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153)
하월 일행이 석관동 본원에서 나온 시간은 아침을 먹기 전이었다. 이들은 곧장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인도 북부로 향했다. 히말라야 산맥을 중심으로 그 인근부터 수색할 생각이었다.
과거 인도 북부의 몇몇 국가들이 모두 인도에 흡수되면서 인도는 7개 주의 연합국 형태로 바뀌었다. 대재앙 이후 과거 국가들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없다면 주변국으로 합병되었다는 것이다. 고유의 언어나 문화는 유지하되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앙 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뉴델리 공항에 도착한 이들은 곧바로 과거 네팔의 영토로 향했다. 히말라야 산맥을 중심으로 오지에 있는 깨달은 사람을 찾기 위해서인데 흔히 잘 알려진 성자들은 모두 신뢰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일치했다. 무태선인은 세계 종교 지도자 회의가 끝난 후 깨달은 사람을 찾아 떠나라고 말했었다. 그것은 결국 세계 종교 지도자 회의에 오는 지도자들은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세계 종교 지도자 회의가 취소된 지금 대회에 올 것 같은 종교 지도자들을 제외하고 깨달은 사람을 찾으려고 하니 결국 숨어있을 것이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정확한 것은 간지가 들고 있는 나뭇가지가 판별해 줄 테지만 하월 일행의 생각은 자신들이 퇴마여행 동안 가지 못한 곳의 알려지지 않은 성자들을 만나는 것으로 일정을 정했다.
하월 일행은 히말라야 셰르파 마을에서 몇 명의 인부들을 고용했다. 과거와 다르게 요즘은 히말라야 높은 산들을 정복하려는 등산가들이 없었다. 외지에서 관광객들도 거의 오지 않았다. 히말라야의 많은 마을이 외부와 단절된 체 그들끼리 살아갔으며 문명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고 살았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이든.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도시를 벗어난 외곽지역에서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히말라야 쪽은 그나마 아주 오래전부터 그들끼리 살아왔던 터라 상대적으로 소규모 마을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첨단 과학의 도시 발전과 비교하면 정체되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현대 사람들은 몸을 격하게 사용하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가상현실이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몸을 쓰지 않았고 이들에게 등산이란 차를 타고 산을 오르거나 케이블카를 통해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35명의 현지인을 고용하고 하월 일행은 산을 올랐다. 히말라야 곳곳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수행자들을 만나봐야 했는데 길을 안내할 사람과 짐꾼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고 35명의 짐꾼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다망’이라 불리는 노인이 간지를 등에 지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자정이 간지를 메고 다녔는데 이제 짐꾼이 생기며 간지를 메지 않게 된 것을 자정이 가장 좋아했다.
다망으로서도 다른 인부들이 수십 킬로그램의 짐을 짊어진 데 비해 간지만 짊어지면 됐기 때문에 이 인부도 행운이랄 수 있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어느 나라든 대우를 받는다.
다망은 나이가 많아 젊은 다른 인부들에 비해 무게가 덜 나가는 간지를 등에 메는 일을 맡은 것이다. 하지만 매일 한 번씩 간지의 몸을 소독약으로 씻고 새로운 붕대를 감는 것 또한 다망이 할 일이었다. 다망은 그 일 또한 흔쾌히 승낙했다. 이 짐꾼들은 평생 살아오면서 상상도 하지 못한 엄청난 돈을 받았기에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다짐했다.
히말라야 곳곳엔 작은 마을들이 있었고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수행자들이 많이 있었다. 짐꾼들의 안내를 받으며 하월 일행은 길을 떠났다.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비해 간지는 뒤를 보았다.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간지는 눈만 빼놓고 전신이 담요로 덮여 있었다.
간지는 셰르파 마을에 온 뒤로 숲을 본 적이 없었다. 마을 자체가 해발 수천 미터 위에 있었고 주변은 온통 황무지와 멀리 흰 눈이 덮여 있는 산들의 정상이 보일 뿐이었다.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곳을 줄지어 사람들이 걸었다.
눈 덮인 평야에 무언가에 놀란 사슴 몇 마리가 달렸다. 눈이 워낙 많이 쌓여서 사슴들의 발걸음은 더디기 그지없었다.
사중은 비공정 위에서 아래쪽의 사슴들을 내려보며 새삼 자연이 잘 보존된 시베리아 오지에 온 것을 실감했다. 한창때 퇴마여행을 다닐 때에도 겨울의 시베리아는 전혀 발을 들여 놓지 않았었다.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무극회 승려들도 가지 않는 지역이 몇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북 시베리아였다. 사람도 거의 살지 않았고 무엇보다 추웠다. 요괴가 출몰할 일도 적은데다 요괴가 나타났다고 해도 피해당할 사람이 없으니 잡으려 하지도 않은 것이다. 아프리카나 중동의 사막지대. 히말라야 산맥을 비롯한 중국의 서쪽 지대. 몽고와 고비사막 시베리아를 잇는 쪽 역시 무극회 승려들이 가지 않는 지역이었다. 괜히 힘들고 가봤자 요괴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중은 그런 금기를 깨고 겨울의 시베리아 위를 날고 있었다.
비공정의 속도가 줄어들자 사중은 목적지에 다 왔음을 깨달았다. 비공정이 아래로 수직으로 하강하자 주변으로 여러 채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한 건물의 옥상에 착륙하고 문이 열리자 추위를 피해 사중은 얼른 비공정에서 나와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두 명의 남자가 마중을 나왔는데 사중이 인사를 받을 새도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이들은 옥상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에서 사중에게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가죠.”
둘 다 군인은 아니었다. 사중은 이들을 행정요원 정도로 생각했다.
사중은 서울에서 돌아온 뒤 대마병단의 구조를 개편했다. 법일의 지시에 따라 대마병단에 속해있던 무극회 승려들이 모두 빠졌고 이를 알고 구조 개편을 한 것이다.
대마병단은 일반 병사들과 경천교 도사들 그리고 도깨비들로 새롭게 판을 짰다.
그리고 부족함을 느껴 김태호 회장의 도움을 받으러 직접 시베리아의 사이보그 훈련 양성소로 온 것이다. 이곳이 따로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다. 어떤 정부의 허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순수 김태호 회장이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훈련하고 양성하는 곳이었다.
“눈이 상당히 많이 내렸습니다.”
“그런가요? 이 동네는 원래 겨울 동안은 늘 이렇습니다.”
화상통화로만 보던 사람을 직접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직접 만난 게 꽤 오랜만이었다.
“제가 귀찮게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김태호가 그냥 웃었다.
사중이 알기로 김태호는 게임 폐인이었다. 세상은 마왕의 부활로 인해 요괴들이 설치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김태호를 비롯한 많은 게임 유저들은 세상사에 관심이 없었다. 게임으로 재미를 보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게임 속이 현실이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바깥세상 자체는 관심이 없었고 한편으로 각국 정부가 효과적으로 정보를 차단하고 있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만 보고 신경 썼다. 인터넷에 많은 동영상과 이야기들이 올라왔지만, 대형 언론사들이 입을 닫고. 정부는 아니라고 하고. 전문가들이 사실이 아닌 이유를 설명하고 언론과 함께 선동하는데 안 넘어갈 사람이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게임 유저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현실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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