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지, 지금 상황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던전이 몇 개나 생겼다는 거죠?”
“그게⋯ 생성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헌터관리국 종합상황실에 있는 레이더의 성능으로는 전부 탐지도 되지 않고 있어서⋯!”
대통령은 상황을 파악하고 통제하려 애썼지만 상황은 전혀 파악되지도 통제되지도 않았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대, 대통령님!”
“왜요!”
그때 비서실의 누군가가 대통령을 불렀다.
워낙 정신없고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대통령은 격식도 잊어버리고 그렇게 대답했다.
“바, 바깥을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데 그럽니까?”
그의 말에 대통령은 별거 아니기만 해봐라, 하는 심통 난 얼굴로 성큼성큼 창가로 향해 커튼을 확 걷었다.
“이, 이게 무슨⋯!”
그리고 그렇게 창밖에 펼쳐진 광경을 본 대통령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어 그저 창밖을 응시할 뿐이었다.
물론 그런다고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대통령이 본 서울의 시내는 차가 다니는 도로, 사람이 다니는 도보를 구분할 것 없이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크고 작은 던전의 입구가 온 도시를 뒤덮고 있었고 지금도 계속 늘어가고 있었다.
“⋯⋯⋯⋯.”
“⋯⋯⋯⋯.”
하나둘 모여들어 그 광경을 함께 본 다른 관료들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넋을 놓고 그 광경을 그저 바라봤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지진이나 화산폭발처럼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재해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대통령님! 일본이 긴급 지원요청에 응답했습니다! 수 시간 내에 헌터를 급파해준다고 합니다!”
그때 희소식을 물어온 비서실의 직원 하나가 노크도 없이 벌컥 대통령실의 문을 열고 들이닥쳐 밝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아⋯ 네⋯ 또 다른 소식 있으면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에도 누구 하나 기뻐하지 않았고 분위기가 이상함을 감지한 직원은 도망치듯 대통령실을 나섰다.
“⋯그래도 다행이군요, 도와준다는 나라가 있어서.”
“일본 헌터들이 입국할 때 절차는 어떻게 할까요?”
“어떤 절차도 필요 없습니다, 그⋯ 공항에서 지체없이 서울로 올 수 있도록 도로 상황을 정비해 주시고 혹시 모르니 수송 헬기도 준비해주십시오. 그 왜 있잖아요, 특전사 훈련할 때 쓰는 큰 헬기.”
“치누크 헬기 말씀이십니까? 알겠습니다.”
바깥의 꼴을 본 대통령과 관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도 절망적인 현실에 반대로 희망을 얻고 침착함을 되찾아 대화를 진전시켰다.
자신이 뭘 어떻게 하든, 이 자리에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 있었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임을 이해했기에 문제를 통제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반쯤 포기하듯 사라져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일본 외엔 아직 응답이 온 나라가 없나요?”
“예, 모두 무응답이거나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갑작스럽게 증식한 던전으로 국내의 헌터만으론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정부는 전 세계에 구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유럽대륙과 미국 그리고 한국이 헌터관리국의 공격을 받아 전시에 빠진 이런 흉흉한 시기에 자국의 방비만 단단히 하기도 힘든데 해외로 병력을 파견해줄 여유가 있는 나라는 없었다.
고맙게도 바로 옆 나라 일본에서 도움을 주겠다고는 했지만 일본 헌터의 절반 이상이 우르르 한국으로 몰려와 주는 수준의 지원이 아니라면 여전히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콰아아아!
“후욱⋯! 후욱⋯!”
나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던전 안을 뛰어다녔다.
뭐, 점화를 발동하고 뛰어다니고 있으니 진짜 발바닥에 불이 붙은 셈이긴 했다.
- 끼에에엑!
보스를 태워죽이자 출구가 생성됐다.
나는 아직 던전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수천, 수억 원어치 마석을 모두 버려두고 곧장 던전을 빠져나갔다.
- 콰아아아!
내 몸에선 불이 꺼질 새가 없었다.
던전 하나를 끝내고 나와 두세 걸음만 앞으로 나가면 또 다른 던전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던전 하나를 끝내자마자 바로 다음 던전으로 들어가 점화를 발동시킨 채로 던전 내부를 뛰어다녀 몬스터를 불태워 죽이고 또 다음 던전으로 들어가기를 계속 반복했다.
“아저씨, 아저씨!”
던전에서 나와 또 다음 던전으로 뛰어 들어가려는데 누군가가 급히 나를 불러세웠다.
“네?!”
어딘지, 누군지 모를 길드의 헌터들이었다.
“아저씨 혹시 등급이 어떻게 되세요? 저희 지금 이 던전 들어가려는데 대충 B급 정도 돼 보이는데 저희끼리 가기엔 좀 전력이 부족할 것 같아서요!”
헌터가 가리키는 던전 입구를 보자 대충 C급에서 B급 정도 되는 던전인 것 같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던전 입구의 크기와 흘러나오는 마력의 낌새로 대략적인 등급은 때려 맞출 수 있었다.
“저 F⋯ B급입니다! 같이 가시죠!”
“B급 한 분 더 있으면 충분하겠네요, 갑시다!”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F급이긴 하지만 이런 건 거짓말이 아니라 융통성이라는 거겠지.
뭐, 이제 쳐 망한 헌터관리국이 판정한 등급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어, 아린이가 어지간한 B급 헌터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인정해줬으니 그게 훨씬 공신력 있는 판정이지.
나는 임시로 파티를 맺은 헌터들과 함께 수월하게 던전을 공략했다.
“물약이나 회복 마법 쓸 줄 아시는 분 없으세요! 상처가 심해요!”
“여기, 여기 있어요! 이거 쓰세요!”
“탱커 가능한 헌터님 계십니까! 등급은 상관없습니다!”
“제가 할게요! 완전한 탱커는 아니지만 탱커 역할을 할 수 있는 스킬이 있습니다!”
거리는 흥정이 오가는 시장터처럼 파티원과 도움을 구하는 헌터들의 목소리로 시끌시끌했다.
거대한 위협은 모두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고 헌터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도망치거나 포기하는 이 하나 없이 필사적으로 던전을 공략했다.
물론 모든 헌터들이 이렇게 최선을 다 해봤자 던전은 그런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더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이 상태라면 서울 시내에 대규모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는 건 정해진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고 손을 놓자는 의견은 그 누구도 내지 않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피해를 줄이기 위해,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을 때 쏟아져나올 몬스터를 한 마리라도 줄이기 위해 모두가 서울에 남아 없애도 없애도 티도 나지 않는 던전의 수를 묵묵히 줄여갈 뿐이었다.
“⋯윽!”
던전을 공략하면 다음 던전으로, 또 다음 던전으로 그렇게 대체 휴식 없이 몇 개의 던전을 내달렸을까, 갑자기 눈앞이 핑 돌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어어, 괜찮으세요?”
그러자 근처에 있던 젊은 헌터가 나를 붙잡아 주었다.
“⋯하하.”
정신을 차리고 그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웃었다.
웃길 수밖에 없었다.
“어어⋯?!”
지나가다 나를 붙잡아준 젊은 헌터는 다름 아닌 서준이었다.
임서준, 옛날에 설악산 던전에 갔다가 파티장과 그의 일당에게 습격당했을 때 만났던 그 임서준이었다.
“형님! 형님 맞으시죠?! 저 기억하시나요?!”
“응, 당연히 기억하지.”
여기가 만남의 광장도 아니고 아주 아는 사람 다 만나네.
“잘 지내셨습니까? 아니, 사실 어떻게 지내셨는지는 압니다! 형님 기사 뜨는 건 전부 읽어봤으니까요!”
“넌 어땠는데. 계속 헌터 하고 있었던 거야?”
“네! 그동안 실력을 꽤 쌓았⋯는데, 형님 앞에서 말하긴 좀 뭐하네요.”
“응? 왜?”
서준은 내 모습을 위아래로 슥 훑으며 말했다.
“형님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지⋯ 풍기는 기운이 아예 다른 사람 같아요. 솔직히 처음에 뵀을 땐 저랑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였는데 지금은 뭐랄까⋯ 저랑은 차원이 다른 곳에 있는 헌터 같달까요.”
“그래? 나는 바뀐 지 잘 모르겠는데.”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나 그때랑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아! 겨우 찾았네!”
머리 위로 뭐가 빠르게 지나간다 싶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린이는 독수리처럼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며 활강해 그대로 내 옆에 착지했다.
“유, 윤아린 헌터다⋯!”
갑자기 하늘에서 아린이가 떨어지자 서준은 바짝 얼어붙어 뒷걸음질 쳤다.
서준이뿐만이 아니라 다른 헌터들도 놀라 입을 싹 다물며 아린이를 중심으로 뒷걸음질 쳤다.
“무슨 일 있어? 그렇게 급하게 무슨 일이야?”
“다른 사람들은?”
아린이의 말에 나는 괜히 주변을 슥슥 둘러봤다.
던전 공략 속도를 위해 형과 하은, 그리고 서연이와 떨어져 각자 행동한 지 이미 한참 됐다.
애초에 던전에 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으니 이렇게 둘러본다고 보일 리가 없었고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가늠도 가지 않았다.
“모르겠는데?”
“그럼 일단 나랑 같이 좀 가자.”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아린이는 내 물음을 대충 넘겼다.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가 보다.
“⋯알았어, 서준아, 만나서 반가웠고 몸조심하고.”
“아, 예, 예! 형님도 몸조심하십쇼!”
나는 급히 서준과의 만남을 마무리하고 아린을 따라 나서⋯.
- 투확!
⋯따라나서려고 했는데 아린이는 혼자 하늘로 솟구쳤다.
나도 이제 낮은 건물 정도는 도움닫기와 벽 타기로 뛰어 올라갈 수 있지만 저렇게 하늘을 날듯이 빌딩 옥상으로 한 번에 뛰어오르는 건 불가능했다.
“야! 그렇게 가버리면 어떻게 따라가라고!”
나는 벌써 까만 점처럼 보이는 아린이를 향해 외쳤다.
“혀, 형님! 미치셨습니까?!”
“어⋯ 어? 왜?”
“S급 헌터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
- 파앗!
이미 저만치 멀리 떨어졌지만 내 목소리를 들은 아린은 공중에서 몸을 튕겨 수직으로 낙하해 도로 되돌아왔다.
그 모습에 혼자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서준은 황급히 내게서 떨어졌지만.
“이제 이 정도는 따라오는 줄 알았지?”
아린이는 평소처럼 별생각 없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음~ 그냥 길을 따라가는 건 힘들 것 같고.”
아린이는 까치발을 들어 사방을 내다봤지만 던전과 헌터들로 꽉 막힌 도로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위쪽으로도⋯ 안 될 것 같고.”
그다음으로 아린이는 내가 넘어갈 만한 건물을 찾았지만 하필이면 양옆으로 최소 20층 이상의 빌딩이 성벽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해야지 뭐.”
아린이는 품에 들어오라는 듯 한쪽 팔을 펼쳤다.
“⋯여기서?”
딱히 주의를 끌 만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그냥 아린이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반경 100미터 이내 헌터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향해있었다.
뭘 하자는 건지 알고 있는 나는 조금 망설였지만 아린이는 이거 아니면 방법 있냐는 듯 펼치고 있는 팔을 건들거렸고⋯.
“⋯알았어.”
나는 결국 그 품으로 들어갔다.
“목 조심해.”
내가 품으로 들어오자 아린이는 나를 안아 단단히 붙잡은 뒤 뛰어올랐다.
- 투화악!
순식간에 몸이 솟아오르며 전신을 짓누르는 중력가속도에 피가 아래로 쏠리며 시야가 캄캄해진다 싶더니 정신을 차리자 발밑으로 빌딩 옥상이 보였다.
“어우⋯.”
아찔한 높이를 보자 허벅지 안쪽에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정말이지 몇 번을 당해도 적응이 안 된다.
“⋯너는 괜찮아?” “응? 뭐가?” “이렇게 높이 떠 있어도 안 무서워?”
“어차피 떨어져도 안 죽는 데 뭐가 무서워?”
이런 느낌의 대답이 돌아올 줄은 알았지만 역시 마인드부터가 달랐다.
“후우, 아직도 몸이 붕붕 뜨는 것 같네. 그래서, 무슨 말 하려고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몇 초 정도 하늘을 날아 사람이 없는 으슥한 곳으로 끌려온 나는 바로 용건을 물었다.
“어? 할 말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렇게 할 말 있는 티를 내놓고 모를 줄 알았어?”
“아⋯ 그게⋯ 놀라지 말고 들어?”
“응, 안 놀랄게.”
“그게, 그러니까⋯ 방금 듣고 온 말인데 말이야.”
아린이는 여기까지 와놓고도 꺼내기 힘든 말인지 뜸을 들였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아린이가 마음을 정하기를 가만히 기다렸고.
“실은, 정부에서 서울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 같아.”
“⋯어?”
왜 말하기를 망설였는지 단번에 이해되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 잠깐만 서울을 버린다고?”
“응, 그⋯ 어디더라? 세종인가? 거기를 임시 수도로 정했고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전에 서울을 떠날 거래. 아직 공표는 안 했는데 곧 할 거야.”
아린이의 말을 들은 나는 눈을 깜빡일 뿐 뭐라 반응하지 못했다.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울에 모든 게 집중된 나라에서 서울을 버린다니? 그럼 앞으로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그러니까⋯ 이제 던전 공략은 그만하고 부모님 아직 서울에 계시지? 더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먼저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드려. 챙기고 싶은 물건 있으면 챙겨두고. 이 말 하려고 부른 거야.”
아린이는 아직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이미 정해진 일에 대한 최후통첩을 보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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