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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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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최근연재일 :
2021.11.10 22:29
연재수 :
226 회
조회수 :
586,440
추천수 :
10,871
글자수 :
1,513,856

작성
17.06.13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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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
추천
7
글자
11쪽

10. 운칠기삼(運七技三) (4)

DUMMY

“분명 심가장은 커다란 잘못을 하였습니다. 허나, 그들은 한차례 저를 구했으며 저는 그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그 일면에 삿된 뜻이 있고 검문에 누가 된다면 너는 어찌하겠느냐? 그들이 너와 검문을 이용하고자 기만하였대도 너는 도리를 지키려 하겠느냐?”


아버지 치고는 제법 긴 물음이 나왔다. 미혹과 망설임은 아버지와의 대화를 거듭하며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그것은 검과 검을 마주할 때 경험했던 무아지경과도 같았다.

생사대적을 두고 싸웠던 것처럼, 나는 천하제일의 둔재라는 굴레며 파천마제의 위협. 심가장의 본의 따위를 모두 잊고 오롯이 존재하는 내 의지만을 강고히 했다.


“그것이 도리라면 그리 하겠습니다.”


“내가 허하지 않는다면 그만두겠느냐? 나는 천의검문의 문주다. 검문에 누가 되는 일을 좌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너는 나 정천의 검을 마주하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벽력과 같은 노호성과 더불어 천천히. 그러나 실은 빛살처럼 빠르게 검의가 휘몰아쳤다. 전신의 내공이 폭발하듯 약동한다. 한없이 느려 보이던 검로가 일목요연하게 뇌리에 새겨지며 진천검결. 천의검문의 절기가 눈앞에 펼쳐졌다.


“큭!”


피했다. 일개 학도병에서부터 혼돈의 주구로 전락하며 두 번째 기회를 얻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긴 시간 쌓아온 경험이 나를 살렸다. 간발의 차이로 뻗어간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내 핏물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오른쪽 귓불에 상처를 입었음을 깨달았다.


“세번째는 없을 것이다. 검문의 후계자로서 너는 해선 안 될 선택을 논했다. 천부당만부당한 일을 문주로서 좌시할 수는 없으니, 내 다시 묻겠다. 너는 아직도 삿된 은혜에 답하고자 하느냐?”


어지럽다. 피를 본 순간 돌기 시작한 현기증에 굳건하리라 믿었던 의지가 흔들리고 내 자신도 흔들리고 온 세상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리라.


“그러합니다.”


기적처럼 또렷한 목소리가 울대를 타고 흘러나왔다. 아버지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다. 생전 그렇게 노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두렵다. 늘 기대를 저버렸던 자식이기에 더더욱 아버지의 변모에 몸서리치게 된다.


“그렇다면 나를 꺾어 천의검문을 손에 넣고 네 뜻을 펼쳐 보아라!”


십성 완성된 진천검결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다. 요체만을 인식하고 흉내 내는 나의 검과는 확연히 다른, 투명하리만치 정련된 검세와 무리가 정천이라는 별호만큼이나 정직하게 나를 향했다.


“저는...........”


감히 승산을 점쳐 보았다. 검을 연마한 시간이며 결과를 비교하는 것을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내겐 무한한 내공이 있으며, 수많은 실수로 점철된 경험이 있었고 궁극의 경지가 스치고 간 상흔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정천검과의 격돌이 아주 승산없는 싸움은 아님을 확신했다. 일기당천에게 달려들었던 그때처럼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며 저절로 한 손이 허리에 찬 검을 향한다.

그런 동안 정천검의 애검이 맹렬하게 날아들고 있었다. 일직선으로 날아드는 찌르기. 그 안에는 어떠한 기교도 속임수도 없다.

이어서 떠오르는 수많은 경험. 애송이에 불과한 하이스쿨 학생의 찌르기부터 볼마르그의 창술이나 일기당천의 무공에까지 셀 수 없는 경험이 겹치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며 나는 차츰 눈앞에 날아든 검에 대한 대응이 둘로 좁혀지는 것을 느꼈다.


방어, 혹은 역공.


그 대응은 다채롭되 결국 두 가지로 귀결되고 있었다. 즉, 단순히 막고 끝내느냐 아니면 부딪쳐 가느냐의 문제다. 양자택일의 기로 앞에서 나는 고뇌했다.

대체 무엇이 내 뜻을 관철하는 데 도움이 될까? 절정 고수들간의 승패란 작은 단초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작은 선택이라 할지라도 승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렇기에 신중해야 한다. 한 수 앞을 보는 것을 넘어, 두 수. 백 수 앞을 내다보고 결정해야 한다.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 나는 고심했다. 그 결과, 무공과 무공의 충돌을 넘어 아(我)와 비아(非我)에 생각이 이르렀다.

뜬금없었지만 나는 그 긴박한 순간에도 무공의 격돌 이후를 떠올렸다. 정말로 이겨야만 하는가? 내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패배가 대승적인 도리에 부합될지도모른다.


길고 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찰나의 영겁을 지나, 마침내 한 쌍의 검이 충돌했다. 맹렬한 기세와 그에 따른 상념이 우스울 정도로, 일순간 벌어진 충돌은 실로 보잘것없었고, 입문제자간의 비무에서나 들릴법한 작은 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다.


딱.


검을 내렸다. 속이 후련했다. 이게 맞는 길인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강하다. 전과는 달리 나는 내 뜻대로 행하고 결정할 능력이 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방어. 다시 말해서 최소한의 항거였다.


“뜻을 굽혔느냐?”


아버지가 작은 파문을 일으킨 애검을 회수하며 물었다. 이에 나는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왜 나를 꺾지 않으려 했느냐?”


역시 알아차리신 모양이다. 나는 일기당천의 무공을 본뜬 철저한 방벽을 구사했고, 아버지의 일격은 그걸 알아채고 무의미한 충격으로 서고를 날려버리는 사고를 미연에 막았다. 이것은 고수들 간의 충돌이었기에 벌어진 촌극이었다.


“소자는 천의검문의 후계자이며 또한 한사람의 제자입니다. 혼자만의 뜻으로 문파를 저버린다면 그것은 법도를 저버리는 일.”


검을 집어넣고 포권을 취한다. 그러나 고개는 숙이지 않고 빳빳하게 세워 문주를 바라보았다. 문주에 반하되 문도임을 버리지 않는 어정쩡한 자세였다.


“허나, 천의검문은 중원 제일의 협문. 연유를 불문하고 은혜를 받았다면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 지금에라도 소자는 문파의 위광에 기대는 어리광을 그만두고자 합니다.”


포권지례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체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나 문득 떠오른 바가 있어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아버지가 무슨 표정으로 짓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내 조악한 머리로는 짐작도 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나는 무식하게 내 뜻을 고집할 것이다.


“그러니 문주께서는 문주 이전에 아버지로서 아들을 지켜봐 주십시오. 소자, 도군. 도리와 법도를 지키기 위해 홀로 나아가 일기당천을 다시 쓰러트겠습니다.”


나는 강했지만 누군가와 비교하자면 뒤떨어졌고 사실 내공만 심후할 뿐 별로 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정도라도 고집을 관철할만한 가치는 분명 있었다.

슬프게도 힘은 만용을 용기로 바꾸는 저력이 있다. 헌데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 용기를 내지 않겠는가? 검의에 녹아있는 천의검문의 가르침은 그렇게 목 놓아 외치고 있었다.


“군아.”


아버지의 부름이 들려왔다.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나 이내 털어버렸다. 부자지정에 흔들릴 정도로 나는 얄팔하게 결심한 게 아니다. 사지로 걸어들어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결정한 일이다. 그렇게 쉽게 흔들릴 것이었다면 택하지도 않았으리라.

그러나 아버지의 이어진 말은 강철같은 결심을 흔들기 충분한 위력이 있었다.


“감히 천의검문의 가르침을 시험한 나를 용서하거라.”


“무슨........”


무심코 뒤돌아선 순간,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노기를 보았을 때처럼 놀랐다. 늘 얼음장 같던 아버지의 얼굴에 분명한 기쁨이 엿보였다. 소렌의 차가운 얼굴 속에서 드러나던 감정만큼이나 미약했지만, 그녀와 함께하던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세상사란 결국 운이 좌우한다.”


“운.......”


어째서일까? 둔재에 불과한 나였지만 그 의미를 절절히 이애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이 세상은 비정하게도 운이란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무가에 태어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몸을 갖는 것도 운이며, 명문가에 태어나는 운이며, 그 덕에 이루어지는 수많은 만남과 인연 역시 운이다.


“운칠기삼이라. 필부의 노력은 세상을 바꾸기 쉽지 않으며, 하늘은 미물을 헤아리지 않으니, 사람이 지혜롭게 살기 위해선 천의를 헤아려 순응하는 것이 우선이다.”


순간 나는 대경실색해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 했다. 저 구절을 잊을 리 있을까? 천의결에 실려 있어서 거의 새기다시피 외운 구절이다.


“그렇기 때문아 군아, 운을 소중히 해야 한다. 너를 만든 것은 너의 노력이 셋이요, 다른 사람을 만나고 도움 받는 것이 곱절이 넘는다. 그 운이 생각과 다르다 하여 등져서는 일곱을 잃을 것이요, 받아들이고 셋을 더한다면 너는 전부를 얻을 것이다.”


“아버지.........”


설령 무공을 모르는 문외한이 듣더라도 그 가치를 알아차릴만한 가르침. 상승의 무학이 녹아 있는 조언에 나는 어느새 눈물을 줄줄 흘리며 꼴사납게 아버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나 역시 심가장주와의 연이 내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허나 심가장주와 만난 운은 결코 좋은 운만은 아니었으며, 나는 너와는 다르게 여러 번 그를 외면하고 내쳤다.”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천형이나 다름없는 육신을 원망해서 버렸고, 삿된 힘이라 하여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을 헌신짝처럼 버렸고 결국 실수를 거듭하고 말았다.


“천의란 옳고 그름이 없으니, 그것을 정하는 것은 사람이라,그르다 여기는 천의를 받들고 용서하여 조화를 구하고, 옳은 천의라도 숙고(熟考)하여 그것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그것이 천의에 이르는 천도(天道)이며 천의검문이다.”


설령 심가장이 잘못된 선택으로 해를 끼쳤다 한들 등져서는 안되고, 나의 노력으로 심가장과 만난 운을 올바른 방향으로. 혹은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이끈다. 나도 모르는 내 선택의 의미란 그런 것이었다.


“군은 듣거라.”


어느새 코앞까지 가까워진 부자. 나는 그동안의 회한에 잠겨 막강한 육신과 심후한 내공 따위를 잊고 꺼이꺼이 울며 거인의 품에 안겼다. 거인은 지친 아기새를 안아들고 조금 더 하늘에 가까운 눈과 입을 들어 말했다.


“천의검문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천의검문은 결코 도리를 저버리지 않으며, 그 책(責)이 닥친다면 정천의 명예를 걸고 천도를 구하겠다.”


풀어 논하자면 아버지의 말은 이러했다.


자신이 나서, 일기당천과 심가장의 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이른바 거인(巨人)의 출도였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글을 읽어주신 분들 중 저를 욕하던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변명할 시간이 반성하고 글에 매진하겠습니다.


터무니없이 늦게 돌아와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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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11. 남해(南海) (2) +5 19.11.26 371 11 11쪽
224 11. 남해(南海) (1) +6 19.01.30 336 11 11쪽
223 10. 운칠기삼(運七技三) (10) +5 18.10.30 362 9 17쪽
222 10. 운칠기삼(運七技三) (9) +4 18.05.25 426 5 17쪽
221 10. 운칠기삼(運七技三) (8) +3 18.01.17 400 10 15쪽
220 10. 운칠기삼(運七技三) (7) +4 17.12.31 410 5 14쪽
219 10. 운칠기삼(運七技三) (6) +2 17.12.05 349 6 40쪽
218 10. 운칠기삼(運七技三) (5) +2 17.10.17 396 6 17쪽
» 10. 운칠기삼(運七技三) (4) +5 17.06.13 566 7 11쪽
216 10. 운칠기삼(運七技三) (3) +1 17.06.13 473 5 15쪽
215 10. 운칠기삼(運七技三) (2) +5 17.03.20 589 10 19쪽
214 10. 운칠기삼(運七技三) (1) +6 17.01.15 743 10 17쪽
213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5) +3 16.12.18 871 14 20쪽
212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4) +6 16.12.03 682 13 25쪽
211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3) +5 16.11.02 1,007 10 25쪽
210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2) +7 16.09.12 832 11 36쪽
209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1) +5 16.06.13 923 1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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