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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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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6.1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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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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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976

작성
24.05.2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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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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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2쪽

155화

DUMMY

한참 시끄럽던 전투가 두 번의 커다란 폭발과 함께 잠잠해졌다.

우린 싸움을 멈추고 승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승부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이동했다.


‘여기가 서울 한복판이라고⋯.’


나는 아린이와 레나가 전투를 벌인 주위를 둘러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 싸움이 벌어지기 전까지, 이곳은 빽빽하고 복잡하게 빌라와 주택이 들어선 주택가였지만 지금은 전투의 여파로 인해 그냥 이대로 아파트 단지를 지어도 될 것 같은 허허벌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무로 돌아간 대지 위에 남아있는 것은 주변을 이 지경의 만든 원인인 두 여인뿐이었다.


“휴우⋯.”

“아아⋯!”


그리고 그 두 여인을 본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누군가는 절망의 신음을 흘렸다.

아린이는 심하게 피를 흘렸지만 숨을 가다듬고 있었고 레나는 심하게 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린이는 아직 검을 쥔 채 서 있고 레나는 쓰러져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레, 레나!”


그런 레나의 모습을 본 아이리는 급히 조치를 취하려 지팡이를 들었지만.


- 피익!


“힉!”


날카로운 검기가 마법 지팡이를 반토막 내고 아이리의 볼을 스쳐 지나가며 상처를 남겼다.

그 짜릿한 고통에 아이리는 설마 자신의 얼굴이 잘린 건 아닌지 손으로 목을 매만졌지만 그녀의 목은 멀쩡히 붙어 있었다.


“레나 님!”


척 보기에도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레나를 향해 미즈키가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갔다.

아린은 그런 미즈키는 딱히 제지하지 않고 힘이 빠진 듯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터덜터덜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괜찮아?”

“푸우우⋯.”


일단 이기긴 이긴 것 같지만 아린의 상태도 영 좋아 보이진 않았다.

S급 던전에서도 저렇게 다치진 않았는데, 아직도 여기저기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아린은 대답할 기운도 없는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만 끄덕이곤 적당한 크기의 콘크리트 조각에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을 보며 맨손으로 상처를 지혈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주머니에서 붕대를 꺼내 지혈을 도와줬다.


“많이 강한 상대였나 보네, 이렇게까지 다친 걸 보면.”

“응, 강했지, 그래도 이 정도로 다칠 상대는 아니었는데.”

“아니었는데?”

“참을 수가 없었어.”

“응?”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서 참을 수가 없었어. 반드시 정면으로 받아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아린이는 약간 혼이 빠진 듯 혼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지만 뭐, 중요한 건 어쨌든 이겼다는 거니까.

나는 일단 지혈이나 똑바로 해주기로 했다.


“레나 님⋯! 정신 차려보세요!”


한편 저쪽은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였다.

뭐, 좀 있으면 실제로 초상이 나기도 할 거고.

유스케는 싸움이 끝나기도 전에 항복했으니 논외, 켄토와 아이리는 자신들의 대장인 레나의 패배에 전의가 꺾여 고분고분해졌고 미즈키는 형과 서연의 감시하에 레나와 작별을 나누고 있었다.


“미⋯즈키, 미즈키⋯! 내 말 똑똑히 들어⋯!”

“네, 듣고 있어요, 말씀하세요!”

“우리의⋯ 검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네, 제가 반드시 이을게요!”


갑옷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전신이 덜렁거릴 정도로 여기저기를 심하게 베인 레나는 힘겹게 미즈키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아니, 그런 말이⋯ 아니야⋯! 너한텐 말 못했지만⋯ 나한테 계획이 있어⋯! 우리가 이길 수 있어⋯!”

“네? 하, 하지만⋯ 레나 님도 없이 저희가 어떻게⋯.”

“난 죽지 않아⋯ 미즈키, 난 죽지 않아⋯ 곧⋯ 곧 올 거야. 곧 올 거야.”

“곧 온다니 뭐가⋯.”


다만 둘은 일본말로 떠들어대서 뭐라고 하는 건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일본인이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 마지막 유언을 굳이 한국어로 남기는 것도 이상한 일이니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고 아린이도 나름 존중해줄 의미가 상대라고 생각했는지 레나가 존엄을 지키며 자연적으로 숨이 멎기를 기다려주었다.


- 쿵.


이런 때에 공식적인 휴게시간 따위는 없으니 눈치껏 나도 한숨 돌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진동이 울려왔다.

폭발 같은 걸로 일어난 진동이라 아니라 뭔가 엄청나게 거대한 게 땅에 떨어질 때 일어나는 진동의 느낌이었다.


- 쿵.

- 쿵.

- 쿵.


어디서 큰 건물이 무너지는 진동도 아닌 게 건물이 무너지면 우르르하고 무너지지 이렇게 단발적인 진동이 울리지 않는다.

이건 마치⋯.


“⋯발소리?”


진동을 못 느꼈을 리 없는 아린이는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며 그렇게 말했다.

아린이의 말대로 이건 꼭 무언가가 걸어 다니는 발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 발소리는⋯.


- 쿵.

- 쿵.

- 쿵.


점점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뭐, 뭐야?”

“나한테 물어봐도?”


그 진동에 당황스러워하긴 일본의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리는 정찰에 능한 유스케를 돌아보며 물었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형은 어때, 뭔지 알 것 같아?”

“응? 물어볼 것도 없이 이 상황이면 뻔한 거 아니야? 당연히 몬스터지. 애초에 여기 S급 던전 브레이크 일어났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S급 던전 몬스터겠네.”


아, 맞다.

일본 헌터들한테 정신이 팔려서 깜빡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 부근에 S급 던전 브레이크 일어났다고 했지.

형의 말대로 이런 소리를 낼 만한 건 몬스터 밖에 없으니 그 지당한 말을 들은 일본 헌터들은 슬금슬금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분명 방금까지 서로를 죽이려고 싸우던 적이지만 곧 몬스터라는 순수악이자 공동의 적을 상대해야 한다는 현실에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 잠시 임시동맹을 맺는 데에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에 있는 최강의 전력인 레나와 아린이 한쪽은 곧 숨이 넘어갈 예정이고 한쪽은 크게 다친 상황이니 계속 우리끼리 싸우다간 모두가 죽는 배드 엔딩 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야, 아이리라고 했나?”

“뭐, 왜!”


쿵쿵거리며 소리만으로도 우리 모두를 압박하는 몬스터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동안 나는 아이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강력한 몬스터의 등장에 긴장했는지 꽤 날카롭게 반응했다.


“아린이한테 아까 썼던 회복 마법 걸어주면 안 돼?”

“나도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은데 너희 길드 마스터가 내 지팡이 부숴버렸잖아, 지금 스킬 쓰는데 제약이 한둘이 아니거든?”

“그래서 쓸 수 있는 회복 스킬 있어, 없어?”


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아이리는 우물쭈물하며 다른 동료들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아린이가 조금이라도 회복해 싸움에 임해준다면 S급 던전의 몬스터로부터 살아남을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엔?

아린이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할 게 뻔하다는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겠지.


“너희가 똥을 싸질렀으면 좀 치우려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우리도 용서해줄 마음이 들지 않겠어? 까놓고 말해서 회복 스킬 안 써줘도 마음만 먹으면 너희들은 다 죽일 수 있어, 무책임하게 도망치려고 해도 쫓아가서 죽이는 건⋯ 말해 뭐해?”


그에 나는 조금이라도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우리에겐 당장 아린이를 치료할 수단도, 눈앞의 S급 던전의 몬스터를 함께 막아낼 단 한 명의 헌터라도 모두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일본 헌터들은 목숨을 조금이라도 보장받을 수 있는 무언가가 아쉬운 상황이니.


“약속을 지키는 자들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군.”

“야, 야! 너 나 기억하지! 난 진작에 항복했어! 준혁아, 네가 말 좀 잘 해줘!”

“⋯죽더라도 몬스터의 손에 죽는 것보다는 레나 님의 복수를 시도라도 해보고 죽는 게 낫겠지.”

“칫! 알았어!”


결국 의견은 아린을 회복시켜주는 쪽으로 기울었고 아이리는 당장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회복 스킬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물론 아까처럼 순식간에 모든 상처가 낫진 않았지만 그래도 안색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게 눈에 보였다.


- 쾅! 쾅! 콰앙!


그동안 우린 이제 굉음에서 폭음으로 바뀐 발소리를 들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리고 곧, 그 어마어마한 진동의 발소리가 납득가는 너무나도 거대한 거인이 저 멀리 빌딩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고대종도 진짜 크다고 생각했는데, 저 거인에 비하면 고대종은 무릎 높이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거인이라곤 해도 이족보행을 한다는 것 외엔 뿔과 돌기가 난 머리와 피부, 멧돼지 같은 머리에 커다란 송곳니가 난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 쿠구구구구!


거인은 수풀을 헤치며 길을 찾듯 손으로 빌딩을 밀어 무너트리며 시야를 확보했다.

그러곤 잠시 고개를 쳐들고 냄새를 맡더니 스으윽 목을 돌려 정확히 우리를 향해 바라보더니 진로를 이쪽으로 변경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와, 뭐가 저렇게 크냐. 저 정도면 보스급인 것 같은데.”


거인을 발견한 형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아린아? 혹시 몸 상태는 좀 괜찮을까?”

“많이 좋아졌어.”


그리고 거인의 크기에 압도된 나는 아린이부터 찾았다.

아이스 골렘, 거대 리빙아머, 고대종에 이어 거인까지.

나는 거대한 몬스터라면 치가 떨렸다.

아린이야 상대가 얼마나 크든 그냥 붕 하늘을 날아 자유자재로 싸울 수 있지만 나 같은 경우엔 머리 위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는 것도, 공격하러 가는 것도, 전부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 툭, 툭.


또 저런 거랑 싸울 생각을 하니 벌써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아린이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

“표정 왜 그래? 내가 아무리 지치고 다쳤어도 저런 거 하나 못 잡고 그러진 않아.”


아린은 평소처럼 자신만만하게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아까부터 줄곧 창백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어 상태가 되게 안 좋아 보여 걱정이었는데 그런 얼굴을 보니 긴장이 싹 풀렸다.


“⋯그럼 난 뭐하면 돼?”

“내가 새로 배운 스킬 구경하고 감상평 써오기.”


- 콰아아아아!


아린은 살랑살랑 가볍게 몸을 흔들며 몇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폭발에 가까운 위력의 검기를 한순간에 확 뿜어냈다.


“꺅!”

“으악!”


아직도 저만한 힘이 남아있다니.

눈앞에서 전투기 엔진 같은 굉음과 함께 급발진 검기를 발동해버리니 나도 조금 놀랐는데 아이리와 유스케는 그 검기가 자신을 향하는 줄 알고 납작 엎드렸고 켄토와 미즈키도 질끈 눈을 감았다.


- 크큭, 꼴이 말이 아니군.


아린이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대뜸 몬스터가 입을 열었다.


“⋯⋯?”


뭐야, 저거.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 그래도 고분고분해진 것 같아서 차라리 이 모습이 더 마음에 드는군, 크크크.


몬스터는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며 느긋하게 이쪽으로 걸어왔다.


“흐음.”


뭐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죽여버릴 거 몬스터가 뭐라고 씨부리든 무슨 상관일까.

그 말을 무시하고 아린이가 다시 뛰어오르려던 순간 누군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닥⋯쳐라⋯, 닥치고⋯ 네 일이나 똑바로 해⋯.”

- 그건 당연히 내가 알아서 하지.


그 목소리에 모두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려보았다.

레나는, 마치 몬스터와 아는 사이라는 듯 그렇게 대화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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