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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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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최근연재일 :
2021.11.10 22:29
연재수 :
226 회
조회수 :
586,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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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3,856

작성
15.10.1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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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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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2쪽

8. 등하불명(燈下不明) (3)

DUMMY

‘나는 뭘 하는 거지?’


검노와 대치하며 극도로 긴장한 끝에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검을 쥐고 진천을 펼치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진천이란 육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생각에 맞추어 몸에서 힘을 뺐고, 아득하게 먼 곳에서 진천이라는 두 글자의 향기가 풍겨와 온몸을 둘러쌌다.


‘진천이다.’


날카로우면서도 충만한 이 느낌이야말로 하늘에 닿을 진정한 검, 진천이다. 그렇지만 어쩐지 멀게 느껴진다. 아니, 멀었다. 진천에는 닿지 못했다. 단지 그 향취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을 뿐.


‘닿아야만 해.’


간절한 마음으로 진천에 팔을 뻗었다. 어리숙하게도 한순간만은 간절하면 닿을 것이라는 기적을 믿었다. 진천은 내가 팔을 뻗은 만큼 멀어질 뿐,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달려가도 가까워지지 못할 것 같았다.


‘어떻게?’


어떻게 나는 저 멀리 있는 진천에 손을 댄 것일까? 비유하자면 이것은 쫓고 쫓기는 관계다. 진천이 멀어지기 전에 그곳에 다다를 만큼 단번에 크게 도약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토록 먼 거리까지 도약할 만큼 다리 힘이 강하지도 않았고 그런 과정에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몸이 단단하지도 않았다. 불가능하다. 그런 확신이 차오른 순간, 돌연 손에 단단히 쥐고 있던 검이 더없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무슨 짓이지?”


진천을 경계하여 한걸음 물러선 그는, 아무 의미도 없는 몸짓에 물러난 것이 꽤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다. 그 틈이라도 노렸다면 나았을까? 눈앞에서 무엇을 하든 멍하니 서 있으니 검노는 얼굴을 붉히며 다시금 물음을 던졌다.


“그 빈틈은 함정인가?”


실제로 나는 정말 형편없는 모습을 검을 쥐고 있었다. 가볍게 검을 부딪쳐도 손목이 돌아갈 만큼 파지(把持)법이 엉망이었고, 단단했어야 할 하체의 균형 역시 툭 치면 무너질 모래성 같았다.


“아니었나.”


검노가 조금 실망했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얼굴이 확 붉어진다. 내상이든 무엇 때문에든 검노는 내가 싸울 수 없다는 사실을 짚어냈다.


“진천을 꺾기 위해 절치부심했건만....”


검노가 그리 말하곤 검을 들어 올렸다. 제길, 검노는 이제 기다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검을 휘두르는 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떠오르긴 하였지만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을 접할 것처럼 낯설었다. 검을 휘두르는 건 고사하고, 검을 쥐는 법이나 몸을 움직이는 법도 너무 낯설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하, 하하핫! 겁먹었어! 천의검문의 소문주가 겁에 질려서 꼼짝도 못 하다니!”


육대종이 박장대소하며 조롱한다. 울분마저 치솟아 저 뚱보의 입을 찢어주고 싶었지만 목숨을 버리더라도 그런 틈조차 벌지 못하리라. 그런 쓸모없는 잡상에 시달릴 때 검노가 움직였다.


쉬익!


눈 깜빡할 새에 검노의 검이 파고들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검로를 예측했다.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평범한 찌르기. 마지막까지 진천을 경계하고 언제든 검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한 노림수다.

그렇기에 저 검을 파훼할 방법은 꽤 쉽게 떠올랐다. 허나 떠올랐을 뿐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검을 쥐고 싸워왔는지 회의마저 든 지금은 어떻게 그리 민활하게 움직일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무공이란 것에 대한 근본적은 회의감마저 든다. 대체 어떻게 바위를 가르고 철갑을 뚫으며 싸웠을까? 피륙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카앙!


요란한 쇳소리가 울려 퍼져 정신을 일깨웠다. 무공에 대한 담론을 궁리할 때가 아니다. 한참이나 늦게 검노의 검에 대응하려는 차에, 눈앞을 가로막은 등에 눈을 빼앗겼다. 피와 먼지로 얼룩진 노인이 거친 숨을 고르며 검노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죽지 못해 날뛰는군. 늙은이.”


검노가 그렇게 중얼대며 검을 회수하고 진중하게 시선을 내게서 심유환에게 옮겨갔다. 쇠사슬에 묶인 채 오히려 그 사슬로 검을 튕겨낸 심유환은, 비틀대면서도 절정고수다운 풍모를 내보이고 있었다.


“너도 적은 나이가 아닌데 늙은이를 너무 괄시하는 게 아니냐?”


“우선 그 혀부터 자르겠다.”


검노가 다시 사갈 같은 눈으로 심유환을 응시하며 검에 힘을 가했다. 검기가 더욱 선명하게 물씬 피어오르며 분위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그렇게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심유환의 승산이 훨씬 적었다. 검노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고, 심유환은 며칠째 격전을 치르면서 피로와 상처가 쌓여 있었고, 쇠사슬로 몸이 묶여 있었다. 한마디로 결판이 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큭!”


마침내 검노가 사슬을 잡아채 잡아당기며 결판이 났다. 사슬을 조금씩 손에 감으며 심유환을 끌어당기고, 심유환은 끌려가지 않으며 양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그러나 뒤꿈치 아래의 땅이 조금씩 파이며 심유환의 패색이 짙어졌다.


“아참, 늙은이는 심가장에 팔아넘겨야 하니까 살살 다뤄.”


절체절명의 순간 육대종이 던진 한마디에 그 얼음장 같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깨어졌다. 심유환이 그 틈을 타서 무언가 해보려 움직였지만, 그 순간 검노의 검이 심유환의 팔다리와 목줄기에 가느다란 자상을 그려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쾌검이었다.


“하핫, 그래. 허튼짓 마 늙은이. 심가장하고 척을 지는 건 조금 그렇지만 아주 못할만한 짓도 아니거든.”


육대종이 딱 얄미울 정도로 이죽이고는 주위에 엉거주춤 서 있던 무인들에게 눈짓했다. 이런, 저들을 잊고 있었군. 무인들이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심하령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그녀의 가느다란 목에 시퍼런 단도를 들이밀었다.

더불어 나 역시 힘없는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져 제압당하고 말았다. 가장 먼저 달려와 나를 제압한 자는 창을 쓰던 그자였다. 변변치 못하게 패한 탓일까? 제압하는 손길이 꽤 거칠어 절로 작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봐, 너. 엄살 그만하고 일어나.”


육대종이 심하령에게 눈길을 주며 어처구니없는 짓을 강요했다. 해약을 받았다지만 맹독에 당해 방금 죽을 고비를 넘은 사람에게 할만한 소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심하령은 그 말에 오기라도 생겼는지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쓰러지고 또 쓰러지기를 반복하며 마침내 심하령이 양손으로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네가 생각할 때 심가장에서 너와 저 늙은이의 가치는 어느 정도지?”


육대종이 심하령에게 천천히 걸어가며 물었다. 그렇지만 심하령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대답을 기다리던 육대종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찬 다음 냅다 뺨을 후려갈겼다.


“놈!”


심유환이 노호성을 터트렸다. 동시에 검노의 검이 심유환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부드럽게 파고든 검을 타고 피 분수가 치솟으며 심유환의 팔이 축 늘어졌다.


“큭...”


“마지막 기회다 늙은이. 계집이 처참하게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겠지?”


검노가 마지막 경고를 전했다. 심유환이 멈칫하고는 검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포기한 걸까? 아니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살기는 가라앉았으나 지나치게 고요한 기세가 더욱 육중한 무게감을 주고 있었다.


“흥, 건방지게 날뛰면 다 죽는 거야. 하여튼 잘 생각해서 말해. 마음에 안 들면 거래는 없어.”


심하령이 흐릿한 눈을 들어 육대종을 올려다보았다. 엉망이 된 몰골임에도 그녀의 미색은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었고, 육대종은 그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술을 핥으며 덧붙였다.


“아, 그래. 내 밤 시중을 들면 대가를 조금 깎아주지. 어차피 소천검이 가만히 두지는 않았을 테니 정조고 뭐고 없는 몸 아닌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반박하려는 차에 심하령이 희미한 목소리로 입을 얼었다.


“해서육가(海西陸家)의 대공자를 이런 누추한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심하령의 목소리는 미약했지만, 그 안에 두려움과 같은 나약함은 보이지 않았다. 한편 육대종은 조금 다른 태도를 기대했는지 볼살을 씰룩이며 못마땅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흐응, 그래. 네놈들 덕분에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게 됐다. 네놈들이 훼방만 놓지 않았어도 폐관수련 따위의 명을 받지도 않았을 텐데. 하여튼 값이나 불러.”


“소녀는 아둔하여 은 한 냥의 가치도 없으니 어찌 그런 대가를 대공자 면전에서 입에 담겠습니까?”


미약하지만 분명 심하령의 목소리는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목소리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방금 육대종은 심장을 꿰뚫려 즉사했을 것이다.


“이게 조금 놀아주려니 기어오르네? 아마 네 아비는 그렇게 생각 안 할 테니 무조건 네 아비가 부르는 값의 두 배를 받아내야겠어. 검노.”


씩씩대며 검노를 부른 육대종의 얼굴에서 차츰 분노의 기색이 가시고 정반대의 기운이 감돌았다. 육대종은 흙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제압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름이 끼친다. 몸값을 운운하던 때와는 다른 불안이 폭발했다.


“소천검 너는 예외다. 설마 몸값을 치르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차가운 흙바닥에 닿은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런 생각 따위는 해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습게도 육대종이 몸값을 운운하는 일순간, 혹시라도 살 수 있을지 몰랐다는 기대가 떠올랐다. 저열하기 짝이 없다. 육대종 앞에서 그런 나약한 생각을 품었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소천검을 죽여서 천의검문과 척을 지겠다고? 미친 소리구나. 차라리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어라.”


잠자코 노기를 억누르고 있던 심유환이 나직하게 쏘아붙였다. 무림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였지만. 아니, 그 때문에 심유환은 감히 천의검문을 적대하려는 육대종을 비웃고 있었다. 이에 육대종이 치며 비아냥거렸다.


“흥, 내 마음이다. 어차피 서악에 숨어있으면 너희도 나를 어쩌지 못할 텐데? 서악에서 소천검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려나 몰라?”


“그럼 소천검의 목을 들고 가면 서악이 반겨줄 것 같은 게냐? 차도살인(借刀殺人)하였으니 그것만은 기뻐하겠구나.”


육대종은 한껏 당황해서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 심유환의 기지 덕분에 무인들도 동요해서 수군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육대종 역시 평정을 찾지 못하다가 이내 요란하게 외쳤다.


“아, 아냐! 죽인다는 게 아니라 인질로 서악에 데려가겠다는 말이다! 검노, 여기서 서악까지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지?”


“팔산(八山)입니다.”


“그래. 팔산. 팔산으로 간다. 거기서 늙은이와 계집을 넘기고우리는 소천검을 인질로 삼아 서악으로 간다!”


육대종이 고함을 지르니 그제야 수군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행운이다. 만약에라도 육대종이 뒤를 생각지 않고 미친 척 목을 치면 모든 게 끝이다. 정말 심유환 덕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어. 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물론 육대종에게 벗어나기까지가 평온할 것 같지는 않지만 살아만 있다면 무엇인들 하지 못하랴?

그러나 그것이 터무니없는 오산임을 깨달은 것은 오래지 않았다. 육대종은 결코 나를 살려서 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 사실을 실감한 것은 팔산까지 이레 정도의 거리가 남았을 때였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기대를 저버리고 발암만 올리게 되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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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11. 남해(南海) (1) +6 19.01.30 336 11 11쪽
223 10. 운칠기삼(運七技三) (10) +5 18.10.30 362 9 17쪽
222 10. 운칠기삼(運七技三) (9) +4 18.05.25 425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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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10. 운칠기삼(運七技三) (7) +4 17.12.31 410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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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10. 운칠기삼(運七技三) (4) +5 17.06.13 565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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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10. 운칠기삼(運七技三) (2) +5 17.03.20 588 10 19쪽
214 10. 운칠기삼(運七技三) (1) +6 17.01.15 741 10 17쪽
213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5) +3 16.12.18 871 14 20쪽
212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4) +6 16.12.03 682 13 25쪽
211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3) +5 16.11.02 1,006 10 25쪽
210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2) +7 16.09.12 829 11 36쪽
209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1) +5 16.06.13 923 10 22쪽
208 8. 등하불명(燈下不明) (9) +2 16.06.14 871 10 21쪽
207 8. 등하불명(燈下不明) (8) +8 16.05.11 918 17 31쪽
206 8. 등하불명(燈下不明) (7) +6 16.03.29 785 10 24쪽
205 8. 등하불명(燈下不明) (6) +4 16.02.14 836 14 28쪽
204 8. 등하불명(燈下不明) (5) +3 16.02.10 916 1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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