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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왕과 붉은 무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영업이
작품등록일 :
2022.11.12 03:01
최근연재일 :
2022.12.28 20:05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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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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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글자수 :
140,646

작성
22.12.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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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4)

DUMMY

왕궁 내부에는 식물과 과일나무로 가득한 정원이 있다.



왕족과 귀족의 쉼터로 활용되는 공간으로,

평소 정원사가 자주 왕래할 뿐.



고요하면서도 느긋한 공간이었으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공포에 질린 비명과 고함 소리가 쉴 틈 없이 들려온다.


‘퍽, 퍽’ 사정없이 후려치는 소리가 이어지며,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연달아 공중에 떠오른다.



바닥에는 20명이 넘는 기사들이 기절해 있어.

이제 막 달려온 증원들은 어찌할 줄 몰라하며 고함을 쳤다.



“젠장...!

어째서 악신의 괴물이 왕궁에...!”



“마녀다...! 저걸 보라고!

추방당했던 그 천민 출신의 무녀 후보가 있어!

역시 저게 재앙을 불러일으켰던 거야...!”




"저 괴물은 분명 믹틀란에서 소문이 자자한 괴물 아닌가!?

저런 걸 조종하다니, 역시 저 여자...!"



병사들이 패닉에 빠져 고래고래 소리치는 도중에도.



경쾌한 주먹질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흐읍!”



짤막한 들숨소리와 함께,

또다시 ‘퍽’ 충격음이 울리며 병사 2명이 공중으로 솟구쳐올랐다.




부러진 이빨이 공중에 흩날리며,

그대로 바닥에 뻗어 버린 동료들을 보고.

병사들이 주춤거리면서 뒷걸음질 칠 때였다.



비명과 소란에 섞여,

아옹다옹하는 이들이 있었다.



“렉스씨! 적당히...!

적당히 좀 봐주면서 해요...!!


이러다가 누구 한 명 죽었다간,

저희 둘 다 꼼짝없이 처형이라니깐요?!”



“몇 번을 말하냐, 꼬맹이.

안 그래도 힘 조절하고 있어.


네놈의 말만 아니었으면 죄다 찢어 죽여 버렸을 걸,

이렇게---”



울상을 짓는 소녀의 말에 답하다 말고,

검은 짐승은 재차 돌격해 오는 기사를 후려쳤다.




또다시 불꽃놀이마냥 하늘높이 치솟아올라,

그대로 머리부터 추락.



또 한 명의 무참한 패배자가 바닥을 나뒹굴고 나서야.




검은 짐승,

렉스 아미쿠스는 거칠게 콧김을 내뿜었다.



“주먹 한 방으로 끝내주고 있잖냐.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건지...



이봐, 꼬맹이.

이제 이쯤하고 몇 마리는 본보기로 죽여 버리면 안 되나?”



“당연히 안 되죠!?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이건 나오미의 말이 맞아, 렉스.

우리는 어디까지나 정중히 요청하러 온 방문객이니까.


지금까지는 저쪽이 먼저 손을 댔으니 명분이 서지만,

죽여 버리면 그걸로 교섭의 여지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잖아?



실컷 죽이고 약탈하는 건,

어디까지나 저쪽이 선을 넘은 뒤에 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니깐?!

나우갈은 조용히 하고 있어!”



어깨에 올라타 있는 새하얀 강아지의 코를 손가락으로 튕겨 낸 뒤.


나오미는 서둘러 렉스의 곁으로 다가가,

매달리듯이 굵은 팔뚝을 부여잡았다.



“제가 어떻게든 설득해 볼 테니까,

싸우는 건 이쯤 해요!”



“---저걸 설득한다고?”



양 볼이 빨개질 정도로 힘을 주어 잡아끌려는 나오미를 무시한 채,

렉스는 사자 머리의 갈기를 긁적였다.



왕궁의 이곳저곳에서 병사와 기사들이 득달같이 달려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다.




워낙 소란스러워서 헷갈리지만,

대충 ‘어서 죽여라’, ‘저 마녀를 없애라’는 등의 말은 분간할 수 있었다.



“...내가 습격당하는 건 대충 알겠다만, 꼬맹이.

너도 어지간히 미움받는 모양이군.


여긴 네놈의 고향이 아닌가?”



“그건...”



말꼬리를 흘리면서 나오미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사와 상위 기사, 근위대장과 병사.

사용인과 시녀장, 시녀 등등.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이쪽에 적의를 보이고 있다.




짐승병에 걸려 괴물이 된 렉스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있는 나오미에게도.




“...역시 설득은 필요 없겠군.

일단 전부 입 다물게 하면야 교섭이든 협박이든 할 수 있겠지.



꼬맹이, 네놈이 뭐라 하건 본보기로 6명 정도----”



“---!! 렉스!!

조심해! ‘용사’다!”



나오미의 어깨 위에 올라탄 강아지,

나우갈이 코를 벌름거리며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서면서,

반사적으로 렉스는 나오미를 뒤쪽으로 밀쳐 냈다.



“큭...!!?”



순간적으로 두 팔을 교차해,

위쪽에서 낙하해 오는 검격을 막아 내면서.



짐승의 팔과 성검이 맞부딪치는 충격으로.

주변에 쓰러진 병사들이 나뭇잎마냥 쓸려나갔다.




돌풍으로 관상용 식물들이 뿌리째 뽑혀 나갈 정도의 충격.




칼날이 가죽을 뚫고 근육을 잘라,

서서히 팔을 절단내면서.



직후.

짐승의 눈에 붉은 안광이 깃들며 거칠게 포효했다.



"■■■■■.......!!"





광기 어린 포효와 함께,

온몸을 틀어내 180도 회전.




채찍처럼 꼬리를 휘둘러,

위쪽에서 찍어내려오는 ‘용사’를 후려치려는 순간.



그 공격을.

상대는 공중에서 발로 걷어차 튕겨 내 버린다.



“이딴 게 통하겠냐고, 짐승 새끼가.”



“!!”




튕겨 낸 충격을 반동으로 삼아,

허공에서 용사의 몸이 두 바퀴 회전.





곧이어,

가차 없는 돌려차기가 짐승을 향해 엄습해 오면서---





이번에는 렉스 쪽이 발차기로 맞받아쳐 튕겨 내 버렸다.



“그 짐승보다 못한 기분은 어떠냐, 저능아 놈.”



“쯧...!”



양쪽의 발차기가 격돌함과 동시에,

둘은 각각 반대 방향으로 나가떨어져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렉스가 허공에서 자세를 바로잡아

나오미의 곁으로 착지하면서.




용사 또한 어렵지 않게 낙법을 취해,

기절한 병사들의 몸뚱이 위로 착지해 보였다.



“렉스씨! 괜찮으세요!?”



“딱히 문제는 없어.

다만... 조금 놀랍군.


내 몸에 상처를 입힌 건 아렌 녀석의 요술이나,

천사의 무기인지 뭔지 뿐이었는데.”



반쯤 잘려 나간 팔을 내려다보며,

렉스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피가 대량으로 쏟아지고 있으나,

이미 상처는 빠르게 수복되어 가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며,

근육이 붙고 가죽이 재생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만.



“...저 검인가?”



건너편에서 기사들이 건네준 수건으로 얼굴에 튄 피를 닦고 있는 청년.




그 오른손에 들린 황금빛의 칼을 보자,

렉스는 전신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걸 느꼈다.



[이건 위험한데.

응, 정말로. 상당히 위험해.


렉스, 얼른 도망치는 걸 추천할게.

지금의 너한테 저 칼은 너무 벅차.]



“변신은 풀고 유령으로 돌아간 건가.

겁이라도 먹었나? 나우갈.”



[그야 그렇지.


난 이미 죽어서 어지간한 공격은 안 통하지만

저 미친 검은 예외거든.


재미 삼아서 너희를 따라왔는데 소멸해 버렸다간,

죽도 밥도 안 되잖아?]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렉스는 혀를 찼다.



나우갈의 경고를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저 황금빛 칼은 범상치 않다.



베라른에서 싸운 천사의 무기란 것들 이상으로,

기분 나쁜 꺼림찍함이 멈추질 않는다.



“꼬맹이, 어쩔 거냐.


아렌이 살아 있던 시절의 기록을 알려면,

왕실 도서관인지 뭔지에 가 봐야 한다고 했던 건 네놈이다.


여기서 포기할 건가?”



“아뇨. 그건 절대로 아니에요.

아렌 씨가 겪었던 사건은 뭔가 마음에 걸려서...


하지만 용사 우르크가 상대여선...”



'용사'.


그 단어를 중얼거리며 몸을 떠는 나오미를 곁눈질하던 때였다.



건너편에서부터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에 ,

렉스는 재차 눈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이 이봐.

언제까지 소곤거리는 거야?


얼른 본색을 드러내서 덤비라고.

재앙의 무녀답게 부하인 괴물한테 명령해 봐.


정의의 심판이란 걸 내려줄 테니까.”



황금빛 칼로 어깨를 툭툭 건드리면서 용사 우르크는 히죽거린다.




그 태도는 물론이오.

재앙의 무녀니 부하니,

하는 말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아 렉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저희는 왕실을 공격하러 온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서 입성해---”



“자아, 숭고한 왕실의 기사들이여!

저 말을 들었는가!


재앙의 근원인 여자는 당당히도 이리 말씀하신다!

저런 괴물을 이끌고서 절차를 밟아 왕궁에 들어왔다고!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살육을 일삼는 악마를?!”



나오미의 호소를 지우듯이.

용사는 성검을 하늘 높이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기사와 병사, 시녀들과 사용인들 모두가 용사를 바라보면서.

붉은 소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게 믿겨지나?!

저 여자는 필시 저 괴물을 이용해,

죄 없는 믹틀란의 간수들을 협박한 게 틀림없다!


무녀 후보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실질적인 폭력을 뒷배로 삼아!


피를 흘려,

고통을 줌으로써 길을 열게 함이 어찌 올바른 절차라 말하는가!?”



“아니...! 아니에요!! 진짜로 저희는...!!”



그건 악의적으로 왜곡된 주장이었다.


나오미가 각종 관계자에게 무릎까지 꿇어가며,

사정사정해 여기까지 자신을 데려온 걸 렉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조금도 이쪽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채.


아니.

오히려 다분히 고의적이고 악의로 가득한 방향으로

사실을 곡해하고 있다.



“이걸로 이제 정해진 거나 다름없다!

대대로 그러했듯이 두 명의 무녀 후보자 중 동생 쪽은 재앙의 근원이었다!


악신의 수하를 부하로 부리는 저 모습이야말로 흔들림 없는 증거!


대륙을 위협하는 베라른의 재앙.

그 원인이야말로 저 여자인 것이다!!”



“그런...”



정원을 넘어 왕궁을 뒤흔들만한 함성이 이어지면서,

주변에 모인 모든 이들이 일제히 손을 치켜들어 열광했다.



광기마저 느껴지는 광경에,

어떻게든 항변하려던 소녀는 무심코 뒷걸음질 치고 만다.




“마녀에게 죽음을!”


“대륙에 평화를!!”


“용사를 따라 미래를 구하자!!”



흐름에 모든 걸 맡겨 열광하는 함성에,

논리나 이성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정합성이나 전후관계는 따지지 않고.

‘악’이라 단정 지은 순간 무작정 이를 배제하려든다.



렉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사태를 선동시킨 용사가 은밀히 미소 짓는 걸 보았다.



[이야... 이건 글렀네.

이번에 우르크의 칭호를 이은 용사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악질인 걸.]



머릿속에서 나우갈이 포기한 듯한 목소리가 들리면서.


렉스는 괴로워하는 붉은 소녀를 힐끗 내려다본 뒤.



“자아, 무기를 들어라!

정의로운 기사들이여!


우리들의 주신 에헤카틀의 가호가 너희와 함께할 테니!

지금이야말로 재앙의 무녀를 무찔러 평화를-----큿!?”



허공을 가르는 참격이 용사를 향해 내리쳐졌다.



검은 연기를 둘러싼 손톱이,

살벌한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져.


이에 질세라 성검이 이를 맞받아쳤다.



뒤를 잇는 건,

강렬한 충돌의 여파로 일으켜진 폭풍.




비명을 지르는 인간들과,

돌풍에 휩쓸려 날아가는 기사들을 무시한 채로.



용사와 검은 짐승은 오로지 눈앞에 적을 노려보았다.



“아아... 역시나 지능은 짐승 새끼구만.

이럴 때는 말이야.


괜히 나서지 말고 ‘나는 무해합니다~ 적이 아니에요~’

이리 어필하는 게 정답이라고?”



“그것도 생각했다만.

아무리 따져 봐도 네놈을 죽여 버리는 편이 가장 빨라 보이더군.”



송곳니를 드러내며 렉스가 더욱 힘을 주자,

황금의 칼이 진동하며 용사가 살짝 뒤로 밀려났다.




“흐응... 잘못 들었나 했는데 진짜로 멀쩡히 말하잖아.


저주 따위에 당한 버러지 주제에,

저런 년을 감싸기나 하고 말이야.


사회의 쓰레기끼리는 공감 가는 게 있나 봐?”



“뭐냐 그건. 경험담이냐?”



조금도 밀리지 않는 렉스를 보고,

용사는 소리 죽여 웃어 보였다.



그와 함께 성검의 빛이 밝게 빛나기 시작하며,

짐승의 팔이 보이지 않는 ‘뭔가’에 베여나가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색과 냄새에,

렉스가 얼굴을 일그러트릴 때였다.




용사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지면서.



“좋아, 시험해보자고.


너 같은 케이스는 지금껏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야.


진짜로 다른지 어떤지 보여줘 봐.”





다음 순간.




칼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이 주변 일대를 불살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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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6절 - 재앙과 영웅 (1) 22.12.26 6 0 7쪽
24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5) 22.12.25 10 1 15쪽
»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4) 22.12.23 13 1 12쪽
22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3) 22.12.21 9 1 12쪽
21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2) 22.12.19 9 1 10쪽
20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1) 22.12.18 9 1 11쪽
19 4절 - 방어전 : 베라른 (7) 22.12.16 10 1 10쪽
18 4절 - 방어전 : 베라른 (6) 22.12.14 10 1 8쪽
17 4절 - 방어전 : 베라른 (5) 22.12.12 10 1 14쪽
16 4절 - 방어전 : 베라른 (4) 22.12.11 15 1 13쪽
15 4절 - 방어전 : 베라른 (3) 22.12.07 9 1 11쪽
14 4절 - 방어전 : 베라른 (2) 22.12.05 9 1 11쪽
13 4절 - 방어전 : 베라른 (1) 22.12.04 9 1 9쪽
12 3절 - 동화의 끝 (4) 22.12.02 10 1 13쪽
11 3절 - 동화의 끝 (3) 22.11.30 9 1 16쪽
10 3절 - 동화의 끝 (2) 22.11.28 9 1 13쪽
9 3절 - 동화의 끝 (1) 22.11.27 12 1 12쪽
8 2절 - 요정 사냥 (4) 22.11.25 9 1 16쪽
7 2절 - 요정 사냥 (3) 22.11.21 11 1 11쪽
6 2절 - 요정 사냥 (2) 22.11.20 12 1 16쪽
5 2절 - 요정 사냥 (1) 22.11.18 16 1 14쪽
4 1절 - 천명의 무녀(3) 22.11.16 14 2 13쪽
3 1절 - 천명의 무녀(2) 22.11.14 19 2 12쪽
2 1절 - 천명의 무녀(1) 22.11.14 24 3 14쪽
1 프롤로그 22.11.14 46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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