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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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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6.1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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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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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976

작성
24.06.0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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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2쪽

160화

DUMMY

갑자기 비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환한 빛에 나는 손으로 눈을 덮었다.

하지만 빛은 손마저 뚫고 들어와 눈을 부시게 했다.


‘뭐야, 이거. 설마 핵? 핵폭탄?’


확실히 그런 방법도 있긴 있다.

인류 최강의 병기 핵폭탄.

너무 극단적이고 최후의 방법이긴 하지만 몬스터가 서울에 밀집해 있을 때 핵폭탄으로 싹 쓸어버리는 편이 괜히 전 국토로 쏟아져나와 나라가 망하고 한반도가 몬스터 소굴이 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이거 맞으면 살 수 있을까?

흠, 아마도 죽겠지.

난 그렇다 쳐도 아린이는 살아남을까?

아무리 S급이라도 핵폭탄을 버티는 건 무리겠지.


아니, 근데 핵폭탄을 떨굴 거면 사전이 대피 유도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목숨 걸고 서울에 남은 헌터들을 그냥 이렇게 소모품 취급한다고?

이건 너무 개죽음인데?


그나저나 빛을 본 지 꽤 지났는데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아직 폭발의 열과 폭풍이 여기까지 도달하지 않은 건가?

한순간에 증발해서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던 건가?


나는 혼자 속으로 아주 별별 생각을 다 했지만 끝내 아무 일도 없이 어느새 빛은 사그라들어있었고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너무 밝은 빛을 본 탓에 아직 어두컴컴한 주변에 눈이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시력은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고 곧 나와 마찬가지로 눈을 껌뻑이며 어벙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미즈키와 눈이 마주쳤다.


“우, 우리 살아있는 거 맞지?”

“아⋯마도?”


미즈키는 나를 발견하고는 안도하듯 가슴에 손을 얹으며 가볍게 숨을 뱉어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몰라 무서웠는데 일단은 아는 사람이 곁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됐나 보다.


“⋯⋯⋯⋯.”


이제 시력이 주변을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돌아왔다.

나는 아직도 망막에 빛이 남아있는 듯한 감각에 눈을 잔뜩 찌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뭐야?”


그런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의문을 표하는 것 외엔 할 말이 없었다.


- 꾸어어⋯.

- 우우우⋯.

- 그어어⋯.


거인 군단으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던 우리 주변은 한순간에 텅 빈 공터가 되었다.

그 많던 거인이 다 어딜 갔는지는 저 멀리, 전신이 활활 불타며 검은 재가 되어 바스러지고 있는 거인의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예측만 가능할 뿐이었다.

그 광경은 정말 핵폭탄이 우리만 빗겨나가 주변을 쓸어버린 것 같았다.


“어쨌든⋯ 살아남은 것 같지⋯?”

“어⋯ 그런 것 같네⋯.”


나와 같이 거인이 불타는 모습을 본 미즈키는 그렇게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일단 살긴 산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내놔!”

“이런 감격스러운 순간에 꼭 그래야겠어?”


그리고 모든 거인이 불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미즈키는 내 손에서 자신의 검을 홱 낚아채 갔다.


- 크르르르!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천지가 떨리는 으르렁 소리가 들렸다.

아, 맞다, 카르갈.

아직 진짜 문제는 해결된 게 없구나.

그런 생각에 뒤를 돌아보니 카르갈은 뭘 보는 건지 송곳니를 드러낸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린이도 카르갈과 같은 방향을 함께 올려다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거지?’


둘이 바라보는 방향을 향해 나도 시선을 옮겼다.

⋯그냥 밤하늘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둡고 구름 몇 점이 달빛에 비쳐 보이는 평범한⋯.


- 파아앗!


“으악!”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부신 빛이 다시 한번 작렬했다.

순간 해가 뜬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주변을 환히 비추는 밝은 빛이었다.


-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제멋대로 날뛰느냐.


그리고 하늘에서 낭창한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도 알고 있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우렐?”


아우렐의 목소리에 황급히 눈을 뜬 내 앞에는 주변을 낮처럼 훤히 비출 정도로 밝게 빛나는 아우렐이 서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미친⋯.”


아우렐의 모습을 본 미즈키는 몸 둘 바를 몰라 입을 뻐끔거리며 당황했다.

아, 확실히 아우렐은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많이 다르긴 했다.

커다란 날개와 빛의 검을 가진 새하얀 천사, 거기까진 똑같았다.

하지만 체구가⋯ 물론 처음 봤을 때도 꽤 거대하긴 했지만⋯.


‘⋯얼굴이 안 보여.’


지금은 고개를 90도로 쳐들어도 손이나 겨우 보일 정도로 거대했다.

그 커다란 카르갈도 아우렐에 비하면 고작해야 무릎에나 닿을락 말락 한 정도였고 비유가 아니라 정말 키가 남산만 한 아우렐은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와 깃털처럼 땅에 내려앉았다.


- 아린 헌터님, 고생하셨습니다. 이제부턴 제게 맡겨 주세요.


거대한 아우렐은 천사처럼 미소 지으며 아린이를 향해 말했다.

아우렐은 카르갈보다 5배는 거대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카르갈처럼 듣기 힘든 소음이 아닌 포근하고 잔잔하게 몸을 감싸 안아주는 대자연의 햇빛과 바람 같았다.


“네⋯ 부탁 좀 할게요.”


그리고 아우렐의 말에 아린이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하이고, 죽겠다.”


어기적어기적 어떻게든 우리가 있는 곳까지 걸어온 아린이는 철푸덕 자빠졌다.

설마 기절한 건가 싶어 황급히 붙잡았지만.


“쓰러지는 거 아니야, 그냥 좀 누울게.”

“아, 응.”


그 말을 들은 나는 평평한 곳을 골라 몸을 눕혀주었다.


“하아~ 뜨거운 물로 샤워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흙바닥에 정자세로 누운 아린이는 하늘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온몸이 흙먼지와 피와 땀이 뒤섞인 피딱지로 가득할 테니 보통 찝찝한 게 아니겠지.

⋯지금 이 상황에 샤워까지는 무리더라도 어디서 물티슈라도 잔뜩 구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내 스킬 어땠어?”


아린이는 대뜸 스킬의 감상평을 요구했다.


“그걸 꼭 지금 말해야 해?”

“왜, 바빠?”


주변은 텅 비어있고 카르갈의 앞은 아우렐이 막고 서 있다.

핑계 댈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멋졌어.”

“그게 다야? 난 목숨 걸고 보여준 건데?”


평소에 책 좀 읽어둘걸, 내가 생각해도 유치원생만도 못한 감상평이었다.


- 터벅, 터벅.


그때 무방비하게 누워있는 아린이의 옆으로 미즈키가 걸어왔다.

그녀는 뭔가를 결심한 듯 검을 꼭 쥔 채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린이는 고개를 돌리기도 귀찮은지 그대로 하늘을 보며 말했다.


“⋯왜? 지금이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미즈키에게 허튼 생각 말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도 고양이 정도는 발톱으로도 찢어 죽이는 게 호랑이다.

괜한 짓을 하면 미즈키의 목이 날아가는 수백 가지의 미래가 보였다.

하지만 미즈키는 꼭 쥐고 있는 검을 검집 채로 허리춤에서 꺼내 자신의 옆에 내려놓으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헌터님의 신룡검무를 보았습니다.”


신룡검무?

그게 아린이가 쓴 스킬의 이름인가.

어쨌든 미즈키는 아직도 그 신룡검무를 떠올리면 가슴이 뛰는지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제 스승님만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스킬을 어떻게 헌터님께서 사용하셨는지 그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미즈키는 나를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예의 바른 몸짓과 어투로 물었다.

그러자 아린은 이렇게 예의 바르게 물으면 못 말해줄 건 없다는 듯 가볍게 눈을 감으며 말했다.


“넌 검술이 뭐라고 생각해?”

“아직 허점투성이인 제가 검술에 대해 입을 놀리기는 아직 이르다 생각됩니다.”


미즈키의 소심한 대답에 아린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검술이란 결국 사람의 몸으로 날카로운 쇠막대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다루는 법을 연구하는 거잖아?”


아린이는 검술을 그렇게 간단히 정의했다.

그런 너무나 볼품없는 정의에 미즈키는 잠시 거부감을 느끼는 듯했지만 이내 고고함과 신비로움이라는 껍데기를 벗겨낸 검술의 진리를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야. 물론 검술에도 여러 검법이 있고 유파가 있지. 하지만 신체 구조가 똑같은 인간이 날카로운 쇠막대기를 휘둘러 낼 수 있는 최고의 자세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 서로가 나아가는 길은 다르더라도 결국 목적지는 같다는 말이야.”


아린이의 말에 미즈키는 깨달음을 얻은 듯 눈이 커졌다.


“그렇다는 말씀은⋯.”

“응, 네 스승님은 검을 든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최강의 자세 중 하나를 찾아낸 거야.”


아린이의 말에 미즈키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런데 그런 자세를 어떻게 그렇게 바로⋯.”

“내가 말 했잖아, 최강의 자세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나도 이미 신룡검무와 비슷한 자세를 알고 있었어. 하지만 사소하지만 신룡검무만큼 완벽하진 않았고⋯ 내 빈틈을 네 스승님에게서 배워 메꾼 거지.”


아린이는 신룡검무를 처음 봤을 때 느낀 그 충격과 신선함을 다시 회상하며 말했다.


“네 스승님은 분명 훌륭한 검사였어. 하지만⋯ 마지막이 좀 그렇네.”


무슨 연유로 몬스터 따위에게 항복하고 힘을 바친 지는 모르겠지만 검술계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레나는 그 최후 때문에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추레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린이는 그 점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스승을 잃은 미즈키를 위로했다.




***




- 당신이 이곳엔 어쩐 일이지?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나?


카르갈은 자신을 발밑에 둔 채 미소를 띠고 있는 아우렐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아우렐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말했다.


- 어쩐 일이냐고 하셔도? 전 원래부터 여기 있던걸요?

- 뭐라⋯?


아우렐의 말에 카르갈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인간이라면 분명 식은땀을 흘렸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 그,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인과가 두렵지 않으냐!

- 인과를 전부 따진 결과가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이랍니다.

- 안 돼⋯ 안 돼⋯!


카르갈은 뭐가 그렇게 절망스러운 건지 고개를 저으며 현실을 부정하려 노력했지만 아우렐은 미소를 유지한 채 조근조근 할 말을 했다.


- 이제 아시겠나요? 당신의 목표는 처음부터 달성할 수 없는 것이었답니다. 그저 인과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투입된 소모품이었을 뿐.

- 아니야, 아니야! 난 속지 않아! 넌 그저 환영일 뿐이다!!!


카르갈은 아우렐이 환영이라는 편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그 거대한 검은 휘둘러지는 검풍만으로도 주변의 빌딩을 뼈대만 남기고 날려버렸다.


- 힉⋯!


하지만 카르갈의 검은 아우렐이 내뿜는 휘광에 닿는 순간 사르르 녹아 내려버렸다.


- 으아⋯ 으아아⋯ 으아아악!


검이 녹아내린 것을 본 카르갈은 겁에 질려 한걸음, 두 걸음 뒷걸음질을 치다 이내 손잡이만 남은 내던지곤 아예 뒤를 돌아 후다닥 도망치기 시작했다.


-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그런 카르갈의 모습을 본 아우렐은 그를 상대하는데 검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가볍게 한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카르갈을 가볍게 따라잡아 짓밟았고.


- 크아아! 크아아아악!


- 콰직!


발끝에 무게를 조금 실은 아우렐이 다시 발을 들었을 때 그 자리 남은 것은 함께 짓밟힌 빌딩의 잔해와 카르갈의 덩치에 걸맞은 거대한 마석 덩어리뿐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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