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소굴

Inferior Struggle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최근연재일 :
2021.11.10 22:29
연재수 :
226 회
조회수 :
586,454
추천수 :
10,871
글자수 :
1,513,856

작성
13.01.31 09:38
조회
18,708
추천
303
글자
9쪽

1. 천하제일의 둔재 (1)

DUMMY

달은 하늘에 있다. 그리고 나는 땅 위에 있다. 사람은 땅을 딛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달에 닿을 수 없다. 그렇다면 검(劍)은 어떠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검은 검이다. 땅 위에서 인간의 손에 들린 검일 뿐 결코 달과는 아무런 접점도 없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 문파는 떡하니 단월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그것이 문파를 대표하는 검식이라니. 그렇다고 해서 문주쯤 되면 달을 베고 해를 부수는 게 취미인 것도 아니다.

물론 어쩌면 몰래 밤마다 나가서 달은 아니더라도 밤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을 하나씩 따올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더더욱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문주라는 분이 아버지인데, 그리고 내가 소문주로서 후계자 수업을 받는데 그 사실을 모를까.

결론적으로 달을 벤다는 말은 허무맹랑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뭐 사실 단월이라는 이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월이 상징적인 의미임은 일곱 살짜리 수련생도 알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월이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왜냐면 구결만 봐서는 정말로 달을 베기 위해 만들어진 검식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달을 베기는 무슨.”

젠장, 그래. 사실 이건 변명이지. 나는 천하제일의 둔재다. 검형을 익히는 것조차 어려워 남들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 익힐 수 있었고 단월이니 뭐니 하는 허무맹랑한 것들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내 탓이다. 일개 수련생만 되더라도 단월을 쉽게 익혀내는 걸 보면 나는 천하제일의 둔재임이 틀림없다.

나는 슬쩍 주위를 바라보았다. 정숙한 분위기 일색인 연회장에서는 무림의 명숙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작 내 생일이라고 너무 많은 이들이 온 게 아닐까 싶지만, 나처럼 보잘것없는 무공을 가진 후계자의 생일이라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올 만큼, 우리 문파는 강하다. 그리고 유명하다.

천의검문(天意劍門). 감히 하늘이라는 이름을 붙인 문파. 초대 문주이신 천검자 도천명이 무림에 이름을 떨친 이래로 천의검문은 단 한 번도 쇠락한 적 없이 그 명성과 힘을 유지해왔다. 호부 아래 견자 없다고 하듯 천검자의 후예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그 영광도 아버지 대에서 끝날 모양이다. 나는 도통 검의(劍意)란 것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은은한 음악과 함께, 연회는 약간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계속되고 있었다. 저 소리 가운데 나를 비웃는 소리가 있을 리는 없다. 아버지의 차가운 인상이 좌중을 압도하는 중에는 속으로라도 그런 생각을 하기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내 기분까지 좋아지는 건 아니다. 저들 중 몇몇은 내심 내 무공을 비웃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아니, 차라리 몇몇을 제외한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무능한 주제에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덕에 호의호식하는 건 사양하고 싶다. 나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문주께선 어딜 가시는 겝니까?”

눈치를 살피면서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자 젊은 시절엔 한 성질 했다는 장로. 열화검 위양풍이 헤프게까지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물어왔다. 저 웃음 속에서 느껴지는 은밀한 조롱을 외면하며 나는 소화가 안 돼서 산책을 하겠다는 둥 적당한 변명을 하고 잠시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도망칠 수는 없다. 이건 천의검문의 공식행사이며 명목상으로나마 나는 이 행사의 주인공이었다. 주인공이 사라진다는 건 천의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나는 찰나의 시간이라도 답답한 연회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핏줄 빼고는 별 볼 일 없는 나를 주목하는 시선이 싫어서였다. 그리고 그 시선에 담긴 소리 없는 무언가는 더더욱 싫었다.


나는 어느새 후원으로 나와 있었다. 아스라이 음악이 들려오는 가운데 나는 엉망으로 묶여버린 매듭이 푸는 기분으로 후원을 거닐었다. 역시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언젠가 나는 저 음악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여기 있는 건 단순한 도피일 뿐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때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도 공자님. 연회가 한창인데 여기서 무얼 하는 건가요? 한참 찾았잖아요.”

“심 소저, 내일쯤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일찍 왔군요.”

“아무렴 장래를 약속한 이의 생일인데 조금 무리해서 서둘렀지요. 저희 쪽은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여긴 화창해서 다행이네요.”

오늘은 화창한 봄날의 대명사처럼 하늘은 맑았고 햇살은 따스하기 그지없었다. 장마철 폐가처럼 퀴퀴한 내 기분과는 달리 말이다. 그리고 봄날 같은 건 심하령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보잘것없는 내게 미소를 지어주는 건 직계가족 외에는 오직 그녀뿐이었다. 아니, 언젠가는 가족이 될 테니 결국 날 진심으로 대하는 건 가족뿐이다.

이 아름다운 소저. 심하령은 태중에서부터 나와 혼약을 맺은 사이다. 다행히도 명문가의 여식답게 겉모습부터 내실까지 품격이 넘치는 소저였기에 나는 어린 마음에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녀와의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 무공이 심각하게 발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한 그 순간부터, 나는 그녀와의 관계가 굴레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조금씩 그녀와의 만남을 피해왔다. 그녀를 대할 때마다 나는 더 초라해졌다.

“음…… 도 공자. 잠깐 실례해요.”

심하령이 번개같이 팔을 뻗어 내 손목을 잡아챘다. 여느 소저와는 달리 심하령은 이름난 무가이자 거대상단의 여식인지라 남녀가 유별한 데에 별로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점 역시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그녀가 상당한 미인이기 때문이리라. 손목을 잡힌 채 잠시 정적이 흐르고, 심하령의 아미가 찌푸려졌고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진전이 없군요. 확실히 수련한 거겠죠?”

“적어도 소저에겐 말했지 않습니까. 나는 무공에 재능이 없어서 수련에 전념할 생각이 없다고.”

무의미한 거짓말이다. 나는 절대로 게으름피우지 않고 수련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 형식은 어느 정도 흉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겉만 따라 한다면 그 어떤 천하제일의 무공이라도 약장수의 돈벌이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서 심하령은 내 무공의 정체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영약과 비급을 가져다주었고 난해한 비급에 주석을 달아 주었다. 그러나 나는 도통 무공에 대해 감을 잡지 못했고, 영약으로 억지로 쌓은 내공은 터럭같이 적고 혼탁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결국 삼 년 전에는 그녀의 무공이 나를 넘어섰다. 이 얼마나 꼴사나운 처지인가.

그녀는 남편보다 강한 아내가 되고 싶지 않다며 무공을 거의 수련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연스럽게 나를 넘어섰고 나는 성장은커녕 수련생만도 못한 상황이라니. 열심히 하는데도 이 모양이라는 사실을 밝힌다는 건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게으름뱅이를 가장했고 아버지를 제외하면 누구도 내 노력을 모른다. 정혼자인 그녀조차도.


심하령은 한숨을 내쉬며 내 손을 놓아주었다. 약간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녀의 무공이 한층 더 강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심하령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품속에서 낡은 책 한 권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이걸 받으세요.”

“비급이라면 됐습니다. 아무리 많은 비급을 받더라도….”

“이건 무공이 아니랍니다. 그리고 천의검문의 요청을 수행하며 우연히 얻은 것이니 부담 없이 받아주세요.”

나는 마지못해 그녀가 내미는 책을 받아들었다. 천의결. 이상한 우연인지, 아니면 광오한 삼류무공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문파와도 같은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건 어디서 구한 겁니까?”

“옛 황도(皇都)에서요. 그곳에 매장된 비급을 발굴하다 우연히 찾았답니다. 천의라는 이름에 관심이 생겨서 한번 읽어보았는데 제법 신묘한 내용이 있어서 공자께 가져왔지요.”

신묘? 나는 슥 하고 책을 훑어보고는 코웃음을 칠 뻔했다. 단월이니 진천이니 하는 검문의 무공보다 더 뜬구름 잡는 소리만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걸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지. 차라리 그 시간에 내공수련을 시도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었다. 하지만 심하령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쯤을 읽어 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의결을 잘 갈무리해서 집어넣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Inferior Struggle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개인사정으로 정기연재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4 15.02.24 1,892 0 -
공지 사과드립니다. 15.02.07 1,173 0 -
공지 연이은 설문조사 +12 14.07.16 1,077 0 -
공지 [무기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14 13.08.19 2,034 0 -
공지 [무기한] 캐릭터에 대한 평을 듣고자 합니다. +22 13.05.26 5,780 0 -
226 11. 남해(南海) (3) +7 21.11.10 203 4 14쪽
225 11. 남해(南海) (2) +5 19.11.26 371 11 11쪽
224 11. 남해(南海) (1) +6 19.01.30 337 11 11쪽
223 10. 운칠기삼(運七技三) (10) +5 18.10.30 362 9 17쪽
222 10. 운칠기삼(運七技三) (9) +4 18.05.25 427 5 17쪽
221 10. 운칠기삼(運七技三) (8) +3 18.01.17 400 10 15쪽
220 10. 운칠기삼(運七技三) (7) +4 17.12.31 411 5 14쪽
219 10. 운칠기삼(運七技三) (6) +2 17.12.05 349 6 40쪽
218 10. 운칠기삼(運七技三) (5) +2 17.10.17 396 6 17쪽
217 10. 운칠기삼(運七技三) (4) +5 17.06.13 566 7 11쪽
216 10. 운칠기삼(運七技三) (3) +1 17.06.13 474 5 15쪽
215 10. 운칠기삼(運七技三) (2) +5 17.03.20 589 10 19쪽
214 10. 운칠기삼(運七技三) (1) +6 17.01.15 743 10 17쪽
213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5) +3 16.12.18 872 14 20쪽
212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4) +6 16.12.03 683 13 25쪽
211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3) +5 16.11.02 1,008 10 25쪽
210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2) +7 16.09.12 832 11 36쪽
209 9. 넘고 넘어서, 돌고 돌아서 (1) +5 16.06.13 924 10 22쪽
208 8. 등하불명(燈下不明) (9) +2 16.06.14 872 10 21쪽
207 8. 등하불명(燈下不明) (8) +8 16.05.11 919 17 31쪽
206 8. 등하불명(燈下不明) (7) +6 16.03.29 785 10 24쪽
205 8. 등하불명(燈下不明) (6) +4 16.02.14 836 14 28쪽
204 8. 등하불명(燈下不明) (5) +3 16.02.10 917 14 18쪽
203 8. 등하불명(燈下不明) (4) +7 15.12.13 1,073 14 21쪽
202 8. 등하불명(燈下不明) (3) +11 15.10.12 867 2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