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시대(47)
오도가 주문을 외웠다. 상당히 긴 주문이었는데 그 주문이 끝났을 때. 오도의 몸에 황금빛의 갑옷이 만들어졌다. 오도는 지팡이로 바닥을 치며 대마괴에게 달려갔다. 촉수들이 오도를 덮치자 오도는 하늘높이 뛰어 올랐다.
“합”
오도의 기합과 함께 지팡이를 휘두르자 직접 닿지 않았지만 촉수들이 우수수 잘려나갔다. 오도는 끓고 있는 바닥을 뛰어넘어 대마괴의 머리 위로 뛰어내렸다. 멀리 있을 때는 그 모습을 잘 몰랐는데 이 대마괴는 마치 성게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성게의 가시가 모두 촉수로 자유롭게 늘릴 수 있었다.
오도는 요괴의 모습치고는 수수하다고 생각하고 대마괴의 본체에 지팡이를 찔러 넣었다.
“이런”
오도의 지팡이를 대마괴가 촉수를 움직여 막아냈다. 촉수의 틈에 지팡이를 찔러 넣어야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수백가닥의 촉수가 오도를 향해 공격했다. 오도의 지팡이가 휘둘러질 때마다 촉수들이 잘려 나갔지만 촉수들은 새롭게 생성되었고 끝없는 싸움이 되었다.
황금빛의 갑옷을 입은 오도는 끓고 있는 바닥에서도 몸이 녹지 않았다. 마음껏 뛰어다니며 촉수를 잘라냈다.
‘시간 끌면 내가 불리하지.’
오도는 크게 지팡이를 휘둘러 한 무리의 촉수를 잘라낸 뒤 힘껏 지팡이를 대마괴에게 던졌다. 그리고 바로 합장을 한 뒤 주문을 외웠다. 지팡이는 촉수를 뚫고 본체에 박혔다. 그 순간 지팡이에서 강한 냉기가 나와 주변을 얼려버렸다. 촉수들은 물론 바닥까지 얼어버린 순간 오도는 부적 몇 장을 입에 넣어 삼킨 뒤 다시 주문을 외우며 대마괴에게 달려들었다. 오도의 몸이 순식간에 커졌다. 오도는 얼어있는 대마괴의 아랫부분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으랏챠”
대마괴는 성게 모양이었지만 지름이 10m쯤 되는 크기였는데 그게 오도에게 들어 올려졌다. 대마괴는 나무처럼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만 오도가 들어 올리는 바람에 뿌리들이 다 끊겨 버렸다. 오도는 대마괴가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줄 몰랐다. 그 바람에 들어 올리는 게 힘들었지만 괴력으로 오도는 대마괴를 들어 올리는걸 성공했고.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나 대마괴가 냉기에서 풀리면서 도중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오도가 있는 힘을 다해 대마괴에게 뛰어들어 어깨로 밀쳐냈다. 대마괴는 오도의 밀치기에 날아갔고 촉수로 오도를 휘감은 뒤였다. 대마괴와 오도가 함께 승려들이 몰려있던 곳으로 날아갔다 승려들이 사방으로 퍼지며 다들 한 동작으로 오른손을 바닥에 대며 소리치자 오른손에서 흰색의 빛이 바닥을 타고 달려 대마괴에게 향했다. 15명의 승려들이 사방에서 쏘아낸 빛이 대마괴를 덮쳤고 그 주변으로 빛의 연쇄반응이 일어나며 바닥에 무늬들이 생겨났다. 빛은 대마괴를 태웠다.
“오도야 어서 탈출해.”
오도는 대마괴와 몸이 달라붙어있었다. 대마괴가 촉수로 오도를 끌어안았지만 지금은 대마괴를 휘감고 있는 빛에 의해 오도마저 몸이 타들어 가면서 촉수와는 별개로 몸이 붙어 버렸던 것이다.
오도는 인상을 쓰며 자신에게 걸려있는 술법을 풀었다. 황금갑옷이 대마괴와 함께 녹아내리는 가운데 오도가 몸을 일으켰다. 지금 상태에서 대마괴의 촉수가 공격해오면 큰 피해를 입겠지만 대마괴는 그럴 힘이 없는 듯 몸부림은 쳐도 오도를 공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도가 힘겹게 몸을 빼내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15명의 승려들이 결계를 유지하면서 주문을 합창했다. 빛은 물결치듯 중앙의 대마괴에게로 덮쳤고 대마괴가 질러대는 비명과 함께 몸이 타들어갔다. 오도는 혹시 모를 대마괴의 저항을 대비해 선기를 끌어 올렸다. 이대로 몇 분만 버티면 대마괴는 소멸할 것이다.
“사장님?”
임범석은 모니터 화면에 보여지고 있는 한편의 영화 같은 장면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홍안이 쟤네들 만나면 싸우지 말고 피하라고 한 이유를 알겠어.”
한편으로 임범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수야......’
레아는 임범석의 감상을 깰 수 없어서 기다렸다.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데 지금은 나서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얼마간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화면 속에서도 격렬한 싸움은 멈춰진 상태였다.
임범석은 드론의 조정기에 있는 빨간 단추를 눌렀다.
북경시내는 비행금지구역이었다. 대부분의 대도시가 비행금지구역이기는 했지만 중국 정부는 무극회 승려들이 요괴를 잡는데 있어 언론의 접근을 막기 위해 추가로 금지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드론은 크기가 작았다. 발달된 레이더에 잡히기는 했지만 도심 속 빌딩숲을 누비는 드론을 격추시킬 방법이 없었다. 보통 RC동호회에서는 도심에서 드론을 날리지 않는 것이 기본이었다. 가끔 미친놈들이 도심에서 드론을 날리기는 했지만 드론이 회수되는 순간 운전자도 연행되었다. 드론은 저마다 일련번호가 있었고 구입 시 등록이 되어 사용자의 정보가 경찰에 노출되었다.
하지만 사제 드론은 그런 과정이 없어 종종 테러에 사용되기도 했다.
임범석은 드론을 회수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드론은 움직이는 폭탄이었다.
천안문 광장이 보이는 빌딩숲 사이에 있던 드론에서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주문을 외우느라 정신이 없는 승려들과는 다르게 오도는 미사일이 날아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 순간...
대폭발이 일어났다. 천안문 광장이 열풍에 휩싸였다. 곧이어 2차 폭발이 일어났다.
임범석은 생각할 것도 없이 드론도 무극회 승려들이 있는 곳으로 돌진 시켰다.
모니터 화면에 더 이상 어떠한 영상도 뜨지 않았다.
레아가 모니터를 끄고 임범석의 뒤쪽으로 다가와 어깨를 주물렀다.
“또 성공하셨네요.”
임범석은 말이 없었다.
“아예 한 놈 잡아서 정보를 캐내면 어때요?”
“저들을 생포할 용자가 우리에겐 없다.”
“후훗, 제가 한번 해볼까요?”
임범석은 어처구니없어 레아를 돌아봤다.
‘얘가 제정신인가?’
레아는 활짝 웃고 있었다. 꼭 주인을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그래서 칭찬을 듣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너마저 죽게 하고 싶지 않다.”
임범석은 한마디 툭 던지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진심이긴 했다. 임범석은 레아마저 잃기 싫었다. 지금 임범석에겐 레아가 유일한 동료였다.
레아는 감동했다. 임범석의 뺨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속삭였다.
“사랑해요.”
임범석의 자신의 어깨에 올려져 있는 레아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임범석은 또 다른 모니터 화면을 보며 홍안과 영수와 함께 했던 날들을 회상했다.
‘내가 사는 이유는 너희들에 대한 복수야.’
임범석은 자신도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음에도 자기가 아끼던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한 복수에 집착하고 있었다.
임범석이 보고 있는 모니터는 수많은 지역을 비추고 있는 CCTV화면이었다. 중국 대도시 곳곳에 설치돼 있는 것인데 승려복을 입은 사람이 포착되면 자동으로 그 사람만 쫓으며 경보를 울리게 되어 있었다.
임범석은 새로운 먹이를 찾으려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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