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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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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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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7,372

작성
18.08.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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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태풍 속 서울(4)

DUMMY

쾅! 꽈드득! 바위의 주먹 한방, 망치의 타격 범위에 걸린 적들이 분쇄되며 사방을 붉은 피로 물들였다. 인간의 몸속에 얼마나 많은 피가 포함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듯, 사방에 피웅덩이가 곳곳에 만들어졌다. 예전 깔끔한 거실은 흔적이 없었고 호러영화에서나 보여주는 광경이 재현되고 있는 중이었다.

각자의 능력들이 난사되면서 깨어져 나간 창문유리들과 가구들의 파편까지 폭격을 맞은 듯한 장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불과 일이분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행히 밖에 내리던 소나기 소리덕분인지 가끔씩 울리는 천둥소리때문인지 안에서 일어나는 소란이 밖에까지 전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더불어 이 건물 자체가 방음이 잘되어 있는 듯 했다.

빠각! 마지막 사이퍼의 정수리를 통과해 어깨를 무너뜨리고 왼쪽가슴을 박살내며 나온 망치를 따라 핏줄기가 곡선을 그렸다. 이미 고깃덩어리로 변한 시체를 발로 차 멀리 떨어뜨린 바위는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채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에너지를 쏟아붇고 있는 두목 상윤에게 향했다.

원소계열인듯 사방에서 공기가 압출되면서 압력을 가하고 있었고 더불어 폐속으로 들어간 공기가 확장을 하면서 안쪽에서 폐를 망가뜨리기 위해 팽창하고 있었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한 힘이었고 능력이었다.

계속 에너지를 쏟아붇고 있는 중이어서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바위는 눈으로 그 뜻을 전달했다.

- 쓸데없는 짓거리는 그만해라.

바위의 폐활량을 제하더라도 공기의 압력만으로 바위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은 압도적인 에너지를 가지지 않는 이상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상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집중하고 있지만 전혀 흐트러짐 없는 바위를 보고는 힘을 풀어 버렸다.

" 헉, 헉..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뭐야.. 그런 힘을 가지고 왜 이런곳에··· 하아.. "

갑작스런 전개, 현실 부정, 비상식적인 일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얼굴을 한 상윤이 앞뒤가 이어지지 않는 말들을 늘여놓으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더불어 그 동생이라는 일반인 남자 역시 한걸음 물러나 관전하는 바람에 살아는 있지만 정신은 가출한 상태였다.

" 이제.. 이야기를 할 테이블이 마련되었네. 다시 대화를 나눠볼까? "

바위는 쇠사슬과 망치에 묻은 체액과 피딱지들을 털어내며 상윤을 바라봤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상윤에게서 눈을 떼고 집무실로 들어선 바위가 손짓으로 그를 불렀다. 와인도 챙겼다.

" 현실이야. 와인 좋아하지? 자 이 와인 먹고 하던 얘기 계속하지. "

바위가 건내주는 와인을 떨리는 손으로 움켜쥔 상윤이 그대로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킨 후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약간 풀린 눈으로 바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 휴우.. 다 말하면 살려는 줄꺼요? "

" 넌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으니.. 먼저 이야기를 들어보자. "

" 뭐가 궁금···? "

원목 책상에 걸터앉은 바위가 지긋이 상윤만 바라보자 그 뜻을 알아챘다. 금방 상윤은 자신이 살아온 일생과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야기를 줄줄 털어놓기 시작했다.

시작은 평범했다. 평소 몸이 그다지 좋지 못하던 상윤은 어느날 갑자기 각성을 했다. 그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하루아침에 일어나 보니 허약한 몸도 나약한 체력도 모두가 극적으로 변했다.

하늘이 준 기회이자 선물이라 생각한 상윤은 자신의 능력을 하나씩 깨달아 갔다. 가끔씩 보이는 또래들의 이마에 박힌 하얀 바코드가 있었지만 자신과 달랐고 어느누구도 그 존재를 눈치챈 사람이 없어 비밀로 했다. 그것이 고등학교 2학년, 지금으로부터 칠여년전의 일이었다.

그는 어릴때부터 영웅이 되고 싶었다. 그런 판타지 소설도 좋아했다. 그날 이후 세상의 주인공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여러가지 실험으로 능력을 키웠지만 더뎠다. 실제로 쓸데도 그다지 없었다. 슈퍼맨처럼 무적의 능력도 아니었고 남들보다 강하지만 압도적이지 못했고 어설펐다. 현실은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후 자신의 몸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가 갈 나이가 되었음에도 예전처럼 고등학교때 몸과 얼굴을 가진 자신. 늙지 않는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저주이기도 했다.

그렇게 세상과 점점 단절이 되었다. 그러다 좀비사태가 터졌다. 드디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겨난 것이다. 유일한 가족인 동생을 데리고 세력을 규합했다.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싸우고 또 싸웠다. 그렇게 몇달동안 성장한 것이 몇년을 성장한 것보다 성장치가 높았다.

그런 자신에게 신세계라는 조직이 접근을 했다. 정확히는 세력싸움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 전투에서 패배를 했고 자신의 세력과 목숨을 보존해 주는 대신 이곳에서 인간의 수급과 공급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혔다.

그렇게 점점 처음의 이상과 멀어지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인간들이 올려다보는 자신은 위대했고 그 기분은 황홀했다. 손만 뻗으면 연예인 여자들을 품에 안을수 있었고 손짓 한번으로 인간들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은 달콤했다. 그 동안 왜 이런 생활을 누릴 수 있음에도 거지같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혼자 동분서주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그런 생각이 자신을 집어삼켜 더 많은, 더 높은 곳에 올라가 권력을 누리기 위해 끊임없이 수련을 했다. 서브웨이와 연대를 하고 색깔을 가리지 않고 사이퍼를 영입해서 세력을 키우는 작업을 꾸준히 한 것이다. 그 결과 이런 쉘터를 만들어 냈고 수많은 인간들과 사이퍼를 거느린 서울 북동부 최대조직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신세계는 자신의 생각보다 거대했고 강력했다. 또한 그들의 이상은 자신과 격이 달랐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자는 그들의 발상은 단순히 나만의 권력을 위한다는 내 생각을 뛰어넘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었다.

" 신세계는 대충 알고 있으니 넘어가고, 좀비 이야기부터 해봐. "

" ··· 좀비가 이렇게 단위를 이뤄 뭉쳐다는 이면에는 신세계의 삐에로라는 여자가 있죠. "

" 삐에로.. 들어본 것 같네. 그래서? "

예전에 만월회에서 대한민국 내 최대의 적이라는 신세계의 계보를 넘겨준 적이 있었다. 그 계보를 제비가 브리핑을 했는데 그때 들은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자신은 벽을 넘기 위해 수련에 목매달고 있는 와중이었기에 자세한 스펙은 듣지 못했다.

" 그 여자의 능력은 꼭두각시, 즉 좀비를 조종하는 능력입니다. 인간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것까지는. 여튼 삐에로가 구루, 신세계 두목의 지시를 받아 흩어져 있는 좀비들을 묶어 활동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의 말로는 시드좀비라는 특이개체를 만들어 그 시드좀비를 중심으로 수백, 수천의 좀비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죠. "

" 흠, 그렇게 된 거군. "

바위가 일전에 들은 내용도 좀비들의 특이행동에 신세계가 개입된 것이 확실하다는 만월회의 보고서가 있었기에 금세 그 내용을 이해를 했다. 하지만 세부내용은 몰랐기에 큰 정보를 획득한 것이다.

" 최근 신세계에서 파견나온 사이퍼, 아까 처음에 죽이신 그 사이펍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외에도 특이체 좀비들, 개량 좀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시드좀비의 개량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되었죠. 삐에로의 능력치가 오르면서 단순히 시드좀비를 통해 방향만 명령을 주입하는게 가능했는데, 최근에는 약간의 이성을 가진 시드좀비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

" 그말은..? "

" 네, 무작정 정해진 길만 돌아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하에 건물이나 숨겨진 쉘터를 수색할 수 있는 좀비떼가 출연한 것이죠. "

그 말에 최근 덩치가 큰 여자 사이퍼, 춘자라고 했던가? 그 사이퍼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말하는 좀비가 습격을 했다는 이야기. 그때는 한귀로 듣고 흘렸지만 이런 비밀이 숨어 있을지 몰랐다.

" 최근 북동부 근처로 좀비무리들의 출연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알고 있나? "

" 그건··· 잘 모르지만 추측은 가능하죠. 서브웨이와 신세계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까 설명드렸죠. 만약 서브웨이 수백개중 몇개라 할지라도 이상이 생기게 되면 그들의 귀로 들어갈 수 밖에 없고 그들의 판단하에 무너진 서브웨이 쪽으로 좀비무리를 돌린다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역시 그 사실을 알고 몇번을 그 근처로 정찰을 나갈 정도였으니... "

대략적인 사정은 이해가 됐다. 하지만 지금 폴리스와 만월회 역시 서브웨이를 털고 있는 실정인데 단순히 북동부 지역에 좀비무리를 더 많이 돌릴 이유를 찾기에는 힘들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듯 바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있자 바위의 눈치를 살피며 상윤은 고민에 빠졌다. 아니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처음부터 일련의 과정이 워낙 빠르게 진행되면서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그 후 목숨의 위협으로 자신과 조직의 비밀을 술술 털어내기까지 마치 한순간의 꿈과 같은 과정이었다. 물론 이 모든것을 바위가 의도한 것이지만 말이 끊기고 위기감이 줄어들자 제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어. 젠장.. 예전 습관을 아직도 못버리고. '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예전의 찌질한 자신이 생각이 났다. 그때는 몸도 허약했고 정신도 나약했다. 당연히 그런 모습은 친구또래들로부터 왕따나 빵셔틀의 대상이 되었고 조금만 위협이나 체벌을 가해도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털어놓는 버릇이 생겼다.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무방비 상태로 눈을 감고 있는 바위를 쳐다봤다.

' 전혀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모습. 지금이라면.. '

상윤이 그동안 수련하고 경험해온 바에 의거하면 사이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신체능력도 배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하게도 한계가 있는 에너지통에서 일상생활 도중에 계속적으로 에너지를 끌어다 쓰지 못하고 에너지가 없는 사이퍼는 일반인보다 조금 강한 사람일뿐이라는 것이었다.

바위의 경우 강화계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 바위의 모습은 무방비였다. 쉽게 말하면 지금 공격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갈등은 길었지만 실행은 짧았다.

" 뒈져··· 꾸엑! "

와장창! 상윤이 에너지를 끌어올려 능력을 발휘하는 시간보다 낌새를 느끼고 반사적으로 주먹을 내뻗는 바위의 공격이 빨랐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상윤은 무엇이 자신의 얼굴을 뚫을듯 강타했고 통제를 잃은 자신의 몸이 어디로 날아가 쳐박혔는지 느낄 틈이 없었다.

그르륵.. 얼굴 전체 뼈가 박살나면서 형태를 잃어버렸고 충격에 목뼈가 부러진 상태로 이미 제대로 의사전달조차 하지 못하는 상윤의 마지막 숨소리가 울렸다. 이미 그의 생명이 빠져나가듯이 바코드도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한 사이퍼의 죽음을 의미하듯.

기습따위로 바위를 상하게 하려는 간 큰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고 한 사이퍼의 죽음을 내린 바위는 마치 할일을 다 했다는 듯이 생각을 정리하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거실에는 여전히 넋이 나간 그 동생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일반인이라 건들지 않았을 뿐, 만약 악행을 저질렀다면 그를 막아주는 방파제가 사라진 지금 누군가 징치하리라는 생각에 시선을 떼고 문을 나서는 바위였다.

아직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내리는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아직 지하를 둘러보지 못한 바위는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가 내딛는 걸음을 따라 붉은색 발자국이 찍히고 있었다.


비상구를 따라 내려간 지하는 바로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지하철과 연결된 지하철 관리실과 이어져 있었다.

윗층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관리되는 곳인지 갑작스레 나타난 바위를 본 네명의 사이퍼들이 놀라며 경계를 했다.

"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도대체 윗층 새끼들은 어떻게 통로를 관리하는 거야? 쯔쯧. "

네 남자, 사이퍼들의 입가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본 바위는 다짜고짜 망치를 휘둘러 가까이에 있던 남자의 머리를 부숴버렸다. 바위의 생각은 말할 입이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이들도 바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배테랑인지 동료의 죽음을 보자마자 각자의 무기를 빼들고 능력을 쏟아냈다. 순식간에 책상과 걸상들이 비산하며 시야를 가렸지만 침착하게 또 한명의 남자의 머리를 날려버린 바위의 기감에 또 다른 인원들이 소란을 듣고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정체는 금방 들어났다. 일반인 경비들이었다. 기관단총을 들고 나름 방탄복까지 입은 모습으로 급하게 들어온 그들에게 아직 살아남은 사이퍼 두명중 하나가 소리쳤다.

" 저 새끼, 죽여! "

하지만 그 말이 그의 유언이었다. 쇠사슬에 맞아 그대로 목이 꺽인 채 구석에 쳐박힌 그를 본 경비들은 다급히 총을 들어 난사하기 시작했다.

투투투투. 근거리 자동소총의 한종류로 말그대로 가까이에 접근한 상대에게 난사를 하기 위해 만든 화기류로 유효사거리가 100미터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연사력과 파괴력은 무난한 총이었다. 9mm 총알이 총구에서 토해져 바위를 덮쳐갔다.

이미 총구가 바위를 향해 있을때 바위는 그 자리를 벗어나 마지막 남은 사이퍼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경비원들에게 쇠사슬을 뿌리고 있었다. 돌격소총의 화력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 바위인데 기관단총의 관통력으로 바위에게 피해를 주기에는 무리였다.

그렇다고 일부러 총알을 맞아줄 필요는 없기에 몸을 굽히며 총구의 방향에서 벗어난 바위는 뻗어나간 쇠사슬을 휘둘러 범위에 있는 경비원들의 쓸어갔다.

거력이 담긴 쇠사슬의 범위에 걸린 경비들은 트럭에 치인듯 한쪽으로 쓸려 날아갔다. 아마 운이 좋아 죽지 않았다면 최소한 몇군데는 뼈가 부러졌을 충격량이었다.

단 한번의 휘두름으로 경비들을 쓸어버린 바위는 부러진 다리로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사이퍼에게 다가갔다. 이미 바위의 신위를 목격한 그는 반항보다는 항복을 선택했다.

" 살려.. 주세요. 뭐,뭐든 시키는대로 할께요. "

누군가를 죽이는 입장에서 죽을 수 있는 입장이 처음 되는 그들은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었다. 사이퍼, 변절자들은 항상 포식자였지 피식자의 역할을 해본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처음 반응은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했다. 그 후 공포를 느끼고 애원하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항복. 이해했다. 그들은 이전에 특수부대처럼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었을뿐, 갑자기 주어진 능력에 심취해 그것을 휘두르고 즐겼을 뿐이었다. 마치 가상현실 게임처럼. 그런 착각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은 바위의 무력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이제 이십대초중반.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 나이대 사람들만 각성을 했다. 아니 정확히 바코드를 가지고 있었다. 본래라면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하던가 아니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나이.

바위는 이해했지만 그것만으로 용서가 되지는 않았다. 그들이 지금 상황을 게임처럼 즐긴다면 로그아웃을 해주는 역할은 바위였다.

" 이름. "

" 크윽, 백용수입니다. 나이 24살. 집은 중랑구 면목··· "

부러진 다리를 잡으며 신상명세를 줄줄이 대고 있는 그의 말을 끊으며 바위가 다시 질문했다.

" 역할. 계획. "

흔들리는 눈동자. 필사적으로 뭔가를 말하려는 떨리는 입술. 곧 생각을 정리한 그가 더듬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 나,난 그냥 이곳을 지키는 쪼무래기입니다. 그냥 말단 부하에요. 지,진짜에요. 마,맞다. 저기 누워있는 새끼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죽이고 했어요. 그 사람들은 저,저기에.. "

손가락을 들어 밖을 가리킨다. 어짜피 천천히 둘러보면 될 일. 다시 무심한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 인간들.. 아니 사람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갑니다. 저,저도 어디로 가는지는.. 그리고 다시 돌아올때는 여자를 데려오거나 식량, 생필품등을 가져옵니다. 네, 네.. "

" 방법은? "

" 미,밑에 지하철에 이동수단··· 있습니다. 아, 조금있으면 나갔던 인원이 복귀할 시간이에요. "

바위가 그를 살려둔 이유는 이 사이퍼만 눈가에 붉은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아직 식인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바위가 그에게 눈짓을 했다.

그런 바위의 제스처를 즉각적으로 알아들은듯 절뚝거리는 발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벌써 그 사이에 뼈가 붙은 모양이었다.

어디선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인듯 했다. 전기가 들어와서 그런지 지하철 내부는 어둡지 않았다. 비록 최소한의 전등만 켜져있지만 충분히 사물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지하철 내부는 넓었고 자기들 입맛대로 개조를 한 흔적들이 보였다. 그건 감옥들이었다. 감옥들이 쭉 늘어선 그곳을 지나면서 본 그 안의 풍경은 절망만 남아 있었다. 아직 그들을 풀어줄 때가 아니었기에 그냥 지나쳐 더 아래로 내려갔다.

절뚝거리지만 필사적으로 앞장 선 그는 연신 뒤에서 따라오는 바위를 훔쳐봤다. 이제야 조금 제정신을 차린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항할 생각은 없는듯 했다. 이미 모든것을 포기한 눈빛이었다.

" 휴우, 어쩌면.. 어쩌면 이런날이 올꺼라고 생각했어요. 그,그동안 그 사람들이 한짓은··· "

바위는 그가 어떤 이유로 이런 곳에 있는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런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아니라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와 핑계등이 존재했다. 결국은 과정과 목적의 선악 유무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바위는 그 결과만 봤다.

죽은 이들은 사람을 헤쳤기에 똑같이 죽였을 뿐. 무슨 대의나 이유는 없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 도착한 곳은 열차 플랫폼이었다. 이미 안전을 위해 막아놓은 가드는 치워져 있었고 썰렁하게 뻥 뚫린 지하철 통로와 깜빡이는 전등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직 도착하려면 시간이 있는지 연신 시계를 쳐다보던 자신을 백용수라고 한 사이퍼가 바위의 눈치를 살폈다.

" 이제.. 조금만 있으면··· "

초조하게 무언가 기다리던 그의 귓가로 조그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바위는 그전부터 듣고 있었는지 표정변화는 없었다.

끼익. 끼익. 덜덜덜.. 소리는 점점 커졌다. 녹슨 철이 부딪히는 소리와 레일위를 구르는 소리.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것 같은 소리였다.

잠시 후 그 소리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그것은 기본 뼈대는 레일바이크였지만 크기는 달랐다. 보통의 레일바이크는 사인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 등장한 레일바이크는 길었고 컸다. 가장 앞에 위치한 동력기관, 페달을 밟는 곳에는 십여명의 사람들이 목줄이 채어진채 자리하고 있었고 그 뒤쪽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크기의 카라반처럼 생긴 것이 매달려 있었고 이어서 동물우리와 비슷한 것들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그 카라반에서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내렸다. 그는 어색하게 서 있는 백용수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 용수야, 너 왜 나와 있어? 새끼 크크큭, 이번에 새로운 여자들 들어온다는 소리를 들었구나. 여튼··· "

그렇게 말하며 내린 사내의 뒷편에 매달린 철장들에는 죽어있는 인형같은 눈빛을 가진 여자들이 들어가 있었다.

" 근데,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첨보는데..? 그건 그렇고 오늘 신세계에서 손님이··· 커억. "

막 누군가를 소개하려던 남자의 전신을 감싼 것은 어둠이었다. 새카만 어둠 속에 갇힌 남자는 단발마의 비명을 지렀지만 이내 완전히 어둠에 먹혀버린 그는 더 이상 말을 내뱉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 어둠이 새어나온 카라반에서는 이미 핏물이 뚝뚝 떨어져 레일을 적시고 있었다. 아마도 그 남자의 동료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이었다.

그런 모습에 나서려던 바위가 몸을 멈추고 사태의 추이를 살폈다. 잠시후 핏물을 밟으며 내려서는 사람은 한명의 여인이었다. 가장 먼저 보인것은 푸른색의 바코드와 새빨간 입술이었다. 긴 머리는 정리가 제대로 안되는 듯 휘날리고 있었고 방금 남자를 집어삼킨 어둠을 마치 옷처럼 두른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 다,당신은 누구··· "

백용수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자신이 좀비에 물리고 난 이후보다 더 비현실적이었다. 동료를 분쇄시키듯 때려잡은 바위와 방금 어둠에 집어삼켜진 이들까지, 이것이 꿈이라면 지독한 악몽이었다.

그의 목소리에 어둠을 옷처럼 두른 그녀가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사람의 모습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닌 바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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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확장(2) 18.08.04 805 15 19쪽
58 확장(1) 18.08.03 883 17 23쪽
57 서브웨이(5) +1 18.08.02 883 18 20쪽
56 서브웨이(4) 18.08.01 854 16 19쪽
55 서브웨이(3) 18.07.31 873 18 22쪽
54 서브웨이(2) 18.07.30 933 1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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