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65)
바람새는 해지기 전에 돌아가야 했는데 근래에 맑은 날씨로 인해 뒤지면 뒤질수록 쏟아져 나오는 들꽃에 슬우를 설득해 화평곡으로 되돌아 갈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해는 지고 날이 완전 어두워 졌다.
바람새는 세 군데나 더 들꽃의 군락 지역을 확인하고 슬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람새의 몸은 연기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뭉치면 사람형상으로 흩어지면 연기로 바람과 같은 빠르기로 나무 사이를 달려 슬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바람새가 처음 접하는 요기를 느꼈을 때 바람새는 이미 슬우가 있는 곳에 도착해 있었고 슬우를 향해 팔을 휘두르고 있는 못생긴 괴물을 보았다.
바람새는 달려가 슬우를 감싸 휘감고 회오리처럼 몸을 돌았다. 바람새의 몸이 형태를 갖추며 사방에서 날아든 괴물의 검 같은 팔을 막아 냈다.
“파파파팟”
불꽃이 튀었다. 바람새는 공격을 막느라 응축시킨 몸을 풀면서 확산 시키자 주변의 모든 물방울들이 터져서 사라졌다. 곧이어 키클롭트의 몸을 바람새의 연기 같은 몸이 감쌌다.
“짜자자자자작”
수백 개의 칼이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가 나며 키클롭트의 피부가 잘게 다져졌다.
“깨에엥”
깊은 산중의 고요를 깨우는 키클롭트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바람새는 안고 있던 슬우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연기 같은 몸을 응축했다. 새빨간 색의 사람 형상이 나타났다.
“슬우, 저게 뭐야?”
키클롭트는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피범벅이 되어 간신히 숨을 쉬며 생전 처음 겪는 이 사태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명색이 마계의 무력 지존 마왕의 부하로 만 명의 마병을 거느린 중간간부인 자신이 인간계에서 듣도 보지도 못한 놈한테 맞아 죽게 생긴 것이다. 물론 인간이 아니었지만 인간계에 이렇게 강력한 요괴가 있다고는 상상 할 수 없었다.
마왕이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인간계로 넘어왔을 때 부하를 늘리기 위해 인간을 활용해 요괴를 대량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었다. 인간계의 주인인 인간과 같은 세상을 공유하고 있던 토종 도깨비들이 있기는 했지만 도깨비들이 마계에서 넘어온 마병이나 개량된 요괴들보다 세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왕은 인간계에서 살고 있는 도깨비들을 굴복시키고 자신의 부하로 삼기도 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키클롭트였기 때문에 인간이 아닌 인간계에 살고 있는 요괴나 도깨비들 중 자신을 죽일 만큼 센 존재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마계의 요괴일거야.”
“그게 뭔데?”
슬우는 바람새의 왼손을 잡고 자신의 볼을 비비며 때마침 와줘서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바람새는 바람도깨비들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 바람새의 이름은 ‘영수’. 얼마 전까지 인간계에서 생활하다가 화평곡으로 들어와 동료가 된 것이 최근의 일이었다.
슬우는 화평곡 바람도깨비들의 우두머리가 된 젊은 ‘영수’에게 감사를 표했던 것이다.
바람새인 영수는 도깨비의 정수를 흡수해 도깨비가 된 인간으로 역 요괴화된 매우 드문 돌연변이였다. 무엇보다 영수는 기존의 바람도깨비를 상회하는 능력을 가져 어리고 경험이 부족함에도 화평곡의 바람도깨비 부족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옛날에 마계에서 넘어온 놈들이 인간계에 자리 잡으면서 적응한 모습이야. 오래전에 모두 사라진 줄 알았는데 다시 모습을 드러냈네. 한뫼가 조심하라고 한 게 바로 저놈들 때문이야. 아참, 시간이 늦어서 한뫼한테 혼나겠는걸.”
바람새는 슬우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뫼를 생각하니 고민이 되었다.
“저거 어쩌지?”
“죽여.”
슬우의 기억으로 마계에서 넘어온 요괴들은 질이 안 좋았다. 인간들에게 해를 많이 입히기도 했고 세상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좀 전에는 자신도 죽이려고 하지 않았던가?
키클롭트는 두 눈만 끔뻑이며 슬우와 바람새가 하는 대화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점차 몸이 회복되고 있기는 했지만 좀 더 시간이 걸릴 터였다.
바람새의 몸이 다시 옅어지며 흩어졌다. 곧이어 키클롭트의 몸을 휘감았다. 키클롭트는 자신이 회복하기 전에 죽는 것을 아쉬워했다. 회복한다고해도 이길 수 없기는 했지만.
바람새는 키클롭트의 몸을 깊게 가르며 상처를 통해서 영력을 흡수해 목숨을 빼앗았다.
사람을 죽여 수없이 많은 정을 흡수해 영력을 키웠던 바람새는 요괴를 통해 얻는 영력은 무척 낯선 경험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죽여 얻는 정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슬우, 이만 가자. 오늘일은 한뫼한테 비밀로 해야 돼.”
“당연하지.”
바람새가 슬우를 안고 묘향산 안쪽으로 달렸다. 향나무가 많이 있는 곳에 이르러 유독 구부정한 향나무 한 그루 밑에서 나무 밑동을 쓰다듬었다. 바람새의 품에서 뛰어내린 슬우가 그 향나무 옆의 허공에 몸을 날리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곧이어 바람새도 그 곳으로 몸을 집어넣자 모습이 없어졌다.
하월과 간지가 얼마 뒤 향나무 숲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인가요?”
하월이 향나무 여기 저기 만지며 살펴보았다. 그러나 도통 요기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월은 명상을 하는 도중 거대한 사기와 요기를 감지했었다. 사기와 요기의 움직임을 보고 요괴가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명상은 깨졌고 마음속으로 대책을 구상하며 잠을 자던 간지를 깨워 요괴의 습격을 대비했다. 그런데 사기가 짙은 요기는 더 이상 이동하지 않았고 또 다른 요기가 감지되며 서로 얽히는 것을 알았다.
하월은 요괴들끼리 싸움을 하는 것을 알고 요기를 보다 더 잘 감지 할 수 있는 거리에서 이들 요괴들의 싸움을 관전했다. 요괴들은 하월이 자신들의 싸움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른 체 요괴를 잡아먹고 묘향산 안쪽으로 들어가자 하월은 궁금증에 요괴를 추적하기에 이른 것이다.
묘향산은 무극회에서 설치한 결계와 부적들 그리고 각종 상징물들이 곳곳에 설치돼 있는 곳이었다. 보통사람들은 그 기운에 눌려 산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요괴들 역시 무극회의 영향력이 미치는 묘향산 내에서는 활동하지 못했다. 그런 묘향산 안쪽으로 요괴 둘이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목숨을 내 놓는 행동과 같았다. 묘향산 안쪽으로 갈수록 무극회의 영향력이 세졌고 훈련학교를 지키는 호법부의 승려들과 마주칠 확률도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월은 요기가 갑자기 사라진 것을 신기해했다.
“요괴들이 요기를 없애는 기술도 가지고 있나요?”
“물론 그런 기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이번의 경우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다른 공간으로 넘어간 듯한데...”
간지는 요괴들이 사라져줘서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세 놈의 요기였다. 그것도 아주 강한 요기. 작정하고 덤볐다면 하월은 몰라도 자신은 목숨을 부지하고 힘들 것으로 보았다. 간지는 아직껏 여러 마리의 요괴와 동시에 대전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안도한 것이다.
“음...”
하월이 향나무 숲의 이곳저곳을 뒤지다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이놈들 도깨비들 같습니다.”
간지가 하월의 말뜻을 이해 못하고 의문스런 표정으로 하월을 보았다.
“도깨비는 토종 요괴를 말합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인간들과 같이 이 세상에 살고 있던 존재들입니다. 마왕의 부하들과는 좀 다른 부류이긴 한데, 그래도 우리는 사기를 뿜는 요괴는 도깨비라 하더라도 소멸 시키는 게 원칙입니다.”
“한번 봤으면 좋았을걸 그랬습니다.”
“앞으로 보게 될 겁니다. 어쨌거나 이놈들이 간도 크게 묘향산에 화평곡의 입구를 뚫은 것 같습니다.”
“화평곡이요?”
“아, 도깨비들의 나라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처음 듣습니다.”
하월은 도깨비에 대해 간지에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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