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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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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6.1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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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6.0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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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63화

DUMMY

결정적인 상황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땐 2가지가 중요하다.

선택이 옳아야 하고 또 빨라야 한다.

나는 일단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내렸으니 망설일 것 없이 당장 실행하기로 했다.


“⋯사정은 알았어! 정 그렇다면 내가 한 번 알아봐 줄게, 네가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하고 설득하려면 입 아플 테니 말이야!”

“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먼저 나는 해결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김민주 요원의 말대로라면 적어도 정우진과 그 친위대를 상대할 정예병력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지부의 요원 중엔 그럴만한 실력자가 없으니 서울의 헌터 중에서 인원을 차출해야 하는데 이름도 없는 F급 나부랭이가 너, 너, 너 따라와, 한다고 예~ 하고 따라와 줄 헌터는 당연히 없을 테니 S급인 소은 누나의 권위와 적절한 인원을 차출해줄 안목을 빌리기로 했다.


“준호 씨, 그동안 보면서 보통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제 생각보다 더 보통이 아니었네요⋯?”


S급 헌터인 소은 누나에게 직통으로 연락해 설명하거나 사정할 것도 없이 말 한마디에 자신이 개고생하던 지원 병력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것을 본 김민주가 말했다.


“살다 보니 어찌저찌 인맥이 생기더라구요.”


흠, 이제 이쪽은 시간문제인 것 같고, 기다리는 동안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나는 어디 죽으러 가는 건 아니지만 일단 잠시 작별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런 이유로, 잠깐 대전 좀 다녀올게.”


아린이는 S급이라, 하은이는 A급 마법사라, 형은 마법사 다음으로 귀한 원거리 공격 가능자이기에 대전은 나 혼자만 가는 분위기였다.


“⋯나도 갈래.”


하지만 의외로 가는 길이 심심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은 서연은 나와 함께 할 것을 희망했다.


“응? 그럴래?”


생각해보면 서연은 꼭 서울에 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 전력은 아니었다.

나도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랑만 일하는 것보단 아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는 게 편하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해보면 이용당한 게 짜증나서 화풀이 좀 해야겠어. 안 그러면 앞으로 편히 자는 날이 없을 것 같아.”


서연도 정우진 국장과 마무리 지을 게 남아있었다.


“좋아, 그럼 너도 같이 가자,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 응?”


다시 이어서 이야기하려는데 갑자기 미즈키가 슥 내 옆에 섰다.


“넌 왜, 뭐 할 말 있어?”

“나도 같이 간다.”

“싫은데?”

“나도 싫다.”

“그럼 오지 마.”

“그건 안 된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의중을 알 수 없는 미즈키의 행동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 궁금증은 곧 해결됐다.


“⋯⋯⋯⋯.”

“⋯⋯⋯⋯.”


미즈키는 아린이와 눈이 맞추더니 고개를 꾸벅 숙여 목례를 건넸다.

둘 사이에 오간 이야기가 있나 보다.


“네가 시킨 거야?”

“응.”

“왜?”

“호위무사로 제격이잖아.”


내가 묻자 아린이는 그렇게 대답했다.

물론 미즈키가 강한 걸 알고 있다.

얘 정도의 강자가 내 곁을 지켜준다면 든든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쟤를 어떻게 믿고?”


그 강자에게 신뢰도가 없다.

무슨 음흉한 짓을 꾸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남은 시간도 모르는 시한폭탄을 곁에 끼고 다니긴 너무 불안했다.


“괜찮아.”


하지만 아린이는 믿는 구석이 있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널 무사히 호위하고 돌아오면 신룡검무를 알려주겠다고 약속했거든.”


언제 그런 거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거리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악마의 계약서처럼 멱살 잡히는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배신 때리고 안 배우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아린이는 내 표정에서 여전한 불신을 읽어냈는지 다시 한번 말했다.


“안심해도 돼. 눈을 봤어,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 저 애는 내가 신룡검무를 처음 봤을 때랑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어. 신룡검무를 배우기 위해선 죽음도 불사하지 않을 거야.”

“⋯⋯⋯⋯.”


그게 대체 어떤 눈인지 모르겠지만 아린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는 나를 제대로 이해시켜주길 바라는 고집을 한 꺼풀 접어두고 그냥 그런 줄 알기로 했다.

뭐, 그리고 솔직히 아까 싸움도 아이리가 회복해 줘서 막상막하였지 사실상 내가 이긴 거잖아?

이번엔 서연도 있으니 또 싸움이 나면 이길 자신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


“그럼 진짜로 다녀올게.”

“응, 잘 다녀와!”

“올 때 빵 사 와라.”


시간이 됐다.

나는 아린이와 형에게 인사하고 김민주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소은 누나가 소집해준 인원은 A급 헌터 1명, B급 1명, C급 10명으로 그나마 여유가 좀 있는 방어선에서 뽑은 인원이었다.

거기다 우리까지 합치면 상당한 전력이었고 우린 멀쩡한 도로가 있는 곳까지 도보로 이동한 뒤 헌터관리국에서 마련해준 차량으로 대전까지 이동했다.


“세 분은 이쪽 차량에 탑승하시면 됩니다.”


나는 뭐 버스 같은 거나 타고 갈 줄 알았는데 헌터관리국은 그래도 귀한 인력들이니 의전에 신경을 써 최소한의 격식을 갖춘 승용차와 SUV 등으로 우릴 모셨다.

나는 서연과 미즈키와 함께 차량에 탑승했고 조용하고 부드럽게 흔들리는 차량 안에서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어느새 대전에 도착해있었다.




***




“그래서 우린 뭘 하면 됩니까?”


대전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함께 온 A급 헌터가 물었고 다른 헌터들도 당장이라도 전투를 시작하려는 듯 몸을 풀고 무기와 장비를 점검했다.

그리고 그런 헌터들의 모습에 김민주 요원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이, 일단은 쉬시면 돼요.”

“““???”””


하지만 더 당황하는 건 헌터들이었다.


“그냥 쉬라고요? 언제까지요?”

“일단 오늘은요⋯ 그리고 아마 내일도⋯ 어쩌면 모레도⋯?”


김민주의 말에 헌터들은 술렁였다.

방금 전만 해도 오직 몬스터와 죽음밖에 존재하지 않던 전장에 있던 사람들인데 갑자기 쉬라고 하니 아직 전투 스위치가 꺼지지 않아 당장이라도 어디든 가서 일단 싸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어디서 쉬면 되겠습니까? 전초기지가 있습니까?”

“아니요, 전초기지 같은 건 없고⋯ 호텔을 잡아뒀습니다, 거기서 쉬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민주의 말에 헌터들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아니, 동료들은 저 시궁창에서 몬스터의 시체와 함께 썩어가고 있는데 나는 호텔 방에서 쉬라니, 진짜 그래도 되는 건가? 같은, 나와 같이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당장 할 일이 없으니 쉬라는데 굳이 쉬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솔직히 헌터들은 이미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몰려있었고.


“와⋯.”


호텔 방에 입성한 나는 한동안 멍청하니 입을 벌리고 감탄사만 내뱉었다.

특별히 좋은 호텔은 아니었다.

그냥 어느 동네에나 흔히 있는 2성급 호텔에 불과하지만 길바닥에서 깨진 보도블록을 베고 자던 아까 전과 비교하면 욕실과 침대가 있는 실내에서 머무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호화고 사치였다.


“후우⋯.”


나는 일단 몸을 옥죄는 갑갑한 갑옷부터 벗어 던졌다.

드디어 몸에 바람이 통하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았는데⋯.


“휴, 시원하다.”

“⋯⋯⋯⋯.”


문제는 이 방에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갑옷을 벗고 검을 내려놓은 미즈키는 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서연은 근데 이제 뭐함? 이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며 멀뚱멀뚱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야! 니들은 대체 왜 나랑 같은 방을 쓰겠다는 거야? 각방 잡아준다잖아!”


솔직히 좀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 희망 사항은 철저히 묵살됐다.


“물론 너희한테 무슨 짓을 할 생각은 없지만 나도 일단은 남자 거든? 며칠을 같이 지내야 하는 지도 모르는데 안 불편하니?”

“불편하다. 불편하지만, 참아야지.”

“대체 뭘 위해서?”

“널 안전히 호위하고 돌아오면 신룡검무를 전수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어. 난 널 반드시 무사히 돌려보낼 거다.”

“그래, 그런 마음가짐은 고마워, 그런데 지금 이 호텔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냐고?”

“원래 모든 사건 사고는 설마 무슨 일 있겠어, 하고 방심하는 틈에 발생하지.”

“아니, 그래⋯ 그건 그런데⋯.”

“그리고 꼭 누군가가 습격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극단적으로 말해 네가 혼자 있다가 갑자기 우울에 빠져 삶을 비관해 자살이라도 할지 어떻게 알지?”

“그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야⋯?”

“말이 그렇다는 거다, 난 고작 잠깐의,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지 못해 신룡검무를 배울 기회를 날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아.”


고집불통인 미즈키의 태도에 얘는 한 번 뭘 정하면 설득이라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그에 나는 미즈키는 포기하고 서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는데.


“우린 어차피 같이 살잖아?”


서연은 평소대로 아무 생각 없는 반쯤 풀린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같이 산다고? 둘은 연인 관계인가?”

“비슷해.”

“비슷하긴 개뿔이나.”

“그렇다면 연인도 아닌 남녀가 한 지붕 아래 동거한다는 건가?”


미즈키는 자신의 도덕관념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시선으로 나를 훑었다.


“나랑만 같이 사는 거 아니야, 나 말고 두 명 더 있어, 너도 봤던 우리 길드 마스터랑 다른 애 한 명.”

“설마 그 나머지 한 명도 여성인가?” “응.”

“완전히 미친놈이었군. 그런 놈이 내 앞에선 깨끗한 척이라니, 찔리는 게 있는 놈이 괜히 요란 떠는 법이군.”

“⋯그냥 기숙사 같은 거라고만 말해둘게.”


⋯할 말은 많지만 피곤해서 말 상대 하기도 귀찮았다.

날 뭘로 생각하든 모르겠고 일단 침대에 눕기나 하려고 했지만 이제 보니 온몸이 피땀투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더군다나 밖에선 잘 몰랐는데 우리 셋에게서는 끔찍한 악취가 나고 있었다.

이대로 침대에 누웠다간 소중한 침대를 심하게 오염시킬 것이다.


“⋯일단 좀 씻을까?”

“⋯그게 좋겠군.”


내가 무슨 말만 꺼내면 지랄지랄하는 미즈키는 거의 처음으로 순순히 내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물론 이번에도 순순히 동의해주진 않았다.


“그럼 넌 방에서 나가라.”

“내가 왜.”


나는 괜한 반발심에 뇌도 거치지 않고 일단 반항하듯 말을 툭 던졌다.

그러자 미즈키는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우리가 씻는 동안 계속 방에 있겠다는 말이냐?”


아, 그건 그렇네.


“난 상관없는데?”


서연은 참 지 같은 소리만 했지만 여기선 내가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아니, 근데 이것도 애초에 각방 썼으면 생기지도 않을 문제인데, 참나.


“30분 뒤에 돌아올 테니까 그전까지 마무리 해둬.”

“1시간.”

“40분.”

“50분.”

“45분. 45분 뒤에 그냥 문 따고 들어올 거다, 그런 줄 알아.”


더 이상 협상할 생각 없는 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쉭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거리를 걷던 중, 나는 문뜩 걸음을 멈췄다.


“⋯⋯⋯⋯.”


평화로웠다.

이곳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내가 오늘 아침까지 겪었던 일은 그저 악몽을 꾼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일상이, 이곳에선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마음이 꺾인다는 게 이런 거구나.”


공원 벤치에 앉은 나는 이 평화를 온전히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분명 서울에 있을 땐 괜찮았다.

아무리 힘들고 좆같아도 너도, 나도, 쟤도 그냥 어딜 봐도 나랑 똑같은 처지의 사람 밖에 없으니 그냥저냥 버틸만했다.


하지만, 이런 꿀맛 같은 평화를, 일상을 누리는 이들을 보자 의지가 팍 꺾여버렸다.

다시 싸우고 싶지 않다, 나도 저 행인들 사이에 섞여 함께 평화를 즐기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다 내던지고 그냥 도망치고 싶다.

그런 생각이, 욕망이, 유혹이, 뇌를 튀겨 신경회로를 망가트리듯 팍팍 튀어 올랐다.


- 짜악!


나는 그런 나의 뺨을 한 대 세게 갈겼다.


- 짜악! 짜악! 짜악!


하지만 한 대로는 부족하다.

두 대, 세 대, 네 대.

나는 정신이 들 때까지 계속 뺨아가리를 후려갈겼다.


“후우⋯.”


역시 물리치료가 최고인가, 잡념이 조금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배고프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나니 당이 떨어졌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적였다.

지갑도, 스마트폰도, 아무것도 없었다.


“김민주 요원님한테 물어봐야겠네.”


당장 무일푼의 거지라 밥 한 끼 먹는 것조차 빌어먹어야 한다니, 뭔지 모를 무력감이 밀려왔다.

나는 김민주 요원에게 밥을 얻어먹기 위해 터덜터덜 호텔로 돌아갔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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