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130,967
추천수 :
2,769
글자수 :
1,307,372

작성
18.09.05 06:00
조회
774
추천
18
글자
22쪽

The Gear(1)

DUMMY

스와아아..

이름모를 야산의 공터. 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질 무렵, 태풍이 지나간 그 자리에는 온통 진흙과 떨어진 나뭇잎으로 더렵혀져 있었다.

그런 장소에서 여러 인영들이 능숙하게 간이천막을 설치하고 간이침대 및 취사도루를 꺼내 조리를 하는 모습사이로 연기가 하늘로 쏫구쳐 오르고 있다. 그들 대부분 거지꼴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옷가지가 찢겨지고 그사이로 먼지가 묻어 얼룩덜룩한 피부가 드러난 상태로 움직이거나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십여명에 가까운 인원이었지만 기이한 것은 발자국 소리도 떠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주변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천막과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만 들려온다는 것이었다. 마치 보이는 사람들의 그림자들은 신기루나 환영인 듯.

이들은 격한 전투를 마치고 복귀하는 바위모임의 사이퍼들이었다. 수십만에 달하는 전투와 신세계의 우두머리와 그에 비견되는 사이퍼를 상대하느라 진이 빠지고 크게 다친이들도 간간이 보였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마치 일상의 모습인것 처럼 말이다.

막 식사를 끝낸듯 모두가 편안히 여기저기 각자의 자리에서 철퍼덕 앉아 휴식을 보내고 있었다. 말이 휴식이지 대부분 상처치료나 응급조치를 한 자신의 몸상태를 돌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 사이로 눈에 띄는 인물 세명이 나란히 앉아 어딘가를 보며 나지막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그래? 그 다크란 여자가 떠났다고? 이상하네.. 걔도 너희과 던데.. 바위랑 싸우고 떠난 여자는 그 여자가 처음인듯. "

" 뭔 개소리야. 지가 싫으면 가는거지. 그리고 남아있더라도 바위를 노렸으면 지금쯤 대가리랑 몸이랑 마주보고 있을텐데. "

사스가 마치 마실이라도 나간다고 말하는 듯 평온하게 대꾸했다. 그말에 일우는 미간을 찡그렸지만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괜히 건들여 피곤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 뭐, 알아서 하겠지. 그녀도 만만치 않던데.. 하긴.. "

다크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일우의 기준이었고 이 두여자에 비하면 경험도 능력도 많이 하수일 것이 분명했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이 두여자의 능력을 가늠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약했다. 그래도 예전에는 비빌수는 있었는데..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그런 와중에 다희의 시선은 정면에 꽂혀 있었다. 일우와 사스도 말을 나누면서 시선은 다희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바위가 있었다.

바위는 전투 중 입고 있던 옷이 몽땅 날라간 상태였고 일우가 배낭에서 급히 꺼낸 체육복 하의만 걸친 상태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저녁을 먹자마자 넓은 공터를 지 혼자 사용중에 있었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하겠나, 그냥 지 멋대로 해도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는 그는 이곳의 주인이었다.

" 근데, 바위 뭐하는 거야? 태극권 수련인가? "

예전에 티비에 나오던 중국 할배들이 흐느적 거리며 태극권 수련이라며 체조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일우가 바위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비슷한 모습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바위는 그 말이 그리 틀리지 않게 보였다.

다른 점은 뭐라 딱히 꼬집을 수 없었지만 아름다웠다. 마치 춤을 추듯이 천천히 움직이는 바위의 모습은 신이 빗어낸 인간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훌륭했다.

천천히 휘돌리는 팔을 따라 물결치듯 움직이는 잔근육과 그의 움직임에 따라 미세하게 끔틀거리는 근육들의 향연.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저런 근육을 가질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되는 일우였다. 인간이 가진 근육 중 단련이 불가능한 불수의근까지 단련시킨 모습인듯 보였다. 서양의 로이더처럼 약물로 키운 근육이 아니라 촘촘하게 밀도 높은 근섬유를 한올한올 꼬아서 만든 근육의 모습이 저럴까?

키도 더 커진듯 이미터에 육박하는 키에 길쭉한 팔다리. 거기에 통뼈를 감싸고 있는 힘줄과 근육에 능력까지. 점점 인간을 벗어나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가는 듯 보였다.

" 아름다워.. 가지고 싶어.. "

바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일우의 귓가로 다희의 조그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다희의 눈빛이 위험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하지만 일우는 양 옆에 앉아 있는 여자들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예전부터 깨닫고 있었기에 관심을 껐다. 자신이 뭐라고 할 처지도 아니었고.

어느 순간부터 바위의 주위로 바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없었지만 점차 강해지는 바람에 둔감한 이들도 그런 사실을 알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다.

동시에 예전에 한번 느꼈던 그 기운이 사방을 옥죄며 내리누르고 있었다.

스와압! 구우우우..

" 이,이런 씨바··· 모두 뒤로 물러.. 케엑. "

압력은 갑자기 강해졌다. 이미 그것을 느끼고 물러서려는 대원들도 휘말려 바닥에 쓰러졌고 바위쪽으로 당겨지는 인력을 버티려고 바닥에 손을 박아 넣거나 나무를 끌어앉고 버티는 대원들이 곳곳에 보였다.

일우는 한번 격하게 당한적이 있기에 급히 정신을 차리고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안감힘을 쓰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 그의 눈에 양옆에 앉아 있던 여자 둘이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들어왔다.

뭐야? 왜 멀쩡한건데. 이년들도 괴물이 다 되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던 일우의 눈에 놀라운 광경이 들어왔다. 사스와 다희가 무기를 뽑아들고 몸을 날려 바위에게 짖쳐드는 모습. 마치 생사대적을 만난듯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듯 그 에너지가 발현되어 그녀들의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예전에 본 소미의 경지와 유사했다. 아니 오히려 뭔가 조금 달랐다. 60레벨대의 발산의 경지보다 한단계 높은 7단계 응집을 이룬 모습이었지만 일우의 식견으로는 구별할 수 없었다.

그녀들은 바위가 무의식적으로 내뿜는 에너지 잠식을 대항하며 연어처럼 헤치고 올라가 눈을 감고 수련에 빠져있는 바위를 공격했다. 마체테와 레이피어에 잘리고 뚫리기 일보직전에 부드럽게 몸을 돌리며 손바닥을 휘저은 바위의 방어에 막혀 길을 잃고 옆으로 퉁겨져 나가는 그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일반 대원들이 보기에는 뭔가 번쩍하더니 튕겨져 나온 그녀들의 모습만 확인이 가능했다. 그 덕에 압력이 줄어든 나머지 인원들은 성급히 몸을 날려 전권을 벗어났다. 일우 역시 그들을 따라 한 나무위에 내려섰다.

" 좀.. 쉬자. 쉬펄.. 도대체 무슨 짓이야. 이게··· 휴우. "

바위를 따라나선 뒤로 한시도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지 못한 일우는 모든것을 포기한 얼굴로 나지막히 투덜거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한 얼굴이었다.

압력은 가셨지만 바위를 중심으로 끌려들어가는 바람의 크기는 점점 불어나 사막의 용권풍처럼 변하고 있었다. 일명 허리케인. 그 중심에서 번쩍거리며 세사람이 뒤엉켜 춤을 추듯이 부딪히고 그 충격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대지와 나무를 할퀴고 있는 중이었다.

땅과 나무가 파이는 충격파들을 보며 더욱 멀리 떨어진 대원들은 그런 그들의 신위보다 난장판이 된 천막과 간이침대, 취사도구들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 아, 저거 망가지면 땅에서 자야하는데.. 망했다. 야간 이동은 안하겠지? "

" 포기해, 그럼 편해. 무엇을 하던 쉴 수 있을때 쉬어야지. "

대부분 포기한 얼굴로 나무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저 사태가 끝이 나길 편한자세로 관망하며 기다렸다. 저들의 대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표정들. 마치 지루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의 표정과 유사했다.

' 뭐야. 이것들··· 아주 지들 대장들 따라간다고.. 쯔쯧. '

그런 대원들을 힐끔 본 일우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점점 세를 불리고 있는 허리케인을 지켜봤다.

' 아씨, 저거 왠지 더 커지면 위험할것 같은데.. '

여기서 오직 걱정을 하는 인간은 자신뿐이라는 외로움 때문인지 잠시 몸을 떤 일우는 이 사태가 빨리 끝나길 기도했다. 다행히 그런 그의 소원을 들었는지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모여든 바람이 하늘 높이 올라가 버리면서 장내 풍경이 드러났다.

항상 뻔하게 보였던 반쯤 죽어 있는 두 여자의 몸둥이를 옮기려 눈을 돌린 일우는 깜짝 놀랐다. 여기저기 상처는 보였지만 당당하게 두발로 서서 무기를 움켜쥐고 있는 두 여자가 보인 것이다. 발전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저 안에서 바위와 대련을 해서 멀쩡하게 두발로 설 수 있을 정도로 늘었다고 생각하지 못한 일우는 눈을 비비며 다시 전장을 바라봤다.

" 수고했다. "

묵직하게 울린 바위의 목소리가 모두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그와 동시에 대원들이 장내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날려가버린 천막과 숙식, 취사 도구들을 찾아 여기저기 흩어지기 시작한 그들 사이로 여전히 대치하듯 서 있는 사스와 다희를 바위가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움직임을 보이며 한걸음씩 물러나는 그녀들. 그리곤 다시 바위의 양 옆으로 달려가 메달리는 그녀들을 보는 일우는 자기가 제정신인지 아니면 저들이 제정신이 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지들이 벌여놓은 난장판을 수습할 생각도 눈치도 없는지 자기들끼리 뭔가를 쑥덕거리며 연신 웃음짓는 그들을 바라본 일우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여기서 저쪽에 끼어봐야 미친놈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원들을 도와 오늘 지낼곳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자신의 능력은 이런 짓에 특화되어 있었다.

후드득. 흙벽을 세우고 흙침대를 만들고 지붕까지 구조물을 만들자 그럴듯한 집이 뚝딱 만들어졌다. 자신도 이번 전투를 통해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었기에 가능한 정교한 작업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티를 낼 수 없었다. 그 주변에는 괴물들이 넘쳐 났기 때문이었다.

대원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머쓱한 표정을 지은 일우는 저런 자연재해를 일으키며 대련한 저 년놈들보다 자신에게 더 큰 환호를 주는 대원들을 불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그들의 맘을 이해한 것이었다.

그 동안 얼마나 시달렸고 또 시달릴것인지 안봐도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신들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일우의 눈빛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것만 같은 그들에게 더 이상 눈길을 주기 힘들었다. 내코도 석자였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척척척.. 내 생활 신조였다.

자신이 할일을 끝내자 바위와 두 여자는 전투에 대한 복기가 끝이 났는지 바위가 일우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 일우, 너도 확실히 발전했구나. 이젠 육단계까지 올랐는데? "

어떻게 아는거지? 나도 얼마전에 이마에 손을 대보고 알았는데. 원래 상위사이퍼는 하위사이퍼를 그냥 보고도 아는건가? 아닌데, 난 저 대원들을 그냥 봐서는 모르겠는데..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지 혼란스런 표정의 일우의 어깨를 툭 치며 수고했다는 말과 함게 스쳐 지나갔다. 그 뒤로 두 여자가 각각 한마디씩 했다.

" 오호, 벌써? 역시 바위와 같이 다니면 빠르구나. 언제 대련한번 하자. "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하는 사스. 그리고 어눌하게 말하는 다희.

" 나도.. 대련.. "

아악! 싫어! 싫다고! 내가 왜 내 힘을 숨긴채 쭈그리고 있는건데.. 다 니들 때문이야. 이 전투에 미친 년들아!

머리를 움켜쥐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일우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본 두 여자는 바위를 따라 만들어진 흙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 모든게 바위 저새끼때문이야! 라고 외치는 표정으로 숲속으로 사라져가는 일우의 모습을 끝으로 이 숲에 평화가 돌아왔다.


그 다음날. 날이 밝기 무섭게 모든 짐을 싼 일행들은 간단한 요기를 한 뒤 서울의 북동쪽에 위치한 자신들의 쉘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별일없으면 늦어도 오늘 오전중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그 전제가 별일이 없어야 겠지만.

크롸앗! 크아악! 어김없이 별일이 생겼다.

" 왜! 이 좀비새끼들은 우리가 지나가는 길마다 있는거야? 마치 떡밥을 푼 포인트마냥.. 젠장! "

이제 얼마남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들이 가는 길목마다 좀비들이 덮쳐왔다. 누가봐도 이상했지만 그런 의문을 조사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 중 가장 한가한 것은 단 세명. 일우와 그 옆에 달라붙은 여자들이었다. 왜냐면 이상하게도 그들에게 좀비들이 달라붙지 않고 있었고 오직 대원들에게만 시선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우는 그런 모습에 바위가 무슨 짓을 한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적색 바코더도 아닌 바위와 두 여자에게 좀비들이 달려들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바위의 저 여유로운 표정은 이런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있었다. 아니 본래 저 표정이었던가?

일우는 연신 궁시렁거리며 대원들을 돕고 있었다. 방금 대원들을 덮친 좀비의 숫자는 네자리숫자에 버금갔다. 끝도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좀비들의 파도에 대원들이 휩쓸리지 않도록 적절히 바리케이트를 쳐주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면 벌써 사상자가 발생해도 몇명은 나왔으리라.

그런 와중에서는 대원들의 실력은 조금씩이나마 확실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일우에게도 조금씩 보일 정도였다. 물론 자신의 능력도. 무엇보다 악바리 근성이 늘어 웬만큼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부러져도 눈 깜짝하지 않는 대원들의 모습은 누가 좀비인지 헷갈릴정도였다.

물론 일우는 바위가 왜 이렇게 몰아붙이는지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었다. 신세계의 구루, 삐에로의 능력을 본 뒤로 다른 이들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언제 그만한 능력자가 자신들의 쉘터를 급습할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래도 너무 힘들었다.

" 헉,헉.. 제발 좀 쉬면서 하자. "

요즘에 쉬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일우의 말에 바위가 지긋이 전장을 바라봤다. 아직 여력이 남아있는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직 부족해. 더 끌어낼 수 있어. 노력이 부족해. "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대사를 지껄이는 바위의 얄미운 얼굴을 한방 먹이고 싶었지만 양 옆에서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두 여자를 제하더라도 바위 본인의 능력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잘 알고 있는 일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했다. 바위만큼 노력한 인간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니까. 눈뜨면서 잠 잘때까지 아니 잠자면서까지 수련을 하는 바위를 지켜보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괴물은 타고나는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득 가장 존경하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불가에서 말하는 고행도 같은 의미로 이것을 실천하는 인간이 바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와중에 막 대원들에게 달려드는 수십개의 좀비들을 향해 흙창을 잔뜩 안겨주었다.

그런면에서 대원들도 그런 고행을 잘 따라와주고 있었다. 물론 본인들의 자율적인 의지가 아닌게 옥에 티였지만 결국 도달하는 곳은 같았기에 그들 나름 큰 만족을 느낄것이다. 물론 그건 나중에 살아남아 이시절을 되돌아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어느덧 대부분 좀비들을 학살한 대원들은 그자리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바닥에는 흐르는 핏물이 웅덩이를 곳곳에 만들고 있었고 체액과 파편들로 발디딜 곳이 없었지만 손까닥할 기력까지 쓴 대원들은 그런것들에 신경쓰지 않고 여기저기 대충 자리에 앉아 쉬고 있었다. 이 장면만 본다면 한편의 지옥도와 같았다.

그런 대원들에게 시선을 돌린 바위는 저 멀리 한 방향을 내다보며 입을 열었다.

" 다 왔군. 우리 쉘터에. "

그 목소리에 평상시라면 환호성이라도 질렀을 대원들이지만 반쯤 기절한 상태인 그들은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가장 팔팔한 일우 역시 별다른 대꾸없이 고개만 잠깐 들어 그가 말한 방향을 바라봤을 뿐이었다.

그렇게 짧다면 짧은 휴식을 가진 바위일행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 목적지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 확인한 쉘터 인원들이 좀비로 착각해 공격해 온 것은 작은 헤프닝이었다.


" 큼, 왔냐. "

바위는 자신을 향해 안부를 묻는 제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뭔가 할말이 있거나 곤란한 이야기를 할 때 버릇처럼 코를 만지는 제비에게 무언의 이야기를 전한 것이었다. 그런 기색을 읽은 제비가 조금 껄끄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 박지수말야. 형철이 동생. "

거기까지 말을 들은 바위는 잠시 눈을 감았다. 박지수, 이전 빌딩에서 목숨을 구한 사람들과 함께 이곳으로 보냈다. 그러면서 내심 걱정을 했다. 그녀는···

" 휴우, 지수는 아직도 그 사건을 차돌형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

과거 자신이 군대를 가게 된 이유. 형철이가 사고사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 사건의 중심에는 차돌형이 있었다.

지체장애인 형은 어느날과 다름없이 길가로 나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당시 막 대학생이 된 자신은 오랜 친구 형철과 함께 손을 흔들며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 그날따라 차돌형이 반가운 기운이 넘쳐 차도를 더듬더듬 건넜고 달라오는 차를 피하지 못했다. 그것을 먼저 본 형철이 달려들어 차돌을 밀어내고 자신이 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그 사고로 인해 차돌형 역시 입원을 했고 그 당시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오직 자신만이 그 사고의 목격자로 사건을 수습했다. 그 과정에서 형철의 동생 지수는 그 원인이 자신과 차돌형 때문이라고 단정을 지었고 저주하고 미워했다. 그 당시 자신도 자책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군대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혼자 남겨진 형은 오랫동안 외로움을 겪어야 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렇게 사총사가 삼총사가 되었고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 ··· 결국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지수가 칼을 들고 차돌형님이 있는 고아원의 쉼터를 찾아갔어. 다행히 지키고 있는 대원들에게 막혀 사전에 차단이 되었지만, 이 일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야. "

" 지수는 어디있어? "

" 일단 격리조치 해놓긴 했는데.. 그 춘자라는 사이퍼랑 같이 있어. 신신당부를 해서 아마 두번다시 그런짓은 하지 못할꺼지만 말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

거기까지 들은 바위가 몸을 돌리자 급히 제비가 막아서며 말을 이었다.

" 바위야.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설득이 안돼. 알잖아. 일단 기다려보자. 응? "

" 걱정하지마, 대화를 나누려는 것 뿐이니까. 그 춘자라는 여자도 같이 불러줘. "

제비는 그런 바위의 말에 일단 한숨을 내쉬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깥에 대기중인 사람을 불러 말을 전했다. 그렇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두명이 제비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그녀들중 춘자라는 덩치의 여자는 깔끔한 집무실에 놀라 두리번거리다 바위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눈을 반짝였고 지수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들어섰다.

" 앉아. 춘자씨도 앉아요. "

제비의 말에 두 여자는 가죽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바위는 아무말없이 지수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 지수야. 아직도 화가 나? 죽이고 싶을 정도로? "

바위의 평온한 목소리에 입술을 꽉 깨문 지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

" 오빠가! 오빠가 어떻게 알아! 내 마음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본적 있어? 만약 형철오빠가 살아있었다면 우리가족이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생사확인도 안되는 상황까지 왔을까? 엉? 난 지금 가족들 모두를 잃었단 말이야! "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위를 쏘아보며 외치는 지수를 지긋이 바라본 바위가 입을 열었다.

" 그래서 너의 선택은? 그 원인을 다른 이에게 찾아 복수하겠다는 건가? 좋다. 형철이가 그렇게 된 이유는 내가 원인이라는 것은 알지? 그 칼좀 빌리지. "

바위가 춘자를 보며 그녀가 차고 있던 대검을 가리켰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의 춘자는 바위의 말에 엉거주춤 칼을 뽑아 건내줬다. 바위는 그 대검을 다시 지수에게 전달하며 말했다.

" 이걸로 나를 찔러라. 니 분이 풀릴때까지. "

" 야! 이건.. "

" 저기.. 무슨..? "

제비와 춘자가 놀라서 입을 열었지만 바위가 손을 들어 막아섰다. 그리곤 지수의 눈을 직시하며 대검을 내밀었다. 지수는 떨리는 눈으로 대검과 바위를 번걸아 쳐다보며 떨리는 손으로 대검을 잡아갔다.

하지만 이내 손을 떨구며 그대로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지수는 비맞은 새처럼 애처롭게 몸을 떨었다.

" 흐아앙! 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왜 나한테··· "

모두가 아무말없이 울부짖는 그녀를 지켜만 봤다. 춘자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별다른 말을 전하지는 않았다. 그녀뿐 아니라 지금 시기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그런 의문을 터트리고 있다. 단지 그럴 기회를 가지지 못할뿐.

오히려 그런 감정을 터트리는 그녀도 자신이 지금 얼마나 안전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단지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말하고 싶었을 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The Gear(1) +1 18.09.05 775 18 22쪽
82 국내 상황(6) +1 18.09.04 794 18 19쪽
81 국내 상황(5) +1 18.09.03 755 16 19쪽
80 국내 상황(4) +2 18.08.31 798 16 18쪽
79 국내 상황(3) 18.08.30 791 18 19쪽
78 국내 상황(2) 18.08.29 801 20 19쪽
77 국내 상황(1) 18.08.28 792 17 19쪽
76 38선(6) 18.08.27 777 20 22쪽
75 38선(5) +2 18.08.24 778 19 21쪽
74 38선(4) +1 18.08.23 791 20 22쪽
73 38선(3) 18.08.22 791 14 20쪽
72 38선(2) 18.08.21 826 19 21쪽
71 38선(1) +1 18.08.20 818 19 23쪽
70 태풍 속 서울(7) 18.08.18 857 19 22쪽
69 태풍 속 서울(6) +2 18.08.17 799 21 21쪽
68 태풍 속 서울(5) +1 18.08.16 803 16 21쪽
67 태풍 속 서울(4) 18.08.15 803 15 21쪽
66 태풍 속 서울(3) 18.08.14 831 17 22쪽
65 태풍 속 서울(2) 18.08.13 809 16 23쪽
64 태풍 속 서울(1) 18.08.10 853 17 21쪽
63 확장(6) +1 18.08.09 849 18 22쪽
62 확장(5) 18.08.08 812 19 22쪽
61 확장(4) +1 18.08.07 834 23 25쪽
60 확장(3) 18.08.06 824 17 21쪽
59 확장(2) 18.08.04 806 15 19쪽
58 확장(1) 18.08.03 883 17 23쪽
57 서브웨이(5) +1 18.08.02 884 18 20쪽
56 서브웨이(4) 18.08.01 855 16 19쪽
55 서브웨이(3) 18.07.31 873 18 22쪽
54 서브웨이(2) 18.07.30 933 19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