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139)
임범석은 이제 요트가 필요 없었다.
임범석이 요트에서 생활하는 데에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에 머물면 위협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서울판타지 호는 어지간한 전투기들을 격추할 수 있는 레이더와 미사일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탈출용 잠수정도 있어서 만약의 경우 잠수정으로 탈출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레아는 사격과 격투술에 능한 경호원이기도 했다. 부대급으로 작정하고 무장한 체 쳐들어오지 않는 한 안전한 곳이 서울판타지 호였다.
그런데 이제는 요트 안에 숨어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쿠마모의 체액을 받아들인 이후로 임범석은 자신도 놀랄 정도로 감각이 활성화되었다. 뼈와 근육이 20대의 것으로 바뀌었고 도청장치를 능가할 정도로 귀가 밝아졌다. 망원경이 필요 없을 정도로 멀리 있는 것을 자세히 볼 수도 있었고 특히 감이 발달했다. 느낌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임범석 앞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위협을 속이는 것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서울판타지 호가 상해 부두에 정박해 있었고. 임범석은 레아를 데리고 시내에 볼일 보러 나갔다.
이제 임범석은 레아와 함께 극장도 가고 고급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레아가 좋아하는 쇼핑도 했다. 그동안 레아가 해주는 음식을 먹어왔는데 이제는 돈을 주고 고급 음식점의 음식을 사 먹었다. 레아는 임범석의 변화를 알고 있었지만 이를 좋게 받아들였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임범석은 그대로라 보았다. 오히려 임범석이 요즘 너무 잘해줘서 행복했다.
“3시에 약속 있지 않아요?”
“애들이 알아서 잘 할 거야.”
“많이 부드러워지셨네요. 호호 저야 좋지만….”
“즐기라고. 인생 뭐 있나?”
레아는 임범석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누가 봐도 연인처럼 보이는 관계였다.
임범석과 레아가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때. 레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임범석의 비서를 레아가 보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락은 레아를 통해 이뤄졌다.
“준비됐는데 어떡하느냐고 물어보는데요?”
“뭘 어떡해? 준비됐으면 하면 되지.”
“호호호”
모든 것을 다 확인해야 하는 임범석인데 많이 바뀌긴 바뀌었다고 레아는 생각했다.
저녁 늦게까지 식사와 술까지 마신 임범석과 레아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중간층에서 내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건장한 8명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상복합 아파트인 이 건물은 중간부터 고층까지 아파트로 사용되었고 제일 위쪽의 세 개 층은 식당과 술집들이 있었다. 상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고급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임범석은 아무 말 없이 거실 옆쪽의 열린 문 안쪽을 보며 걸어 들어갔다. 방 안에는 4명의 남자가 속옷만 입은 체 포박돼 있었다.
“수고했네.”
공포에 가득한 눈으로 임범석을 보며 이 사람이 우두머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었다.
“지금 심문할까요?”
“아니. 조금 있으면 선수가 따로 올 거야. 자네들은 이만 가서 쉬어.”
임범석은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8명의 남자가 모두 밖으로 나갔고 집 안에는 잡혀 온 4명과 임범석, 레아만 남았다.
“쟤네 쓸만하죠?”
“응. 역시 돈값을 하는구먼.”
임범석은 많은 용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실력 있는 용병을 고용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아서 임범석이 고용한 용병들로만 거느리고 전쟁을 치러도 웬만한 국가와 싸워 이길 정도로 실력과 장비가 뛰어났다.
임범석은 포박된 남자들 쪽으로 다가갔다. 그중 한 남자의 뒤통수에 손을 대었다.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들이 아는 것을 내가 알아서 나쁠 건 없지.”
임범석은 남자의 기억을 들여다봤다. 이들은 중국 중앙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었다. 쿠마모가 임범석에게 고위 관료들을 통해 정보를 캐내라는 임무를 내렸다. 정보를 캐는 것 외에 최고 통수권자를 정신 지배할 계획이 있기도 했다. 임범석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쪽은 요괴들이 직접 나섰고 납치하는 것은 임범석의 몫이었다. 임범석이 납치하면 역시 정보를 캐내는 것은 요괴들이 했다. 그러기 위해 이곳으로 쿠마모가 보낸 요괴가 오기로 했는데 임범석은 자기가 먼저 납치한 이들로부터 정보를 캐냈다.
“음….”
임범석이 레아를 데리고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이들이 아는 것은 대부분 똑같아. 어느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지. 고위 무극회 승려라도 잡지 않는 이상 고급 정보를 캐내기는 힘들 거야.”
“하지만 그들은 정신지배를 받지 않을 텐데요.”
“그게 문제지. 하지만 방법이 없지도 않아.”
얼마 뒤 이곳으로 찾아온 두 명의 남자가 있었고 그들이 남자들의 기억을 모두 검사한 뒤 떠났다. 요괴라고 하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다녔고 무극회 승려들이나 특별한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한 알아내기 어려웠다. 쿠마모가 임범석을 이용하는 것도 요괴들이 활동하다가 발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임범석의 용병들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요괴들보다 못했다. 그러나 요괴의 활용은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괴들이 떠나간 뒤 임범석이 쿠마모와 직접 연락을 취했다.
“무슨 일인가?”
“제가 아는 바로는 정치인들이 알고 있는 정보엔 한계가 있습니다. 정신 지배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고 보다 고급 정보를 알기 위해선 고위 술사들의 기억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죠.”
“무슨 방법이 있는 건가?”
“무극회 말고 경천교의 술사들은 더욱 쉽게 정신 지배가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쿠마모가 아는 바로도 무극회의 승려들과 경천교의 도사들 간의 실력 차이가 크게 났다. 그래서 경천교는 애초에 안중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한번 시도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자네가 한번 계획을 구상해보게.”
“알았습니다.”
퓨쳐홀릭의 연구소에서는 요괴들과 싸울 수 있는 무기들은 물론 다양한 보조 장비들도 개발했는데 그 중의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요괴들은 절대로 감출 수 없는 요기를 감지하는 기계였다. 이 기계를 통해 지구 곳곳에 나타나는 요괴들을 알아낸 뒤 대마병단을 보냈다. 주로 대도시에 이 기계가 집중적으로 설치되었고 몇몇 인공위성에도 설치돼 있었다. 그런데 이 기계는 대마괴급이 출몰했을 시 그 요기를 감지했다. 아니면 대마괴급이 아니더라도 대단위 요괴들이 출몰했을 때에는 감지당했다. 결국, 중급이나 하급 요괴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몰랐던 것인데.
쿠마모가 임범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최소한 대마괴급은 되어야 쿠마모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마괴급은 감지되었고. 임범석은 요괴도 아니었지만, 정신 지배를 당한 것도 아니어서 설사 무극회 승려와 마주치더라도 들킬 염려가 없었다. 그럼에도 효율이 높았다.
임범석은 스스로 쿠마모를 받아들인 것으로 요괴의 흔적이 남지 않으면서 쿠마모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임범석이 자신의 꿈을 위해 적극적으로 쿠마모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상해 시는 지금 비상사태였다.
사상 유례가 없는 초특급 태풍이 상해 시로 곧장 다가오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기후로 이만한 태풍이 생성될 수 없다고 방송에서 떠들고 있었지만, 태풍은 생성됐고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상해 시로 곧장 다가오고 있었다. 그 태풍의 크기가 워낙 크고 위력적인 관계로 상해의 바닷가에 접해 있는 곳의 주민들은 모두 대피령이 떨어져 피난을 가고 있었다.
태풍의 이름은 한국에서 붙인 ‘채송화’였다. 아시아 국가들이 돌아가며 붙이는데 이번 순서는 한국 차례였다. 가을 태풍 치고 있을 수 없는 크기인 채송화는 마치 상해 시를 노리고 덮치는 맹수처럼 빠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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