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74)
간지는 하월의 뒤를 따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간지의 눈에 말로만 듣던 악명 높은 대마괴가 있다면 바로 지금의 하월일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모습도 기존의 하월과 다른데다 소멸의 주문 없이 요괴들을 학살하며 전진했다. 요괴들은 간지를 안중에 두지 않고 하월에게만 덤벼들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그들은 그렇게 깨져 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점차 바뀌어 갔다. 부적은 다 떨어졌고 하월의 주변으로 형상을 이룬 부적도 갈가리 찢겨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인체변형술 역시 시간제한이 다가왔다.
인체변형술이 풀리면 한동안 부작용으로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요양을 해야만 했는데 안전지대로 가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하월은 걱정이 되었다.
‘이대로는 곤란하군.’
하월은 걸음을 멈추고 요괴들과 싸웠다. 사방에서 요괴들이 덤벼드는 가운데 하월이 뒤에 있던 간지를 끌어안고 거의 기능을 상실한 주변의 부적을 폭발시켰다. 한순간에 일정한 거리 안에 있던 요괴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당장 덤벼드는 요괴들이 사라지자 간지에게 작게 말했다.
“간지님 이동의 술법을 쓰십시오.”
“그 그건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데요.”
“이참에 해보는 겁니다.”
하월은 힘이 다하고 있었다. 간지가 ‘이동의 술법’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같이 죽을 판이었다.
“그런데 어디로 이동하죠?”
“아까 그 스키장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강계 스키장은 대규모로 개발한 곳이었다.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항상 많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요괴들이 사람들을 피해 그쪽은 가지 않았다. 지금 하월과 간지를 공격하는 요괴들은 천성이 나쁜 요괴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 구역을 벗어나지 않을 거란 판단을 한 것이다.
하월은 일부러 간지가 ‘이동의 술법’을 실패했을 때 둘 다 죽을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간지가 부담스러워 실수 할 수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동의 술법’은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술법으로 술사의 실력에 따라 이동하는 거리의 차이가 있었다. 자기가 직접 가본 곳이 아니면 이동할 수 없었고 술사의 영력과 이동 하고자 하는 거리가 맞지 않으면 실패하는 술법으로 많은 영력을 소모하는 술법이었다. 누구든 ‘이동의 술법’이 성공 유무와 상관없이 많은 영력을 소모했기에 위급한 상황에선 ‘모’아니면 ‘도’같은 술법으로 실패는 거의 죽음과 연결되었다. 많은 술사들이 알고는 있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대표적인 술법 중 하나였다.
하월은 간지가 ‘이동의 술법’을 제대로 구사하도록 주변의 요괴들을 막아 주었다. 간지는 자신의 술법이 실패해도 하월에게 또 다른 방법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부담 없이 정신을 집중해 ‘이동의 술법’을 위한 주문과 수인을 맺었다. 한참동안 주문을 외우다 부적 한 장을 던졌다 부적은 크기에 비해 상당히 큰 화염을 일으켰다. 간지가 그에 맞춰 동시에 큰소리로 외쳤다.
“돌아돌아돌아 염이 깃든 곳으로 에이햐아”
간지의 손이 하월의 왼쪽 어깨를 잡았다. 인체변형술로 강화된 쇠처럼 강한 몸일 줄 알았는데 말랑하다 못해 흐물흐물하다는 느낌이 드는 감촉이 느껴졌다.
간지가 느끼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흐려졌다. 간지는 갑자기 큰 어지러움을 느꼈다. 자신이 서 있는지 누워있는지 모를 정도로 머리가 핑 돌았고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간지가 조금씩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이 차가운 눈밭의 슬로프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성공한 것인가?’
몸을 움직이기 위해 한참동안 애를 쓰고서야 간지는 겨우 상체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자신의 옆에 온 몸이 깊은 주름으로 가득한 쭈글쭈글한 노인이 한명 누워있었다.
“하월님?”
하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영력을 모두 소모해 탈진해 버린 것이다.
간지는 몇 시간에 걸쳐 ‘이동의 술법’으로 인한 어지럼증과 무기력증을 극복 한 뒤 하월을 업고 스키장 입구에서 자신을 태우고 온 경찰차를 다시 얻어 탔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월과 간지는 강계시의 여관에서 다시 여장을 풀었다. 그 곳에서 하월의 회복을 위해 무려 두 달 동안이나 요양을 해야만 했다.
‘인체변형술’은 잡술중 하나로 하월이 사용한 ‘인체변형술’은 강력한 위력만큼 부작용도 큰 술법이었다. 게다가 영력이 바닥날 때까지 사용한 뒤 풀려 버린 탓에 특히 부작용이 심했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하월이 간지에게 제대로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간지는 하월이 회복하는 동안 모처럼 개인 수련에 집중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텔레비전은 간지에게 모르고 있던 세상에 대해 가르쳤다.
23. 대 무극회 암살단.
겨울에 들어선 한국의 날씨는 과거에 비해 따뜻해 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었다. 아직 한겨울은 아니었지만 쌀쌀함이 하루하루 다르다.
이현진은 몇 일전까지 있었던 캄보디아가 잠시 그리워졌다.
‘그래도 거긴 아니지...’
기억을 털어버리려고 하는 듯 고개를 여러 번 흔들었다.
8년간 군 특수부대에서 온갖 훈련을 받고 용병으로 세계 곳곳에서 6년을 보냈지만 이현진은 지난 3개월의 캄보디아 훈련이 가장 길고 힘들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한국이 추워서 잠시 더운 캄보디아를 떠올렸지만 훈련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흔들어진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이현진은 승강기를 탔다. 중랑천을 끼고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였는데 발달된 강북의 고층빌딩숲의 가장자리에 있어 전망이 매우 뛰어났다. 건물 외벽을 따라 오르내리는 승강기였기 때문에 밖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마 이 건물은 처음부터 주변경관을 볼 수 있게 설계했을 터였다. 한쪽은 중랑천. 한쪽은 서울의 유일한 숲이었다. 평지에 나무들이 빽빽이 차 있어서 바닥을 볼 수 없다. 그 숲의 바다 가운데 거대한 황금 탑 모양의 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건물이 너무 커서 숲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현진이 승강기에서 내려 1층 경비실로 향했다.
“809호 앞으로 배달 온 물건 받으러 왔습니다.”
“잠시 만요.”
1층에 우편물을 비롯한 택배물건 보관함이 있었는데 이현진 앞으로 배달 온 물건이 너무 커서 경비실에서 맡아 두고 있었다.
“굉장히 무겁던데요.”
“운동기구입니다.”
“그렇군요. 여기 사인 좀 해주십시오.”
냉장고 크기의 나무박스가 2개, 책상 크기의 나무 박스가 1개를 끌고 이현진은 다시 승강기에 올라탔다. 박스에 바퀴가 있어 혼자 옮기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이현진이 집에서 책상크기의 상자를 열었을 때 검은색의 고급 가죽 케이스 들이 완충제에 싸여 들어있었다.
‘올 것이 왔군.’
물건을 확인할 겸 제일 위에 있는 케이스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열었다. 케이스의 잠금장치는 이현진을 위해 미리 설정돼 있어 따로 푸는 과정이 필요 없었다.
짙은 회색의 무광 권총과 몇 개 부속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기를 잘 아는 이현진은 한눈에 봐도 맞춤 수제 권총임을 알 수 있었다.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권총은 일련번호를 비롯한 어떠한 문자도 없었다. 다만 옆면에 엄지손톱 크기의 금색 장미꽃이 새겨져 있었다.
‘세상에 로즈 암스라니...허허허허’
퓨쳐홀릭에서 만드는 무기들이 모두 비싸고 첨단기술을 갖춘 무기들이었다. 모든 종류의 무기들을 생산했고, 부유한 나라들이나 돈 많은 유명 용병단들이 퓨쳐홀릭에서 생산한 무기들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현진도 퓨쳐홀릭에서 생산한 무기를 애용했다. 그런데 퓨쳐홀릭의 무기들을 기성품으로 만든 사제 무기 제작자가 있었다.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10여 년 전부터 금색 장미를 새긴 무기들이 암시장에 풀렸고 단박에 명품무기로 찬사 받으며 퓨쳐홀릭의 무기를 최고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이다. 무기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만져보기만 해도 좋겠다는 전설적인 명품무기 ‘로즈 암스’.
이현진도 처음 보지만 금색 장미꽃 문양 하나로 모든 피로와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듯 했다.
이현진은 혹시 하는 마음으로 다른 케이스들도 열어봤다. 역시... 무기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 같은 자리에 똑같은 크기의 금색 장미꽃이 그려져 있었다.
‘로즈 암스’는 총기류에 한정돼 있었다. 이현진이 받은 상자에는 총기류뿐만 아니라 각종 폭탄, 로켓이나 휴대용 미사일까지 있었는데 총기류만 ‘로즈 암스’였고 다른류는 퓨쳐홀릭 제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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