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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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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최근연재일 :
2021.11.10 22:29
연재수 :
2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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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1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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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1쪽

8. 등하불명(燈下不明) (8)

DUMMY

죽은 자들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광경은 유구한 무림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상황이리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천검대는 검을 치켜들고 그들을 경계할 뿐, 선뜻 검을 내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크큭...... 무지몽매한 것들. 운이 좋구나.”


시신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킴과 함께 시신이 만들어낸 작은 그림자를 비집고 추레한 모습의 흑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이며 손에 찬 크고 작은 해골 따위의 장신구로 보아 저자가 바로 사령술의 술자임이 분명했다. 거기에 이목구비까지 완연하게 서역인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체를 밝혀라!”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는 심하령이었다. 서역의 문물을 자주 접해온 덕에 다른 이들보다는 이 막돼먹은 상황에 빠르게 적응한 모양이다. 흑의인은 유창하게 서역의 언어를 구사하는 심하령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이내 비릿하게 웃었다.


“크크, 내 정체를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나는 그림자(Shadow) 그 자체.”


“루베르크?”


순간 무시무시한 이름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서역어로 그 이름을 되뇌었다. 그림자 루베르크. 끝내 소렌에게 당하긴 했지만 루베르크는 누구도 감당할 수도 없는 괴물이다.


“어, 어떻게 그 이름을?”


흑의인이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다행히도 그는 루베르크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여기서 다 죽는다는 결말이 내정되었겠지.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아픔마저 느껴졌다.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그 힘의 격차는 현저하기에 우리는 끝까지 싸우다 전멸할 수밖에 없다.


“수상한 놈. 나를 그 무례한 종자와 같이 여기지 아마라. 나는 검은 그림자(The Black Shadow) 아인벨프.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종복이다.”


흑마법사는 자랑스럽게 묘한 이름을 늘어놓았다. 우리 중 오직 심하령만이 검은 그림자라는 그럴듯한 별호를 알아듣고 흠칫 놀란다. 또한, 다른 이들 역시 심하령의 심각한 표정을 읽고 긴장의 끈을 다잡았다. 그 분위기를 깬 것은 안도의 한숨이나 다름없는 내 혼잣말이었다.


“작위도 없는 조무래기가 이름은 거창하군.”


흑마법사들은 파멸의 제왕이며 망자의 지배자 따위의 거창한 이름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있지도 않은 작위를 자처하는 괴상한 녀석도 있을 정도니 오죽할까? 잘은 모르지만, 그건 그건 흑마법사 특유의 전통 같은 것이었다.


“어디서 함부로 입을 나불대는 것이냐!”


수십이나 되는 시귀(屍鬼)를 곁에 세워두고 아인벨프는 깡마른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곧 주렁주렁 달린 해골 장신구가 덜그럭댈 정도로 과장된 분노를 표했다. 그 분노가 살의로 이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망자의 군대여, 저 건방진 원숭이를 죽여라!”


“다들 조심하세요!”


심하령의 외침에 힘입어 천검대가 순식간에 검진을 구축하여 시귀(屍鬼)를 압박하는 형세를 만들어냈다.


“내가 앞장서겠다!”


한상염을 대신해 천검대의 선두에 선 이는 천검대의 이대제자 옥천평이다. 표표검(飄飄劍)이라는 별호에 어울리게 옥천평의 검은 나비의 움직임처럼 부드럽게 나부끼며 생전에 흑호대의 일원이었던 시귀의 목을 날렸다.


“어리석은 놈! 언데드를 그 정도로 쓰러트리려 하다니, 가소롭구나!”


아인벨프가 광소하며 어렵지 않게 새로이 시귀를 일으켜 세웠다. 천검대는 분명 강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한순간에 시귀 떼에 파고들어 승리를 쟁취할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리를 벗어난 괴물 앞에서 그 실력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본래대로라면 단숨에 제압당해 길을 막지 못할 것들이 멀쩡히 움직였고, 한순간에 검진이 힘을 잃어버렸다.


“이 무슨 사술이.....”


선두에 선 옥천평은 이미 셋이나 되는 시귀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목이 달아났음에도 멀쩡히 움직이는 시귀가 일제히 그를 둘러싸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사기(邪氣)에 물든 사지를 내밀었다. 그렇게 일격을 허용한 것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옥천평이 수세에 몰렸다.


“사형!”


검병에 달린 푸른 수실을 휘날리며 삼대제자 하나가 눈앞에 선 시귀를 가볍게 걷어차 균형을 흩어버린 다음, 그 어깨를 딛고 하늘 높이 도약했다. 단숨에 적을 뛰어넘어 옥천평을 도우려는 모습이다.


“이블 바인(Evil Vine).”


아인벨프가 안전한 곳에서 여유만만하게 마법을 펼쳤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시커멓고 기다란 덩굴 수십 가닥이 뱀떼처럼 바닥을 기어 나와 이제 막 착지하려던 삼대제자의 발목을 휘감았다. 발목을 잡힌 삼대제자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덩굴이 솟아난 시귀 떼로 질질 끌려갔다. 덩굴이 잡아끄는 속도가 상당해서 금방이라도 삼대제자가 위기에 처할 것만 같아 보였다.


“어딜!”


그러나 삼대제자만 해도 상당한 실력자인만큼 어지간한 일로는 몸도 마음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끌려가는 와중에 상체의 탄력만으로 몸을 일으켜 세운 그는, 단숨에 발목을 묶은 덩굴을 잘라냈다.


“캬아아!”


시귀들이 그 움직임에 반응하는 찰나, 승천보를 펼친 삼대제자가 요령 좋게 빈틈을 파고들어 포위망을 벗어나 다시 검진에 합류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한순간 수세에 몰렸던 천검대가 여기저기서 다시 우세를 점했다. 그 화룡점정은 옥천평이었다.


“이 사악한 것들이!”


옥천평의 검에서 물씬 피어오르는 기운에 시귀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검의(劍意)의 극화(劇化)인 검기. 그래, 검기라면 일격만으로도 언데드를 순식간에 무력화할 수 있다. 단숨에 셋이나 되는 시귀를 처치한 그는 마침내 검진의 선두로 돌아와 능숙하게 천검대를 이끌어갔다.


“이대제자는 모두 전위로! 삼대제자는 이대제자를 도와 싸운다!”


불안을 느꼈던 것이 우습기까지 하다. 저들이야말로 무림에서 손꼽히는 재인(才人)들이다. 잔뜩 긴장했던 몸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두방망이질 치던 가슴도 점점 평온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결 냉정하게 사태를 관망할 수 있었다.


“크으, 제법이구나. 하지만 듀라한까지 막을 수 있을까?”


그러나 아인벨프 역시 녹록한 존재는 아니었다. 마치 하늘이 천검대를 시험하듯 그들 앞에 새롭고 강력한 적이 나타났다. 서역의 전장을 종횡하던 나조차도 별로 마주친 적이 없던 목 없는 시귀, 듀라한이 시귀들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새까만 기운이 넘실대는 듀라한의 본래 정체는 목이 잘린 채 죽었던 나찰편이다.


“키아아악!”


나찰편의 귀곡성이 울려 퍼지며 그녀의 채찍이 휘몰아쳤다. 그 움직임은 다른 시귀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나찰편의 등장에 다시 검진이 일사불란하게 변화했다.

옥천평과 두 명의 이대제자가 나찰편을 상대하기 위해 나서고, 나머지는 시귀를 처치하기 위해 쪼개졌다. 보는 사람이 쫓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변화하는 검진에 감탄이, 한편으로는 부러움이 일었다. 나도 저 검진의 일원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루한 쥐새끼들이!”


듀라한이 가세했음에도 천검대가 무너지지 않자, 화가 치민 아인벨프는 목걸이의 해골을 움켜쥐어 부숴버리고는 그 가루를 눈앞에 흩뿌리며 섬뜩한 주문을 읊었다. 확실치는 않아도 비장의 수단 중 하나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 우려대로 돌연 시귀들의 눈에서 안광이 뿜어져 나오더니 움직임이 비할 바 없을 만큼 빨라졌다. 그리고 그건 나찰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괜찮을까요?”


그 광경에 운기요상을 어느 정도 끝마친 종리혜가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 나 또한 약간은 긴장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정 어려우면 어떻게든 손을 보탤 생각이었다.


“문제없습니다.”


한상염이 무거운 한마디를 꺼냈다. 과묵한 사람의 한마디라서일까? 형언할 수 없는 신뢰가 일어, 검을 거두고 잠자코 천검대의 활약을 지켜볼 용기가 피어난다.


“천검대는 들어라.”


한상염이 조금 불안한 자세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읊조리듯 말했다. 별것 아닌 한걸음일 뿐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한상염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적인 아인벨프도 마찬가지다.


“지친 이는 주저하지 말고 물러서라. 싸울 때 뒤를 신경 쓰지 마라. 너희 뒤에는 사형과 사제가 있다.”


무공을 잃다시피 한 대주의 말이 얼마만큼의 무게를 가졌을지 상상해 보았다. 놀랍게도 천검대는 그 상상을 뛰어넘어 명령 한 마디에 더욱 기세를 올리며 시귀를 압박해가기 시작했다.


“저 무식한 놈들....”


아인벨프가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고 좁혀오는 검진에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한 번 해골 목걸이에 손을 댔다. 어떻게 그럴 생각이 들었는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이 순간적으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 빠르지는 않지만 느리지도 않게 뻗어 나간 검이 목걸이에 힘을 가하는 손등을 후려쳤다.


“크악!”


아인벨프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이어가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힘이 부족하다. 아니, 아직 여력은 남았지만 그럴듯한 타격을 입힐만한 체력이 없음을 본능적으로 자각했다. 신기한 느낌이다. 그 느낌을 곱씹어보려는 순간, 서너 걸음 물러선 아인벨프에게서 노기(怒氣)를 느끼고 잡상을 지웠다.


“감히......”


내가 멈칫한 것을 농락하거나 사정을 봐준 것으로 여기는 것이리라. 허나 그 분노는 오래지 않아 방향을 바꾸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천검대 때문이었다.


“포위하라!”


세 명의 검객이 아인벨프의 주위를 휘감아 돌며 주의를 끌었다. 아인벨프의 눈이 바쁘게 검진을 쫓다가 결국 검진의 움직임을 감당치 못하고 흐트러진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검 한 자루가 날아들었다. 이어서 두서넛의 검이 연달아 쏟아져 나왔다.


두두둥!


연격이 보이지 않는 막을 두드리며 굉음을 자아냈다. 마법으로 막아낸 것일까? 이로써 검객들은 기회를 날리고 다시 아인벨프에게 차례가 돌아왔다. 아인벨프가 해골 하나를 움켜쥐어 부수어 거침없이 흑마법을 펼쳐냈다.


“어둠의 힘이여, 산자를 덮쳐라! 쉐이드 쇼크웨이브(Shade Shockwave)!”


아인벨프를 중심으로 기묘한 파문이 일어 주위를 휩쓸었다. 동시에 각각의 발치에 맺혀 있던 그림자가 부르르 떨렸다. 그림자에서 시작된 진동은 이내 땅 위에 서 있는 이들에게까지 미쳤다.


“크윽!”


“커헉!”


기묘한 충격이 허를 찔러 내부를 뒤흔들었다. 시귀와 싸우던 이들이 일제히 내상을 입고 비틀대거나 심하게는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시귀들도 그림자의 진동에 휩쓸렸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건 명백히 우리 쪽의 손해다. 시귀와는 달리 우리는 전력이 크게 줄어든다. 더욱이 본래 상태가 좋지 않았던 한상염은 검은 피를 토해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종리혜 역시 입가에 흐르는 실 같은 핏물을 훔치고 있었다.


“소문주님은....”


한상염의 가느다란 신음에 그제야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시귀마저도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건만 정작 나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째서? 의문을 품은 순간 문득 거대한 용을 느꼈다. 땅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잠룡이 미약하게 꿈틀댄다. 나는 그 용 안에 있었다. 용 주위에 빼곡히 꽂혀 있던 비문들이 잠룡의 움직임에 힘입어 머리에 쏘아져 나갔다. 그 순간 외면하듯이 잊었던 통찰이 한순간 되살아나 뇌리를 스쳤다.


이인벨프의 마법은 이면(裏面)의 세계를 통해서 혼백에 충격을 가하는 마법이다. 상념은 거기까지다. 잠룡이 다시 눈을 감고 그 주위에 휘몰아치는 무언가가 머릿속에 마지막 글귀를 아로새겼다.

심유환은 내게 내공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단전이 없어 그것을 느끼지도 발하지도 못한다 했다. 내공이란 본디 무형의 것. 심유환의 말은 내겐 무공을 발휘했던 흔적만 남았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 흔적이 흑마법에 대항할 수 있었을까? 잠룡이 가져온 상념은 대답을 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바람에 흩날리듯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것이 남긴 궤적에 놀라 눈을 부릅떴다. 무언가 착각하고 있었다. 그때는 당연하다 여기고 숨 쉬는 것처럼 알고 있었던 것이건만. 지금은 먹장구름 속에 갇혀 있는 진리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아.....”


착각하고 있는가. 내공이란 그런 게 아니다. 무공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이 세상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어떻게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산을 부수고 강을 가르는가? 무공에 대한 근원적인 의식이 뒤바뀌어야 한다고, 그 진리는 그런 상념만을 남기고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도 공자님!”


상념이 끊어졌다. 심하령의 외침이 드려왔다. 시귀의 추악한 모습이 코앞에 와 있었다. 산 자로서의 본능이 일깨워지고 가까스로 시귀의 손톱을 피해 한 걸음 물러나며 동시에 시귀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퍼억!


요란한 소음이 일며 시귀가 그대로 죽 밀려났다. 생사의 기로에서 펼쳐진 힘일까?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른 이들도 점차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시 전세가 기운 것은 명백해 보였다.


“힘을 합쳐요!”


지독하게 달라붙는 시귀를 한 호흡 떨쳐낸 종리혜가 심하령쪽으로 몸을 날려 도움을 청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 이상이 됨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두 사람은 절묘하게 시귀 둘을 상대했다. 또한 천검대 역시 비슷하게 위기를 극복해가며 기울어진 전세를 극복하려 애쓰고 있었다.


“틀렸어.”


방관하는 것처럼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보노라니 절로 이가 갈린다. 지금은 비등하지만 내 경험상 이런 형국은 오래가진 못한다. 애초에 시귀와의 싸움은 속전속결로 결판을 내지 않으면 결국 지리한 소모전으로 이어지는 싸움이다.


“캬아악!”


애석하게도 이 상황을 타개할만한 자는 강력한 시귀에게 손발이 묶여 있었다. 옥천평이 별호에 걸맞는 표표한 움직임을 자랑하며 나찰편을 상대했지만, 표표검의 무공에 뒤지지 않는 흉험한 채찍이 그는 물론이고 그를 돕는 이들까지 압도하고 있었다.


“조금만 버텨라!”


옥천평이 외쳤다. 조금만 버티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지. 듀라한이 아무리 강력한 언데드라 해도 결국 무의 정수를 이룩한 절정고수는 작은 빈틈을 모아 승리의 초석을 삼을 수 있다. 단지 그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그 전에 천검대가 무너진다면 아무리 옥천평이 뛰어나도 천검대를 구할 순 없다.


“희생을 감내하고.... 물러남이 옳다 아룁니다.”


한상염이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무거운 한마디를 꺼냈다. 몸이 싸늘하게 식는다. 동시에 저들의 목적이 떠올랐다. 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이들이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한상염의 말은 옳다. 희생을 감수하면 나는 물론이고 상당수가 무사할 것이다.

그러나 끝끝내 그런 결정을 내릴 순 없었다. 아직도 내가 강력한 무위를 가졌다 착각해서? 아니면 도망친 끝에 맞이했던 파국이 떠올라서? 무엇 때문이든 나는 그 무언가 때문에 한상염의 말에 영원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으리라.


“그럴 순 없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옥쇄다. 여기서 전멸을 각오하고 싸우는 것이 가장 무인다운 일일까? 아니다. 개소리다. 그렇게 결론지은 스스로에게 더욱 놀랐다.

서역에서의 꿈결같은 기억 덕분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도군이란 놈은 계속 고집을 부리고 있었겠지.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어째서인지 먼 곳에서 아버지가 미소를 본 착각마저 든다.


“천의검문의 개파조사께선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천의검문은 훌륭한 검문이 될 것이라고.”


검을 움켜쥐었다. 검에 맞게 일그러진 굳은살이 검병을 착살하게 잡아주었다. 어느새 이런 굳은살이 배었을까?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천의검문은.....”


“중원 제일의 협문(夾門)이 될 것이라고!”


검은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는 한상염이 천의검문의 제자가 가장 먼저 배우는 그 어구를 목놓아 외치며 검을 들었다. 아마 그는 내가 도망쳤더라도 홀로 일어나 싸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미안함도 안타까움도 일단 접어두고 그와 함께 전장에 나설 수 있었다.


“저자를 먼저 제압합니다!”


“존명.”


한상염은 온몸을 떨고 있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검은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얼마나 지독한 수련의 결과물인가? 미미하게 떨리는 내 검을 부끄러워하며 힘껏 검을 쥐었다. 그리고 미처 떨림이 돌아오기 전에 아인벨프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갔다.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아인벨프가 비교적 여유를 부리며 검사를 궁지에 몰 수 있는 방벽을 만들어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반구 형태의 방벽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마법에 대한 경험이 일천한 무인이라면 당황해서 움직임이 멎거나 흐트러질만한 방해다. 그렇기에 천검대도 기회를 놓치고 말았지.


“대주는 나를 따르십시오!”

허나, 이는 예상한 바였다. 아니, 확신한 바다. 모든 것을 초개와 같이 버려 이기고자 한 다음부터, 마음 한구석에 잠들어 있던 불씨가 피어올랐다. 작은 씨앗 같았던 불씨는 이제 지금은 복숭아만한 크기가 되어 심신을 뜨겁게 덥히고 있었다.


“하압!”


호흡에 맞추어 수많은 방도가 떠오른다. 방벽을 뛰어넘거나 부수거나 멈추거나. 그 중, 가장 합당한 방도를 직감하여 미끄러지듯 방벽을 피해 몸을 굴렸다. 그리고 그 기세를 담아 다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정답이다. 가장 빠르면서도 적을 당황케 하는 최적의 수를 취했다.


“젠장할, 서든 임팩트(Sudden Impact)!”


궁여지책으로 아인벨프가 내놓은 마법은 흑마법도 아닌 단순한 충격파다. 그 난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무의미하지.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와 가슴으로부터 충격파가 도달할 장소를 짚어냈다. 속이 후련할 정도로 정확히 그 장소로, 내가 피한 그 장소마다 충격파가 터졌다.


“한 대주!”


내 뒤를 따르던 한상염을 부른다. 한상염이 그 외침이 갖는 의미를 깨닫고 움직였다. 그와 함께 아인벨프의 마법이 다시 한 번 난발(亂發)되었다.


“모멘터리 뱅(Momentaty Bang)!”


“하단!”


“다크 페더(Dark Feather)!”


“팔괘 중 건(乾)으로 승천보. 우방(右方)으로 추성세(追星勢)!”


한상염이 놀랄 만큼 내 말에 따라 주며 나풀대는 검은 깃털은 완벽하게 피해냈다. 한마디와 한마디가 이어져 만들어내는 우려한 움직임에 놀란 이는 아인벨프 혼자만이 아니었다. 옥천평을 위시한 천검대, 그리고 심하령과 종리혜 역시 시귀의 위협을 도외시하고 우리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세 호흡! 명문혈!”


입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만 괴상한 말을 늘어놓았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도 잠시, 괴상한 한 마디를 내뱉자마자 먼저 아인벨프가 내보인 틈으로 파고들었다.


“큿! 데드맨즈 암(Deadman’s Arm)!”


아인벨프의 주위로 우중충한 색의 뼈가 솟아나 주위를 감쌌다. 인간의 뼈를 닮은 그것들은 수십이나 되는 숫자를 자랑하며 단단하게 아인벨프를 보호하려 들었다. 본래 방어를 위한 마법이 아님에도 생각보다 단단한 감촉이 느껴진다.


카앙!


검이 튕겨 나오는 광경이 생생하게 곁을 흘러 지나쳐갔다. 검에 나 있는 작은 상처부터 커다란 일그러짐까지 훤하게 보일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어느새 터진 코피가 눈앞에서 비산하고 있었다.

그런 동시에 아인벨프를 쓰러트릴 무수히 많은 수가 보였다. 팔방에 팔방을 더한 예순 여섯 방향을 뛰어넘는 무한한 투로. 그것은 내 것뿐만이 아니라 한상염의 것까지 뒤섞여 있었다.


“크아악!”


정확히 세 호흡이 흘렀다. 한상염은 내가 내뱉은 괴상한 말을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세 호흡 뒤에 아인벨프의 명문혈을 공격했다. 그 결과가 바로 눈앞에 있다. 한상염의 검이 아인벨프의 주위에 솟아나는 방벽이 가지고 있는 몇 되지 않는 미세한 틈에 꽂혀 있었다. 또 다른 손이 솟아나 막았어야 할 공간에 바로 검이 꽂혀 들어가 있었다.


“이겼......”


종리혜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느릿하게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나 역시 그리 확신하며 한편으로는 회한에 찬 미소를 지었다. 천의결을 한번 펼친 이상 더는 자제할 수 없겠지. 하늘의 뜻을 좇은 이상 이제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무인이 아닌 천의란 것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다. 그렇게 안심하며 후회하려던 순간이었다.


퍼억!


묵직한 타격음이 일었다. 뭐지? 천의가 변했나? 파천마제가 부활할 때처럼 운명이 뒤바뀌려는 것일까? 아니다 그런 느낌은 없었다. 단지 눈앞에 벌어진 상황만이 남아 있을 뿐. 아인벨프의 가슴을 꿰뚫고 있는 검이 느닷없이 폭발하며 한상염은 뒤로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다. 천의결을 외며 확신했던 사실이 거짓이 되어버린 순간이다. 거짓이 된 순간에도 천의결은 아직도 그것을 사실이라 말하고 있었다.


“하압!”


혼란에 빠져 냅다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천의결이 가리키는 대로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수도 통하지 않았다. 검은 골갑(骨甲)으로 뒤덮힌 아인벨프가 일격으로 내 검로를 파훼했다. 검로가 무너진 뒤에도 천의결은 그것이 최적의 검로라 외치고 있었다. 물씬한 의혹이 찬란하게 타오르던 불꽃에 먹물을 끼얹었다. 천의결이 틀렸다. 왜?


“크으, 결국 이런 것까지 쓰게 하다니....”


아인벨프의 목소리가 검은 골갑을 타고 웅웅 울렸다. 아인벨프의 갑옷에서 피어오르는 사기가 닿은 시귀는 하나같이 더욱 흉폭해져서 더욱 거세게 산 자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물건이다.


“빌어먹을 놈들. 이게 바로 죽은 소드마스터의 힘을 훔치는 비장의 무기, 나이트 아머(Knight Amor)다. 이것까지 쓰게 된 이상, 너희는 모두 죽는다!”


소드마스터의 힘을 훔쳐? 그렇다면 저 갑옷을 입으면 설령 마법사라 해도 소드마스터의 힘을 갖게 된다는 말인가? 그런 물건에 반작용이 없을 리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단점을 찾을 때가 아니었다.


“한........ 크헉!”


다시금 피를 토한 순간 천지가 거꾸로 회전했다. 고통이라는 대가를 무시하고 싸워 온 대가인가? 몸에서 힘이 쭉 빠지져 검을 놓친 채 대자로 바닥에 쓰러졌다. 목과 코에서 솟는 핏물로 숨이 턱 막혔다. 그런 와중에도 아인벨프의 목소리는 생생했다.


“망자의 군세여, 저들을 삼켜라! 삼켜서 망자의 군단에 힘을 더하라!”


정신이 흐릿해진다. 아주 천천히 점멸하는 시야 너머로 수십 조각이 난 풍경이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드문드문 이어져 보였다. 기세등등한 아인벨프. 쓰러진 한상염의 모습이 보인다.

시야가 까맣게 물들고 조각난 화상이 천천히 너울댄다. 한상염과 두 여인을 지키려다 천검대원 하나가 죽었다. 충격을 받을 새도 없이 다시 눈앞이 깜깜해졌다.

뒤늦게 피비린내가 물씬 피어올라 구역질을 한다. 구역질? 어느새 몸이 반쯤 일어나 있다. 낯익은 손길이 가슴을 조여 숨통을 막은 핏물을 빼내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입술을 살짝 꼬집었다.


“커헉!”


숨이 돌아오며 머릿속에 폭풍이 부는 것처럼 기억들이 뒤엉켜 두 눈과 가슴을 찢어놓는다. 두 눈이 터진 것처럼 시야가 순식간에 암전한다.


“도군!”


심하령의 외침이 들려온다. 그와 함께 죽은 줄 알았던 천검대원 하나가 내 쪽으로 달려오다 위기에 처한 심하령을 위해 싸운다. 유철. 그 사내의 이름이 떠오른다. 죽은 줄 알았건만 아니었나? 그러나 곧 내가 떠올리는 것들이 올바른 순서대로 나열된 게 아님을 깨달았다. 시간이나 인과에 상관없이 내가 혼미한 상태로 보고 들은 것들이 정신없이 널려 있었다.


“감히!”


느닷없이 나타난 괴인이 시귀를 단숨에 도륙하며 그 중심에 있는 아인벨프를 압박한다. 그렇지만 고강한 흑마법에 소드마스터의 힘이 더해지니 괴인도 오래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밀려날 뿐이었다.


“대주를 지켜라!”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화상이 제멋대로 시간과 아귀가 맞지 않는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천검대가 쓰러진 한상염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또 그 옆에서는 심하령의 얼굴이 커다랗게, 그러니까 가까이 다가 와 있었다. 입을 맞추어 숨을 막고 있는 핏물을 빼내는 중인가? 입을 맞추었다는 낯뜨거운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건 아직 내가 정신을 차라지 못해서겠지.


“대공자!”


산발한 괴인이 시귀 한가운데서 두 동강이 난 나찰편의 시신을 주위에 팽개친 채 육신의 절반이 짓이겨진 시귀를 발견하고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았다. 그런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는...


“도 공자!”


혼란스러웠던 광경들이 일시에 스러지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비린내가 물씬한 가운데 의식이 점차 또렷해진다. 천천히 눈을 뜨자 그곳에는 몰골이 정말로 엉망진창인 두 사람이 보였다.


“아저씨! 공자께서 정신을 차린 것 같아요!”


종리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기점으로 혼란스럽게 나열된 상황이 한순간에 정리됐다. 나와 한상염이 쓰러지고 두 여인과 천검대가 나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그 와중에 희생이 발생하고 점점 밀리던 중에 괴인이 나서 전세가 어느정도 균형을 되찾은 거였군.


“그자....... 검노.....는?”


“네? 검노요? 정신 차려요.”


종리혜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내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되물었다. 혼란스럽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를 안고 있는 심하령의 손길이 다시금 흐릿해지며 나는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아니, 쓰러졌다 생각한 순간 어째서인지 서 있었다.


“크하하핫!”


아인벨프의 광소가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진다. 익숙해진 피비린내 사이로 똑바로 서 있는 나를 인지했다. 천검대를 시작으로 시귀들마저 갈가리 찢겨 나간 언덕에, 오로지 나와 아인벨프만이 똑바로 서 있었다. 무섭게 아인벨프를 노려보던 나는 놀랍게도 터무니없이 강대한 힘을 품은 채 살기까지 머금고 있었다.


“천의는.”


내가 말했다. 내가 내게 말했다. 무슨 상황인지 종잡을 수 없건만 나는 내 말을 받아 떠오른 말을 이어갔다.


“거짓이다.”


다시 주위가 뒤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연하게 서 있던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만신창이가 된 채 혈산혈해 속에 잠겨 있었다. 조금씩 꺼져가는 생명을 불태우며, 피거품을 물고 있는 내가 말했다.


“허나....”


다시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의결은 아무런 의미도 없지.”


어딘지 짐작할 수도 없는 곳에 서 있는 내가 보인다. 황량한 대지에 서서 차갑고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는 무섭도록 그리운 무언가를 마주한 채 검을 쥐고 있었다. 그런 내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천의결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천의를 읽는 것으로 그칠 수는 없잖아?”


어째서 나를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정신없이 산란하는 기억. 아니, 기억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심상이 이 세상 무엇보다도 빠르게 나를 스쳐 가거나 휩쓸었다.


“궁극의 경지를 왜 포기했는지 아느냐?”


서역 제일의 대마법사. 제임스 엠벤트가 내게 물었다. 언제 그런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을까? 이 말은 과거인가 현재인가, 아니면 꿈결인가 현실인가?


[아직은 두려워 말라. 성급하게 예건하지 말고 너를 찾아라.]


다시 기회를 잡은 이후로는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혼돈의 목소리가 들린다. 파악이라는 짓을 포기했다. 나는 그저 이 심상들의 폭풍 속에 존재할 뿐이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흘려보내지도 않고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아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혼돈의 끝. 너희들은 이런 것을 어떻게 짊어진 거지?”


나는 물었다. 이에 모든 것들이 일제히 답했다.


“나를 버렸기”


“잊었기”


“찾았기 때문이다.”


웃음이 나왔다. 천의결이 아닌, 한낱 구결에 불과한 천의결을 마음 속에서 찢어발기고 등 뒤로 던졌다. 천의결은 그야말로 편법에 불과한 수단일 뿐. 혈기왕성한 사내가 아리따운 여인의 처소를 훔쳐보는 구멍에 비할 것이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할까?”


서서히 나를 이끌어내며 담담한 심정을 전했다. 신기하게도 태어나는 순간이 떠오른다. 그것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의 쓰디쓴 기억들이 떠오르고 지워지며 작았던 나는 점점 몸을 불리며 ‘나’라는 존재가 되어갔다.


“도 공자!”


나는 눈을 떴다. 피칠갑을 한 나는 심하령의 품에 안겨 있었다. 입술에 묘한 감촉이 남아 있었다. 심하령의 입술은 연지를 마구 그린 것처럼 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 입술을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이제야 정혼자 답군요.”


“무, 무슨....”


나는 일어섰다. 만신창이가 되었던 몸은 믿기 힘들 정도로 회복되어 있었다. 이것이 내가 바란 상태인가? 욕심도 참 없다. 기왕이면 내공도 철철 넘치는 내가 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다니.


“일단락을 맺을 때입니다.”


천하는 오시하는 영웅이 된 양, 나는 어울리지도 않는 여유를 부리고 욱신대는 몸을 다독였다. 육신의 끄트머리로부터 새 생명이 돋아나듯 상쾌한 감촉이 느껴졌다. 아니, 이것은 한여름 계곡물 같은 차가움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만큼 거세고 강렬했다.


구궁.


야트막한 언덕이 부르르 떨렸다. 시귀와 격전을 벌이던 천검대와. 검은 갑옷을 입고 그들을 압도하던 아인벨프가 흠칫 놀라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뜻밖이라는 얼굴로 나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딱지로 얼룩진 오른손을 들여다보았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맹한 기운이 뭉클대고 있었다.


“이거였구나.”


내공이란 본디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는 힘. 즉, 인식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었다. 패왕환은 그런 기감을 넓혀 주는 기물이고, 마나 드레인은 타인의 기감을 빼앗아 오는 외법(外法) 중의 외법이었다. 둔재로서 조금도 깨닫지 못한 무공이 지금에서야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도군 당신은....”


처음인지 오랜만인지 아리송할 정도로 수많은 상념을 품었던 탓에 헷갈리지만 참 마음을 울리는 부름이다. 심하령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잠시 나도 감상을 접어두고 눈앞을 바라보았다. 시귀들이 내게서 위협을 느끼고 그들답지 않게 주춤했다. 나찰편이 겁에 질려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아인벨프가 물었다.


“네, 네놈! 힘을 숨기고 있던 것이냐?”


“아니.”


검을 쥐었다. 무극에 근접한 내공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와 검에 깃들었다. 세상에 맞닿는 또 다른 수단을 부드럽게 잡고 그것이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이며 짤막한 한마디를 남겼다.


“몰랐었지.”


등하불명. 등잔 밑이 가장 어둡기에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정말로 엄청 갈아엎다가 뭐에 홀린 것처럼 글을 써서 올립니다. 그런 걸 감안해도 꽤 오래 걸렸습니다. 오랜만에 주인공의 혼잣말도 많고 상황도 혼란스러워서 읽는 데 불편하진 않을지 걱정되네요. 그래서 제가 글을 조금 수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전개는 변하지 않아야겠죠 ㅎㅎ


자, 그럼 다음 번에는 좀 더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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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10. 운칠기삼(運七技三) (9) +4 18.05.25 425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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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10. 운칠기삼(運七技三) (1) +6 17.01.15 743 10 17쪽
213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5) +3 16.12.18 871 14 20쪽
212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4) +6 16.12.03 682 13 25쪽
211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3) +5 16.11.02 1,007 10 25쪽
210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2) +7 16.09.12 831 11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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