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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왕과 붉은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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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이
작품등록일 :
2022.11.12 03:01
최근연재일 :
2022.12.2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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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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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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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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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1)

DUMMY

수도 테오티우아칸.



대륙 중앙에 있는 수도는

‘왕의 민족’이라 불리는 인간들이 일구어낸 도시로,



유일한 나라인 '천상왕국'의 심장이라 할 수 있었다.



용인들이 사는 서쪽 지방은 천상왕국에 속하며,

또 다른 거대도시인 남부의 항구마저 왕국의 영토이다.



그밖에 방대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대륙에서 국가라고 부를 만한 장소는 오로지 이 천상왕국 하나뿐이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천상왕국은 절대적인 왕권으로 대륙에 군림한 절대국가처럼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상.



정확히는 대륙의 험난한 환경과 신들의 저주로 인하여,

다른 종족과 세력은 커지지 못한 채.



'왕의 민족'인 인간들을 중심으로,

모든 이들이 한데 모여 건국된 나라였다.



“오오...이 무슨 시련이란 말인가...

하필이면 짐의 치세에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재앙’이...”



수도 테오티우아칸에서도 더욱더 정중앙.


드높이 치솟아 있는 새하얀 탑과 나란히 하는 갈색의 왕궁,

그 알현실에서 고통에 절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폐하, 부디 마음을 다잡아주시옵소서.


이런 시국이야말로 대륙의 상징이자,

모든 민족들의 대표인 폐하께서 위풍을 유지하지 않으면 아니 되나이다.”



길고 긴 복도와도 같은 알현실의 끝에서,

옥좌 옆에 서 있는 갑옷 차림의 남성이 허리 숙여 고한다.



미려한 미남 기사의 말은 품위와 자신이 넘쳐 있었으나,

그러한 격려에도 옥좌 위의 노인은 몸을 떨 뿐이었다.



“알고 있다, 알고 있단 말이다.


허나, 데모르크여.

그대는 아직 어리기에 모르는 것이다.


온갖 저주에 의하여 고통받음은

이 대륙에서 태어난 모든 신민들의 숙명이라 하나,


그 참상과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붉은 망토와 기품있는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호화로운 장식으로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늙은 왕을 뒤흔든다.





주름 투성이인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왜소한 몸은 사정없이 떨린 채,


왕은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악신의 짐승병과 용신의 낙인에도 모자라,

전대미문의 재앙이 새로 발생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왕국의 기반과 결속은 결코 강하다 할 수 없는 것을...”



“폐하! 부디 두려워마오소서!

이 천상왕국은 수 천 년간 저주와 맞서 싸워 유지해온 강건한 국가이오니!


이는 곧 신민들의 결속과 지도자인 대왕의 존재,

그리고 천명의 무녀가 힘을 합쳐---”



“허면 대신!

어서 모두를 불러오지 않고 뭣하는 겐가..!


대책을 위해 소집을 건지 하루가 지났거든,

대표자들이 모이질 않고 있지 않은가!”



줄지어 서 있는 문관들의 위로에 늙은 왕은 고함을 질렀다.



문관들도 누구 하나 마땅히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들조차 얼굴에는 불안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대표자들을 소집하게 된 의제.


‘베라른의 재앙’은,

수천 년간 신들의 저주와 싸워온 천상왕국에 있어서도 전대미문이었기에.



“용의 민족 대표, 벼락의 기사 자하크 공!

성검 닉스의 후계자, 용사 우르크 공!


폐하를 알현하기 위하여 입실을 요청하는바입니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알현실에,

서기관의 목소리가 가득 메우었다.




양 열로 서 있는 문관들의 표정이 일시에 복잡해지며,

노쇠한 왕은 옥좌에서 놀라자빠지듯이 일어섰다.



“오오...! 오오...!! 용사 우르크!

‘재의 시대’ 때부터 대륙을 지탱해온 또 한 명의 구세주여!

잘 와주었다!


어서, 어서 들이도록!”




알현실에 등장한 건 한 명의 인간과 용인이었다.



온몸이 비늘로 이루어져 있어 용과 같은 형태를 한 전사는,

키가 거의 5미터에 달해 있다.


그에 더해 암반을 입은 듯한 잿빛의 중갑을 두르고 있어,

안 그래도 커다란 덩치가 두 배는 더 위압적으로 보인다.



걸을 때마다 알현실이 흔들리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용인은 옥좌 앞까지 걸어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용의 민족을 대표하여 알테페틀 령의 영주, 자하크 아르만디아.



부름을 받아 달려왔나이다.”



‘오오, 역시 서쪽을 대표하는 벼락의 기사...!

용사와 천명의 무녀에 못지않은 실력자다운 풍모로군요...!’




‘선대 벼락의 기사인 아지 다하카를 이은 유일한 용신의 체현자!

베라른 지방에서 나타났다는 재앙도 분명...!’



“그래! 잘 와주었도다, 나의 충신.

오랜 맹우인 용의 민족이여...!



그대들이라면 분명 짐의 부름에 답해주리라 생각했고 말고...!”



안도하는 문관들과 마찬가지로,

늙은 왕 또한 주름투성이인 손으로 연신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재앙이 출현했다는 위기.


수 천 년의 역사에도 없었던 이 상황에 있어서,

신의 힘을 이어받은 용의 민족 최강의 전사는 환영해야 마땅할 인재인 것이다.




설사---



“핫. 평소에는 저열한 도마뱀이니, 열악한 지능이니 뭐니 지껄여대던 주제에.

지들이 위험해지니깐 꼬리 흔드는 꼬라지 봐라.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오네, 참.”



문관들의 표정이 험악해지면서,

모든 시선이 자하크의 옆에 서 있는 청년에게로 향한다.



샤프하게 기른 하늘색 머리칼의 청년은,

한쪽 눈을 가리도록 길게 기른 앞머리를 배배 꼬며 실실 웃고 있었다.



“어전 앞에서 대체 무슨 망언이란 말인가!

발언을 취소하시오, 용사 우르크!


당신은 이 대륙 전체를 수호할 역할을 짊어질 용사!

사소한 발언에도 마땅한 책임이 필요한 법이외다!”



왕의 최측근에 위치한 대신이 손가락질하며 다그치자,

문관들 사이에서 일제히 동조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게 우르크의 칭호를 이어받았다는 용사가 할 언동인가...?

시정잡배나 다름없지 않나...’




‘역시 출신은 못 숨기는 거겠지. 그거 들었소?

이전에는 거리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시중을 안 들었단 이유로 일가족을 몰살했다고---’



수군거리는 속닥거림이 멎은 것과,

굉음이 일어난 건 거의 동시였다.



‘카드득’,

알현실을 지탱하는 기둥 두 개가 무너져 내리면서,

가장 가까이 있던 문관들이 비명을 지르며 엎드렸다.




자욱한 흙먼지 속,

누구 하나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게 무슨 짓이오, 우르크 공.

자칫 잘못하면 3명의 몸이 절단날 뻔했잖는가.”



“대가리가 안 돌아가냐?

애초에 그러려고 휘두른 거다. 멍청한 도마뱀 자식.”



혼비백산하여 우왕좌왕하던 문관들은 그제야 이해했다.


왕의 앞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거리낌 없이 칼을 휘둘러,

누가 이를 막아 냈는지를.



여전히 왕을 향해 무릎 꿇은 자세를 무너트리지 않은 채.


한 손으로 3미터를 넘는 대검을 들고 있는 용의 기사는,

눈자위만 움직여 옆의 청년을 노려보았다.



“재무대신의 말대로 이곳은 어전이외다, 우르크 공.

피를 보이는 건 용서받지 않네만.”



“그건 사람의 피일 때의 말이지.


살만 뒤룩뒤룩 찐 개돼지 새끼들의 피 따위,

얼마나 튀어나오건 실례라 치부할 수 있나?”



“...용사에 어울리지 않는 언행이로군.”



“그러냐. 근데 이걸 어째?

그쪽이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이 빌어먹을 성검은 내가 용사라고 인정해 버렸는데.”



대검을 쥔 용인의 팔에 힘줄이 돋으며,

그에 반응하듯이 성검의 빛이 더욱 강해질 때였다.



당장에라도 칼부림을 벌일 듯한 호걸들을 향해,

노쇠한 왕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만! 그만들 하시게나!

용사 우르크여, 짐의 신하가 저지른 무례는 대신 사과하겠네!

그러니 부디 그 칼을 거두어들이도록.



자하크, 그대도 마찬가지이다.

벼락의 기사라고까지 칭송받는 이가 이 무슨 망발인가...!”



“실례했습니다.”



“쯧. 이놈이고 저놈이고...”



순순히 자하크가 대검을 거두어들이자,

용사는 낮게 혀를 찼다.



“용사 우르크! 왕의 명령이 들리지 않은 겐가!

그대도 어서 성검을--”



“그건 내 맘이지. 그쪽에게 지시를 받을 이유는 없어.

꼬우면 힘으로 말을 듣게 하던가.



애초에 대놓고 뒷담까던 저 새끼들은 댁의 부하들이잖아.

안 그래, 대신 양반?



부하의 책임은 상관이 지어야 한다 보는데.”



우르크는 위협적으로 허공에 칼을 그어 보이나,

반박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재무대신은 벌레를 씹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

문관들은 공포에 질려 말을 꺼내지 못한다.


유일하게 용사에게 맞서던 벼락의 기사는,

왕의 명령에 따라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




결국 늙은 왕마저 눈치만 보는 가운데,

그 곁에 서 있던 데모르크라는 청년기사가 입을 열었다.



“서기관. 아직도 다른 대표자들은 입실하지 않는 건가?

카토르 교황 각하나 각 민족의 대표들은?”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발언에,

대문 앞에 서 있던 왜소한 문관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 그것이...

교황 각하께서는 원로원과의 회의로 인해 다소 늦어진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바다의 민족 대표인 에르난 경과,

호수의 민족 대표인 니사바 여왕은 불참의 의견을---”



“뭣!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겐가?!

신화나 역사에도 기술된 적 없는 재앙이 출현한 때에 이 무슨...!!”



보고를 들은 재무대신이 격노하며,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다른 의미로 알현실이 떠들썩해졌다.



“또 ‘바다’ 놈들인가!

세금이 올랐다는 이유로 항의하는 게 틀림없군!

아무리 그래도 이러한 비상사태에 어찌 몰상식한!”




“안 그래도 빈란드에는 최근 불온한 자금과 무기가 밀수되고 있다는 소문이오!

폐하, 이 기회에 바다의 민족을 엄히 벌주어야만 하오나이다!”




“바다 놈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니사바님이 불참은 어찌 된 일인가?

대륙의 위기에 대정령이나 되는 존재가 나서지 않는다면,

대체 무얼 근거로 신과 나란히 한단 게요?!”



‘바다의 민족’을 향한 노성과 불만.

‘정령여왕’이 불참한 사실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알현실을 장악하면서.




호쾌하기 그지없는 웃음소리가,

그 모든 소란을 뛰어넘어 울려 퍼졌다.



“하하하하하하!!! 이건 참 걸작인데!

위기니 뭐니 하는 상황에서 전혀 결속이 안 되어 있잖아!


이러고서 잘도 천상왕국을 지배하는 ‘왕의 민족’이니 뭐니,

말하는 본인이 부끄럽지도 않나!”



“용사 우르크! 망언을 삼가시오!

폐하의 넓으신 아량에도 한도가 있소이다!”




배를 잡고 웃어대는 용사를 향해,

재무대신이 다시금 일갈하였다.



신하들의 시선이 다시 한번 용사에게로 향하면서,

용사가 다시 뭔가를 말하려 할 때였다.








그 모든 소란을 잠재우는 청아한 목소리가 있었다.



“소란스럽군요.

새로운 위기를 논하는 자리라 들었습니다만,

혹여나 제가 축제를 잘못 들었던 걸까요?”



순식간에 용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져 표정이 찌푸려진다.


노성과 항의를 일삼던 문관들도 모두 입을 다물어,

용의 기사도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면서.



이윽고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릎까지 내려오도록 길게 길러진 은발의 여성은,

한눈에도 엄청난 미인이라고 느껴질 만큼 정돈된 이목구비를 하고 있다.



백옥 같은 흰 피부 위로는 드레스처럼 보이는 로브로 둘러싸,

신비한 장식이 그려진 망토로 어깨를 감싸고 있다.



왼손으로는 얼핏 봉처럼도 보이는 푸른 지팡이를 쥔 채,

감정 하나 없는 무표정으로 여성은 알현실 내부를 둘러보고.




문 옆에 서 있던 서기관이 예를 갖추어 소리쳤다.



“신의 대변자.

14대째 천명의 무녀 베아트리스 공!


알현을 위하여 입실하셨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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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왕과 붉은 무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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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6절 - 재앙과 영웅 (2) 22.12.28 6 0 13쪽
25 6절 - 재앙과 영웅 (1) 22.12.26 6 0 7쪽
24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5) 22.12.25 10 1 15쪽
23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4) 22.12.23 13 1 12쪽
22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3) 22.12.21 9 1 12쪽
21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2) 22.12.19 9 1 10쪽
» 5절 - 수도 테오티우아칸 (1) 22.12.18 10 1 11쪽
19 4절 - 방어전 : 베라른 (7) 22.12.16 10 1 10쪽
18 4절 - 방어전 : 베라른 (6) 22.12.14 10 1 8쪽
17 4절 - 방어전 : 베라른 (5) 22.12.12 10 1 14쪽
16 4절 - 방어전 : 베라른 (4) 22.12.11 15 1 13쪽
15 4절 - 방어전 : 베라른 (3) 22.12.07 9 1 11쪽
14 4절 - 방어전 : 베라른 (2) 22.12.05 9 1 11쪽
13 4절 - 방어전 : 베라른 (1) 22.12.04 9 1 9쪽
12 3절 - 동화의 끝 (4) 22.12.02 10 1 13쪽
11 3절 - 동화의 끝 (3) 22.11.30 9 1 16쪽
10 3절 - 동화의 끝 (2) 22.11.28 9 1 13쪽
9 3절 - 동화의 끝 (1) 22.11.27 12 1 12쪽
8 2절 - 요정 사냥 (4) 22.11.25 9 1 16쪽
7 2절 - 요정 사냥 (3) 22.11.21 12 1 11쪽
6 2절 - 요정 사냥 (2) 22.11.20 12 1 16쪽
5 2절 - 요정 사냥 (1) 22.11.18 16 1 14쪽
4 1절 - 천명의 무녀(3) 22.11.16 14 2 13쪽
3 1절 - 천명의 무녀(2) 22.11.14 19 2 12쪽
2 1절 - 천명의 무녀(1) 22.11.14 24 3 14쪽
1 프롤로그 22.11.14 46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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