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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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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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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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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8.08.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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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태풍 속 서울(6)

DUMMY

새까만 드레스. 까만 머리에 그보다 더 까만 눈동자가 바위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어둠의 요정이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할 정도로 살결이 드러나지 않는 부분은 어둠의 한부분과 같았다.

단 하루만에 바위에게 당한 상처가 완치되었다. 원래 사이퍼의 자가치유력은 뛰어나다고 하지만 다크는 비정상일정도로 치유력이 좋았다. 그 이유를 바위는 자신의 에너지를 마치 손발처럼 다루는 그녀의 컨트롤 능력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건 바위 자신도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몇마디가 오고간듯 서로를 바라보던 둘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바위가 문득 입을 열었다.

" 그래서.. 그런 남자를 증오하고 죽여버리겠다는 건가? "

무심한 다크의 눈빛에 힘이 들어간다. 그녀의 마음을 단순한 한마디로 표현한 바위에게 화가 난 듯 했다.

" 뭐.. 다 죽이겠다는 건 아니니. 그때를 봐도.. 그건 알아서 해라. 단 여기서는 규칙을 따라 행동해. 아니면 나가던가. 알겠나? "

선선이 고개를 끄덕이는 다크였다. 이미 그녀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 가르쳐줘. 네 강함을.. "

" 배우고 싶으면 규율에 맞춰 생활하고 쉘터를 지키며 기다려. 지금은 너에게 시간을 줄 여유가 없어. "

바위가 냉정하게 잘랐다. 이미 예상하고 있다는 듯이.

의외인것은 다크였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더 이상 그녀와 대화를 통해 얻을것이 없다고 판단한 바위는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칫했다.

그녀의 분위기, 행동등 자신이 알고 있는 그녀들을 떠올리게 만들어 반사적인 행동이었지만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 순간 오히려 그녀가 머리를 숙이며 바위의 손을 자신의 머리에 올려놓는다. 마치 하던 일을 계속 하라는 듯이.

쓱쓱.. 어제는 느끼지 못했던 감촉들이 손끝을 간지럽혔다. 생각보다 풍성하지 못한 그녀의 머리숱은 그 동안 그녀의 고난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 바위야! 모임 사람들이··· "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일우는 방안의 야릇한 풍경을 보곤 멈칫했다. 그리곤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말을 이었다.

" 너 어쩌려고.. 그러냐. 다행히 오늘 오진 않았지만 제비랑 사장얼굴이 반쪽이 된 것도 다 네탓이야. 새꺄. 제발 더 이상 미친.. 아니 여자를 끌여들이지 말자. 제발.. 나도 위험해져. 좀 살려주라. "

만약 이 광경을 다희와 사스가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 뻔했기에 일우는 누구보다 자신의 목숨을 걱정하고 있었다.

애원하듯 말하는 일우를 스쳐지나가는 바위는 그의 어깨에 손을 대며 진정하라는 듯이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그런 바위를 따라 나가며 뭐라고 계속 투덜대는 일우는 바위와 함께 모임에서 나온 인원들을 맞이하러 나가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다크는 어둠보다 까만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 그가 둥지를 벗어났습니다. 회주. "

바다가 태풍에 그 출렁임을 높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장대비까지 내리고 있는 이곳은 서해에 존재하는 섬이었다. 정확히는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하고 있는 영종도의 아랫편 무의도 옆 실미도라는 섬이었다. 예전 영화의 소재로 쓰였던 섬을 정부로부터 예전에 매입해 만월회의 한 거점으로 사용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와 특이점이 있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지금은 무의도까지 세력을 넓혀 전초기지로 사용중에 있었다. 무의도는 10키로평방미터에 달하는 크기의 인천앞바다에 위치한 섬으로 예전에는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기도 했다.

그 실미도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휠체어에 앉아 있는 회주와 그 뒤편에서 보고를 하고 있는 점박이 집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막 집사가 바위의 근황에 대해 보고를 마쳤다.

회주가 바위를 만나고 난 후 일급관찰대상으로 지정된 바위의 동태는 매일 직접 챙겼다. 그런 회주가 지금 그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어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

' 일기장에 표현되어 있는 그와 너무 괴리가 심해. 단순히 주의하라고 과장되게 표현한건가? 아님.. '

그녀가 본 일기장은 사실의 나열, 팩트만 있지 개인적인 감정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그런 일기장이 그에 대해서만 과장을 했다고 보기에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믿기에도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 내가 한 일들이 나비효과가 되어 그에게 영향을 미친것인가? 모르겠어. '

이미 일기장에 쓰여진 미래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예상범위내였다.

" 아가씨. 그 신세계를 아직 그대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

보고를 마치고 조용히 시립해 있던 집사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본 신세계는 말그대로 암세포같은 조직이었다. 정상적인 세포를 밀어내고 자신이 마치 원래 그 주인이었다는 듯이 행세를 하는 그런 악성종양과 같았다.

집사의 물음에 눈을 뜬 회주가 휠체어를 손가락을 툭툭 때리며 답변을 했다.

" 네, 집사아저씨 생각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아직 그들을 토벌하기에는 시기상 일러요. "

그녀는 지금 조직내에서도 그 이슈가 매번 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지속적으로 좀비들을 처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극소수. 지금도 좀비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있기에 정확한 숫자 파악이 어려울 정도였다.

정보부서에서 파악한 서울에 존재하는 좀비 개체수는 오백만에 달했다. 천만이 넘는 인구에 비하면 생각보다 적은 숫자일 수 있지만 그건 오산이다. 초기 좀비들은 통제되지 않은 채 사방으로 퍼져나갔기에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고 그나마 이렇게 추산이 가능한 것은 모두 신세계 덕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회주, 그녀가 이런 상황을 만든것이었다. 원래 미래는 지금쯤 좀비들이 무리를 이뤄 돌아다니는 것이었지만 그 미래를 일부러 앞당긴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생존자를 늘리고 좀비무리를 통제, 감시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이들 생존자들은 대한민국의 미래였다. 아무리 자신의 조직들과 정부가 잘싸워 모든 좀비를 물리치고 정상으로 돌려놓는다고 하더라도 인구가 없는 국가의 미래는 뻔했다. 그렇기에 신세계를 자극해 삐에로가 빨리 시드좀비를 만들수 있게 한 것이었다.

그것 덕분에 예전에 비해 몇배, 몇십배나 되는 사람들이 아직도 생존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로 인한 문제들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였다. 또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의 정부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고.

만약 지금 신세계를 정리한다면 그 엄청난 좀비들이 통제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져 나갈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과 정부가 져야 했기에 지금은 신세계가 존재해야 했다.

" 이전에 보고한 이성을 가진 좀비가 등장했다고 했죠? 흐음.. "

회주는 이전에 보고받은 그 좀비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진화한 시드좀비의 등장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다만 그 분포도가 북동쪽에 치우져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 혹시 서울 전체 좀비무리 이동경로에 대한 자료가 있나요? "

" 네, 여기 있습니다. "

이미 그녀가 그 자료를 요청하기만 기다렸다는 듯이 집사가 태블릿을 켜서 전달해 주었다. 그것이 그녀가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 집사에 의존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한참을 영상을 돌려보고 자료를 읽던 그녀는 무릎을 탁 쳤다.

' 이거였어! 너무 상황이 바뀌어서 간과했구나. '

급히 태블릿을 놓은 회주가 집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 집사아저씨. 당장 정부에게 연락을 하세요. 서울에 있던 좀비들이 북진하기 시작했다고.. "

본래라면 북한산을 돌아 파주나 김포를 통해 38선으로 올라가는 것이 빠르지만 그곳에는 만월회의 쉘터 및 전진기지가 있어 금방 탄로났을 것이다. 그렇다고 의정부, 양주쪽으로 가기에는 정부의 병참기지와 군사기지등이 신경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북동부지역으로 우회해 빠져나가는 방법이었다.

당연히 그 지역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는 정부와 자신들은 일상적인 좀비의 이동으로만 생각했고 그 의표를 찔러 많은 좀비들을 빼돌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목적은 한창 대치중인 38선을 뚫는 것.

그곳에는 정부의 주력이 북쪽에서 내렬오는 수천만의 좀비들을 방어하고 있는 곳이었고 지금은 고착화된 곳이었다. 이젠 군대도 좀비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 요령을 터득했지만 그것은 막는 것일뿐, 공격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만약 그런곳에 좀비 수십만이 뒤통수를 친다면, 순식간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 한번 뚫린 그 구멍으로 인해 구멍난 땜처럼 우르르 무너져 내릴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중국처럼 멸망만 있을뿐.

회주의 짧은 설명에 모든것을 이해한 집사가 하얗게 변한 안색으로 급히 문을 나섰다. 그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었다.

' 구루. 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

이 모든것은 구루의 작전일 것이다. 그가 북쪽에 있는 변절자 조직들과 교류가 있다는 사실도 지원을 받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급진적으로 움직일꺼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책임이었다.

' 그래서.. 북한산 쉘터를 공격했구나. 하아,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신세계를 그냥 놔둘수 없는데.. 백신 연구가 마무리되면 빨리 신세계를 정리하고 그들의 침략을 준비해야 돼. '

본래라면 이년후에 개발되는 백신으로 아단위 백신(Subunit Vaccine)의 한종류로 북한산 쉘터에서 편입된 항생체를 가진 그 여인에게서 추출한 입자로 만든 백신이었다. 이것은 좀비가 공격을 하는 인간의 범위에서 벗어나게 해 더 이상 좀비의 공격을 받지 않게 하는 예방백신으로 이것이 발명되면서 좀비에 대한 공포가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그때에는 세계 인국의 95%가 좀비가 되거나 죽어버려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일부의 인간이 그 백신을 사유화해 그것을 무기로 세상을 지배하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마무리되는 백신이었다.

아직 임상실험단계 였기에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때까지 신세계는 계륵과 같아 건드리기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 고민을 하던 회주의 눈빛이 돌아왔다.

' 그래. 그가 지금 움직이고 있어. 혹시··· '

지금 막 보금자리를 나선 바위를 떠올렸다. 그의 이동 동선을 매시간 파악하고 있는 자신의 조직으로부터 예상 이동경로를 보고받았고 다음 예상 행선지는...

' 서울시립대. 목적은.. 나를 만나러 오는거겠지. '

바위의 쉘터에 전해준 자신의 거점들 중 가장 가까운 곳이 그곳이었다. 혹시라도 그가 움직이면 찾아올 여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정보를 제공한 곳이기도 했다. 그것이 지금 맞아들어갔다.

" 일단 먼저가서 기다리는게 예의겠지. 그동안 그가 해줘야 할일도 챙기고.. "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한 회주는 시선을 돌려 파도가 넘실거리는 태풍속 바다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 비친 그 바다는 마치 자신의 머리속을 보는듯 이리저리 휘몰아치고 있었다.


쏴아아! 우르릉! 꽈광!

태풍이 한반도를 가로질러 지나가는지 기상청이 없으니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몇일동안 비가 쏟아지는 것으로 봐서는 빠르게 지나가는 태풍이 아니었다.

" 어휴, 젠장할..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끝없이 쏟아붇네. "

상봉역 구역을 모임에 인계를 하고 길을 나선지 한시간이 넘었다. 목표지점까지 빠르게 움직이면 걷는 속도로 한시간도 걸리지 않을 거리였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빗물덕분에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큰 도로를 따라 서울시립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던 바위와 일우의 눈에 다리가 들어왔다.

중랑교. 한강 지류인 중랑천에 위치한 다리로 송파와 상계동을 잇는 가교였다. 머리위로 지나가는 동부간선도로가 보였다. 팔차선 도로와 양옆으로 늘어선 빌딩들. 예전이면 수많은 차들이 지나다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인도와 건물들.

건너편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보였다. 이 중랑천에만 수십개의 다리가 존재했고 그 다리를 통해 수많은 좀비무리들이 이동을 했다. 몇몇 다리는 누군가 일부러 막아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실체는 알 수 없었다.

지금 내리는 비에 더럽던 길거리가 씻겨내려가는 모양새였다. 떨어져 보면 예전과 다름없는 예전 서울의 길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비덕분에 짜증이 난 일우는 그런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 분명히 낮인데.. 왜이리 어두워. 아씨.. 습기때문에 꿉꿉해. "

바위의 뒤편을 따라 걸으며 연신 투덜대는 일우는 갑자기 걸음을 멈춘 바위의 등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덕에 바위의 우비 어깨에 고여있는 빗물이 일우의 얼굴로 튀었다.

" 아, 퉷! 뭐야? "

일우가 고개를 내밀어 전방을 확인했다. 여전히 내리는 비때문인지 시야가 그리 넓지 않아 보이는게 없는 일우는 고개를 들어 바위를 바라봤다.

우비에 음영이 진 바위의 선 굵은 얼굴이 보인다. 뭔가를 보았는지 살짝 굳은 표정을 짓는 바위가 일우를 내려다 보며 눈을 마주쳤다.

" 좀비다. "

" 뭐? 이쪽으로는 좀비가 안 지나다닌다며? "

상봉역에서 얻은 정보였다. 강북을 가로지르는 중랑천의 가교중에 상봉역 구역과 가장 가까운 이 다리는 신세계와 협약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좀비들이 이곳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아마 바위가 처음 만난 그 사이퍼 무리 대장이라면 그 협약을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이미 삼도천을 건넌 상태였기에 지나친 사항이었다.

그러고보니 신세계 소속이었던, 다크를 여기에 보낸 이유도 의심이 갔다. 다크의 말로는 이곳에 그녀가 죽여야 할 인간들이 있다는 정보만 들었고 이곳에 여자들과 같이 보낸 것이 신세계측의 부탁이라고 했었다.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설마 그 용수라는 새끼가 거짓말을 했나? 그건 아닌거 같은데.. "

일우는 겁에 질려 자기가 아는 것을 다 털어놓은 사이퍼, 용수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제비의 머리가 아쉬웠다. 제비라면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원인과 결과를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 어디쯤에 있는데? 냄새도 소리도 안들리는데? "

비가 내리는 소리와 물비린내가 일우의 코와 귀를 막고 있었기에 의문을 담아 바위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미 고개를 돌린 바위는 다리 건너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바라보는 저 다리, 중랑교만 건너면 서울시립대가 멀지 않다. 그 말은 바위가 본 좀비무리들이 그곳을 지나쳐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 길이 한개뿐이 아니기에 그곳을 지나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일우는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 어쩔 생각이야? 잡고 갈꺼야? 아님 그냥 흘러보낼꺼야? "

이제까지 바위의 패턴은 이 두가지 중 하나였다. 좀비무리의 이동동선에 따라 육사쉘터로 향하는 좀비들은 잡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흘러보내는 방법을 고수해왔다. 물론 세자리 숫자까지만 선택사항이었고 그 이상은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팡! 바위가 발을 굴렀다. 그 추진력으로 인도 옆에 설치되어 있던 가로등까지 단번에 솟구쳐 올랐다. 큰 덩치의 바위는 엄청난 균형감각으로 가로등을 밟고 서서 저 멀리를 훑어봤다.

그런 바위를 보며 고개를 흔든 일우는 그 자리에서 바위를 기다렸다. 어짜피 바위가 결정을 내릴 사항이고 본인이 직접 움직여 싸우기에 방관자에 자신은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후 소리없이 내려선 바위가 입을 열었다.

" 숫자가 많아. 최소 네자리, 최대 다섯자리. 저것들을 보내주면 상봉역 일대가 위험해져. "

상봉역 일대는 거기에 위치한 신세계 거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그 주변으로 수많은 생존자들이 무방비로 숨어 지내고 있었기에 만약 이 정도의 숫자가 들이닥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보듯 뻔했다.

거기에 이번에 상봉역 거점을 접수한 바위의 모임 인원들 다수가 그곳에 상주해 통제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런 사실을 떠올린 일우가 심각한 얼굴로 대꾸했다.

" 그럼 연락을 해서.. 이런 씨발, 겨우 몇백미터 떨어졌다고 통화불량이냐.. 크으.. "

일우가 배낭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어 몇가지 조작을 하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 어짜피 지금 연락해도 늦어. 그곳의 모든인원이 대피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

"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

촤르륵, 꽉! 바위는 대답대신 자신의 무기를 풀어 쥐었다. 그 뜻은 명확했다.

" 일우, 넌 상행선을 막아. 단순히 벽을 쌓아서 넘오지 못하게만 해. "

바위의 계획은 간단했다. 중랑교는 상행과 하행선 다리가 각각 존재했다. 그중 상행선 다리를 막아 그쪽 방향으로 좀비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만든 후 하행선 방향으로 오는 좀비들을 혼자 막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 야, 아무리 네가 대단해도 에너지, 체력에 한계가 있어. 너 대단한거 아니까 적당히 해. "

일우는 표정에 장난기라고는 하나없이 굳은 얼굴로 대꾸했다. 일우도 바위가 모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가 없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자신의 가족들의 안전까지도.

말이 수천수만이지 삼국지속 장비가 장판교에서 백만대군을 맞아 싸웠다는 건 설화나 소설에서나 가능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움과 망설임이 없이 자신의 모든것을 던지는 좀비들은 단순히 그 한마리 한마리가 병사 한명과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말하며 화가 치민듯 말투를 날카롭게 하며 일우는 고개를 돌렸다.

" 시간이 없어. 저쪽에서 이미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어. 걱정하지마, 내 한몸정도는 언제라도 뺄 수 있으니까. 가자. "

일우가 어떤 걱정을 하는지,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가볍게 말했다. 마치 장날에 장터를 나가는 것 마냥.

" 야이.. 야! 야! "

일우가 다시 고개를 돌려 뭐라고 말을 내뱉기도 전에 바위는 이미 저만치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급히 바위에게 따라붙으며 말리려고 했지만 일우의 귓가로 좀비 특유의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다리를 건너고 있다고 알려주는 소리였다.

" 하아. 젠장! 너 확실히 막을 수 있지? 나 여기 다리 막는데 온힘을 다 써야해. 널 도울 수 없다는 말이야. 알겠어? 너 진짜 죽으면 나한테 죽어! "

자기가 뭐라고 말하는지도 모르는지 크게 고함을 지르는 일우는 자신의 포지션을 찾아 들어갔다. 일우가 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더욱더 불안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왼쪽 다리 위로 올라선 일우가 자신의 능력을 일으켰다.

" 하아압! 젠장할! "

기합인지 욕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으며 바닥에 손을 댄 일우의 전면에 거대한 콘크리트벽이 일어났다. 그 벽은 7다리를 완전히 막아서며 일어나 그 위용을 과시했다. 대략 높이만 삼미터가 넘게 일어선 벽은 다리의 좌우를 막으며 가득 매웠다.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는 일우의 입장에서는 고역이었지만 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본래 재료가 충분하다면 고정화를 통해 이후에 별다른 에너지 없이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지만 이렇게 재료가 한정되어 있는 다리의 경우는 실체화를 통해 부족한 재료를 충당해야 했기에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끊어지게 되면 저 거대한 벽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게 될 것이다.

큰 에너지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를 체크하며 벽 건너편에 도달한 좀비들에게 신경을 끊고 건너편 다리를 쳐다봤다. 아직 비가 그치지 않아 희미하지만 좀비의 움직임이 급박해 지며 괴성이 울리고 특유의 악취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뭔가가 허공을 날라다니기 시작했다.

막 바위의 전투도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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