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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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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9.26 20:27
최근연재일 :
2018.02.12 00:5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0,588
추천수 :
77
글자수 :
168,777

작성
17.10.15 03:10
조회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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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2부 3화.

DUMMY

찜찜한 농담을 건네며 그는 히죽 웃었다. 그가 비켜나자 가려진 부분들이 드러나며 전체적인 것이 보였다. 대충 그린 것 같았지만, 중요한 부분들은 없었다. 해럴드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쪽 진입로는 오른쪽 일 팀이, 반대쪽 길로는 이 팀이 진입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바깥쪽부터 짚으며 그는 주변에 있을 곳부터 어디를 통해 들어가고 몇 시 몇 분쯤이 한적하고 얀이 침투할 경로와 나머지 대기조가 있을 위치부터 한 명 한 명 위치를 잡아줬다. 얀은 새삼 그를 다시 쳐다봤다.


어부지리로 얻은 자리는 아닌가 보네. 호리호리한 체형과 굳은살 없는 깨끗한 손을 보고 처음에 그는 해럴드를 의심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건 그의 직책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전략가.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그의 섬세함은 저절로 신뢰감을 주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속전속결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일에서 그다음 날로 넘어가는 새벽 두 시에 출발할 겁니다. 말씀드렸듯이 얀 앨버트 혼자 건물 안으로 침투해 조용히 루카 리오르다를 암살하고 빠져나오면 됩니다. 얀 쪽은 괜찮을 것 같고 일단...”


해럴드는 말을 끌며 얀에게 잠시 시선을 던졌다. 반짝이는 그 눈은 의심 없는 굳은 믿음이 담겨 있었다. 잠시 눈을 마주친 해럴드는 양쪽을 번갈아 바라봤다.


“조용하고 신속히 주변 정찰병들을 처리해 주셔야 합니다. 그들이 서로 만나는 시간은 삼십 분마다니까 주변에 한 조도 놓치면 곤란해요. 어차피 그쪽 인원 교대는 한 시간이니 처리만 잘 하면 얀이 일을 끝내고 우리가 빠져나가기에는 충분합니다. 이걸로 얘기는 끝이고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의무적인 물음이었고 역시 손을 드는 자는 없었다. 그만큼 그의 설명은 완벽했다. 애초에 마지막 말을 사람들은 듣지 않고 설명해준 것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며 그려진 것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외우기 바빴다.


해럴드는 바닥에 쌓인 모포와 베개 옆에 기대고는 얀에게 남아 있으라고 손짓했다. 미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긴 막대를 바닥에 쿵 찍으며 옆에 있는 그것들을 가리켰다.


“내일 여기서 이 모포와 베개로 주무시면 되겠습니다. 넉넉히 가져왔으니 추우신 분들은 여러 장 가져가셔도 좋아요. 잘 장소를 찾지 못한 분들은 오늘 여기서 주무셔도 괜찮습니다. 자, 그럼 회의 끝. 해산.”


앉아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홀에 우뚝 선 얀은 바닥에 그려진 것을 지우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해럴드는 묵묵히 나머지 분필 자국을 지워 내고서야 일어섰다.


“기분이 어때?”


“다를 게 있겠습니까. 똑같죠.”


어깨를 으쓱이며 별다를 게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해럴드는 만족한 듯한 얼굴이다.


“첫 일인데 어때, 잘 할 수 있겠어?”


“아니라고 하면 빼주는 겁니까?”


“그래도 보내야지.”


농담에 맞받아치며 해럴드가 씩 웃었다. 휑해진 주변을 훑어보고 그는 얀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만 가서 쉬어. 밥때 되면 부를 테니.”


고개를 대충 주억거리며 얀은 자신의 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서려 있던 미소를 삽시간에 거둔 해럴드는 이제는 혼자 남은 홀에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걸어가 탁자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진두지휘했던 자신만만한 표정은 아무도 보지 않게 되자 근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넣었던 손을 빼고는 팔짱을 끼며 그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그대로 석상처럼 탁자 끝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멈췄다.


대략 그러길 십 분쯤 되었을 때 문밖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워낙 주변이 조용했기에 충분히 들을 수 있었지만, 생각에 깊이 빠져있던 터라 그는 문이 열릴 때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문을 닫고 들어오는 이반은 자신이 왔다는 것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그에게 의구심을 던졌다. 해럴드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분위기를 환기시킬 겸 그는 헛기침을 했다.


“조사한 건 어떻게 됐어?”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대답을 미루며 이반은 얀의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해럴드를 바라봤다.


“안에 있어.”


작아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반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루나라는 이름을 가졌고 파누치 집안입니다.”


“파누치? 아롤도 파누치 말하는 거야?”


“...네.”


무겁게 움직이는 고갯짓에 해럴드는 깍지 낀 손을 목 뒤로 가져다 댔다.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깍지 낀 손을 풀고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게 무슨 조합이란 말인가? 반란군과 참모총장의 딸이 연인 관계라니 믿기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 믿기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아 그리고···.”


해럴드는 그의 입 모양을 주시했다.


“그녀의 집에 로건이 있더군요. 아무래도 쫓겨난 그를 그녀가 거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속내는 거멓지 않다는 얘기가 되나?”


“얀과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따져보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해럴드는 이제 다른 손을 탁자 위에 올리고는 턱을 괴었다.


“당장은 그렇겠지만, 그 집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니까 마냥 안심할 수는 없어. 뒤를 밟힐 수도 있고 말이야.”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그는 짧게 한숨 소리를 내쉬었다.


“어쩌긴 얀에게 말해야지. 어차피 이어질 수 없는 관계야.”


------------------------------------------


달빛의 빛으로도 거리를 분간하기 어려운 깊은 새벽. 마을 곳곳에서 은밀한 움직임이 보였다. 둘 셋씩 짝지어 사방에서 움직이던 자들은 서로에게 손짓으로 말하는 것을 대신하며 그들이 둘러싼 곳을 중심으로 원 모양의 포위를 만들고 좁혀갔다.


모래를 밟는 군화 소리에 유심하며 그들은 천천히 하지만 약간은 조급한 마음으로 움직였다. 그들에게 안전을 확보받으며 목표에 도달한 얀은 집 외곽 벽에 몸을 기대어 모습을 감췄다. 정면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돌담 너머로 규칙적인 움직임이 들려왔다.


모든 것은 해럴드의 예상대로였다. 전적으로 모두의 움직임은 그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고 그것은 그들이 그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보여줬다. 그리고 그 믿음에 답은 정확했다. 정확한 시간에 돌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온 얀은 눈을 찡그리며 주변을 살폈다.


한산했다. 풀벌레마저 숨을 죽이고 현재의 상황을 가만히 지켜봤다. 얀은 몸을 낮추고 집 가까이 빠르게 움직였다. 풀이 웃자란 탓에 걷는 소리가 났지만, 다행히 들키지는 않았다. 그는 해럴드가 말한 정문 옆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말한 대로 이 층 발코니가 보였고 자신의 옆에는 화단과 대리석 조각상이 있었다.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본 얀은 화단을 올라가 대리석 받침대에 올라가고는 그대로 점프해 2층 발코니에 손을 얹었다.


빠져나가려는 숨소리를 급히 삼키며 얀은 입술을 깨물어 힘을 주며 발코니로 올라갔다. 이제 이 창문만 열면 왼쪽 침대에 루카 리오르다가 있을 터였다. 한껏 긴장이 솟구친 그는 지체할 것 없이 문에 바짝 붙어 힘을 주어 아주 천천히 열었다.


“......”


몸을 통과할 정도로 열리자 그는 안쪽으로 날렵하게 몸을 밀어 넣고는 다시 창문을 닫았다. 바깥보다 안은 더 어두워 그는 잠시 몸을 낮춰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멈춰있어야 했다. 주변에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들리는 것은 격양된 그의 심장박동뿐이었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서야 서서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곳을 볼 것 없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고 휘황찬란한 침대에 루카 리오르다가 누워 있었다. 최대한 힘을 빼고 다가가자 어둠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동생을 의심하게 했던 남자. 남쪽의 실세이며 아롤도가 밀어주는 앞이 창창한 사내. 엄청난 거물급 인사. 그가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얀은 허리춤에 달려있는 숏소드를 뽑았다.


천천히 들어 올린 그는 정확히 심장을 조준했고 숨을 참고 손의 떨림이 멈추자마자 곧장 내리찍었다. 그리고 동시에 왼손으로 상대의 입을 틀어막았다. 갈비뼈를 뚫고 심장에 박히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


“다 끝났어.”


얀이 검을 뽑고 칼집에 넣으려는 순간 건너편 문이 열렸다. 랜턴을 들어 올린 문 앞의 하녀는 그것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랜턴을 떨어트렸다.


“루···루카님···!”


“잠깐만···.”


하녀는 눈이 마주치자 눈 밑이 극심하게 떨리더니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반, 반란군이다, 반란군! 루카 님이 당하셨어요!”


“젠장!”


몸을 돌려 발코니로 뛰어간 그는 뛰어내리려 했다. 하지만 소동을 듣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경비들이 그를 발견했다.


“모두 기상! 루카님이 당하셨다. 반란군이다!”


한 경비가 벼락같은 목소리로 외쳤고 건물 안에서 부산스런 움직임이 들려왔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사방에서 마을 경비병들이 다가오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동료들은 어디 갔지? 전부 당했나?


“혼자가 아니다! 지원을 요청해!”


정문을 부수고 들어온 반란군 대기조가 뛰어들어와 문 앞의 경비들에게 검을 내리쳤다. 시간이 없어···. 주변 동료들이 어떻게 됐는지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나가야 했다. 그는 일단 다시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와 밖으로 나갔다.


서둘러 일 층으로 내려가던 그는 계단에서 올라오던 다른 경비와 하인들에 의해 통로가 막혀버렸다. 그들도 급하게 나온 것인지 갑옷은 입지 않았다. 하지만 수가 적지 않았고 얀은 마른 침을 삼키며 피 묻은 검을 다시 뽑았다.


“좆 됐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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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부 30화. 18.02.09 104 1 10쪽
45 2부 29화. 18.02.08 83 1 5쪽
44 2부 28화. 18.02.06 421 1 7쪽
43 2부 27화. 18.02.04 88 1 7쪽
42 2부 26화. 18.02.03 143 1 8쪽
41 2부 25화. 18.02.02 336 1 8쪽
40 2부 24화. 18.01.31 438 1 5쪽
39 2부 23화. 18.01.28 106 1 8쪽
38 2부 22화. 18.01.26 97 1 8쪽
37 2부 21화. 18.01.25 113 1 7쪽
36 2부 20화. 18.01.20 108 1 8쪽
35 2부 19화. 18.01.17 114 1 6쪽
34 2부 18화. 18.01.14 116 1 6쪽
33 2부 17화. 18.01.09 134 1 8쪽
32 2부 16화. 18.01.04 134 1 7쪽
31 2부 15화. 18.01.02 172 1 8쪽
30 2부 14화. 17.12.30 140 1 6쪽
29 2부 13화. 17.12.29 148 1 7쪽
28 2부 12화. 17.11.21 163 1 8쪽
27 2부 11화. 17.11.21 196 2 6쪽
26 2부 10화. 17.11.03 221 1 6쪽
25 2부 9화. 17.10.28 202 1 10쪽
24 2부 8화. 17.10.25 162 2 9쪽
23 2부 7화. 17.10.22 168 1 9쪽
22 2부 6화. 17.10.21 157 1 9쪽
21 2부 5화. 17.10.16 210 1 8쪽
20 2부 4화. 17.10.16 161 1 8쪽
» 2부 3화. 17.10.15 180 1 10쪽
18 2부 2화. 17.10.14 214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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