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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님의 서재입니다.

군필여고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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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작품등록일 :
2019.03.01 01:04
최근연재일 :
2019.09.1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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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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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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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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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값비싼 교훈(1)

DUMMY

“다음은 미스터 제이스의 설명이다.”


제이스는 서부영화에서 담배 하나 물고 등장하면 어울릴 인상의 남성이었다. 중후한 이미지에 굵고 낮은 목소리는 꽤나 터프해서 여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선생 중 하나였다.


“다들 이런 자리는 처음일 테니 긴장해 있을 테지.”


50여 명 정도 되는 1학년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제이스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앞서 미스터 강이 설명한 대로 크러셔에겐 냉병기만 효과가 있다. 어째서 그런 건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거기서 더 큰 효과를 보려면 마나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래, 크러셔라는 재앙이 들이닥치고 신이 보상이라도 준 듯 생겨난 힘 말이다.”


제이스의 시선이 모두를 훑었다. 이상하게 다시 한 번 나를 쳐다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희들은 선택받은 전사들이다. 인류가 마나를 느끼게 됐다고 해서 아무나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잠시 침묵.

“내가 가르쳐 준 건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사항이다. 가진 힘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지는 자신에게 달렸지.”

제이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교육은 거기까지였다. 잘 생긴 제이스의 연설에 여학생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송하나까지 내 옆에 와서는 “이야, 저 선생은 역시 볼 때마다 멋있다니까? 결투를 신청하고 싶어. 보나마나 내가 질 테지만.” 같은 소릴 해서 그냥 무시해버렸다.


석식 시간이 되었다. 아카데미에서와는 달리 차례대로 줄을 서서 배식을 받았다. 나는 어째 군대 생각이 나서 우중충한 기분이었다. 사실 이 세계도 현실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군대가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봐라, 저기 군복을 입은 젊은 남자들이 밥을 먹고 있잖아. 여학생들을 대놓고 구경 중인 게 마음에 안 들지만 그 마음 백번 이해한다. 내가 이해 안 하면 천벌을 받아야지.


“저 군인 아저씨들 우릴 너무 쳐다보는데? 하하, 사람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송하나는 털털한 성격대로 쿨하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특히 저 짝대기 네 개짜리는 지슬이 너만 바라본다야.”

“···불쌍하기도 하지.”

“엉? 뭐가 불쌍한데?”

“아냐, 아무것도.”


오로지 마나에 눈을 떠 아카데미를 다닌 남자만이 군대를 면제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현역으로 가야 했다.


군인들에 대한 연민은 이쯤 하도록 하자. 아카데미 학생들은 크러셔와 싸워야 하니 누가 누굴 걱정할 입장은 아니다. 뭐, 설정에 의하면 최근엔 대응체계가 적립되어서 희생자가 0에 수렴하고 있다는 상황이지만 말이지.


인류는 크러셔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지 오래다. 재능이 발현하고 뛰어난 실력을 갖춘 졸업생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균형은 조금씩,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래야 이야기가 성립하고 재미있어지지 않겠는가.


어디까지나 외부에서 소설이라는 매체로 감상할 때야 맞는 말이지만··· 안으로 들어와 직접 현실로 겪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긴장감이 커질 수밖에 없긴 했다.

내일 벌어질 일은 그 전초에 불과했다.

저녁을 먹고 남은 시간은 자유롭게 보내다가 오후 10시에 모두 취침에 들어갔다. 다크문 출현 시각은 오전 11시 무렵이었으므로 일찍 자둘 필요가 있었다.

·········.

모두가 깊이 잠든 시간. 나 역시 그러했는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씩 의식이 돌아왔다.

“음, 으음···”

무언가가 나한테 달라붙어 있었다.


뜨겁고, 끈적하게··· 그리고 징그러운 느낌. 의식이 거의 회복되긴 했으나 몸은 아직 덜 깼다. 내려앉은 눈꺼풀은 좀처럼 일어나질 못하고 있다. 하지만 뒷골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긴장감과 위기의식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무언가 잘못됐다고.


“흡?”


눈을 뜬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확인했다.

“뭐하는 짓이야!”

달라붙어 있던 한지나를 와락 떠밀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내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자고 있던 다른 여자애들도 눈을 떴다.

-딸칵.

한밤중에 불이 켜지고··· 모두가 잠을 방해 받아서 불편한 기색으로 소리를 지른 나를 쳐다보았다.

“뭐,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방금 일어난 어이없는 일에 대해 추궁했다.

“아, 미안. 내가 잠버릇이 좀 나빠서.”

한지나가 슬며시 웃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지슬아. 왜 그래?”

송하나의 목소리였다. 모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여기서 더 따져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네 자리는 저쪽이잖아.”

세 칸은 떨어져 있는 곳에 한지나의 이불이 있었다.

“나도 보면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니까. 내 잠버릇이 이렇게 나빴나 하고···”

“하아. 알겠으니까 꺼져. 빨리.”

“알겠어, 알겠어.”

“지슬아. 쟤가 뭘 했는데?”

“내 이불 속으로 들어왔어.”

“뭐?”

언뜻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의 송하나. 물론 나 역시 그러했다. 오밤 중에 남의 이불 속에 파고든 것도 그러할 진데 하물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잠결이었어도 확실하게 느꼈다. 저 녀석··· 나에게 키스를 했다.

“잠버릇이 얼마나 나쁘길래 그랬대?”

“나는 모르겠다.”

다들 자고 싶어 하는 기색이어서 키스 얘기까진 꺼내지 않았다.


곧 불이 꺼지고 다시 취침이 시작됐다. 송하나도 자기 이불로 돌아갔다. 자리에 누운 나는 불안하고 초조함에 몸서리 쳐야 했다.

백번 양보해서 정말 잠버릇이 나빴다고 치자. 그래서 어쩌다 보니 내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고 치자. 거기까진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키스는 아니지 않나? 더군다나 한지나 저 녀석··· 입속에 뭔가를 집어넣으려 했어.

딥키스를 시도하려던 건 아니었다. 확실하다. 그보다는 닫혀있던 내 입을 억지로 비집고 무언가를 밀어 넣는 감각이었다.

모르겠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잘 모르겠다.


아니, 잠깐.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해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긴 했지만 진정하고 잘 생각해보자.


지금 한지나는 제이스의 계략에 빠져 조종당하고 있다. 최면에 걸린 상태가 되어 제이스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된 셈이다. 제이스는 모종의 이유로 유세준을 죽이려 하는데, 여기서 설명하기엔 길어지니 넘어가고, 이번 사건에도 깊게 관련됐다.

혹시 나를 한패에 넣으려는 걸까?

이미 한지나와 그녀를 따르는 똘마니들은 세뇌가 완료된 상태다. 만약 일이 틀어져도 제이스가 깔끔하게 빠져나갈 구석까지 마련되었다. 원래 스토리가 이러한데 나를 굳이 끼워 넣으려 한다니.

어찌됐든 제이스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것 같더니만 착각이 아니었어.

···빌어먹을.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누워서 고민하다 보니 서서히 졸음이 되살아났고 그만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기상나팔이 시끄럽게 울려댈 때였다.

“······.”

한지나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따지고 들어봐야 나만 이상해지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잠자코 넘어가야 했다.


아침을 먹고 대기로소 가기 전 우리는 강성민 교관의 설교를 들었다.

“알다시피 오전 11시에 다크문이 발생한다. 제군들은 안전이 보장된 대기소에서 무인기가 촬영한 영상으로 전투 양상을 보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직접 해야 할 일이니 단 하나도 허투루 보는 일이 없도록 한다. 알겠나?”

이런 일이 처음인 1학년들은 꽤나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솔 책임자는 현지 방어부대 부사관과 제이스가 맡았다. 강성민은 다른 곳에 배치가 되었는데 이 모든 건 제이스의 노림수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대기소로 가니 원형의 탁자들과 영상을 송출하는 기계가 우리를 맞이했다. 학생들은 저마다 탁자에 흩어져 앉았다.

곧 검은 화면이 무인기의 송출영상으로 바뀌었다.

아직은 멀쩡한 푸른 하늘과 그것을 바라보는 일련의 병력들이 보였다. 일반 군인들과 2학년생들은 여유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잡담을 나누기까지 하였다. 말했듯이, 이미 대응체계가 자릴 잡아서 크러셔에 의한 사망자는 급속도로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크러셔 사냥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게 당연했다.

“시작됩니다.”

부사관의 신호가 끝나기 무섭게 하늘이 기묘하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우지직.

마치 CG를 덧칠한 것처럼 푸른 하늘 한 가운데에 시커먼 구멍이 생겨났다.

-우직, 콰지직.

유리창이 깨지는 게 아닐까 싶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구멍은 커다란 원형으로 번져나갔다.

“검은 달···”

마치 하늘에 검은 달이 떠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이 현상을 ‘다크문’이라고 부르는 거겠지만.

[크러셔 타입 케르베로스. 확인되었습니다.]

부대간 무전의 내용이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이는 현장에서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전군 대비태세!]

날카로운 소리가 멎고 구멍의 확장도 멈추었다. 대기소의 1학년들은 모두 긴장한 채 어떤 일이 벌어질 지를 지켜보았다.

-컹컹!

-왈왈왈!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

하늘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폭포가 쏟아졌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건 수많은 개들의 형상을 한 괴물들, 크러셔가 떼 지어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우와, 징그러.”

어떤 학생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그 말 대로였다. 시커먼 덩어리들이 우글우글대며 하늘에서부터 한 줄기로 떨어져 내리는데 안 징그러울 수가 있나.

[제 1, 2소대 사격 대기! 3소대 수류탄 일발 준비!]

왈왈, 으르릉 거리는 개 짖는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져온다. 숫자는 어림잡아 일백이 조금 넘어 보였는데 통상적인 양이긴 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평범하게는 끝이 나지 않으리라.

[던져!]

신호와 함께 수류탄이 날아갔고 달려오던 개들이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콰콰쾅!

폭염을 뚫고 남은 개들이 돌진해 왔다. 산산조각 난 것들은 10분 내외로 복구를 마치고 달려올 테지만 남은 놈들의 숫자를 줄이는 데는 충분했다.

[1소대, 2소대! 사격 준비!]

개들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전탄 발사!]

총구가 불꽃을 뿜었다. 달려오던 개들이 벌집이 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워든 부대! 공격!]

일반 사회에선 우리를 ‘워든’이라고 불러다.

신호가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2학년으로 구성된 부대가 움직였다. 그들이 창을 움켜쥐고 갖춘 진형은 고대 그리스에서 유행했던 팔랑크스 전술의 재현. 다만 사람 숫자가 적어서 압도적인 위용이 솟아나진 않았다.

그래도 그걸로 충분했다.

저들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워든이었으니까.

15명씩 2중으로 늘어선 2학년생들은 정면에선 방패를 들었고 그 사이로 적을 맞이하기 위해서 창을 늘어트렸다.

이어서 창에 푸른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왈왈, 시끄럽게 짖으며 무식하리만치 달려든 개들은 마력을 끌어올려 거대한 벽과 같이 변한 워든 부대에 그대로 들이받았다.

-퍽, 퍽!

충격에 못 이겨 몸이 부서져 버리는 것들을 뚫고 달려든 놈들은 창에 꿰어 꼬챙이가 됐다.

-퍼엉!

크러셔가 죽음에 이르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터지며 가루로 변해 흩어진다. 덕분에 시체처리에 어려움은 없는 편이었다.

-펑! 펑! 펑!

지능이란 존재하지 않는 무식한 괴물들은 끝도 없이 죽음을 향해 돌진하였다.

-펑! 퍼엉!

여유를 부린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케르베로스 타입 크러셔들은 삽시간에 숫자가 줄어들었고 폭죽 소리로 대기를 가득 메웠다.

“우와.”

송하나가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는 거겠지?”

“뭐어, 그렇지 않을까?”

강연재의 대답이었다.

긴장에 차서 지켜보고 있던 1학년들은 여유롭게 막아서는 선배들을 보며 차츰 안도하였고 영화를 보듯 구경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나는 안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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