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

짐승의 왕과 붉은 무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영업이
작품등록일 :
2022.11.12 03:01
최근연재일 :
2022.12.28 20:05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335
추천수 :
30
글자수 :
140,646

작성
22.12.19 20:05
조회
9
추천
1
글자
10쪽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2)

DUMMY

“오오...용케 와주었도다, 베아트리스여.

천명의 무녀인 그대는 우리 왕국의 상징 그 자체.



먼 예부터 그러했듯 무녀와 왕의 민족이 함께하니,

새로운 재앙이라 한들 어찌 두려워하겠느냐.”



알현실의 무거운 공기를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노쇠한 왕이었다.



왕이라는 입장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긴 하나,

그는 멋쩍게 웃으면서 연신 무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용사인 청년도.

벼락의 기사인 용인도 침묵하는 와중.



은발의 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농담하실 여유가 있으신 듯해 다행이로군요.


저는 무녀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그 후보 중 한 명일 뿐.


방금의 발언은 수정해주시길.”



무녀의 발언에 알현실의 문관들은 모두 침묵한다.


방금 전까지 혼란스러웠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신하들을 대신해 재무대신이 입을 열었다.



“...베아트리스님이야말로 농담을 다 하시는군요.

14대째 천명의 무녀는 베아트리스님 단 한 명뿐.



또 다른 후보자인 ‘동생’분으로는 역부족이란 걸.

이 나라의 사람이라면 어린아이조차 알고 있사옵니다.”



“......”



재무대신의 발언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긍정하는 침묵을 일관한다.



베아트리스도 눈을 감은 채 입을 다물자,

벼락의 기사인 자하크가 경례를 풀어 고개를 들었다.




“폐하.

무녀의 후보자가 참석하였으니 구체적인 안건을 논함이 어떠할런지요.”



“음...! 으음...그, 그렇군.

어... 그러하면... 아니 그,

베아트리스 외에 또 다른 후보자인 나오미 양이 참석해야---”



“그딴 년은 어찌 되든 상관없잖습니까, 국왕 폐하 나리.”





연신 식은땀을 닦는 왕을 향해,

용사가 가볍게 대꾸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면서,

용사 우르크는 팔짱을 낀 채 빈정거렸다.



“뭣 하러 그 둔해빠진 년을 기다립니까?

후보자 2명 중, 실질적인 무녀님께서 참석하셨겠다.


얼른 회의나 진행하자고,

벼락의 기사님께서 말하는 거 아니겠냐고요.”



“...그 말은 취소하시오, 우르크 공.

나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오.


나오미님은 1개월 이상 행방이 묘연하여---”



“어이쿠. 또 또 또, 괜히 멋진 척하기는.

댁도 그년이 무녀의 그릇이 아니란 건 잘 알잖아?


이 자리에 있어 봤자,

눈치만 보면서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할 건데.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이겠냐고.”



실실 웃으면서 말해 보이는 우르크의 말에.

문관이나 대신들, 늙은 왕조차 아무런 반박하지 않는다.



무언의 동의를 보이는 인간들을 보고,

자하크가 주먹을 쥐며 재차 입을 열려 할 때였다.




그보다도 먼저,

베아트리스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읊조렸다.



“용사의 말대로.

또 한 명의 후보자는 이 사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이.

왕궁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용서받지 못할 테지요.”



“베아트리스님...”



벼락의 기사가 측은한 눈으로 중얼거리나,

은발의 무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어떠한 흥미도 없다는 듯한 무녀의 태도에,

싱글벙글거리던 용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친동생한테 참 친절하기도 하시지.

피붙이 맞긴 하냐?”



“사실을 말한 것에 무언가 잘못이라도?


당신은 옳은 말을 했습니다, 용사 우르크.

그녀의 존재는 베라른의 재앙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니까요.”



“...쯧. 재미없는 새끼.”



담담하게 말하는 무녀를 보고,

용사는 한 번 콧방귀를 낀 뒤 입을 다물어 버렸다.



벼락의 기사인 용인도 그 이상 발언하지 않는 걸 확인한 뒤,

베아트리스는 옥좌에 있는 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간략하게 보고를.


베라른의 재앙은 더 이상 확장하지 않고 정체했으나,

단순히 활동을 멈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세심하게 관찰하며 주의하는 게 좋아 보이는군요.”



“규모가 커지는 게 멈추었거늘.

주의를 기울여야 함은 무슨 소리인가, 베아트리스여.”



잠시 얼굴이 환해졌던 왕은,

다시금 표정을 어둡게 한 채 물었다.




“‘그것’의 내부에선 나날이 새로운 몸체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체적인 규모가 확장되지 않는단 건,

모종의 이유로 불어난 부분만큼 사라지고 있다는 뜻.


최악의 경우.

지맥을 통해 은밀히 다른 지역으로 이동 중일 가능성도 있겠죠.”



그 말이 가져온 파장은 곧바로 나타났다.



문관들이 바쁘게 귓속말을 오가고,

노쇠한 왕이 ‘오오..’하는 탄식과 함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불안과 동요.

공포와 공황으로 가득 찬 현장 속.

무녀와 용사, 용의 기사만 침착함을 유지하는 와중.



일반인을 대표하여,

재무대신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폐하. 베라른으로 군을 보냄이 어떠할런지요.


베아트리스님은 수도의 경비를 위해 머물러야 하오니,

자하크 공이나 우르크 공을 총대장으로 임명함이---”




“군대를 보내는 건 삼가는 게 좋을 겁니다.”



재무대신의 말을 막은 건 또다시 은발의 무녀였다.


베아트리스의 말에 대신이 당황하는 것도 잠시뿐.

반박하려는 대신을 한 손을 들어 제지하며 왕이 물었다.



“그것은 또 어째서인가, 베아트리스여.”



“베라른에 나타난 재액의 특징 때문입니다.

실제로 보지 못한 만큼 정확한 분석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렇군요.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인간만을 표적으로 삼은 독극물’이라 할 수 있을 테지요.”



“...그건 즉,

악신의 저주와 같다는 의미입니까?”



옆에서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자하크의 물음에,

무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얼마 안 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군요.

짐승병은 분명 악신인 ‘테스카틀리포카’의 저주를 대표하는 것.


인간이 주된 대상이며,

초월적인 죽음을 맞게 한단 점은 같지만 지향성이 다릅니다.


짐승병은 인간을 괴물로 바꾸어 악신의 수하로 만드는 반면,

베라른의 재앙은 완전한 학살과 살의로 이루어진 덩어리.


보통 사람이라면,

닿는 것만으로 피를 토하며 증발해 버릴 테지요.”




“오오! 그러면 보통의 군대로는 당연히 상대가 안 되지.

안 그래도 쓸데없는 놈들인 건만, 그런 게 상대여서야.”



목청껏 웃어젖히는 용사의 도발에도 반응하지 못할 만큼,

문관들이 어두운 얼굴로 몸을 떨었다.



재무대신마저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하자,

보다 못해 왕의 곁에 서 있던 젊은 기사가 입을 열었다.



“...허면 천명의 무녀시여.

이런 때야말로 더더욱이 초월적인 힘을 가진 전사가 출진해야 하지 않습니까?


‘용사 우르크’의 칭호를 이어받은 성검의 수호자는 물론이오.



벼락의 기사인 자하크 공 또한 100년 전,

라콧에 나타난 재앙을 토벌하신 분.



새로운 재앙이란 한들,

이러한 특수전력이라면---”



“......”



베아트리스가 입을 다문 채 묵묵히 사고에 잠겼다.




그 침묵을 누구 하나 방해하지 않고 대답을 기다린 끝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일시적인 토벌은 가능할 테죠.



하지만 십중팔구 저 재앙은 곧바로 부활할 겁니다.

재생능력과 인간을 향한 이질적인 증오로 봤을 때 틀림없이.


그 근원과 원인을 몰라서야 완전한 소멸은 물론,

봉인조차 불가능할 테지요.


이건 제가 직접 나서도 같은 결과일 겁니다.”



“---저 또한 베아트리스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폐하.”



“...그대도 말인가, 자하크.”



주름진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왕이 묻자,

거대한 용인은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00년 전.

라콧의 재앙은 ‘대정령의 시체’라는 명백한 원인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모험가 하인리히가 남긴 일기가 없었다면,

확실한 토벌은 불가능했을 터.



이번 베라른의 재앙이,

몇천 년 이상 계속된 ‘신의 재앙’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재앙인 이상.



그때와 마찬가지로 명확한 원인 규명과 방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발언을 끝으로 알현실은 또다시 소란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그 원인을 어떻게 규명해야 하는가’.


‘방책을 알아낼 때까지 수도만이라도 방어 태세를 갖춰야 하는 게?’


‘하지만 그 사이 재앙의 규모가 커지면 어떡하나.’


‘장기간의 소모전이라도 용사와 벼락의 기사가 전장에 나서는 게 맞다’.



누구 하나 이렇다 할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최종 결정권을 가진 왕마저도 발언을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유쾌한 박수 소리가 알현실에 울려펴졌다.



“자아 자아, 다들 그리 고민하지들 말라고.

원인과 방책 같은 거 딱 하고 생각나는 게 있잖아?”



“그게 무슨 소리인가, 우르크 공.”



여유롭게 팔짱을 끼는 청년을 향해 용인이 눈을 날카롭게 했다.


문관들과 왕을 비롯해 모두가 용사를 응시하자,

그는 앞머리를 배배 꼬며 미소 지었다.



“생각 좀 해 봐.

결국 이런 꼬라지가 일어난 건 뭐겠어?

불행과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뭔가’가 있단 거잖아?


그럼 딱하고 떠오르는 게 있다 이 말씀.

이 나라에 사는 놈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걸?”



거기까지만 말했을 뿐임에도,

그가 다음에 꺼낼 말이 무엇일지 대부분의 문관이 이해했다.



태초부터 수많은 재앙에 고통받았으면서도,

꿋꿋이 나라를 유지해온 천상왕국.



그 무궁한 역사에 있어,

‘의심’에 가까운 미신이 있었기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집중되고.

용사 또한 ‘그녀’를 바라보면서 능글맞게 말을 이었다.



“간단한 거지.

불행의 싹을 잘라버리고 싶다면야 처형시켜 버리라고.


방해되는 재앙의 상징.

마녀인 나오미란 년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짐승의 왕과 붉은 무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6절 - 재앙과 영웅 (2) 22.12.28 6 0 13쪽
25 6절 - 재앙과 영웅 (1) 22.12.26 6 0 7쪽
24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5) 22.12.25 11 1 15쪽
23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4) 22.12.23 13 1 12쪽
22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3) 22.12.21 10 1 12쪽
»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2) 22.12.19 10 1 10쪽
20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1) 22.12.18 10 1 11쪽
19 4절 - 방어전 : 베라른 (7) 22.12.16 10 1 10쪽
18 4절 - 방어전 : 베라른 (6) 22.12.14 11 1 8쪽
17 4절 - 방어전 : 베라른 (5) 22.12.12 10 1 14쪽
16 4절 - 방어전 : 베라른 (4) 22.12.11 15 1 13쪽
15 4절 - 방어전 : 베라른 (3) 22.12.07 9 1 11쪽
14 4절 - 방어전 : 베라른 (2) 22.12.05 10 1 11쪽
13 4절 - 방어전 : 베라른 (1) 22.12.04 9 1 9쪽
12 3절 - 동화의 끝 (4) 22.12.02 10 1 13쪽
11 3절 - 동화의 끝 (3) 22.11.30 9 1 16쪽
10 3절 - 동화의 끝 (2) 22.11.28 9 1 13쪽
9 3절 - 동화의 끝 (1) 22.11.27 12 1 12쪽
8 2절 - 요정 사냥 (4) 22.11.25 10 1 16쪽
7 2절 - 요정 사냥 (3) 22.11.21 12 1 11쪽
6 2절 - 요정 사냥 (2) 22.11.20 12 1 16쪽
5 2절 - 요정 사냥 (1) 22.11.18 16 1 14쪽
4 1절 - 천명의 무녀(3) 22.11.16 15 2 13쪽
3 1절 - 천명의 무녀(2) 22.11.14 20 2 12쪽
2 1절 - 천명의 무녀(1) 22.11.14 24 3 14쪽
1 프롤로그 22.11.14 47 3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