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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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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최근연재일 :
2021.11.10 22:29
연재수 :
2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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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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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30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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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11쪽

11. 남해(南海) (1)

DUMMY

일기당천과의 격전으로 폐허가 되었던 천도는 생각보다 빠르게 혼란을 수습하고 있었다. 일기당천의 본 목적이 인명의 살상에 치우쳐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천의검문을 중심으로 한 천도의 무문이 일치단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천도가 순조롭게 본 모습을 되찾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심가장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저력을 천도에 집중하고 있는 덕이었다.


“새로 도로를 정비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만. 성 총관, 얼마나 시일이 걸리겠습니까?”


“천도뿐만 아니라 인근에서 무수히 많은 무객(武客)들이 손을 보태고자 모여들고 있습니다. 폐석의 정비라면 사흘 안에 완료되리라 봅니다.”


“작업이 완료된 지점부터 조속히 길을 닦도록 하세요. 동평에서 경험을 쌓은 석장(石匠)을 수배하도록 하죠.”


아무래도 심하령은 한창 중요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던 것 같다. 한창 총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심하령은 불쑥 거처를 찾아온 나를 보곤 살짝 목례를 건네곤 마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무객의 명단도 정리해 주시겠어요? 늦어도 내일 중으로요.”


“그, 그건 좀...... 아니. 그래야겠군요. 내일 아침까지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총관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난색을 표하다가 문득 내 시선을 느끼곤 얼른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심하령의 처소를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군.


“덕분에 입씨름할 시간을 아꼈군요. 결례를 용서해 주시겠어요 소문주님?”


“제 덕이라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요.”


“말씀드린 그대로에요. 저희 심가가 큰 죄를 지었음은 분명하고 문주께서 단단히 엄포를 놓으셨으니 총관이 소문주의 그림자만 봐도 벌벌 떨 수밖에요.”


시비도 무슨 일을 맡고 자리를 비운 모양인지 심하령이 직접 움직여 다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본래 저렇게 부산하게 움직이며 말을 늘어놓는 경우가 없었는데 정말로 바쁘긴 한 모양이었다.


“거듭 말씀드리는 사실이지만 저는 사사로이 심가를 위협에 빠트릴 생각은 없습니다.”


일기당천이 쓰러지며 사태가 일단락된 이후, 아버지는 즉시 심가의 총관을 비롯하여 이 일에 연관된 모든 이들을 불러모았다. 심지어 단지 남해에 속해 있을 뿐인 종리세가까지 말이다.


“소문주께서 아량을 베푸시니 감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잘잘못은 분명히 가려야 하는 일이니 부디 소녀의 결심을 시험치 말아 주시겠습니까?”


심하령이 담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심려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얼굴로 그녀의 뜻을 전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려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아버지는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심가의 잘못을 따졌고, 심가장의 총관이 거의 실신 지경에 이르자 곧장 노기를 드러내며 최후통첩을 고했다.


파혼.


본래 심가 쪽에서 먼저 오갔던 이야기라서일까? 중대한 이야기임에도 마음의 동요는 그리 크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신검합일이라는 단초를 두고 연마에 몰두하려 했지만 좀처럼 잡상이 가라앉지 않아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일도 아닙니다. 천도의 회복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다음, 남해에 가서 논의하기로 한 사안이 아닙니까?”


“소녀는 그저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야만 한다고 생각할 따름입니다. 천의검문의 비호를 등에 업은 본가가 이치를 거슬렀으니 무엇이 되었든 응당한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겠지요.”


단지 그뿐일까? 파혼을 논하는 일에 대해 심하령은 순리를 언급했지만 어쩌면 그녀는 이제 파혼을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녀가 아무 망설임 없이 순리를 택한 이유도 알고 싶었다. 그게 나의 용렬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터무니없는 사건을 몰고 다니는 도군이라는 사람 그 자체에 지쳐버린 것인지.


“무엇보다 종리 소저도 소문주께 호감이 있는 듯하니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아버지가 굳이 종리세가의 일원까지 불러모은 이유. 그건 새로운 혼약처를 언급하기 위함이었다. 그 상대는 다름 아닌 종리혜. 이는 다시 말해서 심가를 내칠 수 있다는 말이 결코 남해와 척을 지겠다는 뜻이 아님을 내비치는 처사였다.


“.......그보다 천도의 복구는 어떻습니까? ‘길’이 열리는 시기에 맞출 수 있겠습니까?”


계속 혼약 이야기를 나눠봐야 머리만 지끈거릴 참이라 아예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심하령은 미리 준비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차를 홀짝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새로운 ‘길’을 열어야지요. 이미 진식에 능통한 술사도 수배해 두었으니 심려 놓으셔도 됩니다.”


사안이 시급한 만큼 직접 왕래하는 대신 기관진식을 통한 ‘길’을 열어 남해로 향하기로 했지만 본래 ‘길’이란 천지에 순행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열리는 통로를 일컫는 것. 그것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남해를 통해 서역과의 교역에 성공하게 되면 서역의 진식을 들여오는 것도 좋겠군요. 서역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공간을 오가는 법술을 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비술 하나만으로도 능히 황도에서 캐내는 보물의 가치에 비견되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귀중한 지식을 쉽게 들여올 수 있을까요?”


확실히 마법은 그 자체로 비전이고 힘이다. 아무에게나 전하는 지식은 결코 아니지. 하지만 단 한 사람. 마법의 대종사라 할 수 있는 드래곤 슬레이어에겐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일전에 말씀드린 적 있을 겁니다. 서역에는 텔레포트를 숨쉬는 쉽게 시전하는 대마법사가 있습니다. 파천마제와 대적하기 위해선 어차피 좋은 관계를 형성해야 하니 그에게 지식을 청하면 될 겁니다.”


“.......정말로 그런 자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요. 그리고 그런 대단한 고수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파천마제가 극악한 자라는 것도요.”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아직도 저 멀리에는 무림을 넘어 서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적이 있다. 반면 우리는 한참을 걸려 적을 상대하기 위한 고작 일보를 내디뎠을 뿐이다.

참 웃기는 일이다. 무림 전역의 힘을 모으기는커녕 고작 혼약 하나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니. 화가 나기는커녕 기운이 빠지는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림과 서역의 힘을 한데 모아야 합니다. 저 혼자서는 무리겠지만.....”


“물론 속죄하는 뜻에서라도 심가가 앞장서 돕겠습니다. 다만, 서역과의 교역을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면 종리세가 역시 도움이 될 겁니다.”


“종리세가..... 해풍도. 그렇군요. 장 대협이 있었지요.”


종리세가에는 해풍도 장위가 있다. 마물로 가득한 바다를 뚫고 서역으로 향하는 항로를 개척한 역전의 무장(武裝). 그를 제외하고 남해에서 서역과의 교역을 논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조만간 그를 찾아가서 교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생각 외로 종리세가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는 이르게 찾아왔다. 심란함을 달래려 심하려을 찾아간 바로 다음 날, 종리혜가 날 찾아왔기 때문이다.


“폐관수련에 들어가신 줄 알았어요! 어제 언니를 찾아간 걸 알고 이렇게 서둘러서 왔답니다.”


종리혜는 해주제일화라는 명성에 걸맞게 수려한 미모를 자랑하며 내 거처를 신기하다는 듯 이리저리 들쑤시고 있었다. 별다른 세간이 없는데도 저렇게 볼 것이 많은 게 신기할 정도다.


“죄,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가씨의 무례는 제가....”


종리혜의 호위로 함께 찾아온 장위가 포권을 취하며 더듬더듬 사의를 표했다. 얼핏 봐서는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덩치 큰 사내인데 막상 도를 빼들면 성정이 완전히 뒤바뀐다니. 참 사람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것이다.


“유념치 마십시오. 안 그래도 한번 찾아뵈려 했습니다.”


“아, 아! 그렇군요. 실은 아가씨께서도 혼약 이야기에 무척 들떠서....”


“꺄아악! 꺄아악! 장 아저씨! 이거봐요 이거!”


갑작스럽게 종리혜가 별 것 아닌 세간을 집어 들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장위가 그 등쌀에 떠밀려 종리혜에게 다가갔고, 잠시 후 장위가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돌아왔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참 신기한 물건을 봐서요. 하하하.”


호탕한 체 웃는 모습이 영 불편해 보인다.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다. 종리혜가 장위를 두고 잠시 자리를 비운 지금 서역에 대한 일을 물어봐야겠다.


“서역으로 가는 뱃길.....말씀이십니까? 흐음......”


항로에 대한 물음에 장위가 말끝을 흐렸다. 얼핏 진지한 무장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나는 묘한 표정으로 고심하던 장위가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서역에 가시려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차라리 서악을 통해 가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장위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어수룩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지금은 선단을 이끄는 무장으로서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저 역시 항로를 몇 번 오갔지만, 그때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선원 역시 백이 가서 스물이 남아도 기적이라 할 정돕니다.”


“풍랑..... 아니, 마물 때문입니까?”


황도의 참변 이후 나타나는 마물은 뭍과 물을 가리지 않았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남해만이 간신히 시도할 정도로 바다는 위험한 곳이었다.


“둘 다 문제지만 마물이 더 큰 문제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를 대동해도 피해가 막심한 이유를 아십니까? 바다 위에서 싸우는 건 땅 위에서 싸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물론.... 소문주 정도의 무위라면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장위는 죽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나를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쓴웃음이 나오는군. 신검합일이라는 단초를 얻고 아직 멀었다는 걸 자각하는 시점이다. 금칠을 받는 게 영 불편할 뿐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대수롭지 않게 물었을 뿐이다. 그런데 장위의 표정이 더없이 어두워진다. 입을 우물대는 것이 어째 쉽게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재촉하진 않았다. 왠지 장위가 어렵더라도 결국 이야기를 꺼낼 것 같아서였다.


“이건 저 혼자만 아는 사실입니다만....... 아니,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몇날을 물 한모금 못 마시고 사투를 벌이다 우연히 본 것이라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장위는 잠시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멈추었다. 어느새 그의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그 정도 되는 고수가 그 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극도의 긴장에 빠져든 것이다.


“소문주. 저를 미치광이 취급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입니다.”


“무슨......”


“서역으로 향하는 항로에는, 분명 용(龍)이 있습니다. 해룡(海龍). 그걸 어찌하지 못하는 이상 서역으로 가는 항로는 절대 안전할 수 없습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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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11. 남해(南海) (2) +5 19.11.26 371 11 11쪽
» 11. 남해(南海) (1) +6 19.01.30 337 11 11쪽
223 10. 운칠기삼(運七技三) (10) +5 18.10.30 362 9 17쪽
222 10. 운칠기삼(運七技三) (9) +4 18.05.25 427 5 17쪽
221 10. 운칠기삼(運七技三) (8) +3 18.01.17 400 10 15쪽
220 10. 운칠기삼(運七技三) (7) +4 17.12.31 411 5 14쪽
219 10. 운칠기삼(運七技三) (6) +2 17.12.05 349 6 40쪽
218 10. 운칠기삼(運七技三) (5) +2 17.10.17 396 6 17쪽
217 10. 운칠기삼(運七技三) (4) +5 17.06.13 566 7 11쪽
216 10. 운칠기삼(運七技三) (3) +1 17.06.13 474 5 15쪽
215 10. 운칠기삼(運七技三) (2) +5 17.03.20 589 10 19쪽
214 10. 운칠기삼(運七技三) (1) +6 17.01.15 743 10 17쪽
213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5) +3 16.12.18 872 14 20쪽
212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4) +6 16.12.03 683 13 25쪽
211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3) +5 16.11.02 1,008 10 25쪽
210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2) +7 16.09.12 832 11 36쪽
209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1) +5 16.06.13 923 10 22쪽
208 8. 등하불명(燈下不明) (9) +2 16.06.14 872 10 21쪽
207 8. 등하불명(燈下不明) (8) +8 16.05.11 919 17 31쪽
206 8. 등하불명(燈下不明) (7) +6 16.03.29 785 10 24쪽
205 8. 등하불명(燈下不明) (6) +4 16.02.14 836 14 28쪽
204 8. 등하불명(燈下不明) (5) +3 16.02.10 917 14 18쪽
203 8. 등하불명(燈下不明) (4) +7 15.12.13 1,072 14 21쪽
202 8. 등하불명(燈下不明) (3) +11 15.10.12 86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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