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140)
상해 시의 해안가에 그전부터 ‘상해 타워’가 있었다. 대재앙 이후 상해 시는 이 타워를 허물고 새롭게 지었는데 그 높이가 1,200m를 넘었다. 모름지기 타워라면 높아야 했고 높은 곳에서 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높게 지은 것인데 100층대의 빌딩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이 상해 타워는 상해의 관광명소 중 첫손가락에 꼽혔다. 문제는 타워가 너무 높아 막상 위에서 내려다보면 흐린 날이 많은 상해 시의 구름밖에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맑은 날에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상해 시의 야경은 정말로 아름다워 맑은 날은 늘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었다.
지금 이곳은 타워 관리 직원들도 대부분 철수하고 외지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경천교의 도사들이 오늘은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무극회 승려들도 여럿 있었지만, 타워 전망대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경천교의 도사들이었다. 전망대 밖은 태풍이 다가오면서 비바람이 몰아쳐 거의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었는데 그 앞을 보며 경천교 도사들이 즐거운 듯 미소 짓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경천교의 도사들은 무극회의 승려들보다 퇴마술이 떨어졌다. 그래서 주로 대마병단의 지원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이들에게 무극회에서 결계술과 기본적인 주문술, 부적술을 전수해줬고 이를 바탕으로 대마병단의 후방에서 지원했다. 무극회 승려들처럼 독자적인 요괴 퇴치는 아직 일렀는데 이번에 상해 시를 덮쳐드는 태풍이 워낙 거대했고 자연적인 태풍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경천교 교주 일지선사가 직접 나서 태풍의 경로를 바꾸려고 준비 중이었다.
요괴를 잡는데 특화된 무극회의 경우 자연현상을 다룬다는 것은 생각도 시도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경천교는 종교로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많은 기적을 보여주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경천교 교주 일지선사가 태풍의 진로를 바꿔 한국의 피해를 줄였다는 소문이 있었다.
대재앙이 있기 전에 일본이 한반도로 오는 대부분의 태풍을 막아 주었지만, 일본이 침몰한 뒤로 한해에 몇 개씩은 한반도에 직접 태풍이 왔고 그 피해가 상당했다. 경천교 교주 일지선사는 한반도로 오는 태풍 중 그 크기가 큰 것은 동해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고 알려졌었는데 실제로 매년 한반도로 오는 태풍 중 한두 개는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꿔 동해로 빠져나가 간접적인 피해만 보곤 했다. 경천교 측에서는 교주 일지선사가 그렇게 했다고 주장했고 일반 시민들은 믿지 않았는데 지금 상해 타워 전망대에서 경천교 교주 일지선사가 상해 시로 오는 초특급 태풍의 진행방향을 바꾸기 위해 시도하고 있었다. 이번 태풍은 중국 정부와 합의하고 대만 쪽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얘기가 돼 있었다.
일지선사는 이틀째 태풍의 방향을 바꾸기 위한 의식을 하고 있었다. 몇몇 제자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전적으로 일지선사 본인의 힘으로 태풍의 진로는 바꾸는 것인데 이번 태풍이 워낙 컸기 때문에 제대로 방향을 바꿀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상해 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그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기에 중국 정부의 부탁으로 일지선사가 나선 것이다.
경천교의 일지선사는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일지선사는 눈을 반개한 상태로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명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 상해 타워 전망대 안의 기의 흐름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무극회 승려들은 감지할 수 있었다.
태풍은 대만을 덮치기 직전의 상태로 원래대로라면 북진해 상해 시를 덮치게 되는데 방향이 본토 쪽으로 틀고 있었다. 요괴가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태풍이었기 때문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일지선사의 도움으로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어 다들 일지선사를 다르게 보았다.
상해 시의 바다 쪽은 정부의 지시로 모든 주민이 철수한 상태였고 안쪽의 주민들도 혹시 몰라 내륙 쪽으로 피난을 가고 있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상해 시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인한 비바람이 더해져 모든 도로가 꽉 막혀 버렸고 기차는 모든 노선 완전 예약이 완료돼있었다. 이대로면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정도로 도로 상황은 아주 안 좋았다. 도로의 모든 차선을 한 개 차선만 제외하고 시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지만, 피난민의 행렬을 감당하지 못했다. 도시를 빠져나가는 사람들만 있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었는데 태풍과의 사투가 정점에 다다랐을 무렵. 일단의 사람들이 도시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피난 지시를 내린 바닷가 쪽 상해 타워 역에 모두 내렸다.
모두 비를 맞아 젖어 있었고 피곤함에 지친 모습으로 지하철 승차장에 모두 서 있었다. 상해 타워 역에 들어오는 열차마다 한가득 씩 실려있던 사람들이 내렸고 20여 분이 지났을 때는 지하철역 승차장이 인파로 가득 메워지게 되었다.
마치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보기라도 하려는 듯 승차장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이들은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무르기만 했다.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상해 타워 역은 당직 직원 한 명만 남아 있는 상황이었는데 지금 상황이 상당히 난처했다. 평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았다. 물론 맑은 날 상해 타워 전망대에서 보는 광경이 멋있기로 소문나 관광객들이 맑은 날에는 많이 오기는 했지만 지금 이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지하철역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밖에 태풍이 오니 그러려니 했지만, 태풍이 오고 피난령이 떨어진 곳에 왜 왔을까? 당직 역무원이 이해가 안 갔다. 그렇다고 나가서 물어보기는 좀 겁이 났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물어볼 거면 진작 나갔어야 하는데 지금은 승차장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일단 지하철 상황실에 연락을 취하려고 전화를 시도하는데 CCTV에 사람들이 모두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역무원은 연락을 미루고 이들을 지켜봤다.
다행히 아무 문제 없이 사람들이 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밖은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고 있었는데 이들 중 우산을 쓰거나 비옷을 입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문제없이 하루를 보내면 되는 것이다. 오늘 당직을 선 관계로 내일은 휴무일이었고 역무원은 내일 쉬는 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상해 타워 역을 나온 사람들은 모두 타워 쪽으로 향했다. 지하철역과는 불과 50여 미터 남짓. 태풍이 일지선사의 힘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었지만, 워낙 큰 태풍이었던 터라 간접 영향만으로도 똑바로 걷는 것이 힘들 정도로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삣~ 삣~”
상해 타워는 오늘 관람객을 받지 않았다. 원래 외곽 입구 쪽에 안내소가 있었는데 태풍으로 폐쇄한 상태였다. 수많은 사람이 갑자기 타워로 다가오자 타워 1층에 근무 중인 경비원들이 유리문 안쪽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손짓으로 돌아가라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입구뿐만 아니라 유리문 전체에 달라붙어 밀었다.
“어, 이런 미친놈들이 있나. 저리 가라고. 오늘은 쉰단 말이야.”
다시 한 번 호루라기를 불 때 유리문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며 사람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 어.”
당직 근무 중인 경비원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입구 쪽에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안내소에 앉아 있었는데 문을 부수고 들어온 사람들이 입구 쪽 경비원을 짓밟고 몰려왔다. 다른 경비원이 비상 단추를 눌렀을 때 머리를 잡혀 앞쪽으로 당겨졌다.
“으으으아악”
인정사정없이 잡아당긴 경비원을 찢어 분해했다. 이들은 오직 살의만 가득했다. 살아 있는 것에 대해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이들은 만족했다. 요괴들과 다르게 죽이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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