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103)
“오랜만이오.”
“그렇군.”
눈이 한 개밖에 없는 등이 굽은 늙은 도깨비가 방망이를 품에 안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수가 안 보이네.”
“가막새를 보러 왔소.”
늙은 도깨비가 한 개밖에 없는 눈을 찡그리며 한뫼를 올려봤다.
“진심이오?”
“그렇게 됐소.”
늙은 도깨비가 몸을 돌려 앞장서 걸었다. 도깨비불에 의해 보이는 이곳은 좌우로 작은 문들이 이 나란히 나 있는 복도였다.
이곳은 화평곡 안의 감옥이었다.
화평곡에 갇혀 살던 도깨비 중에 몰래 빠져나가 사고를 치는 도깨비들이 더러 있었는데 대부분 이런 도깨비들은 한뫼가 꾸중으로 다시 그러지 못하게 경고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러나 도깨비 중에 같은 도깨비를 죽이는 도깨비의 경우 한뫼는 신성수 아래에 있는 감옥에 가두었다.
이 도깨비 감옥은 화평곡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큰 죄를 지은 도깨비를 가두었던 곳으로 그 깊이의 끝이 어딘지는 한뫼도 몰랐다. 다만 밑에 감옥이 있었고 그 감옥을 이용했지만, 더 내려가면 무엇이 있는지 몰랐고 내려간 도깨비도 없었다. 도깨비 감옥은 대왕인 한뫼와 장로들 이외에는 출입 금지였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곳이었다. 문 안쪽 방마다 중죄를 저지른 도깨비들이 갇혀 있었다. 짧게는 수백 년에서 많게는 수천 년……. 어쩌면 그 이상 오래도록 갇혀 있는 도깨비가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뫼가 대왕이 된 이후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몇 천 년 전이었는데 이미 감옥에 갇혀 있는 도깨비들이 많았다. 죽지 않는다면 천년만년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할 죄수들이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도깨비들은 간수 도깨비가 적어놓은 기록부를 통해 죄목을 알 수 있었는데 한뫼도 그 기록부를 다 보지 못했다. 이 도깨비 감옥은 갇히는 것은 가능해도 지금껏 단 한 번도 풀려난 도깨비는 없었다. 형량이 없이 영원히 갇혀 지내야 하는 감옥인 것이다.
나무로 된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질 것 같은 낡은 문 앞에 한뫼와 간수가 섰다.
간수 도깨비가 열쇠로 문을 열자 한뫼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 걸리오?”
“금방 나올 거요.”
간수는 한뫼가 안으로 들어가자 문을 닫은 뒤 다시 잠갔다. 그리고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왔다 갔다 하기엔 너무 멀었기에 기다릴 생각이었다.
감방 안을 도깨비불이 비추었다.
감방 안은 꽤 넓었다. 한쪽 벽에 쇠사슬로 팔다리가 묶여 있는 검은색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뫼가 다가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자나?”
“안잔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군.”
“심심하다.”
“그런가?”
한뫼가 가막새 앞에 같은 자세로 바닥에 앉았다.
“내가 얼마나 있었지?”
“이천 년쯤 되는 것 같다.”
“고작 이천 년밖에 안 됐는데 한 이만 년은 된 것 같군.”
“밖에 나가고 싶지 않나?”
“크크크. 자네가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뭔가 부탁할 게 있나 보다 생각했네.”
가막새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나가고 싶지 않은가?”
“내가 나가면 곤란할 텐데.”
“곤란하지 않게 한다는 조건으로 나가게 해주는 거지. 어떤가? 곤란하게 할 텐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좋을 리 없다. 자유를 누린 존재가 자유를 구속당하면 힘든 법이다.
“노력해봄세.”
“노력만으로는 안 되네.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거네.”
가막새는 침을 삼키며 말을 더 하지 못했다.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왔는데 또다시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모르겠네.”
한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막새는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
가막새는 입안이 마르는 것을 느끼며 침을 자꾸 삼켰다. 뭐라도 해서 한뫼한테 잘 보여 감옥을 나가야 하는데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인간을 한 명 보호해야 하네. 할 수 있겠는가?”
가막새는 감옥에 들어오기 전에 수많은 인간을 잡아먹었다. 그런 그가 인간을 보호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 먹을 것 앞에서 참으라는 소리 아닌가.
“하 하 할 수 있네.”
가막새는 다급하게 말을 뱉었다.
한뫼가 말없이 가막새를 똑바로 바라봤다.
“마왕이 부활하네. 그에 앞서 수마 장군이 세상을 혼란케 하고 있지.”
가막새는 마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뫼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인간들과 손을 잡고 마왕군과 싸우고 있다네. 자네가 할 일은 위대한 스승님의 화신을 마왕 군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야.”
“내가 갇혀 있는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나 보군.”
한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을 마왕한테 보호하기는 힘든데.”
“자네가 할 일은 정확히 인간 하나를 수마장군과 그 부하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야. 마왕이 부활하기 전까지만.”
“그건 어렵지 않은데?”
한뫼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자네가 알던 수마장군이 아니야. 화평곡의 결계를 깨고 들어와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갔네.”
가막새의 얼굴에서 놀라움이 번졌다. 그리고 말했다.
“너는 내가 인간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면서 왜 나한테 부탁하지?”
“너 말고 없다.”
가막새는 그제야 한뫼의 두 손을 봤다. 붕대에 감겨 있는.
“그렇군.”
가막새는 생각에 잠겼다.
‘인간이든 뭐든 보호하는 게 문제가 아니야. 진짜 문제는 내가 인간을 잡아먹는 것이지.’
가막새는 과거에 인간을 잡아먹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자기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였다.
“다른 인간을 먹어도 안 되나?”
“안되네.”
가막새는 크게 실망했다. 거짓말을 못 하는 가막새는 인간 세상에 나가서 인간을 잡아먹지 않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고민에 빠진 가막새를 보고 한뫼가 말했다.
“내가 이곳을 나가면 두 번 다시 여기에 올 일은 없네. 할 수 있겠나?”
“하........... 하지.”
가막새가 마지막으로 침을 삼키는 소리가 하도 커서 한뫼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인간 하나를 수마장군과 그 부하들로부터 보호하고 인간들을 잡아먹지 않는다. 약속하나?”
“약속하네.”
가막새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듯이 약속은 꼭 지켰다.
“그런데 하나 물어봐도 되나?”
“뭔가?”
“시……. 시체는 먹을 수 있을까?”
“자네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허락하겠네.”
“그럼 풀어주게.”
가막새는 시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한뫼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문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 죄수를 풀어줘.”
문이 열리며 외눈의 간수가 감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태껏 죄수를 풀어준 전례가 없었소.”
“자네는 내 말을 듣기만 하면 돼.”
간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막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과 발에 묶여 있던 쇠사슬을 풀었다. 가막새는 그제야 자신이 자유를 되찾았다는 게 실감이 났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도깨비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가막새는 어둠과 침묵이 가득한 도깨비 감옥에서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도깨비 역사상 감옥에 갇힌 도깨비가 풀려난 처음 있는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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