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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왕과 붉은 무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영업이
작품등록일 :
2022.11.12 03:01
최근연재일 :
2022.12.28 20:05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333
추천수 :
30
글자수 :
140,646

작성
22.11.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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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2절 - 요정 사냥 (4)

DUMMY

숲이 흔들렸다.



나뭇가지에 올라타있던 새들이 일제히 상공으로 피신하며,

근처에 있던 소동물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지면이 갈라지고 거목이 쓰러져가는 광경은,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를 방불케 하지만.



그 원인은 다름 아닌 한 마리의 괴물이었다.



“■■■■■■■■■■-----!!!”



섬뜩하기 그지없는 포효소리.


생물이라면 누구나 위축당할 포식자의 노성과 함께.

‘퍼억’, 둔탁한 타격음이 울린다.



"-------"



건장한 남성 3명이 공중으로 솟구친 뒤.

망가진 장난감마냥 처참하게 지면에 추락했다.



인간의 몸에서 들려선 안 될 끔찍한 소리와 함께.

목이 180도로 꺾여 움직이지 못하는 남자들이 지면에 즐비해 있다.



그 광경을 보고 얼어붙은 인간들을 향하여,

검은 짐승이 도약.



갑옷째로 베어내고,


뼈째로 물어뜯어,


닥치는 대로 사냥해간다.




“뭐, 뭐야 저건...!”



공터에 모인 요정 사냥꾼들의 무리.

그 수령을 맡은 사내는 눈을 부릅뜬 채 중얼거렸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재앙을 납득할 수 없다.



“두, 두목...! 살려---”



도망치던 부하의 말이 끝맺기도 전에,

내던져진 바윗덩이가 남자를 위에서부터 찍어눌렀다.



‘구엑’하는 개구리 같은 단말마와 함께,

부하에게서 터져 나온 핏방울이 양 볼을 적신 순간.



삐쩍 마른 두령은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 아아아아아아아악...!!”



단말마가 이어진다.



살려달라고 비는 탄원이 무색하게도,

부하들이 일방적으로 살해당한다.




일방적.


이 광경이 일방적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칼이나 창은 짐승의 가죽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가는 반면,

부하들은 괴물이 한 번 팔을 휘두를 때마다 피를 뿜어내며 쓰러져간다.



들려오는 건 장기가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적나라한 소리.

눈에 보이는 건 주변을 적시는 붉은 피바람.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괴수의 포효는,

정신을 씻을 수 없는 공포로 밀어 넣는다.



“이, 이봐!! 잠깐만!!!

저건 당신네들이 기르는 애완견이지...!?

좀 멈춰 봐!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건데...!”





검은 짐승이 다가오는 걸 곁눈질하며.

안색이 새파래진 두령은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말로 하자! 그래, 말로 하자고!!

돈이냐?! 얼마를 원하는데?! 일단 제시해 봐...!"



흰 갑옷을 입은 금발의 무녀와

그녀의 품에서 치유를 받고 있던 소녀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두령을 응시했다.




“방금 그쪽 아가씨를 찔러댄 건 사과할 테니까!

조금...! 아주 살짝 다툰 것뿐이잖냐!

이건 그냥 사소한 오해가 불러온 해프닝... 히, 히이이이이익----!!”



부하의 목이 절단나서 눈앞에 떨어진 순간.

남자의 호소는 비명으로 뒤바뀌면서.





‘쿵’.



둔중한 발소리와 함께 거대한 사신이 코앞에 다가왔다.





"------"




인간들의 피를 잔뜩 뒤집어써 붉게 물든 채.

괴물의 황금빛 눈은 묵묵히 마지막 사냥감을 내려다보고.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목을 향해 손톱을 내질렀다.



“멈춰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목덜미를 꿰뚫기 직전.

짐승의 손이 멈추었다.



멈추려고 해서 멈춘 것이 아니다.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람이 채찍처럼 양팔과 목덜미를 옭아맨 탓이다.



0.5cm.


딱 50mm 차이로 남자의 목을 따내지 못하자.

검은 짐승은 흉악하기 그지없는 송곳니를 빠득 갈아 댔다.



“......뭔 짓거리냐, 이건.

이놈들을 처치해 달라고 한 건 네년이었을 텐데.”





짐승의 황금빛 동공이 부릅 떠진 채 뒤쪽을 향했다.



살기로 가득 찬 눈빛.


그걸 본 안경잡이 남자가 ‘히이익---!!’ 지려 버리는 반면,

아렌은 침착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말한 건 어디까지나 저들을 숲에서 쫓아내는 거지,

모조리 죽이는 게 아니에요.”



“헛소리하지 마라.

이놈들은 여기서 전부 죽인다. 후환을 없애고 싶다면 그게 가장 확실해.”



“진정하세요.

이 아이가 상처 입어서 화가 난 건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전부 다는 안 돼요.”



“헛소리 말라 했을 텐데.

그딴 꼬맹이, 나랑은 아무 상관도----”



짐승이 반론하려던 순간,

황금빛 눈이 아렌의 품에 안긴 소녀를 포착했다.





곤혹, 당혹, 공포.


그리고 또 하나.

어딘가 낯선 감정을 머금은 냄새를 풍기며.






피투성이인 소녀는 어쩔 줄 몰라한 채로 짐승을 보고 있다.





“쯧.”



검은 짐승은 강하게 콧김을 내뿜은 뒤,

아렌과 나오미에게서 시선을 돌려 버렸다.



그와 동시에,

짐승을 옭아맨 바람의 사슬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큿...?!"



아렌이 서둘러 사슬을 강하게 옭아매려 하나,

헛수고였다.



근육이 요동치며 짐승이 몸을 뒤튼 순간,

돌풍과 함께 사슬은 바람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럼 뭘 어쩌겠단 거냐.

네놈은 요정 사냥이란 걸 막고 싶은 거 아닌가?


그럼 이놈들은 전부 죽이는 게 맞아.

죄다 죽여 버리면 다시 덮쳐올 놈들도 없어지잖나.”



짐승의 목소리는 한결 침착해져 있었다.



여전히 시선은 오줌을 지린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지만,

조금 전처럼 무작정 죽이려 들지는 않고 있다.



“그 말도 이해하지만 그래선 안 돼요.

사냥꾼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최근 한 달간,

여러 무리가 숲 곳곳에서 활개 치고 있어요.”



“그럼 그놈들도 죄다 없앤다.”



“...이 정도 규모의 집단이 어림잡아 20개 이상입니다.


숫자는 나날이 늘어나는데다가,

아무래도 뒤쪽에서 전부 이어져 있는 것 같더군요.


단순히 보이는 족족 죽인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예요.

근본을 해결하지 않으면.”



아렌의 말에,

짐승은 곧장 두령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놈들 외에 다른 놈들이 있나? 전부 한패라고?”



“맞습니다요!

우리 이르바 상회 외에도 경쟁사 겸 동업자들이 24개!!





각자 고용주를 경유해서 정보를 교환하는 팀이기도 한지라!

저 예쁘장하신 아가씨가 말씀하신 게 백 번 맞습니다요, 나리!”



대화를 듣던 남자가 빠르게 안경을 고쳐 쓰며 넙죽 고개를 조아렸다.



짐승의 발이라도 핥을 기세인 걸 보고 아렌이 눈가를 찌푸렸으나,

검은 짐승의 반응은 담백했다.



"컥...?! 커윽----!"





"잠깐---!"




기다란 용의 꼬리가 두령의 목을 옭아맨다.






카드득, 목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나면서.

순식간에 두령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갔다.



"네놈들을 고용했다는 놈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쓰레기.

아니면---"



"으---! 아윽----!!"



“제 말을 좀 들어요!

상대의 규모나 전력도 제대로 모르는데 느닷없이 덮쳐서 뭘 어쩌잔 건가요!"





남자의 입에서 거품이 올라오는 걸 보고.

아렌이 서둘러 짐승을 향해 달려갔다.



"그럼 뭐 어쩌잔 거냐.

전부 죽이진 마라, 놈들의 본 거지로 쳐들어가지 마라.


그런 주제에 요정 사냥은 막고 싶다?

지금 나랑 장난치나?!"



꼬리로 옭아매던 남자를 쓰레기 버리듯 내던지면서.

검은 짐승은 아렌을 향해 뒤돌아섰다.



일주일 전처럼 당장에라도 공격할 듯.

팔에 힘줄이 돋아나 있는 짐승을 상대로 아렌은 냉정히 답했다.



"착각하지 마세요.

전 딱히 저들을 살려달라던가, 봐주라는 게 아닙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죠."



"순위라고?"



"마을의 수비를 어설프게 하면서까지,

억지로 공격할 필요는 없단 거예요.

어차피 대정령인 시튼님의 은폐를 뚫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렇다면 적당히 한 두 명 정도만 살려주고 돌려보내는 편이 유리합니다.

놈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조장시키기 위해서라도.”



“흥, 머리가 꽃밭이군 그래.

그동안 저 꼬맹이나 요정들 같은 피해가 안 나올거라 생각하나?”



검은 짐승의 말에 처음으로 아렌은 움찔하며 주변을 보았다.



피로 물든 공터.

근처에 즐비한 인간과 요정들의 시체.




그리고 상처 입은 채 쓰러져 있는 나오미와 몇몇 요정을 본 뒤.

금발의 무녀는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어쩔 수 없어요.

마을에서 싸울 수 있는 건 저 뿐이니까요.


불확실한 상태로 공격해 들어갔다가,

만약 무슨 일이 생겼다간 마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리는 무녀를 보고,

검은 짐승은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손톱으로 갈기를 벅벅 긁어내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짐승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됐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라, 쓰레기."





"!!"




연신 눈치를 살피고 있는 남자를 향해 시선을 옮기며.

검은 짐승은 못마땅한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뭘 꼬라보고 있냐, 얼른 꺼져.


그리고 다른 패거리한테 전해라.

요정들의 마을에는 터무니없는 괴물이 살고 있다고.



이 여자만이 아니야.

다음에 쳐들어올 때는 나까지 상대해야 할 거다."






"...당신은."





옆에서 눈을 휘둥그레 뜨는 무녀를 무시한 채.

짐승은 묵묵히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위축되면서도 절호의 기회를 놓칠쏘랴,

남자는 안경을 바로쓰며 연거푸 허리를 숙였다.





"가, 감사함다, 형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슴다! 그럼 전 이만!! 살펴가십시오!"





"......도망치는 속도 하나는 대단하군, 저놈."




죄다 죽어 버린 부하들에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도망치자.

짐승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이해해주셔서."



그 말에 짐승은 힐끗 옆을 보았다.





어느새 곁에 서 있던 건지.

금발의 무녀가 뾰족한 귀에 걸린 머리칼을 매만지며 올려다보고 있었다.






"감사따위 필요 없어.

그냥 귀찮아져서 내던진 것뿐이지.


그보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 뭔가요?"




"네놈이 인간을 죄다 죽이지 않는 이유는,

정말 그게 전부인가?"



"-----"





마치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하듯이.

금발의 무녀는 가만히 입술을 오므렸다.



시간으로 치자면 대략 10초 남짓한 침묵.




아렌이 입을 다물고,

짐승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는가운데.



거북한 분위기는,

검은 짐승이 시선을 돌려 버리는 걸로 끝이 났다.



"뭐, 네놈이 속으로 뭘 고민하든 이걸로 조건은 달성한 거겠지.

나중에 그 대정령인지 뭔지 하는 놈한테 안내해라.


놈한테는 들을 말이 있으니까."



"...네.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이번 일로 당신들을 좀 다시 보게 됐으니까요."




그걸로 무녀와 짐승의 대화는 끝이 났다.


검은 짐승은 더 이상 무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금발의 무녀도 살아남은 요정들을 챙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만한 상대는 한 명밖에 남지 않게 되면서.





검은 짐승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용케 살아남았군, 꼬맹이. 몸은 어떠냐."



"아..."



검은 짐승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한 마디였다.


시큰둥하면서도 무관심한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

하지만 틀림없이 나오미의 몸을 걱정하는 내용.



"저, 저기...”



상처투성이인 소녀는 입술을 옴싹거리며 짐승을 올려다본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짐승이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건만, 그럴듯한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감사 인사가 먼저일 테지.

구해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살았다고.



실제로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만큼,

생명의 은인에게 예를 표하는 건 당연할 터였다.



하지만---



"뭐냐. 그 얼빠진 표정은. 그렇게 내가 무섭나?"



말을 맺지 못하는 나오미를 내려다보면서.

짐승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검은 짐승에게 두려움을 품고 있단 걸.



그리고 그 공포심은,

조금 전에 학살을 보고 더욱 커졌다는 걸.



"---어째서?"



"응?"



그렇기에,

붉은 소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의문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사자씨는 알고 있잖아요?

제가 사자씨를 안 좋게 생각하는 걸."



그래.

이 검은 짐승은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다.



천부적인 감각인가.

그도 아니면 괴물이 되어서도 잃지 않은 센스인가.



나오미라는 소녀는 검은 짐승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겉으로는 친하게 지내려 해도,

속으로는 괴물이라 경멸하는 최악의 인간이라고.



그걸 진작에 알아챘을 텐데.



"---그런데도 왜 그렇게 열심히 싸우신 거죠?"



구할 리 없다고 여겼다.

죽기 일보 직전까지 몰려도 짐승이 와서 구해주는 건 생각도 안 했다.





어떤 기적이 일어나도.

이 사람이 자신을 구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위선적인 인간을 구태여 구할 이득 따위.

그에겐 아무것도 없을 텐데도.



이렇게 구해졌다는 사실이 미안 해서.

이 순간까지 '무섭다'고 느끼는 자신에 대한 혐오와 죄책감이 앞서고 만다.





"뭔 헛소리냐, 네놈은."





"네?"





예상 밖의 대답에,

붉은 소녀는 멍한 표정으로 짐승을 올려다 보면서---





그런 그녀를,

짐승은 콧방귀를 뀌며 손사래를 쳤다.



"내가 네놈을 구했다고? 그럴 리가 없잖나, 우연이다 우연.

별 쓸데없는 거로 고민하는군, 자의식 과잉인 관종이냐?"



"관종...?!"



"난 내 목적을 위해 이곳에 와서 싸웠다.

그곳에서 우연히 네놈이 멋대로 죽어 갔을 뿐이지.


저 무녀란 년도 그렇고, 네놈도 그렇고 뭔가 묘하게 착각한 거 같은데.

내가 굳이 네놈을 특별시할 이유가 어디 있냐?"



"아--- 그, 그렇죠...! 하하!

...하긴, 저 같은 게 무슨---"



얼굴이 새빨개진 채 얼버무리듯이 웃으며,

나오미는 팍 고개를 숙여 버렸다.



당장에라도 땅에 얼굴을 처박고 싶다.

착각도 유분수지,

이렇게 또 새로운 흑역사가 늘었다고 절망하고 있자니.



짐승이 낮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이 멋대로 자기 비하하면서 비굴해지는 건 상관없다만.

모처럼이니 나도 하나 물어보자, 꼬맹이.


저 무녀 년이 말하길 네놈은 생판 처음 보는 날 의지하는 것 같다는데.

사실이냐?"



"하, 하필 그걸 물어보시는 건가요...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 건데..."



"?"



당최 이해가 가질 않는 듯 짐승은 고개를 갸웃한다.





이해할 수 있을 리 없겠지.

나오미 자신도 머릿속이 매우 복잡한 것이다.



자신과 닮은 꼴이라 생각하고 의지하려 한 주제에.

속으로는 무서워하고 경멸하는 이중적인 태도.



그런데도 도움을 받아,

죄책감과 감사를 동시에 느끼는 입장인 것이다.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유... 어, 이유는...

같은 시대 출신이라서...?



아! 같은 시대란 게 무슨 소리냐 물으실수 있는데!


저는 이곳이 저희가 있던 현실보다 더 예전이라고 생각하는지라...!"



“...3천 년 전의 세계니 뭐니,

이전에 네놈이 중얼거렸던 걸 말하는 건가?”



“어!? 들으셨어요, 그걸!?”



어떻게든 변명하려고 횡설수설하던 나오미는,

생각지못한 대답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저! 그게 말이죠!

좀 들어 보세요, 사자씨!


실은 저,

이곳이 저희가 있던 시대보다 더 옛날이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아, 그래. 그것참 대단하군.”



“지, 진짜라니깐요?!

근거가 4개 쯤 있는데 일단 제 설명을 들어 보시면...!”



먼 곳을 보며 거들떠도 안 듣는 반응을 보고.

나오미는 얼굴을 붉히면서 열정적으로 설명하려 들었다.



부끄러움도 잠시뿐.


한번 말꼬리가 트여 계속해서 설명하지만.

문외한인 짐승은 완전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릴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네 말대로 이곳이 과거라면, 현재의 숲은 어찌 됐단 거냐.

뭔가 큰 차이라도 있나?”



“그건---”



대충 꺼낸 질문이었다.



정말로.

소녀의 설명이 너무 길어져서 적당히 끊어 버리고자 던진 질문.




하지만 금방 대답이 나올거로 생각한 답은 나오지 않은 채.

붉은 소녀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만다.



“...뭐냐?

네놈이 말하는 현재에서 이 숲은 뭐 달라진 건가?”



검은 짐승은 새삼 진지하게 소녀를 본다.


그 시선이 거북한 듯.

나오미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해 '그곳'을 보았다.



살아남은 요정들을 챙기면서 그들을 치유하는 여성.


자애로운 미소를 띄우며,

요정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천명의 무녀를.



"----"



짐승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나오미를 쫓아,

금발의 무녀를 바라보면서.



괴물은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하나만 물어보마.

간결하게 답해라, 꼬맹이."



나오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한 폭의 동화라도 보듯, 요정과 무녀를 응시하면서.



“이후에 저 녀석과 요정들은 멸망하는 건가?”



“...적어도 현재에서.

베라른에 살아 있는 생물이 있단 소리는 전혀 못 들었어요,”



그걸로 둘의 대화는 끊겼다.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곧 있으면 찾아올 임종을 지켜보듯,



괴물과 소녀는 그저.

환하게 웃고 있는 무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작가의말

2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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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절 - 요정 사냥 (2) 22.11.20 12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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