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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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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9.26 20:27
최근연재일 :
2018.02.12 00:5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0,582
추천수 :
77
글자수 :
168,777

작성
17.10.16 23:32
조회
209
추천
1
글자
8쪽

2부 5화.

DUMMY

“......”


맞는 말이었다. 그는 충분히 하녀를 죽일 수 있었다. 손에 들려있는 검을 던졌으면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을 테고 그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고 그랬으면··· 동료가 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당황함에 숨겨진 말랑한 순해 빠진 그의 덧없는 감정 때문에 불필요한 희생이 벌어졌다. 사실 그는 몰랐다. 해럴드가 그 얘길 꺼내기 전까지 자신의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었고, 희열감에 취해 다른 생각들이 흐려졌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이 중심으로 돌아오고 그 문제를 직면하자 그는 찔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묻는 해럴드의 말은 그에게 발가벗겨진 기분을 선사했고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민간인이잖아. 민간인···. 얼굴이 더욱 달아올라 땀이 날 지경이었다. 이 사달이 난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자 숨이 턱턱 막혀왔고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무슨 자격으로···.


“얀, 당신 이제 반란군이야. 이제 더 이상 테슬리어인이 아니라 모르츠 국민이라고. 그래, 네 말대로 민간인 건들면 안 되지. 하지만 예외도 있는 거야.”


해럴드는 한껏 누그러진 말투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해. 상대 신경 써주다 우리가 죽는다고.”


듣고 있는지 아닌지 얀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이 없었다. 그는 코로 길게 숨을 흩뿌리고는 고개를 얀 쪽으로 숙이며 더욱 작게 말했다.


“원래 이렇게 화내려 한 건 아니었어. 전우애가 투철한 사람도 아니고 정의감에 찬 사람은 더더욱 아냐. 오히려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근데 아까 들어올 때 넌 기분이 좋은지 웃고 있더라고. 내가 화난 건 그것 때문이야.”


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되물었다.


“웃고...있었다고요?”


떨리는 그의 눈동자 속에서 무언가를 읽으려 해럴드는 그것을 헤집었다.


“아주 희미하지만 그랬어. 아무리 살아왔다는 게 기뻐도 그러면 안 되는 게 예의인 거 잘 알잖아.”


얀의 눈동자는 여전히 떨렸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뭐?”


이번엔 그가 해럴드의 눈을 바라봤다. 잠시간 그 상태로 있던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말해도 이해 못 하실 겁니다. 나중에···얘기하겠습니다.”


급격하기 피로해진 얀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도 없이 자신의 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천천히 문이 닫히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해럴드는 그 역시 피로해 하며 한 손으로 뒷목을 문질렀다.


“알다가도 모르겠군.”


----------------------------------------------


끝부분이 금색으로 무늬가 그려진 빨간 카펫 위를 걷는 늙은 노인은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은 기품 있고 고운 비단으로 짠 옷과는 정반대로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고 한편으로는 분노로 덮여 있었다. 양옆의 호위를 받으며 노인은 걸음을 재촉해 긴 홀을 지나 회의실 문을 벌컥 열었다.


“......”


신경질적인 문 여는 소리에 안에 있던 몇은 몸을 움찔거렸고 모두의 시선은 노인에게 닿았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밝은 모습은 아니었고 선뜻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들 합이라도 맞춘 듯 한 번에 자리에 일어섰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대표해 입을 열었다.


“마테오 폐하 오셨습니까.”


마테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나 비어있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조심스럽게 앉는 것을 보며 주변을 천천히 훑은 그는 얕게 숨을 뱉었다.


“아롤도 파누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왼쪽에서 해럴드가 벌떡 일어섰다. 그 또한 분노가 서려 있었지만, 긴장으로 감춰져 있었다. 마테오는 지긋이 그를 바라봤다. 그는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을 느끼며 침을 한차례 삼켰다.


“반란군 놈들이 줄기는커녕 요새 더 미친 듯이 활개 치고 다니고 있는데 자넨 어디서 뭘 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내가 그러라고 참모 자리에 앉혔나?”


“아닙니다.”


마테오는 말하면서 열이 오른 지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근데 왜 일 처리가 이따위야!”


“......”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를 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던 마테오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루디 베인스!”


“예, 폐하.”


“이쪽으로 오라.”


끝쪽에서 일어난 루디를 보며 마테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의자 뒤로 걸어가 등받이 위에 손을 얹었다.


“앉아라.”


“예?”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경황을 따지기도 전에 루디는 어깨를 움츠리며 일단 그의 말대로 그가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마테오는 문에 서 있는 호위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왜 나무만 보는 것이냐. 빌어먹을 재주도 없는 놈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하는 것이 먼저 아니냐. 개미를 잡는 게 아니라 개미굴을 잡아야지. 안 그런가, 루디?”


마테오는 호위가 가지고 있는 검을 빼 오며 다시 뒤를 돌았다. 말은 루디에게 건넸지만 시선은 아롤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습니다.”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마테오는 검 손잡이에 손을 얹고 천천히 루디에게 다가갔다.


“자원이 끊기면 알아서 자멸하게 되어 있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이냐. 다들 일찍이 항복해 작위를 받은 모르츠 사람 중에 반란군을 지원하는 파렴치한이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팔걸이에 얹은 손이 떨리는 것을 저지하려 했지만, 그것은 루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 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마침내 마테오가 칼을 뽑았다. 서슬 퍼런 날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어떻게 생각하나, 루디?”


목 옆으로 들어온 검의 차가운 촉감을 느끼며 루디는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 했지만, 목구멍마저 떨리는지 말이 나오지 않았고 대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저는···.”


촤악, 사방으로 진하고 끈적이는 피가 튀었다. 말을 하던 모습 그대로 루디의 얼굴이 몸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쿵 떨어졌다. 충격에 휩싸인 방 안은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머리를 잃은 목에선 피가 솟구쳤고 균형을 잃고 바닥에 엎어졌다. 빨간 카펫이 피로 물들어 검붉은 색이 되었다. 마테오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검을 도로 주인에게 건네며 옷을 대충 털었다.


“이제 그중 하나가 줄었군. 아롤도!”


“예, 폐하!”


군기가 잔뜩 들어간 대답에 그는 만족한 듯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작위를 받은 모르츠인을 시작으로 한 자리 하고 있는 놈들 모두 탈탈 털어서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자들은 철저히 진위여부를 파악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레이너 토네토.”


“예!”


아롤도의 옆에 앉아있던 레이너가 의자를 끌며 절도 있게 일어섰다.


“출동 대기하라. 위치 파악된 곳들을 중심으로 반란군을 타격한다. 알겠나?”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좋아.”


짧게 내뱉고 그는 입맛을 다시며 위협적인 눈빛으로 한 명 한 명 훑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어느 누구도 섣불리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움직이는 건 루디의 몸에서 흐르는 피뿐이었다.


작가의말

예비군 다녀오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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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2부 29화. 18.02.08 83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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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부 26화. 18.02.03 142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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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부 20화. 18.01.20 108 1 8쪽
35 2부 19화. 18.01.17 114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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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부 13화. 17.12.29 148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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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부 11화. 17.11.21 196 2 6쪽
26 2부 10화. 17.11.03 220 1 6쪽
25 2부 9화. 17.10.28 202 1 10쪽
24 2부 8화. 17.10.25 162 2 9쪽
23 2부 7화. 17.10.22 168 1 9쪽
22 2부 6화. 17.10.21 157 1 9쪽
» 2부 5화. 17.10.16 210 1 8쪽
20 2부 4화. 17.10.16 161 1 8쪽
19 2부 3화. 17.10.15 179 1 10쪽
18 2부 2화. 17.10.14 214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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