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10)
간지는 진청이 하는 얘기를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죽지는 않았다는 것은 알았다.
진청은 어느덧 상체를 세우자 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진청은 간지가 어안이 벙벙해 하는 것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무극종의 환술은 시전자의 술법의 깊이와 심성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는 술법입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그리고 학교에서 수련생들의 수련 성취를 시험하는 가중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수행력이 깊은 수련자 일수록 환술로 만들어진 환세계의 크기가 차이나며 수련자의 심성이 고운 자일수록 환세계가 밝고 따뜻하게 됩니다. 사람의 천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선천성과 후천적으로 길러지고 가꿔지는 후천성이 있는데 아무리 후천적으로 길러지더라도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선천성은 결코 바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무극종에서는 스승이 제자를 삼고 법통을 잇게 할 때는 첫째가 선천성의 맑고 깨끗함을 보고 둘째로 술법의 이해도를 보게 됩니다. 맑고 깨끗한 선천성을 가진 사람이 워낙 드물기 때문에 스승은 적합한 제자를 찾아 세상을 유랑하며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직 한 제자만을 찾아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하는 것이 바로 우리 무극종의 전통이었습니다.”
간지는 처음에 진청이 하는 소리를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진청은 이런 간지의 표정을 읽었다. 진청은 한 쌍의 금강저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바치며 엎드렸다.
“이 금강저는 제가 퇴마 유랑을 할 때 인도의 베나레스 근방의 폐허가 된 한 힌두교 사원에서 마귀와 싸운 뒤 부서진 잔해에서 발견한 것인데 마귀나 악귀를 잡는데 저희 버드나무 지팡이보다 더 애용했던 무기입니다. 저의 무지함을 용서하는 의미로 받아 주십시오.”
진청과 간지의 나이차는 할아버지와 손자뻘이었다. 게다가 진청은 훈련학교의 교육대장으로 훈련학교 내에서 서열 2위에 해당했다. 훈련학교의 교장은 무극종의 종정인 무태선인의 다섯 번째 제자 법유가 맡고 있었는데 법유는 훈련학교에 거의 붙어 있지 않았다. 다른 형제들이 무극종의 지부를 맡고 있는데 비해 자신은 고작 훈련학교를 맡는다는데 마음이 상해 다른 형제들의 지부를 전전했던 것이다. 무극종의 승려들은 어느 나라를 가나 항상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법유 같은 최고위급 승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난 수천 년간 무극종이 이룬 업적은 전설적이었고 권력자들은 무극종을 신처럼 떠받들었다.
간지는 감사한 마음으로 진청이 받들고 있는 금강저를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진청의 금강저는 의식용이 아닌 무기용으로 만들어진 금강저였다. 재질을 알 수 없는 금속에 녹이 슬었는지 진청도 관리를 꽤나 안한 듯 보였다. 금강저에 새겨진 문양도 닳아서 그 형태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간지는 금강저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무극종의 승려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전통적으로 버드나무 지팡이였고 줄기나 잎사귀도 사용했다. 사람에 따라 진청처럼 다른 무기도 사용했지만 어떤 무기를 사용해도 주가 되는 것은 술법의 수준이었다. 무기는 그저 술사들이 술법을 사용하는 도구의 하나인 것이다.
간지는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곳은 환세계였다.
아쉽지만 정신을 집중해 환술을 거뒀다. 자신이 어떻게 이런 환세계를 만들었는지 몰랐다.
다만 추측하건데 죽음의 순간에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환세계를 만들어 보호했던 것으로 생각했다.
환세계를 거두자 간지는 온몸에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진청의 금강저에 살점이 떨어져 나간 어깨는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청은 빠르게 달려와 간지의 어깨를 눌러 지혈을 했다. 하얗게 질린 진청의 얼굴이 보였고 간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하월’은 감회가 새로웠다.
무극종의 본원에 올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큰 건물에 비해 상주하는 승려들이 많지 않았다. 무극종의 일은 거의 다 지부에서 처리했기 때문에 본원은 큰 스승님이 머물고 있는 곳이란 상징적인 의미만 있었다. 한 번씩 회의만 하는 정도…….
그런 본원이 최근 들어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
하월은 무태선인의 명으로 오게 된 것인데 종정인 무태선인이 제자가 아닌 승려를 직접 오라고 지시를 내린 것은 아주 드문 일로 하월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소문도 있었고 하월 본인이 천문을 읽고 감지한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하월은 어느 정도 심적으로 안정돼 있었다.
방문이 열리면서 덩치가 좋고 후덕한 인상의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하월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절을 했다.
“허허허.”
하월이 절을 하는 동안 잠시 기다렸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구나.”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뭐 그런…….”
시동들 몇이 들어와 하월과 남자 사이에 다과상을 차렸다.
남자가 과자 한쪽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내가 요즘 군것질이 늘었다. 하하하. 나이를 먹으니 뭐가 자꾸 당기는 구나.”
“뵐 때마다 젊어지시는 걸요.”
“그런가? 하하하”
남자는 무극종 종정인 무태선인의 첫 번째 제자 ‘법일’이었다.
원래 무극종 유럽지부를 맡고 있었는데 지금은 본원에 머물고 있었다.
법일도 실제 나이는 120이나 되었지만 얼굴로 나타난 나이는 60대로 보였다. 무태선인의 나이가 200살이 넘었고 그의 제자들 중 가장 젊은 제자가 80이 넘었다. 그런데 첫째 제자인 법일의 외모가 가장 젊어 보였는데 무극종의 수행자들은 마귀나 요괴들한테 죽지 않는 이상 장수했고 실제 나이보다 젊은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도력에 비해 나이만큼 늙어 보이는 무태선인이 무극종에서 드문 경우였다.
둘 사이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법일은 차를 마시는 것을 즐겼는데 하월은 차를 잘 마시지 않았다.
“스승님이 자네에게 부탁을 하나 할 걸세.”
뜬금없는 법일의 말에 하월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후 법일이 다시 말했다.
“마왕이 부활했다네.”
하월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법일에게 직접 듣자 놀라움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양노선인께서…….”
“양노는 죽었다.”
“음…….”
양노선인은 법일의 사제였는데 죽었다는 말을 아주 쉽게 했고 양노선인의 죽음에 대해 슬픈 구석이 전혀 없었다. 차를 음미하고 과자를 먹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내던지는듯한 법일을 보며 하월은 법입과 양노선인의 관계를 새삼 떠올렸다.
양노선인은 무태선인의 법통을 이은 제자로 무태선인이 죽는다면 또는 은퇴하면 무극종의 종정이 될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태선인의 제자들 중에 6번째인 양노선인에 대해 형들인 5명의 제자들은 스승인 무태선인이 양노선인에게 법통을 잇게 한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첫 번째 제자인 법일의 경우 양노선인이 제자가 되기 이전에 이미 무태선인의 퇴마술법을 모두 전수받은 상태였다. 당연히 5명의 제자들 중에서 후계자가 결정될 것으로 알았는데 어느 날 무태선인은 뜬금없이 어린 양노선인을 데리고 와 적전제자로 삼았던 것이다.
다섯 제자들은 속으로 불만이 많았지만 그 불만이 사그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양노선인은 어렸을 때부터 탁월한 천재성으로 술법의 습득이 매우 빨랐던 것이다.
천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자신이 평범하다는 것을 다섯 제자들은 깨달았고 좌절감이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키며 물과 기름처럼 양노선인을 배척했던 것이다.
양노선인이 하는 모든 것에 다른 형제들은 일단 반대부터 했고 작은 실수라도 하면 크게 부풀려 모함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양노선인은 그 모든 것에 개의치 않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일을 추진함에 주저함이 없었다.
마왕이 부활하는 9번째 안숙절을 예견하고 만월단을 조직하고 간지를 후계자로 지명하는 등 굵직한 건수를 많이 제공해 늘 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는 무극종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월은 양노선인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에 벌어진 마왕의 부활과 관련된 일들은 무태선인과 그 제자들만 아는 사실이었고 다른 승려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하월은 천문을 읽으며 세상에 큰 위기가 왔음을 알았고 아직 양노선인의 수호성이 힘을 잃었지만 건재함을 보고 있었다.
법일은 하월이 양노선인이 죽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을 알고 다시 말했다.
“양노가 아로빠의 동귀어진 술법으로 마왕을 붙잡았다.”
놀라는 하월이 입을 열기 전에 법일은 다시 말을 이었다.
“스승님은 간지를 자네에게 맡길 것이네.”
하월은 양노선인이 아로빠의 동귀어진 술법으로 목숨을 잃게 된 것에 대한 놀라움보다 자신이 간지를 맡게 된다는 법일의 말에 더 큰 놀라움을 느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법일은 차 마시는 것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스승님은 간지에게 무극종의 법통을 넘기고 은퇴하시려고 한다.”
“흐억…….”
무태선인은 나이가 많았다. 오늘 은퇴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고 오늘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간지가 무극종의 종정이 된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었다.
하월이 아는 간지는 무극종을 맡을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
하월은 회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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