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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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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130,959
추천수 :
2,769
글자수 :
1,307,372

작성
18.08.18 06:00
조회
856
추천
19
글자
22쪽

태풍 속 서울(7)

DUMMY

우르릉.. 꽈광!

낙뢰가 떨어지면서 순간적으로 사방을 밝혔다. 그 잠깐 사이에 드러난 두개의 다리위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상반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한쪽은 물길을 막아놓은듯 댐에 고인 물처럼 좀비들이 통과하지 못해 우글거리는 모습이었다. 그에 반해 건너편 다리는 믹서기에 서리태를 갈고 있는듯 좀비들이 한곳을 향해 뛰어들고 갈려나가는 모습이 순차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위가 쇠사슬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다리를 가득채운 쇠사슬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끔찍한 광경을 연출시키고 있었다.

콰콰콰! 퍼퍼퍽, 후드득..

달려드는 좀비와 쇠사슬에 걸려 몸뚱아리가 박살나거나 재수없게 대가리가 터지며 그 파편이 사방으로 휘날리고 있는 풍경. 비현실적이었다. 인간과의 대결이라면 그 지옥도에 주춤거리거나 물러섰을게 확실했지만 바위가 상대하는 존재들은 그런 감정이 없었다.

얼마나 휘둘렀을까? 좀비들의 파편이 주변을 가득 메우고 뒤섞여 그 형체를 몰라볼 정도로 쌓일때쯤 파창! 소리와 함께 바위의 쇠사슬이 끊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은 바위는 내려놓은 망치를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 후우, 이제 시작이네. "

아직도 다리끝까지 이어지는 좀비들의 행렬은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다른 쪽 다리를 가득 메운 좀비들 숫자만큼 줄어든것이 불행중 다행일까. 그런 생각을 채 끝내지도 못한 바위를 수많은 좀비의 물결이 덮쳐들어가고 있었다.

에너지소비를 최소화해야 했다. 체력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만히 서 있어도 알아서 달려드는 좀비들 덕분에 움직임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막 달려드는 좀비의 찢어진 얼굴을 망치로 날려버린 바위는 망치를 휘두르며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마치 한걸음 물러나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시야, 온몸을 타고 흐르는 에너지 흐름, 외부에서 흐르는 공기의 흐름까지 모든것이 느껴지고 보인다.

지금 달려드는 좀비 세마리의 움직임에 따라 천천히 흔들리는 흐름들, 그 모든 것들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이고 자신의 망치가 휘둘러지며 찢어지고 파괴되는 세계.

분노, 번뇌, 회한, 격정들이 뭉쳐 머리를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 막혀있던 뚝이 뻥 뚫리는 듯한 쾌감. 세상에 퍼져있는 지고한 의지가 손끝에 닿으려는 찰나, 그 순간이 끝이났다. 한순간에 밀려오는 허무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없던 바위는 간신히 이성을 회복하며 여전히 악을 쓰고 있는 건너편 다리를 쳐다봤다.

" 야이! 새끼들아! 여기다, 여길 뚫어봐! "

혹여나 좀비들이 자신쪽으로 돌아갈까 고함치며 계속적으로 좀비들의 흉성을 자극하는 일우는 자신의 존재감은 좀비들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저 짓을 여태껏 계속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일우의 모습에 피식 웃음지은 바위는 발걸음을 돌려 일우쪽으로 옮겼다. 떨어져 있어도 충분히 그 마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 어, 뭐야? 벌써 끝났어? "

일우는 누군가 자신의 머리에 손을 올리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 돌아봤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바위는 마치 거대한 돌산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순간적으로 넋을 놓은 일우는 막 무너지려는 방호벽을 간신히 잡아두며 외쳤다.

" 너, 너.. 조금 변한 것 같은데. 뭐지? "

바위를 올려다보던 일우는 바위의 분위기와 무언가 변한 느낌에 이러저리 훑어봤지만 뚜렷이 잡아채지 못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바위가 조용히 말했다.

" 넌 뒤로 빠져. 여기서부터는 내가 처리하지. "

바위뒷편으로 느껴지는 좀비들의 괴성을 들은 일우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위를 쳐다봤다.

" 너, 괜찮아? 좀 쉬어야 하는거 아냐? 방금··· "

" 괜찮아. 길을 열어. "

단호하게 말하는 바위를 잠시 올려다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일우가 느끼기에도 평소와 다르지 않는 바위의 상태에 수긍한 것이다.

" 휴우.. 그래, 넌 너지. 맘대로 해라. "

일우도 방호벽 유지에 꽤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는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힘을 거두었다. 유지력을 잃은 벽은 좀비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금방 무너져 내렸다.

크롸앗! 크아악! 이젠 정겨운 소리로 들리는 듯 미소를 잃지 않은 바위가 몸을 날려 좀비들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일우의 두눈은 놀람으로 치켜뜨였다.

바위의 전투는 하나의 춤과 비슷했다. 무기가 지나가는 길엔 막힘이 없었고 움직임은 가벼워 깃털과 같았다. 온 몸을 이용해 좀비를 터트리고 날려버리는 움직임에는 끊임이 없었다. 가볍게 움직이지만 결과는 가볍지 않고 불과 몇미터를 벗어나지 않고 있지만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는 수배가 넘어갔다.

도저히 일우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들이었다.

" 하, 지랄하네. 이젠 하다하다 무협지 흉내까지 내네. 지가 무슨 무림고수야? 뭐야. "

일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힘을 키워 바위의 품에서 독립할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다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좀비들의 숫자는 착실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미처 일우가 끼어들 틈도 없어 보였다.

오후쯤에 삼봉거점을 출발해 지금 해가 저물고 있는지 제법 어두워져 있었다. 내리는 비때문인지 아니면 그 만큼 시간이 흐른것인지 파악조차 불가능했다.

막 달려드는 마지막 좀비의 대가리를 부숴버리고 가만히 서 있는 바위에게 일우가 소리쳤다.

" 제발 좀 쉬자. 넌 괴물이라 모르지만 나같은 연약한 사람은 쉬어야 살 수 있단 말이다. "

예전같으면 한마디도 못하고 끌려다녔겠지만 지금은 될대로 돼라는 심정인지 마음속 말을 마음대로 내뱉는 일우였다. 거의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절벽을 맞닥뜨린 인간의 심정이랄까.

그런 일우의 목소리에 돌아본 바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일단, 다리를 지나서 쉴 곳을 찾아보자. "

무슨 생각인지 자신의 말에 동조하는 바위에게 다가간 일우가 먼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 오케이. 얼릉 가자. 진짜 너무 힘들어. 씨바.. "

꽤나 오랜시간동안 에너지를 이용해 능력을 컨트롤한 일우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직접적인 전투를 벌인 바위는 멀쩡한 얼굴이었다. 그런 바위를 올려다보며 투덜거린 일우는 성큼성큼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뒤돌아보며 일우가 말을 던졌다.

" 근데, 너 쇠사슬은 어디에.. 아 망가졌나? 하긴 그렇게 험하게 다루는데 멀쩡하면 이상하지. 근데 너 이마를 좀 가려야 겠다. 너무 밝아. "

날씨가 어두워져서 그런지 이상하게 밝게 빛나는 바위의 푸른색 바코드를 가리키며 일우가 말하자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이 머리에 손을 대는 바위였다.

' 18065488701. 드디어 넘어섰네. '

바위 스스로가 칭한 단계 8층을 넘어선 것이다. 만월회나 여타 사이퍼들은 게임용어를 빌려 레벨로 표현했지만 바위는 이 하나하나가 마치 벽을 넘는 것과 비슷해 층으로 비유를 했다. 즉, 79레벨에서 한동안 머문 바위는 80레벨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고 여러가지를 익혔다. 아니 이미 6,7층에 오르기 위해 익힌 기술들을 재창조하고 조합해서 자신만의 기술을 만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온 것이었다.

최근에는 그런 기술적인 것보다 다른 곳에서 찾아보라는 주변의 조언에 심신수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잠을 잘때 외에는 가부좌를 해서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에너지를 느껴보려 시도했고 심상으로 그동안 익힌 기술들을 수련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발전했고 지금에 와서 개화를 했다. 심상으로 수련하고 연습하던 동작과 흐름을 생각과 동시에 표출하는게 가능했고 어떻게 움직이자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을 했다. 무엇보다 이전층에 오르면서 익힌 기술중 하나인 에너지필드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졌다. 그리고 변형이 가능했다.

그렇게 이번 단계롤 넘어서며 자연스럽게 익힌 기술들을 종합해보던 바위는 다리를 건너 얼마 걷자 좌우로 늘어서 있던 아파트 단지 앞, 도로 옆에 서 있는 건물, 하이마트가 보였다. 제법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이 3층건물은 불이 꺼져 있어 으스스했지만 그들이 쉬어가기에는 적당한 장소였다. 무엇보다 1층은 온갖 가전제품과 차량으로 막아져 있어 걸어서 2층으로 진입하기가 어려워 침입걱정은 없어보였다.

물론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쉬는 와중에 그런것들을 신경쓰기 귀찮은 일우는 냉큼 그 건물을 가르키며 말했다.

" 저기 좋다. 위치도 좋고 주변을 볼 수 있어서 좋네. "

그렇게 말을 내뱉고 바위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이 달려가 뛰어올라 2층으로 올라섰다. 커다란 배낭을 매고서도 고양이처럼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 건물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2층 전면으로 나있는 유리들이 깨져 있어 손쉽게 올라설 수 있었고 그곳을 통해 2층에 올라선 일우가 주변을 돌아봤다.

예전에 전자기기들이 진열되어 있는 전시장은 난장판이었고 곳곳에 묻어있는 핏자국은 당시 급박한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가만히 사방을 둘러보던 일우의 기감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자 고개를 돌려 바위를 부르려는 순간.

" 우와! 깜짝이야. 기척 좀 내고 다녀. "

어느새 건물안으로 들어선 바위의 그림자를 본 일우가 귀신보듯 놀라며 타박했다. 그런 일우를 신경쓰지도 않고 안쪽으로 들어서며 바위가 말했다.

" 이 근처는 아무도 없어. 편히 쉬어. "

이미 자신도 파악한 사실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안쪽으로 들어선 바위를 흘겨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바위가 말한 근처는 이 건물을 포함해 반경 백미터 이내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둘은 보는 시야의 높낮이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쉬는게 맞는데. 이상하게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던 일우는 그 원인을 눈앞에서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바위에게서 찾았다.

" 휴우, 도대체 저게 뭐하는 짓인지.. 그냥 좀 가만히 앉든 눕든 쉬면 안되나? 예전엔 그래도 앉아서 조용히 있어서 좋았는데.. "

이전의 바위는 몸으로 수련하거나 전투할때 외에는 가부좌상태로 석상처럼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편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지금처럼 급격하게 움직이거나 에너지를 풀풀 풍기는 것은 아니지만 무슨 중국 노인들이 하는 태극권도 아니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슬로우모션보다 더 느리게 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쉬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최근에 60레벨을 뚫으면서 느낄 수 있는 에너지의 흐름은 민감한 그의 기감을 계속 건들였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마치 비단으로 만든 깃털로 자신의 온몸을 쓰다듬는 이상야릇한 느낌이었다.

바위가 주먹을 한번 뻗을때 그 주변으로 흩어지는 기파가 부드럽게 퍼져나가며 전신을 훑고 있는 듯 했다. 수련을 하느라 부드럽게 흩어지는 거지, 실전에서는 칼날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혹시 이런 느낌때문에 미친년들이 들러붙는 건가? 원래 미치면 본능이 강해지는 거지. 흠,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을 것··· "

어느순간부터는 그런 느낌이 사라지고 물속에 있는 듯 답답해졌다. 마치 거대한 에너지의 물결에 휩싸인듯 착각을 일으켰다. 조금만 더 있다가는 질식사할 것같은 느낌에 급히 자신의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일우는 계속 자신을 침범해오는 에너지의 물결을 막아내면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 그,그만.. 이 새꺄. 나 죽는다. 호,혹시 이제 쓸모없다고 사고사를 위장해서.. '

입을 열면 그 입으로 물이 들어오듯이 에너지가 침범할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급박하게 에너지를 일으켜 바위의 것을 밀어내는 와중에 시뻘건 눈으로 바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리고 싶은 얼굴이었다.

점점 더 바다 깊숙이 가라앉는듯, 이젠 숨조차 쉬기 어려운 상태로 들어선 일우는 터질것같은 두눈을 부릎뜨고 바위를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물에 빠져 죽기전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원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바위가 일우의 상태를 깨달은 것은 막 개거품을 물고 눈이 돌아가기 시작할때 쯤이었다. 급히 자세를 푼 바위가 일우를 돌아봤다.

" 그르르르.. 쉬프르르. 개크르르.. "

중간중간 명확한 뜻이 담겨 있는 듯 했지만 개거품을 물고 허파에 공기가 공급되기 시작한듯 가래가 끓는 목소리를 내며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그제야 그토록 원하던 편안한 휴식상태가 되었지만 본인은 그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 방출 다음에는 간섭인가? 이젠 조심해서 수련을 해야 겠네. "

단계가 높아질수록 바위가 얻는 힘은 그 의미가 조금씩 달라졌다. 다른 사이퍼들도 이런 과정을 통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점점 근본적인 힘에 다가서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바로 에너지, 예전에는 기, 마나, 에테르등으로 불리던 세상의 근원이자 동력이었다.

정확한 실체는 몰랐지만 이미 그 존재를 느끼고 은연중 사용해온 바위는 그제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 흐르고 있는 거대한 움직임과 그 크기가 느껴진 것이었다.

이건 마치 개미가 코끼리를 만지고 그것이 무엇인지 유추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중요했다. 그러면서 정리를 했다.

' 가장 낮은 위계 1번부터 높은 위계 9번대까지 이 에너지를 얼마나 구체화시켜 발현할 수 있느냐의 차이일뿐. 아니 상상력의 차이인가? 대부분이 간절히 원하는 것들 혹은 염원하던 상상을 현실으로 끌어오는 것. 그것이 사이퍼들의 능력이 아닐까. '

돌이켜보면 대다수의 사이퍼들은 자신들이 꿈꾸던 능력, 무의식적으로 갈망하던 것들이 현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기본바탕은 바코드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뿐.

문득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봤다. 정확히는 주먹을 휘감고 있는 에너지의 잔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제 선명하게 보이는 그 에너지의 흐름은 자신을 중심으로 불꽃처럼, 바람처럼 훨훨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저 멀리서 느껴지는 몇몇의 에너지들도 이젠 손에 닿을듯이 느껴졌다.


흠칫. 커다란 마차와 비슷한 외관을 지녔지만 말대신 거대한 좀비 네마리가 끌고 있는 그 이동수단 내부에서 누군가 눈을 번쩍 떴다. 정확한 위치파악되지 않는 거대한 에너지를 느낀 것이었다.

" 뭐야? 갑자기..? 놀랐잖아. "

갑작스런 구루의 행동과 표정에 놀란 일행중 둠스터가 말을 건내왔다. 옆에 폭탄이 떨어져 터져도 눈깜짝하지 않을 구루의 갑작스런 표정변화는 처음 본 그들이었다.

마차안에는 총 다섯명의 신세계 변절자들이 동행하고 있었다. 구루, 삐에로, 둠스터 그리고 처음보는 적색 사이퍼 남자 둘. 각각 그린과 퍼플이라 불려지는 사내들이었다.

" ··· 별거 아냐. 음. 서울쪽 시선은 확실히 돌려놨지? 삐에로. "

애써 표정을 수습한 구루가 태연하게 화제를 돌렸다.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한 에너지의 유동을 말해 분란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호호호, 당연하지. 지금쯤 북동부랑 남서부, 인천은 초토화 되었을껄. 아직 정부쪽은 건들지 말라고 해서 피하기는 했는데··· 아하하하. 내가 그 정도로 정교하게 컨트롤 하지 못해서 말야. 만월회건 폴리스건 정신없을껄? 돌아오면 알겠지. "

진화한 시드좀비를 통해 입력가능한 명령은 제한적이었다. 예전의 이동경로만 명령할 수 있을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지만 그것도 한계는 분명했다. 본능을 억누를 수 없는 것은 물론 이탈하는 좀비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기에 이번 작전이 끝나고 와봐야 결론을 안다는 말을 한 것이다.

" 엉덩이에 알배기겠네. 도대체 언제쯤 도착하는 거야? 차라리 싸우는게 편하겠다. "

승차감이 좋다고 할 수 없는 마차를 탄 둠스터와 일행들은 연신 짜증을 냈다.

" 조금만 기다려, 이 작전이 끝나면 우린 이 나라의 주역이 되는 거니까. "

" 근데 구루. 저들을 믿을 수 있는거야? 중국놈들 본질은 바뀌지 않아. 단순히 약속만 믿기에는··· "

예전에 인터넷 어디선가 본 중국사람들의 습성에 대해 말한 둠스터의 말에 구루가 차분히 대답했다.

" 걱정하지마. 저들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국가시스템이 없애려는 거지. 이곳을 정복하려는게 아냐. 러시아는 물론이거니와 유럽쪽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이곳의 전선을 길게 유지할 여력이 없어. "

" 깔깔깔, 뭐 난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어. 지금이 가장 재미있으니까. 예전으로 돌아가지만 않으면 돼. "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대는 삐에로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둘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 저, 근데 우리가 할일은 뭔데.. 우리를 데리고 가는 거야. 너희들끼리만 해도 충분하잖아. "

" 크크, 너희들이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걱정마라. 그린, 퍼플. "

둠스터의 말에 그린, 퍼플이라 불린 사내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구루와 그 일행들을 쳐다봤다. 불안한 그들을 달래듯이 말하며 입을 연 것은 구루였다.

" 너희들은 단일 대상이 공격력은 형편없지. 오히려 총 맞고 죽지 않으면 다행일정도. 하지만 일반인 다수를 상대할때는 작전만 잘 짜면 효과적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

대충 예상한 그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퍼플은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지 그린을 쳐다보며 눈으로 물었다. 그런 그 모습에 그린이 조그맣게 귓가로 속삭였다.

" 그러니까, 우리 역할은 군인을 상대하는 역할이야. 난 독을 뿌리고 넌 증폭시켜 범위를 넓히는 거지. 비록 내 독이 사람을 죽일정도로 강하지 못하지만 지속력은 뛰어나, 거기에 너의 능력까지 더하면 제법 넓은 범위까지 퍼트릴 수 있어. 일종의 양동작전이지. "

그린의 말에 대략적인 이해를 했지만 아직 의문이 남은 퍼플이 그린의 귓가로 속삭이며 물었다.

" 근데 저기 따라오는 수십만의 좀비들은 우리 이후에 공격하는 거야? 아님 좀비가 전투하는 도중에 우리가 투입하는 거야? "

"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우린 그냥 작전대로 나가서 능력만 뿌리고 오면 돼. "

제법 태연하게 말하는 그린과 달리 퍼플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대규모 작전도 처음이지만 군인들, 일반인들을 죽여야 하는 일은 섣불리 나서기 두려운 것이었다.

그런 퍼플의 상태를 알았는지 그린이 다시 조그맣게 이야기했다.

" 어짜피 이것도 게임이라고 생각해. 예전에 해봤던 대규모 전략시뮬레이션과 같은 거 말야. 크크, 넌 이미 인간도 잡아먹은 놈이 뭐가 그리 두려운거야? "

"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 씨발..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거야. "

그린의 말에 발끈한 퍼플이 목소리를 높이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고개를 숙인 퍼플이 이를 악물며 그린에게 속삭였다. 그 당시의 상황이 떠오른 것이었다.

하지만 빙글거리는 그린은 놀리듯 퍼플에게 말했다.

" 그래서? 그 사실이 없어져? 그리고 그 동안 여자들 많이 먹었잖아. 위아래로 말야. 크크큭. "

사실이었다. 퍼플은 각성하고 얻은 능력을 이용해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이 세계가 꿈이거나 게임인 줄 알았다. 마치 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이것저것 망상만 하던 짓거리를 다하고 다녔다.

그런 와중에 식욕을 참지못하고 인간을 잡아먹고 구토하고, 예쁜 여자를 강간하고 안전을 위협해 데리고 다니다 사랑에 빠졌던 어느날 깨어보니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뜯어먹힌 그녀의 사체를 보면서 미친듯이 부정하던 과거의 모습들.

그리고 합류하게 된 신세계에서 자신보다 월등한 초능력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깨달았다.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 이름없는 작은 배역일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면에서 그린은 퍼플 자신보다 훨씬도 현실적이고 잔인했다. 그린은 자신의 지위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것들을 누렸다. 인간들을 자연스럽게 가축취급하면서 과거 재벌이나 정치인들이 보여줬던 갑질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길가다 맘에 안든다고 몽둥이질은 기본이고 조금이라도 예쁘다 싶으면 나이를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강간을 저질렀다. 아무도 그린을 말리지 못했다. 신세계에서는 그가 귀족이고 나머지는 가축일뿐이었으니까.

그런 모습에 예전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퍼플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껴왔다. 비록 자신이 예전에 비슷한 짓거리를 했다고 하지만 이 모든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최대한 자제를 해오고 있는 편이었다.

이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없애려고 한다. 비록 자신이 국가에게서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헬조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건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투정일뿐이었다. 실제로 국가가 없어질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이들이라면, 이들의 능력이라면, 뒤따라오는 수십만의 좀비들이라면, 북쪽에서 내려온다는 대규모의 좀비떼들이라면 진짜로 가능할 것 같았다.

조그맣게 나 있는 창가를 통해 바깥을 내다본 퍼플의 한쪽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퍼플의 눈에 비친 조그만 표지판에 철원 6키로라고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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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38선(2) 18.08.21 826 19 21쪽
71 38선(1) +1 18.08.20 818 19 23쪽
» 태풍 속 서울(7) 18.08.18 857 19 22쪽
69 태풍 속 서울(6) +2 18.08.17 799 21 21쪽
68 태풍 속 서울(5) +1 18.08.16 803 16 21쪽
67 태풍 속 서울(4) 18.08.15 803 15 21쪽
66 태풍 속 서울(3) 18.08.14 831 17 22쪽
65 태풍 속 서울(2) 18.08.13 809 16 23쪽
64 태풍 속 서울(1) 18.08.10 852 17 21쪽
63 확장(6) +1 18.08.09 849 18 22쪽
62 확장(5) 18.08.08 812 19 22쪽
61 확장(4) +1 18.08.07 834 23 25쪽
60 확장(3) 18.08.06 824 17 21쪽
59 확장(2) 18.08.04 806 15 19쪽
58 확장(1) 18.08.03 883 17 23쪽
57 서브웨이(5) +1 18.08.02 884 18 20쪽
56 서브웨이(4) 18.08.01 855 16 19쪽
55 서브웨이(3) 18.07.31 873 18 22쪽
54 서브웨이(2) 18.07.30 933 1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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