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장도-(3)
제4장. 장도(壯途)-(3)
전 속력으로 외야까지 헐레벌떡 뛰어 온 류 감독의 첫 마디는
“니 어디 선수고?”
“선수 아닌데요.”
“선수 아니라고! 지, 진짜가?”
“작년에 고졸 검정고시 통과하고 섬에서 친구들과 야구 연습만 했습니다.”
“섬에서 야구를 해? 몇 살이냐?”
“우리 나이로 이제 27살입니다. 생일이 안 지났으니 만으로는 25살 5개월 됩니다.”
“마운드에서 던져 본 적은 있나?”
“대충 높이는 맞추고 던지긴 했는데 정식 마운드는 아직입니다.”
“가자! 마운드에서 함 던져 봐라.”
“예!”
“공은 누가 받아주고?”
“저기 있는 친구가 포수를 하면 최고스피드로 던질 수 있습니다.”
“갸도 오라 캐라.”
“재우야, 창선아! 니들도 내려오란다.”
영신이 고함을 치며 내려오란 손짓을 하자 재우와 창선은 각자의 가방을 챙겨 부리나케 철망을 돌아서 뛰었다.
“아자! 공 한 번만 뿌리면 만사 오케이 될 줄 알았다.”
“류 감독이 영신일 놔 줄 것 같지 않은데.”
“미쳤냐! 메이저리그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가게.”
“미친 게 아니라 대가리에 총 맞지 않은 다음에야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쉽지는 않겠다.”
영신이 마운드에 오르자 모든 선수와 코치진이 영신의 뒤와 포수 뒤 철망으로 몰렸고 스피드 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급하게 마스크를 쓰고 완전 무장을 한 포수는 무려 네 번째 FA를 선언한 불굴의 노익장 진감용이었다.
절대로 밥줄을 양보할 생각이 없는 재우가 이를 두고 볼 리 만무하다.
“저기요? 혹시 170키로의 공을 받아 보신 적이 있으세요. 잘못하면 선수 생명 끝나는 수가 있는데…….”
“…….”
“나는 140km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스피드를 올려가며 했어도 몇 차례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웬만하면 제가 하는 게 좋은 것 같은데.”
“…….”
“가끔 실수로 공을 잘못 받아서 손가락 골절을 당한 적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니가 받아라.”
“옙!”
재우가 제 가방에서 장비를 챙겨 몸에 착용하는 동안 영신도 창선이 내미는 운동화를 갈아 신고 자신의 글러브를 낀 채 마운드에 섰다.
191cm의 키에 92kg. 그 동안 살도 조금은 붙었지만 예술적인 근육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김영신과 182cm의 키에 96kg의 탄탄한 체구를 가진 이재우가 배터리로 마운드와 홈플레이트에 선 것이다.
‘이제 시작인가? 잘 되겠지?’
긴장된 마음으로 침을 삼키고 지켜보는 최창선과 달리 침착하게 보폭에 맞게 마운드를 고르던 영신에게 재우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영신아, 정식 마운드는 처음 서는 거니까 살살 시작하자!”
고개를 끄덕인 영신이 호흡을 고르고 긴 다리를 뻗어 와인드 업을 한 후 힘차게 공을 뿌렸다.
뻐엉!
가운데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서너 개 정도 높이 통과한 공이 재우가 내민 미트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꽂혔다.
“161키로 찍혔습니다.”
사람들이 놀라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영신은 자신이 던지는 공에만 집중했다.
두 번째 영신이 던진 공은 처음 공 보다 조금 더 낮게 들어 왔지만 역시 볼, 공 하나 반 정도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높게 통과했다.
“163키롭니다.”
더 큰 소란이 있었지만 영신은 묵묵히 공을 뿌렸다. 세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존 상단을 통과해 꽂혔다.
“헉! 166키로!”
태어나서 처음 보는 스피드, 166키로의 공을 본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헉 소리가 나오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네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존 중앙에 뻥! 소리를 내며 꽂히고 있었다.
“167키로!”
다섯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존 낮은 곳을 걸치고 있었다.
“167키로!”
모든 사람이 충격적인 상황에 처해 공황상태인데 그때 재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야, 김 영신! 감 잡았으면 기어 올려!”
“말도 안 돼!”
“맙소사! 여기서 더 올린다고?”
“그러고 보니 조금씩 낮게 내려온 게 다 컨트롤해서 던진 거 아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시끄럽다! 아가리 못 닥치나!”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영신의 발이 10cm 쭉 더 뻗었다고 생각했을 때 미트 정 중앙을 뚫는 소리가 울렸다.
뻥!
“171! 세상에!”
“엄마야!”
“스피드 건 고장난 거 아이가?”
모두가 믿을 수 없는 장면에 경악을 하고 있는데 포수의 미트가 우타자 꽉 찬 인코스 낮은 쪽을 요구했다.
“타자 낮은 쪽 꽉 찬 곳이다! 저게 가능하다고?”
“설마!”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영신의 손을 떠난 공이 정확히 재우가 대고 있는 미트를 무섭게 파고들며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뻐엉!
“172!”
그 다음에는 170키로가 넘는 공들이 포수 재우가 미트질을 하는 자리로 요술 같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삼성라이온즈 코치진과 선수들 모두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직구만 30여개의 공을 던지고 있는 영신에게 류 감독의 요구가 날아들었다.
“변화구는 없나?”
영신이 류 감독을 빤히 보다 물었다.
“변화구가 필요하겠습니까?”
“9회까지 이 속도로 던질 수는 없지 않나?”
“9회 까지 가능합니다. 7회나 8회 까지라면 더 빨리 던질 수 있고요.”
“휘~유! 천하무적이 따로 없네. 하지만 그래도 여긴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메이저 리그가 아닌가? 혹시 짧게 쥐고 맞추기만 하겠다고 덤비면 공이 워낙 빠르다보니 반발력이 커서 장타가 나올 수도 있을까 걱정이 드네. 이 스피드에 변화구 하나만 있음 무적일 것 같은데.”
“여기서 밑천 다 드러내면 깨끗이 포기하고 도와주시겠습니까?”
“솔직히 자네가 욕심이 안 난다면 감독 사표 써야겠지. 하지만 한국으로 데려가기엔 너무 아까운 능력 아닌가? 게다가 여기서 밑천이 더 남았다면야 뭐, 깨끗이 포기하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네.”
“가능하다면 마지막은 감독님이 계시는 구단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힘 다 빠진 다음 오면 안 되네.”
“최소 160km 이상일 때 가겠습니다.”
“그때가 기대되는구만!”
영신이 마운드에서 150키로 이상의 레인보우 커브를 몇 개 던져 보여 모두의 턱을 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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