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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왕과 붉은 무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영업이
작품등록일 :
2022.11.12 03:01
최근연재일 :
2022.12.28 20:05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325
추천수 :
30
글자수 :
140,646

작성
22.11.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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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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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절 - 요정 사냥 (3)

DUMMY

"두, 두목?! 이 년은 설마 천명의---"





"뭔 개소리야, 멍청한 새끼!

천명의 무녀니 뭐니를 자칭하는 여자는 금발에다가 요정의 피가 섞인 잡종이잖냐!"





"그럼 저년은 대체 뭡니까?! 요정들이 사라졌는뎁쇼?!"





"몰라!!"







요정 사냥꾼들이 동요하면서,

두목 격인 안경 쓴 남자가 우락부락 소리치는 가운데.





나오미는 떨려오는 몸을 바로잡으려 애를 썼다.





'---이건 좀...'





결국,

끝내 도망치는 선택을 취하지 못해서 끼어들고 말았지만.



곧바로 엄청난 후회가 덮쳐 온다.





눈앞에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지만

잘 벼려진 갑옷과 칼, 창을 든 남자 20명.





이쪽은 빈말로라도 세다고 할 수 없는 여자애인데다가,

검은 짐승을 쫓느라 순간이동을 남발해서 신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





---응. 역시 이길 수 없다.



그런 건 머릿속으로 잘 알고 있었지만.

새삼 이렇게 직접 뛰어들고 나니 현실로 체감된다.





"이봐, 아가씨. 댁이 누구고, 무슨 짓거리를 한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 상품을 돌려주지 그래?



남의 장사를 망치면 안 되지, 개념을 어따 팔아먹었냐?"





"---당신들은."





"응?"





"당신들은,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건가요? 단순히 돈을 위해서?

고작 그것 때문에 이렇게까지 한다고?"





거친 숨을 몰아내쉬면서,

나오미는 어떻게든 말을 이어냈다.



눈앞에 있는 남자들이 무슨 목적이건 전혀 관심 없다.

이런 짓거리를 하는 비인간적인 놈들은 수도에서 질리도록 봐 왔다.




대화 따위 통하지 않을뿐더러, 그럴 의도도 없다.

일단 시간을 끌지 않으면.





얼마 없던 신력은,

요정들과 자기 위치를 '바꿔치기'하느라 거의 다 써버린 상태.



지금은 조금이라도 신력을 회복해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만, 세상 물정 모르는 새끼구만.

딱 봐도 어린 년이라 뭘 모르나 본데, 이 세상은 돈이 전부야 임마.



결국 수중에 돈이 얼마나 있냐 없냐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된다고.

그리고 네년은 지금 우리의 소중한 돈벌이를 엉망으로 만들었지."





"---그럼 더더욱, 제게 친절히 대하셔야 하지 않나요?

사라진 요정들처럼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인데?"





나오미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장에라도 털썩 주저앉아버리려는 다리를 억누르며,

최대한 허세를 보인다.





그런 허풍이 어느 정도 통했는지,

주위를 둘러싸던 남자들이 당황하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사장, 어쩔 거요? 이 년이 도망쳐 버리면---"





"도망을 치겠냐, 시발. 그럼 진작에 튀었겠지!

딱 봐도 구라잖아, 구라!



닥치고 얼른 상품이나 내놔!!"






"----"





괜히 이 패거리의 두목이 아닌 듯,

안경을 쓴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삐쩍 말라서 제일 약해 보이는데.

이 중에서 그나마 머리가 좀 돌아가는걸까.





그런 한가한 생각과 함께,

지팡이를 쥔 손에 재차 힘을 준다.





그사이에.

요정 사냥꾼들은 재차 무기를 쥐고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방향,


요정들을 순간이동시킨 수풀 쪽을 곁눈질해 확인한다.





다행히도 상황이 이리 될 때까지 요정들은 조용히 숨어 있다.

상당히 부상이 심각했으니까, 아마 그 탓도 있겠지.





그렇다면---





"흐읍!!"





"---쿠엑?!"






지면을 박차 가장 근접한 남자를 향해 돌진.

남자가 당황한 사이, 온 힘을 다해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저 미친년이?! 족쳐! 숨만 붙어있음 되니까 일단 족쳐 버려!"





안경 쓴 남자의 고함 소리와 함께,

요정 사냥꾼들이 노성을 지르며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왼편에서 창 두 자루.

오른쪽 사선에서는 칼 세 자루가 동시에 날아오면서.





"----!"





지팡이가 밝게 빛나며,

그 모든 공격을 피해낸다.





"뭣?!"





"뭐야 이 년!! 칼이 그냥 통과했어?!"







남자들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분명히 날붙이가 소녀의 몸을 베어내야 했건만.

마치 허공을 가르듯이 그대로 몸을 통과해 버린 것이다.





그 기묘한 광경에 안경 쓴 남자도 당황하는 사이.

나오미는 이빨을 꽉 깨문 채 재차 행동한다.





"우랴아아아앗!"





"쿠엑?!" "켁!?"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두 명의 불알을 박살 내준 뒤.

빠르게 후퇴하며 태세를 재정비.





수도의 뒷골목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남아왔던 경험.



그 스트리트파이터 기질을,

여기서 모조리 풀어낼 기세로 싸워나간다.





"사, 상대는 고작 계집애 한 명이잖냐! 너희들 대체 뭐 하는 거야 시발?!"





"하지만 이 자식, 칼이 안 통하잖슴까!! 이건 대체----꺄아아악!"







또다시 한 명.

남자로서 소중한 걸 걷어차여 거품을 물고 쓰러지자.



나머지 사냥꾼들은 불안한 듯이,

손으로 각자의 하반신을 가리면서 뒷걸음질 쳤다.





(좋아...!)







그건 나오미로서는 가장 좋은 전개였다.



안 그래도 공격에 쓸 기술이 없기에,

뒷골목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으며 터득한 필살기(남자 한정)밖에 없던 터였다.







신력은 쥐꼬리밖에 회복되지 않아.

완전한 순간이동은 불가능한 상황.





약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몸의 일부를 순간이동으로 '왕복'시켜,

일시적으로 칼을 피해내고 있지만.





솔직히 이 방법으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




신력이 바닥나서 눈앞이 휘청일 뿐 더러,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져서 타이밍이 어긋낫다간,

순간이동이 실패하면서 몸이 '절단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이대로 후퇴해줬으면....!






"하아...하아..."





"이, 이 시발 년이---..."





거친 숨을 몰아내쉬는 자그마한 소녀.

그런 그녀에게서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사내들을 보고,



안경 쓴 남자는 식은땀과 함께 주먹을 쥐었다.





"두, 두목...이 년 좀 이상한뎁쇼?"





"닥쳐 임마! 이대로 물러나면 어쩌겠단 거야?!"





악에 받친 소리와 함께,

안경 쓴 남자가 옆에 있는 부하의 칼을 낚아챘다.





---온다.





그리 직감하고 지팡이에 재차 신력을 불어넣을 때였다.

시야가 흐릿해지는 걸 참아내며, 타이밍을 재려던 순간.





"아픈 거야..."





"!!!"





뒤쪽에서 들려온 신음 소리에,

목이 부러질 기세로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아까 전에 배를 후벼 파졌던 풀의 요정이 한 마리.





틀림없이 죽은 줄 알았건만, 아직 숨이 붙어 있던 건지.

구멍 난 배에서 황금빛 가루를 쏟아 내면서 뒤척이고 있다.





"이런...!"





"뒤져라------!!"





두목 격인 남자가 칼을 들고 내리쳐 온다.

눈에 띄게 커다란 동작.



여기서 피해냈다간,

뒤쪽에 있는 아이가 가차 없이 베일 동선.





"----!"





망설일 틈은 없었다.

깊이 생각할 시간도 없다.





붉은 소녀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지팡이를 꽉 쥔 뒤.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커흑...!!”





"뭐, 뭐야 저거 갑자기...!"





"두목의 칼이 통했어!!"





왼쪽 어깨를 뚫고 들어오는 서늘한 위화감과 함께.

소녀는 입에서 왈칵 피를 토해냈다.





남자들의 환호성이 주변 일대를 흔드는 와중.

나오미는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뒷걸음질 치다 주저앉으면서.



곁눈질로,

마지막 생존자를 무사히 피신시켰단 걸 확인했다.





"----아윽."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자기 실력으로는,

이 상황에서 요정들을 데리고 무사히 도망칠 수 없단 것 정도는.





이는 즉.



자기 자신과 요정.

둘 중에 하나를 택한다면 나머지 한쪽은 '완벽히' 구할 수 있다는 뜻.






"조, 좋아! 야, 지금이다! 얼른 족쳐!!"





흥분한 두목의 목소리와 함께.

분풀이라도 하듯이 남자들이 노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어떻게든 대응하고자 지팡이를 재차 쥐려 하지만

그것보다 빨리 누군가에게 귓방망이를 얻어맞았다.





지팡이가 손에서 빠져나간다.

한 방 얻어맞았을 뿐이건만,

이미 한계를 맞이한 몸은 그걸로 완전히 기능을 멈춰버렸다.





바닥에 엎어진 채.

팔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으면서.





곧이어 전신을 구타하는 발길질과 함께.

온몸이 창에 꿰뚫렸다.





‘....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던 와중,

저항조차 못하던 소녀의 몸이 강제로 일으켜진다.





누군가가 머리채를 잡아끌기라도 하는 걸까.

머리카락이 거칠게 당겨지는 느낌조차 어딘가 꿈처럼 느끼고 만다.







핏기가 사라진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멍한 머릿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나오미는 작게 숨을 쉬었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몸은 당장에라도 죽어 가건만,

감각이 차츰 옅어져 가는 덕에 오히려 편안한 느낌마저 받는다.






‘......’





죽기 직전이 되면 주마등이 보인다더니,

그런 건 전부 헛소문이었을까.





새삼 생각하면 어이없는 결말이다.

지하 감옥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반쯤 자살하려는 심정이긴 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죽게 될 줄은.






‘...그래도 상관없나.

어차피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았는걸.

...언니는 응. 나 같은 거 없어도 잘 살 거고.’





눈을 감는다.





'이걸로 모든 게 끝나는 거구나' 하는 안도감에 만족하며.

'정말로 이걸로 괜찮은 거냐'는 자책을 애써 무시하면서.






붉은 소녀는,

고요하기 그지없는 정적에 가라앉아 천천히 눈을 감고.





[그건 너무 아깝지 않아?

이런 식으로 책을 덮어 버린다니, 실컷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싶은데.]






문득.

누군지도 모를 목소리가 느긋하게 말을 건네왔다.







[자아, 어지간히 하고 눈을 뜨렴.

잠꾸러기인 건 공주의 역할이지, 직접 이야기를 이끌어야 할 주인공의 역할이 아니잖아?



모처럼 선택받았는 걸.

너가 그래서야, 네 '의식'에 휘말린 그 녀석이 불쌍해지잖니.]







순식간에 의식이 각성해간다.

밑으로 가라앉던 정신이 급격하게 수면 밖으로 부상해간다.



전신에 핏기가 돌아옴과 동시에.

몸이 꿰뚫린 통증이 생생하게 신경을 타고 뇌를 겁탈하면서.





누군가의 품에 안긴 채,

간신히 눈을 뜬 붉은 소녀는 그 광경을 보았다.







“뭐, 뭐야 네놈은!

저주에 걸린 괴물 새끼가 왜 인간을 감싸는 건데!?”





“두, 두목!”







풀숲에 쓰러진 붉은 소녀와 요정 사냥꾼들의 사이를 가로막는 존재가 있다.





거구의 몸체는 심상치 않은 기백을 내뿜고.



기다란 꼬리가 거칠게 땅을 연거푸 후려치면서.




낮은 울음소리가 눈앞에 있는 ‘사냥감’들을 위협한다.








남자들은 그 기백에 짓눌려 차츰 뒷걸음치는 가운데.



삐쩍 마른 두목이 히스테릭을 부리듯 소리쳤다.





“너, 넌 대체...!”







“닥쳐, 시끄럽다.”







남자의 말을 단칼에 자르며,

낮은 목소리가 중후하게 공터에 울린다.





그 한 마디만으로 요정 사냥꾼의 무리는 일제히 굳어져 버리고.

그 찰나에, 소녀의 동공이 미세하게 커졌다.






아주 잠깐.



정말로 짧은 순간이었지만.





검은 짐승의 눈이 자신을 바라본 것만 같다고.

그리 느꼈을 때.








짐승의 온몸에서 힘줄이 돋아나며,

검은 짐승은 흉폭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왜인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군. 빨리 끝내지.”


작가의말

다음은 금요일에 올릴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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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3) 22.12.21 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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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1) 22.12.18 9 1 11쪽
19 4절 - 방어전 : 베라른 (7) 22.12.16 1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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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절 - 요정 사냥 (3) 22.11.21 12 1 11쪽
6 2절 - 요정 사냥 (2) 22.11.20 12 1 16쪽
5 2절 - 요정 사냥 (1) 22.11.18 16 1 14쪽
4 1절 - 천명의 무녀(3) 22.11.16 14 2 13쪽
3 1절 - 천명의 무녀(2) 22.11.14 19 2 12쪽
2 1절 - 천명의 무녀(1) 22.11.14 2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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