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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삼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왕씨세가 초대가주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구삼일생
작품등록일 :
2022.05.25 17:28
최근연재일 :
2022.07.08 11:00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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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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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글자수 :
240,503

작성
22.06.1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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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24 - 용봉지회 둘째 날(2)

DUMMY

심판의 승리 선언 이후 한동안 묘한 정적이 흘렀다.

을(乙)조의 우승이 확실시되던 하북팽가의 삼남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인에게 패했다는 것. 그것도 상대는 식칼 두 자루만으로 팽가의 그 유명한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를 제압해 내었다.

보통 이런 멋진 대결이 펼쳐지면 으레 구경꾼들의 환호가 이어지기 마련이었지만, 다들 충격에 빠져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충격에 빠진 건 구경꾼들뿐만이 아니었다. 단상 위 귀빈석의 무림맹의 주요 인물들조차 놀라움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 계속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검황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군.”


그러자 사람들의 질문 공세가 검황에게 이어졌다.


“거, 검황께서는 저 무공이 어디의 무공인지 아신단 말씀입니까?”

“어디의 무공입니까?”


검황이 별 대단한 정보도 아니라는 듯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오문(下汚門).”

“하, 하오문이라니요.”


검황이 말했다.


“무림사 책에 버젓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인데, 다들 모르는가 보군. 수백 년 전에 식칼 두 자루만을 사용하는 무공으로 당대 절대고수 중 하나로 평가받던 오래전의 하오문주에 관한 이야기 말이오.”


검황의 말에 다들 이제야 기억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와중에 유독 한 사람이 그 말에 흥분하여 소리쳤다.


“하오문이라니! 하오문의 무인이 어찌 백도의 용봉지회에 참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시합은 당장 무효처리해야 합니다!”


소리친 사람은 조금 전에 무참하게 패한 팽석규의 아버지이자 하북팽가의 가주였던 팽진오였다.

그러자 검황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팽가주가 아들이 패해서 충격이 컸나 보군. 벌써 잊은 건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가?”

“무, 무슨 말입니까?”

“저 종원이란 무인의 소속이 어딘지, 그리고 누구의 추천서를 가지고 이 대회에 참가했는지 진정 모른단 말인가?”

“그, 그게 무슨······?”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팽진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


검황이 말했다.


“저자는 ‘그 사람’의 추천서를 가지고 여기에 참가했네. 뭐 자네가 ‘그 사람’을 무시하고 용봉지회에 개입해서 실력행사를 하겠다면 말리지 않겠다만. 자네에게 그럴 배짱이 있을지 모르겠군.”

“······.”

“혹시나 내가 나서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일세. 비겁한 수를 쓴 것도 아닌 정정당당한 대결이었고, 참가규정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와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웃긴 일이니 말이야.”


팽진오가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검황은 비무대 위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제 그 어린 친구도 그렇고 저자도 그렇고······ 강호의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군, 허허.’


***


왕운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비무대를 내려온 종원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종 형! 고기 요리만 잘하시는 줄 알았는데 사람도 잘······ 아, 말이 좀 이상한가? 어쨌든 축하해요, 종 형! 이제 올해의 도룡(刀龍)은 형님이 따 놓은 당상이에요. 안 그래요?”

“고맙습니다. 그러나 아직 시합이 다 끝난 건 아니니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오.”

“에이, 겸손이 지나치시네. 을(乙)조는 저놈 말고 딱히 강자도 없다던데요?”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되겠지요.”


지켜보던 유신이 왕운에게 말했다.


“이 친구 말이 맞다, 운아. 이 친구처럼 숨은 실력자가 어딘가에 또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운이 너도 방심하면 안 된다. 알겠지?”

“네, 할아버지.”


유신이 고개를 돌리더니 종원에게 말했다.


“그렇다 해도 자네의 실력은 정말 놀랍군. 어찌 그런 작은 식칼로 그렇게 훌륭한 솜씨를 보일 수 있단 말인가?”

“과찬이십니다.”


처음에는 용봉지회에 오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유신이었다. 자신의 옛 제자가 생각나기도 했고, 무엇보다 왕운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짜 이름과 인피면구로 왕운의 위험이 없어진 지금은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런 젊은 고수들이 많을수록 왕운, 척영, 사걸에게 자극이 되고 좋은 경험이 될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유신이 왕운에게 물었다.


“다음 시합은 언제냐? 오늘은 그게 마지막이지?”

“예, 할아버지. 저기 一 비무대에 세 시합 뒤에요.”

.

.

.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왕운의 오늘 마지막 시합이 다가왔다.

왕운의 상대는 다리를 주로 사용하는 각법(脚法)으로 유명한 현월문(弦月門)의 진창환이라는 사내였다.

왕운이 무(戊)조에서 이제껏 만난 상대들은 권장(拳掌)을 주로 사용했던 자들이었다. 다리를 주로 사용하는 상대는 처음.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 형편없는 위력에 실망하고 말았다.

왕운이 적당히 합을 맞춰주다가 이제 막 끝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환호와 함성이 들렸다.


‘뭐지? 설마 사람들이 이제야 나의 진가를 알아본 건가? 아······ 안 되는데. 벌써 내 실력이 드러나면 안 되는······ 응?’


혼자서 김칫국을 잔뜩 마시면서 망상에 빠진 왕운이 주변을 보니 자신이 아닌 바로 옆의 二 비무대를 향한 함성이었다.


“남궁두다!”

“올해의 검룡(劍龍) 후보!”

“아니야, 검룡 뿐 아니라 용봉지회 전체의 우승후보란 말도 있어.”


훤칠하고 잘생긴 얼굴에 하늘색 무복이 잘 어울리는 젊은 검수가 비무대를 오르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 남궁박으로부터 가주직을 물려받고 남궁세가의 가주가 된 남궁제가 단상 위에서 자신의 아들인 남궁두를 기대감에 잔뜩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20년 전, 왕혁에게 패하고 용봉지회 우승은커녕 검룡의 자리에도 오르지 못한 남궁제는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히 컸다.

왕운은 쏟아지는 환호와 함성도 짜증났지만 남궁두가 남궁세가의 사람이라는 것이 묘하게 거슬렸다. 그러나 평정심을 유지하고 자신의 시합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래도 내 사람들은 내 시합을 지켜봐 주시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유신 일행은 자신을 보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왕운의 눈에 기대와는 다른 장면이 들어왔다.

이문환과 유신은 심각한 표정으로 남궁두 쪽을 바라보며 무언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사걸, 하엽, 종원, 심지어 척영까지 이문환과 유신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시합을 보고 있지 않았다.

이런 왕운의 속도 모르고 이문환과 유신은 남궁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유신이 말했다.


“무척이나 소란스럽군. 저 아이가 그렇게 대단한 아이란 말이오?”

“남궁세가 자체가 유명한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다른 이유라 하면?”

“자식들을 경쟁시킴으로써 모두에게 공평하게 소가주가 될 기회를 주는 다른 세가와는 달리, 남궁세가는 철저한 장자 계승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요. 장남이 태어나면 온갖 영약은 물론이고 가문의 절기까지 미리 가르치면서 철저하게 관리를 합니다.”

“흠······.”

“그러다 보니 ‘남궁세가의 소가주’라는 직위는 다른 문파나 세가의 그것과는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핀 이문환이 말을 이었다.


“근래에 들어 남궁세가의 소가주들은 전부 용봉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태상가주인 남궁박은 어린 시절에 화산의 검황에게 패했고······”

“지금의 가주인 남궁제도 20년 전에 누군가에게 처참하게 패했지요.”


이문환의 말을 하엽이 대신 이었다. 하엽은 평소답지 않게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신은 그런 하엽을 보고 그 누군가가 자신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문환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 남궁세가 전체가 남궁두에 거는 기대는 상당합니다. 올해 남궁두가 17세가 되었기 때문에 다음 용봉지회는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한편, 진창환은 왕운이 눈앞의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엉뚱한 곳을 쳐다보고 있자 매우 화가 났다.

쓴맛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 진창환은 왕운이 한눈을 팔고 있는 틈을 타 강력한 발차기를 왕운의 머리 옆부분에 적중시켰다.


‘이걸로 끝이······ 뭐야, 왜 안 쓰러져?’


당황한 진창환이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으며 왕운의 전신에 자신의 발차기를 먹였다.

그러나 왕운은 충격을 전혀 받지 않은 채 유신 일행을 보고 있었다. 유신 일행은 여전히 자신을 보지 않고 남궁두가 있는 비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운은 제대로 심통이 나고 말았다.

그러다가 눈앞에서 뭔가가 자꾸 알짱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앞을 바라보았다. 마침 진창환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다리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왕운은 날아오는 진창환의 발목을 손으로 붙잡았다. 진창환이 붙잡힌 자신의 발목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왕운은 진창환의 발목을 손에 붙잡은 채로 자신의 몸을 축으로 진창환의 신형을 빙글빙글 회전시키더니 그대로 남궁두가 있는 비무대로 던져버렸다.

용봉지회를 위해 특별 제작된 비무대는 참가자의 경공 실력도 볼 수 있도록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십여 장(약 30m)에 이를 정도로 넓었다. 게다가 각 비무대 사이의 간격도 옆의 시합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쿵!


순식간에 그 먼 거리를 날아온 진창환의 신형이 큰 소리와 함께 남궁두의 바로 앞에 추락했다. 진창환은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궁두가 기분 나쁜 표정을 하고 진창환을 자신의 앞으로 던진 왕운을 쳐다보았다. 왕운은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남궁두와 잠시 눈을 마주친 후 곧바로 고개를 돌려 심판을 쳐다보며 말했다.


“판정이요.”


심판 역시 눈앞에 벌어진 일 때문에 충격을 받고 멍하게 있다가 왕운의 말에 정신이 들었는지 큰소리로 외쳤다.


“자, 장외! 자교서원 이운,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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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028 -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소 22.06.16 640 15 14쪽
27 027 -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1 22.06.15 628 15 12쪽
26 026 - 이제는 못 참아 +1 22.06.14 637 16 12쪽
25 025 - 참으로 딱한 사람이오 +1 22.06.13 644 16 13쪽
» 024 - 용봉지회 둘째 날(2) +3 22.06.12 669 1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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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020 – 출격! 용봉지회 22.06.08 711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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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18 – 전신(戰神)의 후예 +2 22.06.06 736 1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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