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52)
“누가 그런 법을 만들었습니까? 우리가 요괴를 잡는 것은 사람들을 위해서 아닙니까? 그럼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범죄자를 사람들을 위해 막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거 아닙니까?”
간지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범죄를 묵인 할 수 없었다.
하월은 그동안 인간사에 관여하지 말하고 배웠지만 사실 인간사에 무관심해 관여를 안 해왔었다. 아마 대부분의 무극회 승려들도 마찬가지라 보았다. 지금처럼 범죄 현장을 직접 보는 것은 아주 드물었다. 요괴들을 잡다보면 약하디 약한 인간들의 목숨에 무뎌진다. 요괴 때문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고 요괴를 잡는 과정에서 또 사람들이 많이 죽기도 한다. 요괴는 착한사람 나쁜 사람을 가지지 않았고 요괴를 잡는 무극회 승려들 역시 인간의 선악은 눈 밖에 나 있었다.
하월은 간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시길 원합니까?”
“당연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해야죠.”
하월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박지원에게 다가가 발목을 잡고 치료술을 시행했다. 박지원의 발바닥에 있던 가시와 죽은피들과 진물이 배출되었다. 신기하게 아프지도 않았다.
박지원은 이 승려들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 경천교와 적을 두려고 하는 겁니까?”
“경천교가 뭐하는 것인데요? 경천교는 무슨 면죄부라도 있는 겁니까?”
간지는 사실 경천교가 뭐하는 곳인 줄 몰랐다. 현재의 한국에서 가장 세가 큰 종교가 바로 경천교였다. 남자는 간지가 자신들을 일부러 도발하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하지만 남자는 무극회 승려들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수도 없는 게 박지원은 용신이 간택한 제물인데다 이 일로 시비를 걸면 골치가 아플 수도 있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박 수사님 사람들 좀 모아서 보내주세요.”
간지는 박지원을 업으려고 했다. 발이 불편하니 마을까지 업어서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괜찮습니다. 신기하게 발이 다 나았네요.”
정말로 박지원의 발에 있던 상처들이 모두 아물었고 아픈 데가 없었다. 박지원은 이 승려들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간지는 박지원을 담아뒀던 부대자루를 잘라 박지원의 발을 감쌌다.
“혹시 걷다가 불편하면 말씀하세요.”
박지원은 간지의 마음씀씀이에 감사하며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간지의 부축을 받으며 박지원과 하월은 산 밑 마을로 향했다.
“여보쇼. 이름이라도 알려주시구랴.”
간지는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무극종 양노선인의 39번째 제자인 간지라고 합니다. 서로 안 좋은 일로 보지 맙시다.”
간지가 다시 발길을 돌렸다.
옆에 있던 하월은 간지가 못마땅해 고개를 흔들었다.
“선감님?”
“내버려둬라 우리가 어쩔 상대가 아니다. 박 수사한테 얘기해뒀으니 잘 해결할 거다.”
간지는 마을에서 박지원이 파출소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돌렸다. 하월과 간지는 이번 일로 경찰의 조사를 받는 것을 꺼려해서 박지원만 파출소에 보낸 것이다.
“하월님 요괴가 맞지요?”
산을 내려오는 동안 박지원으로부터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었던 것이다. 주변에서 그렇게 반대하던 경천교를 이제야 박지원을 끊으려고 했다.
“아마, 요괴가 되기 전 단계일 겁니다. 지원양 말대로라면 아직까지 요괴가 안 된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퇴마여행중인 하월과 간지는 주변의 요괴를 감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요괴를 감지 못했는데 경천교에서 섬기는 용신인 구렁이는 요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요기를 감지 할 수 없어 하월과 간지가 같은 산에 있었음에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일단 잡아야겠죠?”
“물론입니다. 구렁이가 요괴가 된다면 대마괴로 탄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아마 이놈은 이무기 될 것 같습니다.”
하월과 간지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산을 오르는데 하월이 살기를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간지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자 앞쪽에서 누군가 외쳤다.
“이런, 무극회의 요괴들이 귀신같이 낌새를 체는 구만. 하지만 여기서 죽어줘야겠어.”
말이 끝나자마자 숲속에서 총탄이 쏟아졌다.
“두두두두두”
“쿠쿠쿠쿠”
하월이 간지의 앞에 선 뒤 팔을 허공에 크게 휘저었다. 하월에게 쏟아지던 총탄들이 하월을 비껴가 주변의 나무에 박혔다. 아무리 총을 쏴도 하월과 간지 둘 중 누구도 맞출 수가 없었다.
죽이겠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당황해서 주변에 외쳤다.
“야, 그거 써.”
이들은 귀신을 잡는다는 무극회의 승려들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총기류로는 해칠 수 없다고 생각해 삼각대로 받친 중기관총을 세 군데에 배치해 두고 있었다. 장갑차도 뚫을 수 있는 중기관총 이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모두 목표물에서 비껴가 주변의 애꿎은 나무들만 총탄세례를 받고 쓰러졌다.
그러나 이들이 준비한 무기 중엔 중기관총 외에도 수류탄과 로켓포도 있었다. 전쟁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중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쪽에서 로켓을 장전하는 도중 누군가가 수류탄을 하월에게 던졌다.
전투중인 하월의 감각은 예민해져 있었다. 자신을 향해 적대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기를 감지하고 있었고 그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읽고 있었다. 그중 한 놈이 자신에게 수류탄을 던지자 바로 그 순간 그쪽을 향해 손으로 치는 시늉을 했고 수류탄이 던져진 곳으로 되돌아갔다.
“쾅”
숲속에서 폭음과 함께 산산 조각난 몸 조각들이 주변으로 튀었다. 그 쪽엔 4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수류탄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뭐하냐? 빨리 공격하라고.”
다급한 외침에 일행들이 드디어 로켓을 장전하고 하월에게 겨눴다. 발사 스위치를 누른 순간 로켓은 그 자리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하월의 손끝이 그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하월에게 또다시 총탄이 쏟아졌다. 무효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기계적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으악”
하월의 등 뒤에 숨어 있던 간지의 눈에 숲의 관목들이 흔들리고 거울처럼 햇빛을 반사하는 물처럼 흐르는 것이 들어왔다.
‘저건...’
큰 입을 벌려 한입에 사람을 물어 삼키고 옆의 사람들까지 연속으로 삼키는 괴물이 있었다.
순식간에 3명을 잡아먹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데 워낙 반짝이는 피부를 가진 덕에 아침 햇빛에 반사되어 모두 다 그 존재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굵기가 어른 한사람이 팔로 감아도 다 못 안을 정도로 굵었고 머리는 황소머리 만했는데 입을 벌리면 앉아 있는 사람을 한입에 삼켜 버릴 정도였다. 또한 움직임이 번개처럼 빨라 ‘슥 슥’ 몸을 두 번만 꺾었는데 하월에게 총을 난사하고 있던 무리 쪽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을 집어 삼키는 이 큰 뱀은 얼마나 긴지 아직도 그 꼬리가 안보였다.
하월을 공격하던 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살기 위해 총도 내팽개치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뱀은 달아나는 사람들을 쫓으려고 하다가 이내 방향을 바꿔 하월과 간지가 있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혀를 날름거리며 서서히 다가왔다.
“이 놈 입장에선 불행이고 우리 입장에선 행운이군요. 아직 이무기가 되기 전이라 그런지 뱀의 지능으로 자신의 위험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하월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뱀은 위험을 느꼈는지 입을 크게 벌리며 달려들었다. 하월은 지팡이를 내밀며 총알처럼 튀어가 뱀의 입속으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하월이 뱀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좀 전에 뱀이 삼킨 사람들로 뱀의 몸이 여기저기 볼록하게 나와 있었는데 하월이 몸속으로 들어가 이들을 밀면서 뒤로 계속 달렸다. 간지는 뱀의 뱃속에서 달리는 하월의 기술이 그저 신기하게 느껴졌다.
뱀은 뱃속에서 요동치는 하월 때문에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고 어느 순간 배가 길게 갈리면서 밖으로 사람들이 던져졌다. 목숨은 붙어 있으나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신음소리를 냈다.
뱀의 뱃속에서 사람들을 모두 던져낸 하월이 마지막으로 뱀의 몸 밖으로 나왔을 때 이 거대한 뱀은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월은 뱀의 머리 쪽으로 다가가 힘껏 지팡이를 내려쳤다.
마치 칼로 잘리듯 뱀의 머리가 잘렸다. 머리와 몸통이 분리 됐음에도 몸통은 계속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몸에서 분리된 머리는 죽음을 맞이한 뒤였다.
“이깟 뱀을 용신으로 모시고 있었네요.”
“원래 경천교는 여러 신들을 모십니다. 그 중엔 요괴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간지는 놀라서 하월에게 물었다.
“요괴를 신으로 모신다고요?”
하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경천교와 우리와는 사이가 안 좋습니다. 이들이 요괴를 신으로 모시는 바람에 곧잘 우리와 충돌을 빚었습니다. 10여 년 전인가. 지리산의 경천교 도장에서 바람도깨비를 신으로 모시다가 우리 승려들과 맞부딪혀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들은 우리와 사이가 더 안 좋아 졌습니다.”
“그럼 오늘 이후로 더욱 더 안 좋아 지겠군요.”
“맞습니다. 다행이 이들 중에 도술사가 없었지만 경천교도 꽤 이름 높은 도사나 술사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부딪히면 상당히 골치 아픕니다.”
“그거 의왼데요. 요괴를 신으로 모시는 놈들이 퇴마술을 쓸 수 있다니.”
“엄밀히 얘기하면 퇴마술이라기 보다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퇴마 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경천교는 원래 산속에서 도를 닦던 일지선사가 깨달음을 얻은 뒤 만든 종교라고 합니다.”
“요괴가 아닌 사람끼리 싸울 일은 없어야 할 텐데요.”
하월은 긍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월은 부적을 꺼내 뱀의 몸에 붙이고 주문을 외웠다.
뱀이 사체가 숯처럼 빨갛게 타오르더니 이내 재가 되어 버렸다.
하월과 간지는 또다시 길을 나섰다.
“하월님 그런데 총알을 피하는 술법도 있었나요?”
“저희 천인술에는 없는 술법입니다. 잡술을 응용한 것입니다.”
“잡술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하월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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