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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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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6.18 07:20
연재수 :
1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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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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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9,976

작성
24.05.3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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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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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2쪽

158화

DUMMY

- 인간이여, 정녕 내게 맞설 생각인가?


레나의 힘을 완전히 흡수한 카르갈은 기세등등한 얼굴로 개미처럼 작아 보이는 아린을 눈동자만 굴려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연한 걸 왜 물어보는 거야? 뭐, 할 말 있어?”

- 네게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한다.

“제안?”


원래 성격 같아서는 제안이고 뭐고 이미 덤벼들었겠지만 그동안 준호가 몬스터의 제안을 받아들여 고생도 덜하고 이득도 더 보는 경우는 몇 번인가 봐왔던 아린은 일단 카르갈의 제안이라는 걸 들어보기나 하기로 했다.

아린이 대화에 응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카르갈은 가볍게 손을 들었고 그러자 이곳을 향해 전진하던 수백 거인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 보아하니 넌 내가 방금 흡수한 여자보다 먹을 게 많아 보이는군.


추잡한 카르갈의 표현에 아린은 표정을 찡그렸다.

이딴 말이나 들을 줄 알았으면 그냥 듣지 말걸,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인내심을 유지했다.


- 그렇기에 제안한다, 네가 스스로 힘을 바친다면 너의 동료는 살려주겠다.

“그런 제안 하는 거 보니까 싸움에 자신 없나 봐?”

- 아니, 싸움이야 자신 있다, 다만 스스로가 동의해 힘을 바치면 마력을 거의 온전히 섭취할 수 있지만 내가 강제로 뜯어먹으면 마력이 훼손돼 절반도 먹지 못해서 말이야, 최고의 미식을 그렇게 낭비해선 아깝지 않나?


그런 카르갈의 제안에 아린은 잠시 고민했다.

그녀에겐 카르갈이 가진 막대한 마력의 힘을 누구보다 잘 느낄 수 있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고민됐다.

카르갈은 강하고 자신은 지쳐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불태워도 카르갈을 상대로 승리할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


모두가 죽거나 사는 도박을 하느냐, 자신의 목숨 하나 던져 모두를 살리는 협상을 하느냐, 아니, 그보다 내가 희생한다고 해서 진짜 동료들을 살려는 줄까?

그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아린은 자기도 모르게 습관처럼 준호를 슥 돌아보았다.


“⋯!”


그러자 아린은 마침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리고 카르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는 그는 협상 따위 생각도 하지 말라는 듯 빠르게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는 손을 모아 소리쳤다.


“빨리 새로 배운 스킬 보여줘 봐! 그래야 감상평을 쓰든가 말든가 하지!”


그 한마디는 아린의 뒤통수를 때리듯 다가왔다.


“하⋯하하.”


그래, 뭘 망설이고 뭘 고민한 건지.

그냥 다 죽여버리면 해결되는 건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마치 물에 잔뜩 젖은 스펀지 같은 무언가가 머금고 있던 마력을 콸콸 쏟아내기 시작했다.


“후우~.”


몽롱함과 떨림이 가시고 머릿속 안개가 싹 물러나며 몸의 통제권이 돌아왔다.

다시 감각이 예민해지며 평소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하고 세밀한 자극 하나하나까지 느껴졌고 무엇보다 한동안 꺼졌던 푸른 마력의 안광이 다시 지펴졌다.

체내의 마력이 몸 밖으로 나타나는 증상, 마력과다증.

아린의 몸속엔 그 증상 그대로 마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 칫!


아린이 마력을 끌어내는 것을 눈치챈 카르갈이 들었던 손을 내리자 거인들은 다시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 아래 땅 밑에 있던 아린이 순식간에 카르갈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 크하하! 이제 그깟 검이라면 통하지 않는다!


카르갈은 이제 아린의 공격을 막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목에 두껍게 발린 단단한 비늘을 뚫을 수 없을 거란 계산에서였다.


- 두웅!


- 윽?!


카르갈은 새로이 얻은 검성 특성을 써볼 생각에 신이나 거대한 검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어깨를 짓누르는 강한 압력에 팔을 올릴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려 했지만 고개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에 카르갈은 겨우 눈알만 굴려 하늘을 올려다봤고.


- ⋯⋯꽃?


하늘에 형형색색의 꽃이 반짝이며 만개해 있는 아름다운 광경을 목도했다.


- 크헉!


카르갈이 꽃을 본 순간 몸을 짓누르는 압력이 몇 배는 강해졌다.


- 콰드드드득!


자신의 무게로 이미 짓눌릴 만큼 짓눌린 땅이 한 번 더 주저앉으며 짓눌릴 정도였고 목과 어깨에 가해지는 압력을 버텨내지 못해 서서히 상체를 숙이기 시작한 카르갈은 결국 무릎을 꿇고는 완전히 바닥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저항했다.


- ⋯⋯!


그런데 압력을 버텨내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던 카르갈은 순간 자신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무릎을 꿇은 채 상체를 반쯤 숙여 뒷덜미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자세.


- 이건 참수당하는 죄수 같은⋯!


“잘 봐, 준호야!”


하지만 카르갈이 그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백화요란의 압력으로 카르갈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극한까지 끌어올린 검기를 검에 두른 아린은 공중에서 준호의 이름을 외쳤다.


아린의 검에 깃든 검기는 날의 길이를 훨씬 넘어서 수십 미터를 곧게 뻗어 솟구치고 있었다.

저 두꺼운 카르갈의 목을 단칼에 베어 넘길 수 있을 만큼 길었다.


“⋯후우.”


중요한 마지막 승부처를 두고 아린은 성급하게 굴기보단 가벼운 심호흡으로 백화요란 때문에 많이 소모되고 파편화된 체내의 마력을 한 번 더 끌어모아 단단히 굳혀 충분한 힘을 확보했다.

그리고 가장 편안한 자세와 마음으로 두 번째 스킬을 발동했다.


“신룡검무.”




***




“잘 봐, 준호야!”


거인과의 전투가 임박한 상황, 긴장감을 가진 채로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뒤에서 아린이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에 고개를 돌려보니 하늘에 어느 때보다 반짝이는 몇 송이의 꽃이 피어있었고 카르갈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아린이의 검은 하늘에서 땅을 벨 수 있을 만큼 긴 검기를 내뿜고 있었다.


- 파앙!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지 못했다.

내 눈으로 따라가기엔 너무 순식간이었다.

그저 대뜸 카르갈의 거대한 대가리가 단두대에 잘리기라도 한 듯 덜컥 떨어지더니 뒤늦게 공기가 터지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 쿠우우우우웅!


머리통만 해도 어지간한 건물만 한 카르갈의 대가리는 먼지 폭풍을 일으키며 땅에 떨어졌다.


“뭐야! 이긴 거야?!”

“살았다! 살았어! 와하하하!”

“엄청난 광경이군⋯.”


다들 거대한 카르갈의 머리통이 떨어지는 광경에 경악하거나 살았다는 생각에 환호를 보낼 뿐이었지만 그에 반해 나는 카르갈의 대가리가 아닌 아린이의 스킬에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아린이가 뭘 한 건지는 보지 못했다.

안 그래도 밤이라 어둡고 거리가 멀어 흐릿하게 보이는데 너무 빨리 움직이기까지 한 탓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어둡기에 환히 빛나는 검기의 궤적이 잔상을 남겼고 거리가 멀기에 그 잔상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이지만 스킬의 전체적인 형상을 본 나는 문뜩 그렇게 생각했다.


‘⋯⋯용?’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는 건방진 카르갈의 목을 물어 뜯어버리고 땅에 깃든 한 마리의 용.

아린이가 보여준 스킬은 단순히 빠르다, 강하다 같은 설명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싸움이라는 것은 동등한 위치의 둘이 맞붙어야 싸움이라는 말이 성립한다.

하지만 저건 싸움이라기보단 용의 앞길을 막은 죄로 하늘이 내린 심판을 보는 듯했다.


“이야, 이건 감상평 쓰려면 골치 좀 썩겠는데.”


그런 예술과 철학이 담긴 생각보다 너무 화려하고 수준 높은 스킬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보지 말 걸 그랬나.


“저, 저건 스승님의 스킬인데⋯ 어떻게⋯!”


그런데 나와 같이 카르갈의 머리가 아닌 스킬에 집중한 이가 또 있었다.

아린이의 새로운 스킬을 목격한 미즈키는 입술을 덜덜 떨 정도로 놀라 혼이 빠져있었다.

뭐,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중에 물어보면 되는 거고 나는 일단 여전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거인 군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끼리 저걸 상대하려고 하면 힘들었을 텐데 설마 카르갈을 단칼에 썰어버릴 줄이야.

이제 바로 아린이가 이쪽으로 합류해줄 테니 전황이 확 유리해지⋯.


- 크흐흐! 깜짝 놀랐군.


모두가 안심하고 있을 때, 땅이 울리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 소리에 모두가 숨을 삼키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이 정도 위력을 가진 스킬을 가지고 있다니, 역시 너는 반드시 먹어 치워야겠구나!


카르갈의 머리는 몸뚱이와 분리돼 있었지만 눈알을 굴리고 말을 하는 등 아주 멀쩡해 보였고.


- 쿠구구구⋯.


심지어는 몸도 아무렇지 않게 움직여 땅에 떨어진 자신의 머리를 줍더니 목으로 가져가 절단면을 착 맞대자 표면이 꿀렁이며 도로 머리가 붙었다.


“목을 자르면 죽는 게⋯ 아니었어?”


언제부턴가 목을 자르면 죽는 거라고 당연히 믿고 있었는데 저렇게 멀쩡한 모습을 보니 희망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닌지 모두가 마음 한구석 희망이 쪼개진 표정으로 다시 봐도 멀쩡하기만 한 카르갈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건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다들 몸 잘 지키고 있어!”


이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는 건 가장 어려운 일을 헤쳐 나가야 하는 아린이었다.

아린이는 이제 우리의 코앞까지 다가온 거인들을 발견하곤 그렇게 경고했고 그에 정신을 차린 우린 허둥지둥 거인과의 전투를 준비했다.


“이렇게 되면 어딜 노려야 하지?”

“화살도 얼마 안 남았어, 신중하게 쏴야 해!”


활이라는 무기의 특징으로 인해 공격 횟수에 제한이 있는 형과 유스케는 이미 수많은 거인이 사정거리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시위를 놓지 못했다.

약점도 모르는데 아무 데나 막 갈겼다간 화살이 동나 아무것도 못 하는 수가 있으니 신중할 수밖에 없겠지.


- 쩌저저적!


그에 나는 만년빙으로 일단 무식하게 많은 화살을 양산해냈다.

빠르게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내는 거라 모양과 품질이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막 쏘기엔 쓸만한 정도였다.


“일단 이거라도 쓰고 있어, 진짜 화살은 약점 알아내면 그때부터 쏴!”

“역시 내 동생! 중요할 때 한 건씩 하는구나!”

“와, 이게 뭐야? 반짝반짝 예쁘다, 얼음 같아! 뭐야, 진짜 얼음이네?!”

“여유 생기면 한 번씩 돌아와서 더 만들어 놓을게!”


- 피이잉! 팍!

- 꾸어어어!


형과 유스케는 일단 얼음 화살 세례를 날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노린 곳은 눈, 눈을 공격당한 거인은 다행히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해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 촤악!


그와 동시에 미즈키가 앞으로 나섰다.

미즈키는 눈이 먼 거인의 목을 수월하게 베어 넘겼다.


- 꾸어어⋯.


목을 베어봤자 어차피 카르갈처럼 도로 붙일 텐데 어딜 공격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미즈키의 검에 목이 베인 거인은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


“뭐, 뭐야? 죽었는데? 일단 죽으라고 머리를 벤 거긴 한데⋯.”

“카르갈은 안 죽었는데 이건 또 왜 죽어?”

“몰라, 뭐 어때! 죽어주면 우리한텐 좋은 거지!”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네!”


미즈키의 말대로 왜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어주면 고마운 일이다.

이것저것 생각할 틈이 없다.

나는 점화를 발동한 채로 끝도 없이 밀려드는 거인의 물결을 향해 숨도 참지 않고 다이빙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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