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35)
오수현은 액셀을 계속 밟았다. 코너에서는 몰라도 직선도로에서 최대로 밟아야 조금이라도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속도계의 숫자가 280km/h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위험했다. 하지만 오수현의 발은 액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오수현은 속도를 줄이기 위해 액셀에서 발을 뗐다.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이번 코스에서 오수현은 속도를 내야 할 때와 줄여야 할 때를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커브 구간이 나오기 때문에 속도를 줄이는데 갑자기 저 멀리 도로위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앗”
이미 오수현의 차가 사람을 치고도 계속 달리고 있었다. 오수현은 급정거를 했다. 그리고 후진으로 사고지점 근처까지 간 뒤. 차에서 나왔다.
“좆됐다.”
그러나 차에 치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도 부딪힌 흔적이 없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차도 망가지는 게 보통인데 멀쩡하다. 오수현은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사고 난 흔적이 없었다.
오수현이 차를 세워놓고 살펴보는 사이 두 대의 자동차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런, 꼴찌는 맡아 뒀구먼.’
사람을 치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했지만 기분은 무척 찝찝했다.
이 늦은 시간에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돌아다니지 않으리라. 게다가 이 근방엔 인가가 없다.
오수현이 다시 차에 올라 액셀을 밟았다. 예상대로 오수현이 꼴찌였다.
‘오늘이 은퇴하는 날이구나. 하하하’
왠지 슬펐다.
자동차의 속도는 계속 올라가는데 이제 곧 커브길이다.
오수현은 속도를 줄이고 싶지 않았다.
‘될대로 되라.’
힘차게 핸들을 꺾었는데 아주 부드럽게 오수현의 차가 코너를 돌며 빠져나갔다. 이 느낌은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자동차를 모는 느낌 그대로였다.
오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게임 속에서는 내가 짱인데.’
오수현의 차가 시속 300km를 넘고 있었다. 오수현은 액셀에 발을 붙여 놓은 것처럼 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차는 속도를 계속 올리고 있었다. 오수현의 눈에 좀 전에 자신을 추월한 자동차의 꽁무니가 보였다. 오수현은 그 차를 추월하며 운전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과거 경주용 자동차인 F1 머신 같은 외형의 차를 오수현의 빵카로 추월하고 있는 것이었다.
F1머신의 운전자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가속 스위치를 눌렀다.
“빵”
거대한 폭발음이 나며 머신이 앞으로 날아갔다. 달리는 게 아니라 분명이 날았다. 도로 위를 약 30cm정도 뜬 채로 날았다. 그러나 오수현의 차를 따라잡지 못했다. 오수현의 차는 무슨 튜닝을 했는지 모르지만 네 바퀴가 불에 타고 있었다.
F1머신의 운전자는 오수현의 불바퀴 튜닝에 감탄하며 자신이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오수현은 차창 밖으로 세상이 일그러져 흐르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속도가 날수록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일그러지는 세상도 멋있게 느껴질 뿐이었다. 오수현의 발은 여전히 액셀을 밟고 있었고 무서운 속도로 오수현의 차는 달렸다 어떠한 코너에서도 오수현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아주 부드럽게 돌아 나갔다.
오수현은 눈을 감았다. 이 느낌이 너무 좋았다. 공기와 차체가 충돌하는 소리가 마치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듯 했다. 오수현은 모든 코스를 외우고 있었다. 눈을 감고도 핸들을 조작해 달려 나갔다. 또 다시 앞차를 추월했다.
“이런 미친.”
처진 뒤차의 운전자가 오수현의 차를 보며 소리 질렀다.
오수현의 차는 네 바퀴와 차체 바닥이 불타고 있었다. 차를 태우는 불이 아닌 어둠속에서 차를 돋보이게 하는 불이었다.
‘저게 무슨 튜닝이지? 졸 멋있는걸.’
뒤차의 운전자가 오수현의 튜닝 불꽃을 감상함에 멈춰주지 않고 빠르게 계속 달려 나갔다.
이제 오수현의 차는 400km/h를 넘어서고 있었다.
“크아아앙”
오수현의 차는 야수 같은 소리를 내었다. 모두를 잡아먹을 것 같은 위용으로 달렸다.
경주의 참가자들은 물론 구경꾼들도 모두 이 상황을 보고 있었고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혀 예상 못한 오수현이 빵카로 머신들을 누르고 있었다.
코스를 총 3바퀴 돌아야 하는데 오수현의 차가 2바퀴를 돌았을 때 오수현의 차는 불꽃이 지붕까지 타오르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인해 불꽃은 뒤로 누워있었는데 그 모습이 시위를 떠난 불화살 같았다.
사람들은 새로운 승자의 탄생에 열광했다.
오수현은 온 몸을 적시는 쾌감에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땀구멍에서 땀이 쏟아져 나왔다. 오줌이 시트를 적셨다.
“꽝”
오수현의 자동차가 앞에 있던 자동차를 뒤에서 받아 버렸다.
앞차는 왼쪽으로 몇 바퀴를 구르며 차도 밖으로 날아가 이내 폭발하고 말았다. 오수현은 정액을 뿜었다. 침과 눈물,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꽝”
또 한 차례 충돌 음이 들렸고 이번에는 앞차가 오수현의 차 뒤로 날아갔다.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같이 오수현은 앞선 차들을 뒤에서 들이 받았다. 그때마다 앞차들은 날아갔다. 오수현의 차는 450km/h를 넘어서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지만 오수현의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오수현은 지금 쾌락에 젖어 있었다. 몸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내고 있었다. 아래로는 똥을 싸고 위로는 저녁에 먹은 감자탕까지 토해냈다. 그러나 기분은 최고였다.
“그래 달리는 거야.”
또 한 대의 차가 오수현의 차에 들이 받혀 날아갔다.
하월이 차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를 보고 있던 간지가 물었다.
“저런 요괴는 생전 처음 봅니다.”
“악령입니다.”
폭죽 터지는 것 같은 인적 없는 시골의 고요를 깨고 있었다.
“곧 오겠는데요.”
“다 되갑니다.”
하월은 4차선 아스팔트위에 ‘색목탄’으로 불리는 일종의 분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부적과 결계를 같이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하월이 그림을 다 그리기 전에 오수현의 자동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위험해요.”
하월은 몸을 날려 도로 밖으로 피했다.
오수현의 차가 보이나 싶었는데 이미 눈앞에까지 다가온 것이다. 오수현의 차는 하월과 간지의 눈에 총알처럼 빠르게 보였다.
“이게 효과가 있나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저도 이번 악령은 처음 봅니다.”
하월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4차선 도로에 그리는 부적과 결계라 시간이 좀 걸렸다. 게다가 하월도 처음 접해보는 악령이라 실수하지 않기 위해 두 겹, 세 겹으로 결계를 치고 있었다.
“지금 보니 물질에 들러붙은 악령이 안에 있는 사람이 정신까지 잠식했네요. 안됐지만 둘 다 봉인을 해야겠습니다.”
“운전자는 살릴 수가 없는 겁니까?”
“차를 세운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저 차를 세울 힘은 제게 없습니다.”
간지가 생각해도 저 빠른 차를 세울 방법은 없어 보였다. 오수현의 차는 계속 속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하월이 그림을 다 그린 뒤 두 손을 모아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색목탄으로 그린 색색의 그림들이 아스팔트에 녹아들어 새겨졌다.
“이제 다 됐습니다. 단 다른 차가 지나가면 다시 그려야 합니다.”
하월이 그린 부적과 결계는 오수현의 차를 다른 공간으로 보내 가두는 술법이었다. 이곳에 들어가면 차는 계속 달릴 것이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오수현의 자동차가 경주 코스의 모든 차들을 들이 받아 날려 버렸기 때문에 다른 차가 이곳에 지나갈 일은 없었다. 물론 일근 주민이나 누군가 차를 몰고 이곳을 지나간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하월과 간지는 결계 앞에 앉아 오수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수현은 환호하는 관중들의 소리에 마음을 다졌다.
‘이번 경주는 내가 이긴다.’
스피커에서는 역대 최다 관중인 20만 명이 관람하러 왔다는 해설자의 흥분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수현은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F1머신을 타고 있었다. 불꽃 모양이 차체에 그려진 머신이었는데 과거 머신과 다르게 크기가 훨씬 컸다. 오수현은 자신의 기술을 십분 발휘하며 다른 머신들을 앞질렀다.
‘같은 조건이라면 내가 질리 없지.’
오수현은 군더더기 없는 솜씨로 코스를 공략해 나갔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오수현을 코스를 돌고 돌아도 끝이 나지 않았다.
관중들의 환호는 계속 이어졌고 해설자의 중계역시 계속 이어졌다.
‘우승은 나다.’
하월은 오수현이 결계 위를 지나가자 주머니에서 흰색 가루를 한 움큼 쥐어 자신이 그린 결계위에 뿌렸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자 흰색 가루와 함께 아스팔트 위에 새겼던 부적과 결계가 먼지처럼 날아갔다.
하월이 손을 털더니 찻길 옆에 놓아둔 자신의 배낭과 지팡이를 챙겨 말없이 길을 따라 걸었다.
간지는 이번에도 사람을 살리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요괴나 악령은 처리했지만 사람도 같이 죽었다. 아마도 저 운전자는 죽을 때까지 자동차를 운전하리라. 죽어서 뼈만 남아도 그의 자동차는 계속 달리리라.
간지는 머리를 숙여 애도했다.
‘내가 퇴마술을 늘려 사람을 구하는 수밖에는 없겠구나.’
간지는 앞서 걸어가는 하월의 뒷모습을 보며 매정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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