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84)
제 일 소대의 탄약이 바닥을 보일 때쯤 이 소대와 자연스럽게 자리바꿈을 했다. 산탄 기관총 몇 대 맞는다고 요괴들이 죽지는 않았지만 수십 발, 수백 발을 맞는다면 얘기는 달라졌다. 주로 하급요괴들이었지만 중급요괴라고 해도 수백발의 산탄 기관총을 당해내지 못했다. 요괴들의 시체로 입구가 막힐 정도로 쌓여나갔다. 요괴들의 시체로 동굴의 입구가 좁아질수록 요괴들보다 병사들이 유리해졌다. 좁은 지역으로 집중 사격이 가능해진 탓이었다.
병사들은 요괴들을 학살하다시피 물리치고 있는 것에 자신들도 놀라워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요괴들은 끝이 없었고 산탄 기관총의 총알은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제 5소대까지 자리를 바꾸게 되면서 총알이 없어 뒤에서 구경 할 수밖에 없는 병사들은 목이 바싹 타들어갔다. 요괴들의 시체로 인해 동굴 입구가 막혔고 시체를 파헤치고 동굴입구를 넓히면서 요괴들이 계속 달려들고 있었다.
사중은 하늘에 떠 있는 두 대의 헬리콥터에서 보내주고 있는 영상으로 지상의 상황을 볼 수 있었는데 어디서 이 많은 요괴들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아직 그 수가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총알이 떨어져 모두 죽을 판이었다.
사중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작은 마이크에 대고 말을 했다.
“접니다.”
“오, 단장님. 엄청난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사중이 전화를 건 사람은 해완 연구소 이성식 소장이었다. 이성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마병단 1기의 첫 출병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위성과 헬리콥터. 심지어 병사들의 헬멧에 달려있는 카메라를 통해서도 모든 진행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성식 소장의 목소리는 무척 흥분되어 있었다.
아마도 지금 장면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것이라 사중은 생각했다. 늘 요괴의 학살대상이었던 인간이 요괴를 학살하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에 모두 증인이 되어주고 있었다.
“총알이 없어 더 싸우지 못할 판입니다. 우리 모두 무사히 귀환해야겠습니다.”
사중은 이성식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에... 핵폭탄이라도 쓸까요?”
“핵폭탄은 놔두고 우리가 테스트 하고 있던 거 한번 사용해 봅시다.”
“그건 아직 완성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 무기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요. 지지대의 문제로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게 문제였지 않습니까? 지금처럼 고정돼 있는 놈들을 상대로 시험하는 게 딱 입니다.”
“파동포의 단 한발로 저 많은 요괴들을 처리 할 수 있겠습니까?”
“최대한 접근해 공격력을 높이고 확산 반경을 늘리면 한발로 가능할겁니다.”
“준비 될 때까지 버티실 수 있습니까?”
“동굴 입구가 요괴들의 시체로 막혀서 안으로 들어오는 놈들이 적어졌으니 시도해 볼만 할 겁니다.”
이성식은 자신이 보고 있는 많은 모니터 중 한 개에 시선을 돌렸다. 모니터 안에는 회장 김태호가 있었다. 김태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 보내드리겠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마병단의 첫 출병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여러 나라들의 최고 통수권자들, 군 실력자들, 그 외에도 주요 정치인, 과학자들도 포함돼 있었다. 밑도 끝도 없이 돈을 쏟아 붓고 있는 퓨쳐홀릭의 회장 김태호도 그중 하나로 김태호는 벌써 몇 시간째 이중계를 본다는 게 시간 아까워 죽을 맛이었지만 이렇다 할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
김태호에게는 현실의 요괴들과 싸우는 것 보다 가상현실 게임속의 신과 천인족과의 싸움이 더 걱정되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꿍꿍이로 계산기를 두들기는 시청자들과 무관하게 해완연구소 가장 아래에 있는 21구역에서 거대한 쇳덩이가 지상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요괴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려 있는 듯 했다. 요괴들 중에 지능이 높은 놈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들의 행동은 지금 너무나 단순했다. 땅속으로 나 있는 거대한 구멍에 자살하듯 몸을 날려 바닥으로 내려 온 뒤 병사들이 있는 동굴로 향했다. 동굴이 막혀 있는 지금 주변 벽을 파면서 입구를 넓히며 침투하고 있었다. 당연히 동굴 안으로의 침투 속도가 느려져 요괴들은 구멍을 중심으로 정체돼 있었고 동굴 속의 병사들은 한숨 돌리고 있었다.
‘아마도 대장 요괴의 지능으로 부하 요괴들의 지능이 맞춰지나 보구먼.’
자아를 회복하지 못한 과거 마왕의 심복인 대요괴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본능적으로 주변에 자신의 요기를 날려 구조요청을 한 것인데 이 구조요청이 강제적인 것이라 인근에 사는 인간들에게 피해를 안주고 평화롭게 살던 요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신을 지배한 것으로 사중은 생각했다. 원래 똑똑한 요괴들마저 정신지배를 한 대상의 지능으로 맞춰지다보니 이렇게 무식한 행동을 하는 것이리라.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이런 대요괴가 자아를 완전히 회복했을 때. 그 많은 인간세계의 요괴들이 모두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평소 잘 놀라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중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시간이 흘러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사중은 원하는 것이 도착했음을 보고받았다.
수송 비공정의 바닥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철제 덩어리는 요괴들이나 악령들 같은 영적인 존재들을 완전 소멸시킬 수 있는 ‘파동포’였다. 동식물에게는 무해하지만 요괴들이라면 이 파동포에 노출되는 순간 몸이 분해된다. 너무나 순식간에 분해되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파동포는 아직 시험단계로 크기가 집채만 했다. 이것의 크기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진정으로 인간이 요괴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열쇠를 쥐는 것과 같았다. 총알에 부적을 그려 넣고 영력을 불러 넣는다고 해도 하급 요괴들한테나 효과가 있지 중급 요괴부터는 사실상 효과가 떨어졌다. 지금처럼 좁은 공간에서 수백 발 수천발의 총탄 세례를 맞으니 중급 요괴도 나자빠지는 것이지 만약 이들이 여유 있는 공간에서 싸우게 된다면 중급 요괴 하나를 지금의 대마병단으로 처리 할 수 없었다.
파동포는 총신이라고 할 수 있는 코일이 감긴 원뿔형 피드혼에 바닥 쪽 주변으로 몇 개의 반구형 장치들이 감싸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접시 안테나 같은 모습이었는데 파동포를 실은 수송 비공정이 목표지점에서 점점 하강하며 파동포 중앙의 피드혼의 길이가 짧아졌다. 파동포의 총신과 같은 피드혼은 파동포의 파장을 집중시키거나 확산시킬 수 있었다. 지금처럼 넓은 면적에 자리 잡은 대상을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파동포의 파장 범위를 늘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 요괴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 또한 운이 좋다고 하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요괴들 중에는 하늘을 날거나 대단한 점프력을 가진 놈들도 있어서 지금의 수송 비공정 높이라면 요괴의 사정권 안이라 할 수 있었다.
“준비 완료됐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게.”
파동포가 에너지를 모으는 소리가 동굴 안쪽에 있는 병사들의 귀에도 들렸다. 대마병사들은 파동포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에 처음 듣는 이 소리가 혹시 요괴들이 내는 소리가 아닌가 걱정을 했다.
사중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 소음과 장전시간, 크기가 문제야...’
파동포가 에너지를 집중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파동포의 위력과 비례했다. 한참동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파동포의 모습은 저걸 누가 맞나 싶은 정도로 표 나게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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