조절할 수 있는 줄 모르고 살았는데 일주일 정도 지하에서 말도 거의 없이 지내다 보니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말하던 우울증.


한없이 가라앉고 식욕이 없어지며 잠이 늘고 의욕이 없어졌다. 나쁜 생각들이 몰려오고 말 그대로 폐인처럼 지냈다.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고 딱히 취미도 없었던 그로서는 지평선 끝처럼 긴 시간을 감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올라갔다 와.”


해럴드도 겉으론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증세가 없지는 않았다. 아무리 오래 그렇게 생활했다고 했지만, 인간의 본능이 있는 이상 익숙해질 수는 없었다. 내성이 생기는 것뿐. 날이 갈수록 초췌해지는 얀의 모습을 보다 못한 해럴드가 건넨 말이었다. 그때가 겨우 보름이 채 지나기 전이었다.


위로 올라간 얀은 조심스럽게 창문을 살짝 열었다. 찬바람이 훅 들어와 그의 몸을 휘감았는데 그 당시 그에게는 정신이 번쩍 들 만큼 깨끗한 공기였다. 그는 아예 의자를 가져다 놓고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었다.


그 뒤로 해럴드는 그에게 괜찮다면 거실에서 검이라도 휘둘러보라고 제안했었고 자신의 책장에서 책 하나를 꺼내 그에게 권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얀에게 말을 자주 걸었다.


“재밌습니까?”


책이라고는 담을 쌓고 지내던 그였지만, 어쩔 수 없이 일단 받았다. 교도소에 들어간 사람들 중 정신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던데 얀은 그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해럴드가 제안한 대로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검을 휘두르고 운동을 했다. 몸이 건강해지며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그는 좋았다. 저녁을 먹은 뒤로는 해럴드가 준 책을 읽었다. 관심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시간을 보내기에는 좋은 용도였다.


정상적으로 몸을 회복하고 해럴드에게 받은 네 권째 책을 돌려줬을 때는 이미 대회까지 며칠 남지 않은 날이었다. 그리고 얀이 일찍 잠에 드려다 그러기에 실패해 거실에 나왔다가 해럴드를 발견한 지금은 대회 전날이었다.


“일찍 자라고 하신 분이 뭐하십니까?”


얀은 대충 아는 눈치였음에도 그리 말했다. 해럴드는 빙긋 웃어주는 거로 인사를 대신했다.


“잠 안 오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순순히 시인한 얀은 그의 맞은편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각자만의 시간을 가진 채 잠시 동안 침묵이 주는 다독임을 음미했다.


“걱정돼?”


먼저 입을 연 건 해럴드였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는 그를 위로하는 것만 같았다.


“글쎄요.”


허세를 부리고자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끌어온 것들의 마무리를 앞둔 것에 대한 기대감인지 흥분인지 아니면 해럴드가 말한 대로 불안과 걱정인지 그는 콕 집어낼 수 없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말해줄 수 있는 거면.”


얀은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원래 무슨 일을 했었습니까?”


입속으로 단어를 고르던 해럴드는 천천히 운을 뗐다.


“우리 집안은 남부럽지 않은 자리에 있었지. 난 그 부모의 자식이었지만, 딱히 재능이 있던 건 아니어서 형제들에게 가려져 평범하게 지냈지. 그저 좀 더 좋은 옷을 입고 조금 더 좋은 교육을 받았을 뿐 다를 건 없었어.”


“형제들은···?”


“아직까지 소식이 닿지 않은 걸 보니 다 죽었다고 봐야겠지.”


무덤덤하게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얀은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어떤 집안이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곧 그 생각을 거두었다. 지금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가라앉은 분위기에 주제를 바꾸려 골똘히 생각하던 그의 눈에 해럴드가 입을 여는 것이 보였다.


“나도 하나 물어봐도 돼?”


“예.”


“기억하려는가 모르겠는데 루카 리오르다를 죽이고 온 날. 그때 웃었다고 내가 화냈던 날 기억해? 그때 왜 웃고 있었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얀은 이미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얀의 기억으로는 해럴드는 알고 있다는 양 말했었다.


“알고 계시던 거 아니었습니까?”


“처음엔 그랬는데 아닐 거라는 생각이 점점 들어서 말이야.”


얀은 팔짱을 낀 채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시선을 멀리 두었다.


“변명 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살아났다? 예 살아난 기분이었습니다.”


해럴드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건 내가 그때 말했던 말 아니야?”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이곳에 넘어오면서 전 스스로를 죽였습니다. 하고자 하는 것이나 희망, 꿈 이런 것들을 외면하고 짓밟았죠. 제겐 그저 여동생 하나만 보고 살아왔고 트리비아로 넘어가기 위해 돈을 버는 것에 의미를 뒀었습니다.”


분명 그 당시에는 분했던 마음에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마음속으로 변호했었는데 다시 끄집어내려니 연기처럼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았다. 두서없는 말이 이어졌다.


“삶의 주체가 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 있던 겁니다. 그래서 전 영혼 없는 사람이었고 그냥 기계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좋든 싫든 이곳에 들어와 그 일을 했을 때 살아난 기분이 들더군요.”


해럴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얀은 그가 이해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제가 저 자신을 위해 행동을 한다는 것을 느끼니 죽었던 감각이 깨어난 기분? 정확히 설명하기 힘드네요. 모든 짐을 짊어졌는데 제 것이 없었던 때와 저의 몫도 같이 짊어지고 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래서 주체 못 했던 겁니다.”


“몇 년 만에 다시 느껴보는 기분이었겠네. 그래,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거야?”


얀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속 간직하기 위해서.”


그의 말에 해럴드도 마주 웃어주었다.


“계속 간직하기 위해서··· 그래, 맞아.”


침묵이 다시 찾아오기 전 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들어가서 주무시죠. 아침이면 자고 싶어도 못 잡니다.”


“곧 자야지. 먼저 들어가.”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한 얀은 걸음을 옮겨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홀로 남은 해럴드는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가 얼마 안 돼 그도 잠을 청하러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렇게 마지막 밤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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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2부 29화. 18.02.08 82 1 5쪽
44 2부 28화. 18.02.06 420 1 7쪽
43 2부 27화. 18.02.04 88 1 7쪽
42 2부 26화. 18.02.03 142 1 8쪽
41 2부 25화. 18.02.02 336 1 8쪽
40 2부 24화. 18.01.31 437 1 5쪽
» 2부 23화. 18.01.28 106 1 8쪽
38 2부 22화. 18.01.26 96 1 8쪽
37 2부 21화. 18.01.25 113 1 7쪽
36 2부 20화. 18.01.20 108 1 8쪽
35 2부 19화. 18.01.17 114 1 6쪽
34 2부 18화. 18.01.14 115 1 6쪽
33 2부 17화. 18.01.09 134 1 8쪽
32 2부 16화. 18.01.04 133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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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부 14화. 17.12.30 140 1 6쪽
29 2부 13화. 17.12.29 148 1 7쪽
28 2부 12화. 17.11.21 162 1 8쪽
27 2부 11화. 17.11.21 195 2 6쪽
26 2부 10화. 17.11.03 220 1 6쪽
25 2부 9화. 17.10.28 202 1 10쪽
24 2부 8화. 17.10.25 162 2 9쪽
23 2부 7화. 17.10.22 167 1 9쪽
22 2부 6화. 17.10.21 157 1 9쪽
21 2부 5화. 17.10.16 209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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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부 3화. 17.10.15 179 1 10쪽
18 2부 2화. 17.10.14 214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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