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157)
임범석이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놓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발각된 이상 지구 어디에 가더라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임범석을 제거하기 위한 1차 작전이 실패하고 곧이어 도깨비 30명과 사이보그 20명 그리고 대마병단 병사들 120명이 임범석을 잡기 위해 장자커우 시를 떠났다.
외국에서 속속 들어온 용병들이 모두 모이는 데는 반나절로 충분했다. 완전히 무장한 이들은 오랜만에 전투다운 전투를 하게 된 것을 오히려 즐거워했다. 요괴들의 출몰 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분쟁을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그 바람에 용병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일거리가 줄어든 것인데 임범석이 그들을 모두 비싼 비용으로 고용하며 사병화했다.
이들이 임범석이 있는 곳에 모여 무장을 했을 즈음 임범석을 제거하기 위한 대마병단 병력이 도착했다.
임범석이 민간인들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듯 대마병단의 본진 역시 민간인들의 희생을 걱정 안 했다. 대형 할인점 입구에서부터 총격전이 벌어졌다. 상해시에서 가장 크다는 종합 쇼핑몰에 자리한 대형 할인점이었는데 호텔, 백화점 등과 어우러져 종합 쇼핑센터를 구성하는 곳이었다.
임범석의 소유인 이곳은 그의 요즈음 새로운 아지트이기도 했다.
아머슈트들이 마트에 난입해 진열된 상품들을 헤치며 쏟아지는 총격을 맞으며 전진했다. 그 뒤를 따라 병사들이 진입했고 마트 안에서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졌다. 용병들의 철갑탄으로 대마병단 병사들의 진입이 멈춰진 사이 소형 로켓의 공격으로 아머슈트들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요괴와 싸우는 것과 아주 많은 차이가 났다.
엄폐물을 통한 자기 보호와 곳곳에 자리 잡은 위치 선점. 그리고 강력한 화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유리한 것은 대마병단이었지만 이들은 이 일을 길게 할 생각이 없었다. 뒤에 있던 사이보그들이 안쪽으로 투입되었다. 그리고 임범석의 용병들은 사이보그를 예측하고 마트에서 철수했다. 이들을 쫓으며 사이보그들이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2층까지 쇼핑몰 일부였는데 1층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하는 점포들로 구성된 상가 형식이었다. 갑작스러운 총격전으로 쇼핑몰은 아수라장이었다. 손님은 물론 상점 주인들까지 도망치기 바빠서 통로마다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상황 속에서 사이보그들이 사람들의 무장 상태를 점검해가며 경계를 했다. 1층에서의 적극적인 저항과 달리 지하 1층에서는 별다른 저항이 없었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비상계단에 다다랐다. 엘리베이터는 정지되어서 모두 다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이보그 20명이 모두 계단을 내려갔다. 쇼핑몰의 지하층은 일반적인 건물의 층보다 더 높았다. 계단이 깊었고 세 번을 돌아서야 지하 2층 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지하 3층은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수영장과 헬스장 등 대형 운동시설들이 있었다.
각종 장비로 벽과 철문 뒤편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지하 3층의 구조는 물론 안에 있는 사람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사이보그들은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민간인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수십 명의 사람이 몇몇씩 이쪽을 향해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체온과 소리, 그리고 전파로 벽 너머의 사람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영상으로 카메라의 영상과는 달랐지만 적을 인식하는데 전혀 이상이 없었다.
지하 2층에서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늘어선 사이보그들이 본격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몸을 추스르는 사이 갑자기 계단 천장에서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며 물이 쏟아져 내렸다. 전투 중인 상황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몸에 물이 젖을 때쯤 갑자기 ‘팍 팍’ 소리와 함께 전등이 나가고 비상등이 켜졌다.
문득 사이보그 병사들이 똑같이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빠지지직 찌직.”
천장의 조명 시설에서 전기 줄기가 뻗어 나와 계단 통로에 있던 사이보그 병사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사이보그 병사들의 몸은 금속과 플라스틱의 합금으로 만들었다. 가볍고 단단하며 탄성이 뛰어난 신소재로 전기가 통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부의 부속 중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었고 인체의 피와 같은 역할을 하는 액체가 전신을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사이보그 병사의 신체와 다르게 보호복과 헬멧은 또 재질이 달랐다. 강력한 자기장과 초고압의 전기가 사이보그 병사들을 덮치고도 남아서 통로 전체를 휘감았다.
“탁탁탁”
수많은 스파크가 튀며 통로를 수놓았고 벽 속의 배관과 전선들도 피해를 보며 벽이 금가고 일부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사이보그 병사들이 하나둘씩 제자리에서 쓰려졌다.
요괴를 잡는 신병기인 사이보그였지만 뇌는 사람의 것이었고 약점은 있었던 것이다.
뇌가 강력한 전기 충격을 받고 기능을 멈춰버렸다. 사이보그가 아니라 그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이 통로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임범석은 이 대형 쇼핑몰을 지으면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시설들을 미리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순식간에 사이보그 병사 20명이 목숨을 잃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동료들은 물론 대마병단의 본부는 할 말을 잃고 침묵에 잠겼다.
사기가 급격히 식은 대마병단을 정신 차리게 한 것은 같이 온 도깨비들이었다. 애초에 이들을 데리고 올 필요까지 있었나 생각했지만, 지금으로선 이들이 제일 나은 방법이 되었다.
도깨비들은 일반 병사들과 나설 때 뒤에서 구경만 했다. 이들이 난처해지고 사이보그들이 움직였을 때도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사중은 혹시 모를 요괴들 걱정에 도깨비들을 사실상 주력으로 보낸 것이다. 사이보그 병사들보다 더 많은 인원을 보낸 것도 그렇고. 한정된 자원인 사이보그들을 아끼고 실력이 검증된 도깨비들로 하여금 이번 일을 처리하도록 한 것인데 지금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도깨비들이 나섰다.
이 도깨비들은 그동안 인간들과 같이 행동하며 요괴들과 많이 싸워왔다. 싸우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도깨비 중 가장 덩치가 큰 이가 두 주먹으로 바닥을 세게 내리쳤다. 통로에서 벌어진 일을 잘 알기에 통로를 통하지 않으려 했다. 두 번의 주먹질로 팔이 바닥을 뚫어버렸다. 마치 통 식빵을 뜯듯 구멍 난 바닥의 콘크리트들을 떼어냈고 그 틈으로 검은 유체의 영수가 배수구에 물이 빠지듯 흘러들어 갔다. 도깨비는 계속 바닥을 뜯어내며 구멍을 키웠다. 영수는 검은색의 물 같은 형태였다. 영수의 난입에 지하 3층에서 대기 중인 임범석의 용병들이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 이들도 같은 장비로 지하 2층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최근에 실전 투입된 사이보그를 보고 임범석은 휘하의 과학자들을 통해 그 약점을 알아냈다. 무극회 승려들과의 싸움에 대비해 임범석은 또 그에 대한 준비도 갖췄다.
무극회 승려들이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이라는 기본은 바뀌지 않았기에 무극회 승려들과 싸움에 기존의 화기들을 잘 사용하면 이길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도깨비는 상당히 어려웠다. 임범석이 요괴와 접할 일이 없었고 도깨비를 요괴의 일종으로 본다고 해도 그 약점을 알 수 있는 자료나 정보가 없었던 것이다. 최근에 쿠마모와 엮이며 요괴를 접하게 되었지만, 같은 편이 된 요괴들의 약점을 캐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요괴들은 인간들과 다르게 공통적인 특성보다는 개개인의 다른 형태와 특성이 있어서 약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용병들의 총으로 죽을 영수가 아니었다. 총알이 영수의 몸을 관통했지만, 영수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지 못했다. 영수는 구멍을 빠져나오며 총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넓게 폈다. 그리고 용병들의 머리 위에서 아래로 덮었다.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용병들은 먼지처럼 분해되며 영수에게 흡수되어버렸다.
‘역시 인간의 맛은 다르구나.’
요괴와 싸우면서 요괴만 먹어왔었는데 순수 인간을 먹게 되니 마치 5천 원짜리 동네 식당 밥을 먹다가 5만 원짜리 한정식을 먹는 것 같았다. 과거 인간을 잡아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영수였다.
영수의 기억이 과거를 향해 달려갈 때 그의 몸은 지하 3층에 넓게 포진해 있던 임범석의 용병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기체형태였던 때와 다르게 액체로 된 영수는 훨씬 더 농축되어 있어 넓은 공간을 장악할 수 있었다. 영수의 몸이 닿는 지하 3층의 생명체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숨을 내어 놓았다. 요괴들도 감당하지 못하는 영수를 막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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