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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왕과 붉은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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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이
작품등록일 :
2022.11.12 03:01
최근연재일 :
2022.12.28 20:05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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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글자수 :
140,646

작성
22.11.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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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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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절 - 천명의 무녀(2)

DUMMY

가을바람에 낙엽이 휘날리는 드넓은 수해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진다.



햇빛을 받아 번뜩이는 건,

거대한 짐승의 손톱과 송곳니.




그리고 이에 대치하는 쌍칼뿐.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몇 번이고 칼과 손톱이 충돌하며.




짐승과 여성은 서로를 향해 수 차례 일격을 퍼붓는다.



“■■■■■■----!!”



“큭...!!”



핏발 선 짐승의 눈이 여자의 목을 포착한 직후,

묵직한 손톱이 내리친다.




그걸 칼날로 간신히 궤도를 흘려내며 황급히 후퇴.



후퇴하는 여성을 추격하려던 순간.

허공에서 투명한 물로 이루어진 단검 3자루가 화살처럼 발사됐다.



갑작스러운 사출을 꼬리로 쳐 내는 사이.

금발의 여성은 재빠르게 거리를 좁혀 쌍칼을 휘두른다.



“굉장하다...”



도대체 이러한 공방이 몇 번째 되풀이되고 있는 걸까.




둘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붉은 소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검은 짐승과 금발의 여성.

양쪽의 스타일은 완전히 정반대다.



검은 짐승은 천연의 육체로 정면에서 찍어누르는 파워 타입.

금발의 여성은 피지컬을 대신해 기교와 속도로 압도하는 테크닉 타입.



특히 저 괴물의 힘은 보통이 아니다.

근육질의 몸에서 나오는 일격들은 하나하나가 무겁기 그지없다.



빗나간 일격들이 하나같이 지면을 분쇄하고.

거목들을 산산조각내는 걸 보면서 소녀는 침을 삼켰다.



“저게 ‘짐승병’의 힘...”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욱 파격적이다.



수도의 지하 감옥(믹틀란)에는 저런 괴물이 몇백 마리는 더 있다니.

그리 생각하니 절로 소름이 돋는다.



문제는.

저런 괴물을 상대로 여기사 또한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



“...천명의 무녀.”



붉은 소녀의 눈길이 쌍칼의 기사 쪽으로 향한다.




저 여성이 말했던 ‘천명의 무녀’라는 단어도 신경 쓰이지만,

그것보다도 놀라운 건 ‘저것’이다.



여성의 주변에 떠 있는 단검들.

물과 불, 전기나 빛으로 이루어진 단검들은 아무리 봐도 실제 칼이 아니다.




틀림없이 ‘정령술’로 만들어진 결과물.



저것이야말로 여성이 짐승과 대등하게 맞서 싸우고 있는 이유였다.




저 검들은 자체적으로 움직이며,

자연재해처럼 짐승을 덮쳐가는 것이다.



“저 정도로 정령술을 쓴다니... 진짜 무녀인 거야?”



붉은 소녀가 경악하는 사이에도 싸움은 계속되어.

사태가 급격하게 기울어져 갔다.



손톱을 휘두르는 짐승의 속도가 차츰 빨라지면서.

이에 대응하는 무녀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져 갔다.



“■■■---!!”



포효와 함께 휘몰아치는 연격을,

쌍칼과 원소의 단검들로 방어.




빠르게 스텝을 밟아 후퇴하면서 무녀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건 좀 위험하네.’




여성의 몸에 상처는 없다.

반면, 검은 짐승의 거구에는 붉디붉은 상처가 8곳 이상.



상처 입고 피를 흘리는 건 오로지 저 괴물뿐이다.

누가 보더라도 싸움을 유리하게 이끄는 건 무녀 쪽이라 생각할 테지만.



‘저 병자. 지금까지 만난 피해자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



실제로 싸우면서 절실히 느끼고 만다.

저 검은 짐승은 여태껏 만난 이성 없는 괴물들과는 다르다.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성을 유지한 채로 그 지능을 전투에 완벽히 응용하고 있다.



상처투성이인 것도 당연할 테지.

애초에 저 괴물은 자신이 상처 입는 걸 전혀 개의치 않으니까.



실력으로 압도당해서 상처 입은 게 아니다.

애초에 상처를 입어도 전혀 상관없기에 무시한 거라고.



짐승의 몸에 난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어가는걸 보면서.

금발의 무녀는 그리 깨닫고 만다.



‘...이쪽은 한 방이라도 맞았다간 즉사.

반면에 저쪽은 아무리 공격해도 찰과상 정도에 바로 회복하는 건가.

게다가...’



게다가.

저 괴물은 딱 봐도 지쳐 있지 않다.



강인한 육체에서 비롯된 스태미너는 그야말로 무진장.


장기전에서 당하는 건 누구일지 눈에 보이듯 뻔하다.



그렇기에 저 짐승은 필사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거겠지.




전력으로 싸우지 않으면서도,

착실히 위협적인 공격을 퍼부어 이쪽의 체력을 빼놓는다.



그래.

마치 ‘사냥’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시 한번 묻도록 하죠.

얌전히 이 숲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나요?




아까처럼 무시하지 마시길.

다른 피해자들과 달리 이성이 남아 있는 건 확실히 알았으니까.”



“------”



“그런가요. 아직 제정신이 남아 있는 ‘인간’을 베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만.”



대답하지 않는 짐승을 보고,

무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뭔가를 기도하는 듯 하는 것도 잠시뿐.

이윽고 천천히 무녀가 눈을 뜨면서 이변이 일어났다.



바람이 칼로 변해간다.




흙이 창으로 변해간다.




나뭇잎은 화살로,

나뭇가지는 둔기로 변해,



그 모든 것들이 불길한 붉은빛을 뿜어낸다.



“뭐냐, 그건.”



“드디어 반응하셨네요. 안심했습니다.

당신이 그리 경계한단 건, 이게 ‘통한다’는 뜻이겠죠.”



처음으로 검은 짐승이 움찔하면서 살짝 뒷걸음질 쳤다.




무녀의 주변에서 생성된 자연의 무기가 100자루를 넘어갈 무렵.

그녀는 담담히 입술을 움직였다.



“마을에 해가 갈까 봐 적당히 억제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렇게 하면 쓰러트리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조금 진심으로 하겠습니다.”



“밀리니깐 이제 와서 진심을 낸다고?

허세도 그쯤 가면 보기 좀 그런데.”



“그럼 이게 단순한 허세인지 아닌지 시험해 보시던지요.”



“아, 저...! 무녀씨!!”






잔뜩 긴장된 분위기 속.




완전히 존재를 잊고 있던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저기, 악신의 괴물들이...!!



“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급히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자그마한 소녀가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건...!”



약 200미터 떨어진 곳.


먼지 폭풍을 만들며 달려오고 있는 한 무리가 보인다.

늑대 같은 검은 괴물들이 얼핏 봐도 20체 남짓.



그것이 저 검은 짐승과 같은 부류.

신의 저주 때문에 변모한 피해자들이라 깨달은 순간.




괴물 외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아렌! 살려주는 거야! 우리 쫓기고 있는 거야!”



“어라~, 이번 술래는 뭔가 굉장히 무섭네요~.”



“개소리하지 말고 혼자서 날아가! 이 멍청한 ‘이슬’년! 이대로 가면 다 죽어 버린다니깐!”



“호호호호호홋!”



고작해야 3cm 남짓한 조그마한 ‘생물들’.



그들을 인지한 순간.

금발의 무녀와 붉은 소녀의 입에서 동시에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안 돼! 얘들아!”



“저거 혹시 요정들!?”



무녀는 경악과 걱정으로.

소녀는 놀라움과 충격으로 몸이 굳어져 있다.



그렇기에.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행동하는 건 '그것' 뿐이었다.



“■■■■■■■■----!!”



폭풍이 일었다.



급작스레 일어난 돌풍으로 금빛 머리칼이 나부껴지며.

얼마 남지 않은 낙엽마저 공중으로 흩뿌려져 간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노성.



얼마 없던 이성마저 증발한 것만 같은.

오로지 본능만으로 이루어진 포효에 숲이 진동한다.



4마리의 요정들이 얼이 빠져 멈춰버린 사이.


짐승의 거대한 신체는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

그대로 괴물들의 무리 속에 착지했다.



“그르륵...?”



“크륵...”



늑대 형태의 괴물들이 갑작스러운 난입으로 정지.

눈앞에 나타난 검은 짐승을 응시한다.



그건 고작해야 몇 초뿐인 정적이었다.



20마리의 괴물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순식간에 200미터를 주파한 짐승은 낮게 콧김을 내뿜고.



다음 순간.




허공에 피바람이 일었다.



“카아아아아아악?!”



검은 짐승이 팔을 휘두름과 동시에,




가장 앞줄에 있던 괴물 3마리의 목이 나가떨어진다.






분수처럼 치솟아 오르는 핏줄기를 보고 괴물들이 굳어진 사이.




검은 짐승은 한 발짝 전진.




이번에는 2마리가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참수당한다.



그리고 또다시 전진.






짐승의 꼬리로 관통되어,



2마리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륵!?”



“크라아아아아앗...!!”



단 5초 만에 7마리의 괴물이 사망한 뒤.



남아 있던 짐승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질렀다.



그것은 검은 짐승을 향한 위협인가.

그도 아니면 공포에 기인한 반사적인 발작인가.



그 답을 추측할 겨를도 없이.




검은 짐승은 몸을 한껏 뒤로 젖힌 뒤.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



압도적인 성량의 포효.


단지 그것만으로 괴물들이 일제히 몸을 떨며 굳어져 버렸다.




그걸로 끝.

괴물들은 일제히 등을 돌려 비명과 함께 도망친다.



그 뒤에 펼쳐지는 광경은

그 ‘지하 감옥’에서의 재현이었다.



검은 짐승은 남은 사냥감들을 향해 돌진해.

무력한 괴물들은 저항도 못한 채 찢겨나간다.



한 마리 한 마리.

보통의 생물과는 비교도 안 될 힘과 흉포함을 지녔음에도.



포효를 들은 순간.

이미 저건 '자신들과 다른 무언가'라고 느껴버렸기에.



목이 날아가고



다리가 잘려



그대로 목덜미를 씹어 먹혀 으스러진다.




2분 후.

조각조각 난 시체로 가득 찬 피 웅덩이에서 짐승은 숨을 골랐다.



방금 찢어발긴 ‘동류’들의 감촉을 되새김질하며.

연신 밀려 올라오는 뭔가를 참는다.



“----”



‘동류’.



그래, 방금 이놈들은 동류였다고.


검은 짐승은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아 이빨을 드러냈다.



황금빛 눈이 붉은색으로 물들여지면서.

이 숲에 온 뒤로 잊고 있던 기분 나쁜 소음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 지옥 같은 지하에서 보내왔던 반년을 떠올리고.




그곳에서 뭔가를 찾아 헤멨던 사실을 떠올리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엿 같은 소음을 없앨 수 있던 방법’을 떠올리는 순간.



그 소리가 들렸다.



“됐으니까 너희는 물러나 있어! 위험해!”



“아렌? 왜 그러는 거야? 저건 착한 괴물인 거야. 우릴 구해 준 거야.”




금발의 여자가 ‘요정’이라 불린 자그마한 뭔가와 티격태격하고 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로 다가오려는 걸 억누르는 것 같다고.




뇌를 파먹히는 듯한 소음과 통증 속.

짐승은 가까스로 그리 판단했다.



“무녀씨!”



“알고 있어요! 너희들, 어서 물러나!”






왜들 저리 당황하는 걸까.



멍한 머릿속으로 짐승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발걸음이 절로 그쪽을 향하는 걸.



꿈이라도 보는 듯 시야가 흐릿하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소음이 차츰 뇌를 파먹으면서,

짐승의 온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소음이다.




이 엿 같은 노이즈가,

치솟아 오르는 뭔가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기분 나쁘다.



없애지 않으면.




이걸 좀 닥치게 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조용하게 만들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이 시끄러운 소리를 잠재울 방법은 분명---



“와아! 구해줘서 고마운 거야, 넌 진짜 센 거야!”



“으응~, 굉장히 부드러워 보이는 털이네요~. 낮잠 자면 기분 좋을 거 같아~”



“형씨, 엄청나잖아! 신한테 저주받은 주제에 요정을 구하는 건 처음 본다고!”



“홋홋홋홋~!”



붉게 물든 시야로 짐승은 보았다.

4마리의 요정이 달려오는 걸.



솜털 같은 요정.




몸이 물로 이루어진 여자애 같은 요정.




도마뱀 같은 요정.




구름 같이 생긴 요정.



4마리 모두 활짝 웃으면서 달려오고.

뒤쪽에 있는 두 명의 인간이 각각 지팡이와 칼을 꺼내는 게 보이면서 .



반사적으로.



눈앞에 다가온 사냥감들을 찢어발기려는 때.



“큭?!”



보이지 않는 뭔가에 온몸이 묶여 버려.

짐승은 강제로 멈추고 말았다.






"무녀씨, 이건...?!"





"시튼님!!"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막을 뚫고,


뇌를 파먹어,


머리를 부서트리는 소음만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다.





여태 느껴보지 못한 격통 속.



가슴 깊이 '살의'가 치솟아 짐승이 포효하는 순간.





[여기까지입니다. 지금은 잠시 주무십시오, 등지기여.]





누구인지 모를 목소리와 함께.

새빨갛게 물든 시야를 새하얀빛이 감싸면서.




검은 짐승은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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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6절 - 재앙과 영웅 (2) 22.12.28 6 0 13쪽
25 6절 - 재앙과 영웅 (1) 22.12.26 6 0 7쪽
24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5) 22.12.25 10 1 15쪽
23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4) 22.12.23 13 1 12쪽
22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3) 22.12.21 9 1 12쪽
21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2) 22.12.19 9 1 10쪽
20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1) 22.12.18 10 1 11쪽
19 4절 - 방어전 : 베라른 (7) 22.12.16 10 1 10쪽
18 4절 - 방어전 : 베라른 (6) 22.12.14 10 1 8쪽
17 4절 - 방어전 : 베라른 (5) 22.12.12 10 1 14쪽
16 4절 - 방어전 : 베라른 (4) 22.12.11 15 1 13쪽
15 4절 - 방어전 : 베라른 (3) 22.12.07 9 1 11쪽
14 4절 - 방어전 : 베라른 (2) 22.12.05 9 1 11쪽
13 4절 - 방어전 : 베라른 (1) 22.12.04 9 1 9쪽
12 3절 - 동화의 끝 (4) 22.12.02 10 1 13쪽
11 3절 - 동화의 끝 (3) 22.11.30 9 1 16쪽
10 3절 - 동화의 끝 (2) 22.11.28 9 1 13쪽
9 3절 - 동화의 끝 (1) 22.11.27 12 1 12쪽
8 2절 - 요정 사냥 (4) 22.11.25 9 1 16쪽
7 2절 - 요정 사냥 (3) 22.11.21 12 1 11쪽
6 2절 - 요정 사냥 (2) 22.11.20 12 1 16쪽
5 2절 - 요정 사냥 (1) 22.11.18 16 1 14쪽
4 1절 - 천명의 무녀(3) 22.11.16 15 2 13쪽
» 1절 - 천명의 무녀(2) 22.11.14 20 2 12쪽
2 1절 - 천명의 무녀(1) 22.11.14 24 3 14쪽
1 프롤로그 22.11.14 46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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