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장도(6)
제5장. 장도(壯途)-(6)
마틴 킴과 통화를 마치고 난 류승진이 푸념을 늘어놓는다.
“속고만 살았나? 사람 말을 믿지를 않아요. 하긴 방금 본 나도 아직 실감이 안 나는데 안 본 놈들은 오직 하겠어? 그나저나 어디서 갑자기 이런 괴물이 툭 튀어나온 거야. 야, 영신아 너 사람은 맞니?”
재우와 찬성의 허접한 실체를 파악하고 난 류승진은 영신에게만 달라붙어 질문을 퍼부어 대다 또 놀라고 말았다.
“하루에 매일 108마일 정도의 공을 100개씩 던진다고? 겨울에도?”
“특별한 일이 없음 항상 하는 일인걸요.”
“로봇이냐?:
“인간입니다.”
“나는 불펜 세션도 안 하는데.”
“아, 등판을 안 하는 날 한 50개씩 던지며 컨디션 점검하는 거요?”
“그래. 모든 선수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해. 여기 처음 올 때 욕 좀 먹었다. 담배도 그렇고. 아, 담배는 내 스스로 끊었다. 너도 메이저리거로 성공하려면 담배는 피우지 마라. 이동 거리가 워낙 길어서 피로도가 장난이 아니다.”
“저는 등판하는 날만 경기장에 가고 다른 날은 안 가는 조건으로 계약하려고 하는데요.”
“응? 경기장을 안 간다고? 그건 아니다. 연봉 3천만 달러를 받는 커쇼도 모든 경기장을 다 따라 다닌다. 팀플레이를 해야 하는 야구에서 개인행동은 평판에 치명적이 되고 그러면 동료들도 별로 안 좋아하지. 미국인들은 그런 걸 엄청 따져. 그리고 몇 천 키로 떨어진 도시에서 시합하는데 혼자 온다는 건 경비도 경비지만 엄청 힘들걸.”
메이저리그 전체의 분위기가 그렇다면 아직 신인인 자신이나 친구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멋지게 살고 싶은 거지 수련에 모든 걸 거는 건 아니지 않는가? 재우나 찬성도 당연히 무공수련에 평생을 바쳐 산 속에 들어가 신선처럼 사는 걸 원하진 않는다. 왜 메이저리거가 되고자 했는가?
“그게 안 된다면 제가 양보해서 숙소라도 따로 썼으면 합니다. 저는 꼭 산이 있는 숲 근처에서만 잘 수가 있거든요. 지금도 캠핑카를 이용해 매일 근처 산에 가서 잡니다.”
“진짜? 왜? 도시에서는 못 잔다는 거야?
“일종의 명상 같은 걸 매일 해야 하는데 도시는 공기가 탁해서 별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명상을 한다고?”
“예.”
”뭔 명상을 산에서만 해야 돼?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긴데 구단에서 받아들이겠냐? 아마 어려울 거다.”
“그러면 어차피 알게 될 테니 미리 밝히는 말이지만 제가 6년간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복잡한 도시보다 숲이 있는 산 근처에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면 이해하지 않을까요?”
“뭐! 식물인간! 6년을 병원에 누워있었다고!”
“예. 고2 때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는데 수술을 하다 마취사고로 그렇게 됐습니다.”
“믿을 수가 없구나! 6년간 병원에 누워 있다 일어난 놈이 그런 무시무시한 공을 던진단 말이야?”
“어느 날 식물인간에서 깨어나 엉망이 된 몸을 회복시키려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제 능력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 이후에 22개월 동안 연습한 걸로 이렇게 된 건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마 더 좋아질 겁니다.”
“헐! 여기서 더 좋아진다고?”
“틀림없이요!”
“구단에서 난리가 나겠군!”
그날 메이저리거 류승진이 호텔도 마다하고 끝까지 캠핑카에 따라와 뭔 명상을 하는 지 구경을 했지만 저녁과 새벽에 산속에 고요히 앉아 세 시간이 넘게 명상만 하는 모습을 보고는 혀를 내두르고 호텔로 돌아갔다.
마틴 킴의 연락을 받은 LA다저스 구단 감독은 류승진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점과 실제로 동계훈련을 온 한국의 프로구단이 스콧데일 스타디움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경기장이 같은 지구의 앙숙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곳이라는 점, 그리고 만의 하나라도 실제 그런 투수가 있는데 자이언츠에 뺐기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하고 난 후 반은 속는단 셈치고 마틴 킴, 투수코치와 함께 스콧데일스타디움의 훈련장을 찾아 류 감독과 인사를 나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삼성라이온즈의 감독 류종일입니다.”
“반갑습니다. 류의 연락을 받고 오긴 했습니다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108마일을 던지는 투수가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컨트롤까지 완벽하다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 심정 제가 잘 압니다. 근데 그 믿기지 않는 투수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저도 며칠 같이 있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없는 공을 던진다는 겁니다. 그러니 타자에겐 대항 자체가 불가능한 투수란 거지요.”
마틴 킴의 통역을 들고 난 다저스 감독과 투수코치는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투수의 손에서 떠난 공이 스피드 건에 찍히는 것이지만 실제 타자가 상대하는 홈플레이트로 와서는 보통의 투수의 경우는 많게는 10% 정도 구속이 떨어지는 것이 물리의 법칙이다. 삼성의 오승환 선수가 던지는 돌직구가 150km 초반인데 왜 못 치나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오승환의 공은 5% 미만의 구속 저하만 있어 실제론 160km의 공과 같은 위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데 170km의 공이 구속 저하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포수의 미트에 공이 들어올 때 160km의 구속만 보여도 실제로는 176km 의 직구와 같은 효과를 보는데 종속 170km의 공이 미트에 들어오면?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다시 류 감독의 말이 다시 통역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속도를 늦추면 나이를 감안해도 최소 10년을 써 먹을 수 있단 소리고 지금이 겨울이라 몸이 덜 풀린 것 까지 감안하면 시즌 중에는 어떤 공을 던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선수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희망하는데 제가 류승진 선수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다저스로 가야 한다고 설득했으니 나중에 술 한 잔 사야합니다.”
긴 얘기를 나눌 필요가 없는지라 류 감독은 자이언츠로 가려고 하는 영신을 자신이 잡아뒀다는 것만 강조하며 LA다저스와의 유대감을 쌓는 기회로 삼고자 했고 다저스의 관계자들도 점점 비중을 더해가는 동양권 선수들의 추세를 고려했을 때 한국의 명문 구단 감독을 알아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었기에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다.
잠시의 인사를 마치고 류 감독이 준비를 시켜 마운드에 선 영신의 첫 인상은 마치 텍사스의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를 보는 것 같아 나쁘지 않았다.
스피드 건이 두 대 설치되어 초속과 종속을 재기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10인치 높이의 마운드에서 영신이 뿌린 공이 18.44m 떨어진 재우의 미트 속을 빠르게 파고들며 요란한 굉음을 만들어냈다.
“뻐~엉!”
“오, 마이 갓!”
그날 영신은 대충 30개의 공을 던졌는데 모두가 절묘하게 스트라이크 존 외곽을 파고든 데다 직구는 최저 105마일, 최고 108마일을 찍었는데 공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속도가 더 올라갔고 커브는 93~95마일을 꾸준하게 찍어댔다.
이제 메이저리그도 패스트볼 시대가 도래 해 100마일 이상을 꾸준하게 던질 수 있는 투수가 한 팀당 1명은 있을 정도다. 2013년엔 채프먼이 105마일(169km)의 공을 던진 적이 있었고 그 후로도 간혹 105마일을 기록한 투수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그들은 하루에 한 개 정도의 공을 어쩌다 던질 수 있을 뿐이었고 영신은 105마일 이상을 9회까지 계속 던질 수 있는 투수다. 거기에 포수의 미트를 파고드는 종속을 따지면 비교자체가 안 되는 것이니 다저스 구단의 수뇌부가 황홀경을 노닐게 된 건 당연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다저스 구단 관계자에게 류승진이 매일 저 공을 100개씩 던졌다는 것과 무적(無籍)의 아마추어라는 것, 이게 22개월 연습의 결과이고 본인 이야기로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 했다는 말을 전하자 감독은 바로 단장에게 연락을 해 29년간 우승을 하지 못한 한을 푸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를 보게 될지 모르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가장 빠른 시간에 이곳으로 오도록 조치했다.
그 후 재우와 찬성의 테스트도 있었지만 영신이 보여준 투구와 타격에 대한 임팩트가 워낙 강한 탓에 떨거지 취급된 두 사람에겐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영어로 프리 토킹이 가능한 영신과의 대화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놈을 뺏기면 이 바닥에서 영원한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반대로 이놈이 부상만 당하지 않고 시즌을 계속할 수 있다면 역사에 남는 업적을 세울 수 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얼마의 돈을 지불하더라도!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잡아야 한다.’
다저스 구단 감독의 결심을 도와주기라도 하듯이 스카우트는 물론이고 구단주 매직 존슨까지 데리고 오는 수완을 부린 단장은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계약을 위해 이빨을 물고 참아야 하는 고통을 즐겼다.
“어메이징! 판타스틱!”
‘양키스! 자이언츠! 디백스. 레드삭스! 카디널스! 레인저스! 니들 다 죽었다고 복창해!’
- 작가의말
“뻐~엉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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