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62)
개미떼들은 몽고를 넘어 본격적인 중국의 영토에 접어들었다. 몽고는 대재앙이후 벌어진 기상 이변으로 사막이 확장돼 초원이 모두 황무지나 사막으로 변해서 대도시 몇 군데를 제외하고 기존의 유목민들은 사라진 상태였다. 특히 남부지역은 몽고 영토였지만 중국에서 관리할 정도로 몽고는 사실상 이름만 존재하는 쇠퇴한 국가였는데 개미들은 네이멍구 자치구의 끝에 다다르자 베이징이 있는 허베이성은 비상이 걸렸다.
중국도 다른 나라와 다르지 않게 대도시 위주로 사람들이 몰려서 과거와 다르게 도심을 벗어나면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 덕에 개미떼들로 인한 인명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고 중소도시의 주민들은 개미떼를 피해 피난을 가서 실제로 개미에게 죽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허베이성에 개미떼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본격적인 군사 행동을 개시했다.
폐허가된 도시위에 수송용 헬리콥터 3대가 날아들었다. 헬리콥터는 시청으로 사용되던 건물 옥상에 한 대씩 교대로 내려서 사람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헬리콥터가 모두 돌아갔다.
시청건물 옥상위에서 이들은 제일 먼저 드론 레이더를 켰다. 16명의 승려들이 줄지어 달렸다. 이들은 낮은 건물로 가득한 도시를 도로가 아닌 건물들의 옥상을 뛰어다녔다.
“영지 호법부장님 저쪽에.”
16명의 대마괴 척살조를 이끌고 있는 ‘영지’는 미주 지부의 호법부장 이었다. 마왕의 부활로 인해 무극회는 미주지부의 최소 인원만 남기고 퇴마여행중인 승려들까지 포함해 모두 고비사막 주변으로 발령 령을 내렸다. 다른 지역의 요괴들은 포기하더라도 마왕의 마기를 양분으로 새로운 요괴가 탄생하고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개미떼가 황무지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접어들자 이를 막기 위해 무극회에서 척살조를 꾸려 보낸 것인데 드물게 지부의 호법부장을 조장으로 척살조를 꾸린 것이었다. 지부의 호법부장은 지부를 지키는 수비대장의 성격으로 지부의 승려들을 훈련시키고 술법 교육을 하는 훈련대장과 대외부장으로 불리는 공격대장과 함께 3대 대장으로 불리는 고위 직책이었다.
영지가 이끄는 척살조는 모두 미주 지부의 승려들로 퇴마여행중인 승려들로 꾸려진 다른 대마괴 척살조와는 다르게 손발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다.
영지는 뭐가 급한지 뒤쳐져 따라오는 부하들을 제쳐두고 혼자서 요기가 안개처럼 진하게 머물러 있는 곳으로 뛰어들어 다짜고짜 공격을 퍼부었다.
“콰콰콰쾅”
요기의 중심지인 지역의 아스팔트 바닥과 건물들이 모두 날아가는 큰 폭발이 일었다. 전 세계에 5개뿐인 무극회 지부의 3대 대장답게 가공할 위력으로 대마괴를 이끌어내려고 시도한 것이다.
부하들은 영지 대장이 초반에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각자가 알아서 폭발 지역의 안과 밖으로 원형의 결계를 고리처럼 엮어 구성했다.
폭발로 인한 흙먼지가 다 사라지기 전에 사방에서 이들을 향해 개미떼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흙먼지로 시야가 가려져 있었지만 누구도 당황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주문을 영창 했고 승려들의 중심으로 사방으로 전기적인 스파크가 튀며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개미들이 죽으며 내는 소리가 점점 멀리서 들려왔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안 들리게 됐을 때 승려들은 주문을 중단하고 자리를 이동해 새로운 결계를 구성했다.
영지가 때를 맞춰 양 팔로 크게 원을 그리자 이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흙먼지들이 모두 뭉쳐서 공처럼 되었고 점점 응축되며 커다란 둥근 바위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모든 건물들이 자취를 감추고 평지가 되어버린 그러나 바닥을 갈아엎은 것 같은 평지 위에 16명의 승려들과 주변으로 끝이 안 보이는 죽어 새까맣게 땅을 뒤덮은 개미떼들 그 가운데 동그란 바위만이 있었다.
“음...”
영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갈고리 같은 다리가 땅속에서 솟았다 주변의 지면을 붙잡고 이어서 다른 다리들이 나왔다.
영지는 대마괴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기다려줄 마음이 없었다. 영지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15명의 승려들이 3명씩 모여서 한 사람을 앞에 세우고 두 사람이 그 뒤에서 각자 한 손의 손바닥을 등에 대었다. 앞에 선 승려가 뒤에서 전해주는 기를 받으며 두 손을 모아 내밀었다. 대마괴를 중심으로 다섯 방향에서 흰색 줄기가 뻗어 나와 머리를 드러낸 대마괴를 휘감았다. 4개의 다리로 지면을 딛고 땅속에서 몸을 꺼내던 대마괴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는 사이 영지가 지팡이를 높이 쳐들고 뛰어 들었다. 지팡이의 주변으로 옅은 빛이 나고 있었는데 영지의 지팡이가 한쪽 다리를 잘라내며 몸을 관통해 들어갔다. 대마괴는 고통에 소리를 지르며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몸을 감고 있는 흰색 줄기 때문에 땅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아주 적절한 순간에 대마괴를 구속했고 제대로 힘을 못 쓰는 대마괴를 영지가 유린하고 있었다. 영지의 지팡이에 대마괴의 다리가 두 개 잘려 나갔을 때 대마괴가 모든 힘을 쏟아 붓는 듯 괴성을 지르며 몸을 솟구쳤다. 이 대마괴는 사람의 외형과 개미의 외형이 섞인 듯 한 모습이었는데 허리 밑을 스스로 잘라내고 상체만 지상으로 올라왔다.
원래 이 대마괴는 여왕개미 요괴였다. 알을 담고 있는 배를 포기하고 올라온 것인데 영지가 이끄는 대마괴 척살조에 고전하고 있었다. 개미 대마괴는 바닥을 구르며 영지의 공격을 피하는 한편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흰색 줄기를 벗어나려고 했다. 3인으로 구성돼 다섯 방향에서 흰색 줄기를 쏘아대고 있던 무극회 척살조원들은 대마괴가 구르며 다가오자 망설였다.
특별한 공격을 못하는 대마괴였지만 영지의 공격을 받아 망신창이가 된 몸임에도 불구하고 큰 몸을 구르며 몸으로 진형을 깨려고 했다.
한쪽이라도 지금의 자리를 이탈하면 진형이 깨지게 돼있었는데 영지가 아직 대마괴의 목숨을 뺏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덧 대마괴 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영지는 다급한 마음에 구르는 대마괴의 남은 다리 하나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더 이상 자신의 부하들에게 접근을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요괴를 이길 수 없었기에 영지는 인체변형술을 급하게 발동하며 대마괴의 다리를 붙잡아 안쪽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나 위협을 느낀 부하들이 자리를 이탈하면서 진형이 깨지고 결계가 풀려 버렸다.
개미 대마괴는 영지에게 다리를 붙잡혀 날아가는 도중에 구속력이 사라졌음을 느끼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바닥에 떨어지며 그 충격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다리가 부러지고 너덜너덜해졌다. 이제는 거의 형태만 남은 체 온 몸이 망가져 있었는데 몸을 웅크리며 자신이 떼놓은 땅속에 있는 나머지 절반의 몸통에 정신을 집중했다. 영지는 인체변형술로 변신한 검은 몸으로 웅크리고 있는 대마괴를 지팡이로 때렸다. 한 대 칠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몸이 으깨졌다. 영지와 그 부하인 척살조원들은 자신들이 대마괴를 이겼다고 생각했다. 대마괴는 이제 완전 피떡이 돼버렸던 것이다.
개미 요괴가 자신의 알집을 찢고 몸을 빼냈다. 대마괴를 처치했다고 기뻐하는 무극회 승려들 뒤로 개미 요괴가 모습을 드러내며 더듬이를 채찍처럼 휘둘러 두 명의 승려를 붙잡아 자신 쪽으로 잡아 당겼다. 영문을 모르고 잡힌 두 승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개미 요괴의 입으로 머리가 씹어 먹혔다. 원래의 몸보다 크기는 작지만 완전체로 부활한 개미 요괴가 두 명의 승려를 잡아먹고 원기까지 회복해버렸다.
놀란 다른 승려들이 흩어지며 진형을 갖추기 위해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개미 요괴가 배를 안쪽으로 말아 투명한 액체를 연사했다.
“으아악”
개미 요괴가 쏜 액체에 맞은 승려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몸이 녹아 버렸고 액을 많이 뒤집어쓴 승려는 즉사 하고 말았다. 개미 요괴는 하늘로 뛰어올라 다리를 구부려 낫으로 찍듯이 승려 두 명을 또 찍어서 죽였다. 순식간에 5명이 죽고 3명이 중상을 입고 말았다. 대마괴는 번개 같은 속도로 몸을 움직이며 승려들을 공격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승려들이 반격을 했지만 결계가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대마괴와 싸워 이기기는 힘들었다.
영지는 산전수전 다 겪은 퇴마술사였다. 수련도 많이 했고 퇴마술도 높은 경지에 다다라 지부의 호법부장까지 할 수 있었다. 이번이 그가 맞붙은 두 번째 대마괴였는데 순간의 방심으로 많은 부하들을 잃어 잔뜩 화가 났다.
이미 인체변형술로 몸이 강화된 상태로 초인과 같은 능력으로 개미 대마괴의 속도를 따라 잡았다. 영지가 지금처럼 대마괴를 붙잡고 시간을 끈다면 다른 승려들의 도움으로 유리하게 싸움을 끌고 갈 수 있었다. 문제는 영지의 인체변형술의 지속시간이 길지 않았다는 것이고 대마괴 역시 싸움을 길게 끌고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었다. 개미 대마괴는 싸우는 도중에 새끼를 낳았다. 새끼를 낳지 않을 때는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산을 쏘았다. 산의 위험성을 잘 알게 된 승려들이 산은 잘 피했는데 쉴 새 없이 배에서 나오는 새끼들. 개미들은 새로운 위협을 주었다. 날 때부터 30cm 정도의 크기에 곧바로 달릴 수 있는 개미들이 승려들을 공격한 것이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한 대만 맞아도 죽었지만 그 수가 많았고 만약 물린다면 팔다리가 잘릴 정도로 튼튼하고 억센 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지를 도와 대마괴와 싸우면서도 자신에게 몰려오는 개미까지 신경 쓰느라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영지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는 승려들로 인해 영지도 점점 곤란을 겪게 되었다. 영지는 어떻게든 혼자서 대마괴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대마괴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대마괴를 끌어안았다. 부하들이 대마괴가 낳은 개미 새끼들이라도 잘 처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있는 힘껏 대마괴를 끌어안고 주문을 외웠다. 영지는 신체가 강화된 상태라 대마괴도 떨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몸을 안았는데 그 힘이 어찌나 센지 대마괴의 몸이 터질 정도였다. 대마괴는 자신을 압박해서 죽이려는 줄 알고 영지를 떼어 내려고 날카로운 다리로 영지의 등과 팔을 찔렀다.
하지만 영지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영지가 주문을 외우면서 영지의 전신이 숯처럼 타들어갔다. 그런데 영지의 몸을 태우던 것이 대마괴에게 옮겨지며 영지는 정상적인 몸을 회복하고 그 대신 대마괴의 몸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영지는 자신의 몸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오자 그제야 대마괴를 감고 있던 팔을 풀고 뒤로 물러섰다.
대마괴가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면서 비명을 지르는 동안에도 몸은 타들어갔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국 다 타서 재가 되었다.
영지는 대마괴가 재가 되어 사라진 것을 보며 힘없이 주저앉았다.
“호법부장님.”
살아남은 부하들이 영지에게 달려왔다. 영지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인체변형술이 풀리면서 거무죽죽한 가죽을 걸친 뼈만 남은 모습으로 정신을 잃은 체 쓰러진 것이다.
부하들은 곧바로 치유술을 사용했지만 영지는 치유술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끊어질 듯 미약한 숨만 쉬었다.
“모두 철수한다.”
한 명이 영지를 들쳐 업고 남쪽으로 달렸다.
영지는 술법의 부작용으로 지금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는 있었지만 차마 내색을 못하고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가까운 도시로 향했다.
영지의 거의 자폭과 같은 술법으로 대마괴는 잡았으나 자신도 사경을 헤매게 된 것이었다.
영지와 그의 부하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상 증식한 개미들로부터 대도시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비사막으로부터 밀려오는 마기는 점점 더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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